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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 서다' 펴낸 최진열 박사 遼·宋·金 주무른 발해인을 아십니까

굴어당 2010. 3. 17. 10:17

'대륙에 서다' 펴낸 최진열 박사,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중국사 속 한국인 캐내
곽약사·고모한 등 발해유민 금나라 브레인·킹메이커로 활약, 고구려인 고운은 中 황제까지…
"이름조차 낯선 역사의 희생양… 자부심보다 고단한 삶에 숙연"

"곽약사(郭藥師)는 요(遼)나라의 유민이고, 송(宋)나라의 화근이며, 금(金)나라의 공신이다. 일개 신하의 몸으로 세 나라의 화(禍)를 제 마음대로 다루었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역사를 담은 중국 정사 《금사》(金史)는 발해인의 후예인 곽약사가 중국의 세 왕조를 마음대로 주물렀다고 썼다. 거란의 지휘관이었던 곽약사는 송나라에 투항했다가 다시 금나라에 귀순해 송나라를 공격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발해인 가운데는 금나라의 브레인으로 활약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금나라 4대 황제 해릉왕과 5대 황제 세종을 옹립하는 쿠데타 과정에서 발해인이 '킹메이커' 역할을 했고, 해릉왕과 세종의 친어머니가 모두 발해인일 만큼 권력 핵심부에 진출했다.

중국사 연구자 최진열(37) 박사가 낸 《대륙에 서다》(미지북스)는 2000년간 중국 역사 속에 뛰어들어 주역으로 활약한 한국인들을 집중적으로 발굴해냈다. 한국사와 중국사 양쪽에서 모두 주목하지 않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인 최초로 중국 후연(後燕) 황제가 된 고구려인 고운(高雲), 역시 고구려인으로 북위(北魏) 왕조의 황후가 된 고영과 고조용, 발해 유민으로 요나라 재상이 된 고모한….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 신라인, 고려인, 발해유민으로 중국 황제와 황후·후궁에서 재상· 장군·유학생·표류자 등 다양한 신분과 직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최진열 박사는“중국 대륙에 진출한 우리 선조들은 주로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을 때 크게 활약했다”고 말했다. /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우리 선조들은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 뒤로 만주 대륙에서 물러나 한반도에 웅크린 채 폐쇄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서들을 들여다보면, 중국에 건너가 활약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최진열 박사는 "이런 선조들 가운데는 전쟁에 패하거나 나라가 망한 탓에 포로와 인질로 끌려간 사람과 그 후예들이 적지 않다"면서 "가슴 뿌듯한 자부심보다 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숙연한 마음이 더 강하게 저미어온다"고 했다. 당나라 현종의 측근이었던 고구려 유민 왕모중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왕모중의 아버지는 무장이었으나 죄를 지어 노비가 됐고, 왕모중도 역시 노비로 자라났다. 그러나 운 좋게 왕모중은 훗날 황제가 된 현종 집안의 노비가 됐다. 왕모중은 현종의 권력 장악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명예직이지만 종1품 벼슬까지 받았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 때문에 현종에 의해 교살되는 최후를 맞았다.

8세기 후반 안녹산의 난 이후 혼란기를 틈타 산둥반도를 장악했던 군벌(軍閥) 실력자 이정기(732~781)도 고구려 유민 출신이다. 아들 이납, 손자 이사도 등 4대에 걸쳐 56년간 사실상의 독립왕국을 건설한 '이정기 정권'이 고구려인들의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최 박사는 "이정기가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이정기 정권에 참여했는지 밝혀주는 자료가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금나라 시조가 고려에서 건너왔다"는 중국 역사책의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핏줄은 고려에서 왔지만, 금나라 사람들이 과연 고려인의 정체성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최진열 박사는 2007년 서울대에서 〈북위 황제의 순행(巡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진연구자다. 중국사 속의 한국인들의 자취를 찾기 위해 25사(史)와 《자치통감》 같은 역사책은 물론, 당나라 때의 묘지명(墓誌銘)까지 훑었다. 그는 "중국의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고선지 장군이 힌두쿠시 산맥을 넘은 것과 비슷한 역경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그들과 마찬가지 고통을 겪은 조선족과 고려인, 재일교포 등 불행한 역사의 희생양들을 보듬어주고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한국팀과 중국팀이 경기할 때 조선족에게 어느 편을 응원할 것이냐고 놀리거나, 재일교포에게 대한민국의 국적을 강요하는 철없는 심술은 그만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역사학자 최진열씨 `대륙에 서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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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최진열씨 '대륙에 서다' 출간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최초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407년 후연의 황제가 된 고구려인 고운(高雲)이다.

고운의 할아버지는 모용씨 일족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갔다. 고운은 풍발과 장흥이 반란을 일으킬 때 우두머리로 추대돼 모용희의 뒤를 이어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허수아비였던 그는 심복으로부터 살해당하고 말았다.

중국 왕조에서 황후가 된 우리나라 여성도 있다. 원나라 토곤 테무르의 황후 기씨가 잘 알려졌지만, 가장 먼저 황후가 된 것은 북위의 고조용(高照容)이다.

고구려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북위로 이주한 고조용은 효문제의 후궁으로 발탁돼 2남1녀를 낳았으며 아들 선무제가 즉위하고 나서 황후로 추존됐다.

고조용의 질녀인 고영(高英) 또한 사촌인 선무제의 후궁이 됐다가 황후 우씨가 죽은 뒤에 황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소장 역사학자 최진열씨가 쓴 '대륙에 서다'(미지북스)는 이들처럼 한나라에서 청나라 시대까지 2천년 동안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한국인을 엄선해 엮은 열전(列傳)이다.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고선지,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은 장보고 등 역사 인물들의 삶을 조명했다. 유학생, 유학승, 역관, 표류자, 인질로 끌려간 세자 등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를 두루 실었다.

저자는 "우리 선조들은 주로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있을 때 가장 활발히 중국으로 진출해 활동했다"면서 "이민족 왕조들은 한족이 세운 나라들보다 외국인과 외국 문화에 더 개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고구려와 백제가 한때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의견도 수록했다.

그는 고구려의 유주 지배설과 백제의 요서 영유설을 반박하면서 고구려인들이나 백제인들이 중국에서 활동했음을 입증하는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 한 회의적인 견해가 정설로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나라 시조가 고려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금나라를 세운 완안부의 시조인 함보의 후손들이 고려인의 정체성을 가졌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함보와 우리 민족을 굳이 연결시킨다 해도 웃음거리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