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출신의 고학력 노동자들 빈부 격차·'방바닥 월급'에 분노
2010년 5~6월 중국에서 1970~80년대 한국을 연상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잇따른 노동자 자살과 파업, 대규모 시위와 회사측의 주동자 해고, 정부의 응급처방식 대응…. 1970년 서울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시발로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무역 등의 '민주노조운동' 단계를 거쳐 80년대 후반 전국적 파업으로 이어졌던 한국의 초기 노동 운동과 매우 닮았다. 중국 광동성 심천과 불산에서 출발해 강소(江蘇)성과 강서(江西)성, 북경(北京) 등지로 이어지는 일련의 노동자 파업은 왜 이 시점에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파업→사측 탄압→총파업→회사 굴복
지난달 17일 광동성 불산시 남해(南海)구의 광주혼다 자동차공장 부품 생산라인에서 "월급이 너무 낮다. 끝까지 투쟁하자"는 한 근로자의 외침을 신호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일손을 놓았다. 당황한 회사측이 "1주일 내 답을 주겠다"며 노동자들을 달래 업무에 복귀시켰으나, 나흘 뒤인 21일 '임금 인상 폭이 너무 낮고, 파업 주동자들을 해고시킬 것'이란 소문이 나돌자 재파업이 일어났다.
토요일인 22일, 주말 근무자 전원이 파업에 참여해 승용차 조립라인이 완전히 멈추자, 회사는 강경책과 회유책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2명의 파업 주동자를 해고하고 실습생들에게 파업 불참 확인서를 받는 한편, 식비 보조금 명목으로 매월 120~155위안을 추가 지급하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5월 25일부터 4개 생산라인 1900명의 노동자 전원이 파업에 참여해 매일 2억4000만위안(한화 약 422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회사 정문까지 시위를 벌이며 취재온 국내외 언론을 상대로 "공장 내부가 지독하게 덥고 소음이 심하며 악취가 코를 찌른다"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했다. 5월 31일 광주혼다는 결국 34%의 임금 인상안으로 물러섰다.
■외자기업 중심으로 임금 인상 도미노
파업은 정부 보호막이 약한 외자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5월 28일 북경 순의(順義)구 베이징현대자동차의 협력업체인 북경성우(星宇)하이텍에서 1000여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차량 범퍼와 도어 등을 납품하는 이 공장의 파업으로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이 3일간 멈춰섰다. 베이징현대의 노무 담당자가 급파돼 25%의 임금 인상을 약속한 뒤에야 조업이 재개됐다.
광주혼다와 베이징현대의 대폭적인 임금 인상 소식이 전해지자 6월 들어 파업은 전국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7일 하루에만 광동성 불산의 중외합작 기업인 펑푸(豊富)자동차부품회사, 광동성 혜주(惠州)의 한국계 아성(亞星)전자, 강소(江蘇)성 곤산(昆山)의 대만계 KOK인터내셔널 등에서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2000여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애플의 아이폰 등을 생산하는 광동성 심천의 대만계 전자업체 폭스콘(중국명 富士康)은 올 1월 말부터 최근까지 13명의 노동자들이 연쇄 자살을 시도, 이 중 11명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노동자 연쇄 자살로 회사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사측은 기본급을 900위안→1100위안(5월 29일)→1200위안(6월 2일)→2000위안(6월 6일·10월부터 적용)으로 잇따라 파격 인상했다. 9일 동안의 임금 상승폭이 지난 10년간의 상승폭을 넘어선다. 이는 곧 중국 국내기업에도 파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대 농민공'의 출현
광주혼다 자동차의 파업 주체는 40~50대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하얀 작업복에 똑같은 모자를 쓴 해맑은 얼굴의 20세 전후 청년들이었다. 올 1월 31일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이 가장 먼저 발표하는 '중앙 1호 문건'은 농촌 출신의 젊은 노동자들을 '신세대 농민공(新生代 農民工)'으로 명명했다. 이들은 1980년대 이후 출생자를 지칭하는 '빠링호우(80後)'에 속하지만, 부유한 '빠링호우'와 달리 상대적 빈곤에 시달린다.
광동성 인력자원 및 사회보장청에 따르면, 성(省) 내 2630여만 농민공 가운데 '신세대 농민공'이 75%(1978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학력은 중졸~고졸이 약 70%, 전문대졸 이상이 20%로, 1세대 농민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학력이다.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9년 말 현재 '빠링호우' 농민공은 전체 농민공(2억2978만명)의 60%(약 1억4000만명)를 차지한다. 중국의 2등 국민인 이들은 대부분 도시 호구(戶口·호적)가 없어 교육·의료·주택·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그래서 빈부 세습을 풍자하는 '부이대(富二代·부자 2세), 빈이대(貧二代·가난뱅이 2세)'란 유행어도 생겨났다.
청소년 시기 뼛속 깊이 차별을 경험한 이들은 환경 순응적인 부모세대 농민공과 달리, 빈부 격차와 임금 격차 같은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참지 못한다. 2008년 '노동계약법' 출현 이후 기업에 대한 고소·고발을 2배로 늘린 것도 이들이며, 인터넷을 통해 부패 관리의 인적 사항을 낱낱이 공개해 창피를 주는 이른바 '인육수색(人肉搜索)'의 주인공도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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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명의 노동자가 자살한 심천 폭스콘의 대만 모회사인 홍하이(鴻海)공사 앞에 모인 시 민단체 회원들이 몸에 쇠사슬을 감으며 최근의 연쇄 자살사태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 재신망
■장기 저임금과 집값 폭등에 불만 폭발
광동성에서 노동자 파업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은 이 지역 월급 수준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중산대학 노동연구 및 서비스센터의 류린핑(劉林平) 주임은 "주강삼각주의 월급 수준은 오랫동안 매우 낮았는데, 이는 기업들이 최저 임금 수준을 약간 웃도는 선에서 통제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착취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방바닥 월급(地板工資)'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광주 심천 등을 포함한 연해 대도시 부동산 가격은 올 들어 50% 이상 폭등해, 노동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더욱 멀어졌다. 그 결과 심천, 광주, 복주 등지에서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집으로 개조해 여러 농민공이 함께 거주하는 '달팽이집(蝸居)'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9일 홍콩 문회보는 북경대학 샤예량(夏業良) 교수의 글을 인용해, 중국 내 3%의 부유층(가구수 1%)이 국가 전체 부(富)의 41.4%를 점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그에 따른 박탈감이 노동자 폭발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 설 연휴가 끝난 뒤 산동성의 한 한국 섬유업체는 귀향 농민공의 50%가 돌아오지 않아 생산에 큰 차질을 겪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전체적으로 설 귀향 이후 미복귀 농민공은 3분의 1에 달했다. 이는 중경, 성도, 무한, 장사 등 중서부 내륙도시들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굳이 고향에서 멀고 물가도 비싼 연해까지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 광동성 동관·불산 두 도시의 182개 기업이 1만5000명의 근로자를 모집했지만 5000명만 채웠을 뿐이다. 연해지역에서 '신세대 농민공'의 희소성은 급격한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응과 고민
파업사태와 관련, 중국 정부는 일단 노동자 편에 선 듯한 모습이다. 올 들어 11개 성·시(省市)의 최저 임금을 평균 19.6% 올리고, 기업의 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있다. 부동산 폭등 및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신노동법과 환경법 등으로 근로 환경 개선에도 눈을 돌린다.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가면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내수를 진작시켜 8%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중국 정부는 또 노조 격인 공회(工會)의 결성과 활동도 독려한다. 그 결과 작년 말까지 전국에 '공회'는 184만개, 회원은 2억2600만명으로 늘어났다. 공회를 통한 단체임금 협상과 노동자들의 참여권, 발언권, 감독권도 권장하고, '단체행동권'에 대해서도 사실상 묵인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임금 인상 도미노가 이어지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간다. 최근 일본·홍콩·대만·미국 등 일부 외자기업들이 중국을 탈출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임금이 싼 동남아·인도 등으로 옮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채산성이 떨어지는 일부 완구업체는 아예 공장 문을 닫았다. 중국 국내 기업 중에서도 임금 인상을 버티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나면 사회 불안 요인도 커진다. 중국 내 제조업체가 인상된 임금을 수출품에 전가하면,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고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스톡홀름대 파월 교수는 "중국 노동자의 월급이 지나치게 올라가면 '메이드 인 차이나'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너무 낮으면 노동자의 존엄한 삶이 훼손된다"며 "이를 잘 조화시킨다면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적정한 임금수준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국과 중국 노동운동의 차이점
현재 중국의 노동운동이 70~80년대 한국 노동운동과 닮았지만, 앞으로 그 전개 양상은 사뭇 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노동계는 종교계와 지식계 등 외부 세력과의 연대가 약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가 막강한 물리력으로 노동운동을 통제하지만 이를 견제할 야당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오승렬 교수는 "중국의 지식인과 종교인들은 대부분 체제 순응적이고 애국적인 성향이 강해, 노동운동의 이론화와 조직화를 이끌거나 정치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묵인하에 당분간 파업이 확산되겠지만, 노동자들의 의식은 '임금인상'과 '근로환경 개선' 등 경제적 이익에 머물러 있을 것이란 예측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노동운동은, 지역 간·산업 간 연대와 정치세력화의 길을 걸었던 한국 노동운동과는 다른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것이 장기적으로 중국에 약(藥)이 될지 독(毒)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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