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이 다 닳아도 좋다… 암벽을 사랑하니까
伊 스포츠 클라이밍대회서 아시아인으로 첫 우승한 김자인
산악인 부모 피 물려받아, 中 2학년 때부터 국내 대회 석권
하루 5시간씩 주 5일 맹훈련… 1m52 작은 체구지만 세계랭킹 2위
'스파이더 걸(spider girl)'은 너무도 작았다. 서울 번동 노스페이스 건물 연습장에서 만난 스포츠 클라이밍(sports climbing·인공 암벽 등반)의 세계 랭킹 2위 김자인(22·고려대)은 키 1m52에 몸무게 40㎏ 남짓이었다. 지난 18일 이탈리아 '록 마스터' 대회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다는 사실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바위에 손을 대자마자 김자인은 영화 '스파이더 맨'의 주인공처럼 변신했다. 손끝 하나로 주먹만한 인공 손잡이, 즉 '홀더'를 잡고 4m 높이의 깎아지른 직벽을 순식간에 기어올랐다. 별 장비도 없었다. 양손에 하얗게 묻힌 탄산마그네슘 가루가 그녀와 바위를 하나로 만들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올해로 (암벽 탄 지) 딱 10년째"라고 웃으며 말하는 김자인은 어느덧 평범한 대학교 3학년 여학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다른 여학생들과 전혀 달랐다. 10개의 손톱엔 그 흔한 매니큐어 하나 발라져 있지 않았고 손가락 끝엔 굳은살이 가득 박여 있었다. 지문이 또렷한 손가락이 하나도 없었다. 10년 세월이 흔적을 지워버린 것이었다. 왜 그는 암벽에 매달리는 것일까.
■암벽을 만났다
김자인이 처음 바위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시흥은행초 2학년 때였다. 가족 소풍에서 만난 자연 암벽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그걸 오르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5m 정도 올라갔는데 무서워서 엉엉 울며 내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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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파이더 걸’김자인은 지난 18일 이탈리아‘록 마스터(Rock Master)’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다. 그의 이름은 암벽 등반 도구인 자일의‘자’와 북한산 인수봉의‘인’자를 합친 것이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이후 소녀는 몇년간 바위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합창단에 들어가 성악가를 꿈꿨다. 하지만 4년 뒤인 6학년 때 김자인은 다시 암벽을 만났다. 이번엔 인공이었다. 그를 이끈 건 오빠들이었다.
지금도 함께 클라이밍 선수로 활약하는 친오빠 자하(26)·자비(23)와 함께 산악 캠프에 참가했다가 스포츠 클라이밍을 처음 접했고 땀을 뻘뻘 흘린 끝에 정상에 섰다. 그때부터 김자인은 바위가 주는 희열에 빠져버렸다.
이후 온몸을 스포츠 클라이밍에 던졌고 일산동중 2학년 때인 16세부터 국내 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재능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혈관 속에 흐르는 '집안 내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아버지(김학은·54)는 대한산악연맹 산하 고양시 연맹 부회장이고, 어머니(이승형·52)는 한국 '1호' 여성 스포츠 클라이밍 1급 공인 심판이다. 부모가 처음 만난 곳도 산악회였다고 한다.
자인이란 이름도 등반 때 몸을 묶는 끈인 '자일'에서 '자'를 따오고 북한산 인수봉의 '인'자를 합친 것이다. 그렇다고 김자인이 부모 권유로 암벽을 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는 말리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국제 대회 한 번 나갈 때 500만원이 넘게 들 정도의 높은 비용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문서 복사 가게를 했던 부모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어머니는 "딸을 밖으로 내돌리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암벽과 사랑에 빠졌다
김자인은 세계 최고가 된 요즘도 일주일에 5일 훈련한다. 하루 5시간은 기본이다. 대회를 앞두고는 몸무게 관리에 나서 아침 겸 점심으로 한 끼를 먹고, 오후 6시쯤 고구마 한 개와 사과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한다.
보통사람은 1년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과정을 10년째 해오지만 김자인은 "한 번도 그만두고 싶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잘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이기고 싶었고 결국 안 하면 안 되는 수준까지 왔다.
그는 스스로 "중독"이란 표현을 썼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것에 100% 몰입했다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느끼는 희열은 해봐야만 알 수 있거든요." 진정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던가.
김자인도 마찬가지였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왜 좋은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인이는 스포츠 클라이밍이란 단어만 들어도 눈에 눈물이 고일 때가 있다"고 했다. 무언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징후였다.
돈도 이유는 아니었다. 1년에 5~6번 열리는 국내 대회 우승상금은 많아야 250만원이다. 1년에 10여 차례 참가하는 국제 대회도 우승상금이 300만~400만원에 불과했다. 경비도 빠듯할 정도로 아직은 스포츠 클라이밍의 '판'이 작다.
학창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놓치는 것도 김자인에겐 불만이 아니다. 그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갖기 위해선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자인은 최근에 만나기 시작한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한다.
스포츠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김자인이 참가한 외국 대회를 인터넷으로 챙겨 보는 등 관심이 많다고 한다. '남자 친구에게 스포츠 클라이밍을 가르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자 김자인은 아무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김자인은…
▲1988년 9월 11일생
▲시흥은행초―일산동중·고―고려대(체육교육학)
▲스포츠클라이밍 세계랭킹 2위
▲2004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2008년 아시안 챔피언십 우승
▲2010년 이탈리아 록 마스터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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