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익필의 산행(삼도헌의 한시산책119)
자연의 소리를 듣는 여름산행
요즘 수은주가 연일 30도를 넘는다.
나는 사람과 더위를 피해 진한 녹색의 여름옷을 입은 팔공산을 찾았다.
산은 흘러간 것과 오지 않은 것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누군가 추억 속 흔적을 따라 존재하는 곳이다.
여름 산은 풍성한 그늘로 잡사에 찌든 인간을 감싸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다.
수시로 바뀌는 산의 얼굴은 방랑자의 맘을 지니고 있다.
가쁜 호흡 때문에 느슨해진 발길로 정상을 향해 걷노라면
여름꽃들은 선명한 색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밝음과 어둠을 지닌 숲의 파노라마를 지날때마다
일상에서 쌓인 분주함은 조금씩 걸러진다.
그리고 자문한다.
왜 산에 오르는지.
여름산과의 대면이 시작된다.
또 다른 영혼과 소리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산모퉁이 돌아가면 어느새 땀이 나기 시작한다.
땀을 흘리면 물맛이 꿀맛이다.
수고로움은 보람의 단맛을 선사한다.
길섶에 보이는 수목과 온갖 들풀들이 한껏 키를 자랑한다.
오행으로 보면 봄은 목(木)이니 성장이 시작되는 철이고
여름은 화(火)이니 짙푸른 수목의 향연이 펼쳐지는 계절이다.
이렇게 무더운 속에서도 생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식물들.
살아있는것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현장이다.
산은 생명의 사계를 보여주는 곳이며 우주의 모태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팔공산 주봉인 동봉언저리에 도착했다
남은코스는 능선을 굽어보면서 지나가는 길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은 다양한 식물과 숲길을 즐기는 코스이다
짙은 운무로 산아래 풍경을 눈에 담지는 못하지만
구름위에서 옮기는 발걸음으로 인해 가선(假仙)이 되어간다.
조금씩 추억의 공간위로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한편의 시를 마무리 하듯 천천히 걷기를 계속한다.
바람노래 가득한 동봉에 오르면 이내 하산을 생각해야한다.
좋은시절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는 이치는 우리네 삶과 같다.
산행의 흔적은 땅이 아닌 가슴에 남는다.
천천히 산에 오른 사람의 마음에 진한 발자국을 남긴다.
무수한 발자국이 만들어낸 추억의 생그림자.
넉넉한 숲에서 나오는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히 스며들고
태고의 모습으로 피어난 온갖 들풀들로 눈이 호사를 하는가 하면,
매미소리, 새소리, 냇물소리가 청각으로 스며들어 세속의 오염된 잡음을 씻어낸다.
무엇보다 작아진 생각들이 스물스물 깨어난다.
......
조선시대 송익필(宋翼弼)도 산행(山行)이란 시에서 이런 소회를 남겼다.
걸어갈 땐 앉기 잊고
앉으면 가기 잊어[山行忘坐坐忘行]
말 멈추고 솔 그늘서
물소리 듣노라 [歇馬松陰聽水聲]
내 뒤의 몇 명이나
나 앞질러 가는가만 [後我幾人先我去]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니
또 무엇을 다투리요[各歸其止又何爭 ]
이제
여름산의 정취는
기억속에 각인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찾아 떠나는 여름산행길.
반복되는 일상에 여백을 주면서
햇살이 숲속으로 스며들듯이
사람에 지친 인간이 쉬어갈 수 있는 틈이 생기는 여름산행이었다.
2010. 8. 20.
삼도헌
'http:··blog.daum.net·k2gim·' 카테고리의 다른 글
| 與夢得沽酒閑飮且約後期(몽득과 술 사 마시며 후일을 기약하며)-白居易 (0) | 2010.08.22 |
|---|---|
| (14)여불위(呂不韋) 인재에 투자한 巨商…황제의 아버지 됐지만 아들 손에 죽다 (0) | 2010.08.22 |
| 康熙字典網上版 (0) | 2010.08.21 |
| 가을 한시(漢詩) 모음 (0) | 2010.08.21 |
| 朝鮮(조선) 名妓(명기)들의 詩話(시화) (0) | 2010.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