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詞) 란 무엇인가? 기본 게시판
중국 근세에 유행하던 서정시로서 본래 악곡(樂曲)의 가사로 불리던 것이었으므로 곡자사(曲子詞)라고 불리었으나, 점차 사(詞)라고 약칭(略稱)하게 되었다. 또한 전사(塡詞)·시여(詩餘;성립과정상 근체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의성(倚聲)·장단구(長短句;1, 2자에서 9자까지 구법의 장단이 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 )·악부(樂府;악보의 곡과 박자에 의거하여 가사를 메워 넣은 것이기 때문) 등으로도 불린다. 초기의 작품으로는 중당(中唐:8세기 말∼9세기 초)의 《어가자(漁歌子)》 《망강남(望江南)》 등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으나, 시(詩)에서 독립한 장르로 의식적으로 많이 제작하게 된 것은 당말(唐末)로부터 5대(五代) 후이다. 한문(漢文)·당시(唐詩)·송사(宋詞)·원곡(元曲)이라고 불리듯 송대(宋代)에서 가장 유행하였고 원(元)·명(明)에 이르러서는 쇠퇴했다가 청대(淸代)에 이르러 다시 유행하였다. 작풍은 보통 완약(婉約)·호방·전아(田雅)·영물(詠物) 등 여러 파로 나뉘는데, 내용적으로 반드시 좁은 것은 아니지만 본래의 특색은 시에서는 표현하기 곤란한 섬세한 미적 의식이나 정감을 개인의 독백 형식으로 진술하는 데 있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사의 표현범위는 시 가운데 그와 같은 요소를 추출하여 확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형식에 있어서 당말(唐末)로부터 송초(宋初)의 작품에는 소령(小令)이라고 불리는 단시형(短詩形)이 많고 압운(押韻)의 변화·교착(交錯)이 현저하다. 북송(北宋) 중기 이후에는 만사(慢詞)라고 불리는 장편이 주류가 되었고 한 구절 안에서 리듬은 다양화했으나 압운의 형식은 오히려 단순화하였다. 소령(小令)과 만사의 중간적 성격을 띤 것을 중조(中調)라고 한다. 남송 말기경부터 반주음악이 점차 사라지고 원래 곡조명으로 각 작품의 첫 머리에 있는 사조(詞調), 즉 사패(詞牌)는 단순히 한자의 사성(四聲)·평측(平仄)·압운·자수 등의 규칙을 표시하는 데 불과하였다. 이것은 문학으로서의 사가 음악으로부터 자립하여 독자적인 문예양식을 완성하였음을 의미한다. 주요 작자로 온정균(溫庭筠)·위장(韋莊)·이욱(李煜)·유영(柳永)·소식(蘇軾)·주방언(周邦彦)·이청조(李淸照)·신기질(辛棄疾)·강기(姜쇼)·오문영(吳文英)·납란성덕(納蘭性德) 등이 있으며, 주요 사집으로는 《화간집(花間集)》 《존전집(尊前集)》 《절묘호사(絶妙好詞)》 《사종(詞綜)》 《사선(詞選)》 등이 있다. 한국의 경우 고려 당악(唐樂)의 가사 거의 전부가 송사(宋詞)이므로 적어도 당악을 도입한 11세기 말엽 이후에는 꽤 많은 사를 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종(1084~94 재위)이 한국 최초로 사작을 시도하여 〈하성조사 賀聖朝詞〉를 지었으며, 예종(1105~22 재위)이 7차례 이상 사를 지어 신하들에게 보였다는 고려사의 기록 외에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고, 고려 후기에 가서야 비로소 ㅇ규보의 사 11수를 그의 문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사는 당악 교방가무의 영향을 받은 듯, 오락적이고도 경쾌한 내용을 성률(聲律)에 충실하면서도 구두어에 가까운 시어로 무리 없이 구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사작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작가는 이제현으로, 그의 사 15조 53편은 중국의 사선집인 〈강촌총서 疆村叢書〉에 전부가 수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현재 문집에 남아 있는 한국의 사는 약 1,000여 수에 이르는데, 중국의 음률에 정통하고 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처음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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