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주고 싶은 한 권의 책]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의 '사기열전'
세상은 나만 힘든 게 아니더라
조선일보 | 곽아람 기자 | 입력 2011.02.14 03:20 | 수정 2011.02.15 17:11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은 모든 사람이 위인(偉人)이 될 필요가 없고 삶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문호, 학자, 정치가는 물론이고 자객, 협객, 해학가 등도 등장하거든요."
조선 후기 지성사 및 사상사 권위자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69) 서울대 명예 교수는 40대 초반의 두 아들과 30대 중반의 딸을 두고 있다. 정 교수는 "둘째와 셋째가 한때 제 길을 찾지 못해 방황을 많이 했다"면서 "아이들이 '사기열전'을 통해 세상의 온갖 것을 다 가질 수 없으니 자신이 가장 원하고 잘하는 것 한 가지만을 추구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기열전'은 BC 90년경에 완성된 중국 역사서 '사기'의 일부분으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정 교수는 열전 첫머리에 등장하는 백이(伯夷)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라고 했다. 백이는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나라 주왕을 멸하자 어떻게 신하가 천자를 토벌할 수 있느냐며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서우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까짓 절개가 뭐기에 목숨을 함부로 버리느냐며 백이를 비웃기도 합니다만, 사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는 자기가 지키고 싶은 걸 지켰을 뿐이에요. 명예를 선택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백이를 기억하는 것이죠. 춘추시대 말기의 도적 도척(盜跖)은 사람을 죽이고 간을 회를 쳐 먹었는데도 천수를 누렸죠. 그는 돈만 추구한 거예요. 대신 우리는 '도척 같은 놈'이라는 말을 욕으로 삼잖아요. 사람마다 인생의 갈피에서 추구하는 게 다른 겁니다."
정 교수가 '사기열전'을 처음 접한 것은 1970년대 초, 한학자 고(故) 임창순 선생이 운영하던 서당인 태동고전연구소에서였다. 당시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었던 그는 공부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해 일주일에 세 번씩 한문을 배우러 다녔다. "원서로 '사기열전'을 읽기 시작했죠. 서너 달 정도 걸렸는데 굉장히 재밌었어요. 세상의 모든 지혜가 거기에 다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마천'이라는 인간에 대해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다고 했다. "황제의 눈 밖에 나 궁형(宮刑)을 당하잖아요. 치욕을 당하더라도 살아남아 역사를 쓰겠다며 피눈물을 흘렸겠죠. 역사가(歷史家) 개인이 겪은 발분의 역사와 거대한 시대상황이 합쳐져 그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저 자신도 외롭고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동질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정옥자 교수는 6·25 때 배를 타고 피란을 가던 중, 아버지가 세 여동생을 껴안고 호수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것을 목격했다. 남편이 물에 뛰어들자 어머니는 남은 맏딸(정옥자)을 잡아끌어 호수로 뛰어들려고 했다. 당시 8세였던 정옥자 교수는 안간힘을 써 어머니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난 죽기 싫어, 무서워, 무서워" 소리치면서 울었다.
'사기열전'은 서른이 넘어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정 교수가 역사학자로서의 방향을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스토리텔링 중심의 역사를 하면서 역사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듣는다. "'사기열전'에는 문(文)·사(史)·철(哲)이 다 있습디다. 요즘 문학하는 사람들은 허황된 수사만 나열하고 철학하는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없죠. 역사하는 사람들은 하부구조만 파고들고요. 그런데 사마천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역사의식과 자기가 고통 속에서 깨달은 세상의 진리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아름다운 문장에 곡진하게 담아냈어요. 제가 지성사·문화사 중심의 역사를 하게 된 것도 '사기열전'의 서술방법에서 받은 영향이 큽니다."
정 교수는 "아득바득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이 '사기열전'을 읽으면 인생을 관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삶이 너무 힘들 땐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쯤이야'라는 힘을 주고 내가 너무 위선적이고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질 땐 '세상엔 나보다 더한 놈들도 있는데, 뭐'라며 자위할 수 있도록 해 주니까요. 책을 읽고 있으면 옆에서 누군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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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자 전 서울대 교수가 물려주고싶은 한 권의 책 '사기열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 [조선일보]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어려운 글자를 쓰지 않고도 인정세태를 그려낸 사마천의 명문장을 맛보려면 원서로 읽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사기열전'은 BC 90년경에 완성된 중국 역사서 '사기'의 일부분으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정 교수는 열전 첫머리에 등장하는 백이(伯夷)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라고 했다. 백이는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나라 주왕을 멸하자 어떻게 신하가 천자를 토벌할 수 있느냐며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서우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까짓 절개가 뭐기에 목숨을 함부로 버리느냐며 백이를 비웃기도 합니다만, 사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는 자기가 지키고 싶은 걸 지켰을 뿐이에요. 명예를 선택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백이를 기억하는 것이죠. 춘추시대 말기의 도적 도척(盜跖)은 사람을 죽이고 간을 회를 쳐 먹었는데도 천수를 누렸죠. 그는 돈만 추구한 거예요. 대신 우리는 '도척 같은 놈'이라는 말을 욕으로 삼잖아요. 사람마다 인생의 갈피에서 추구하는 게 다른 겁니다."
정 교수가 '사기열전'을 처음 접한 것은 1970년대 초, 한학자 고(故) 임창순 선생이 운영하던 서당인 태동고전연구소에서였다. 당시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었던 그는 공부에 대한 갈증을 이기지 못해 일주일에 세 번씩 한문을 배우러 다녔다. "원서로 '사기열전'을 읽기 시작했죠. 서너 달 정도 걸렸는데 굉장히 재밌었어요. 세상의 모든 지혜가 거기에 다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마천'이라는 인간에 대해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다고 했다. "황제의 눈 밖에 나 궁형(宮刑)을 당하잖아요. 치욕을 당하더라도 살아남아 역사를 쓰겠다며 피눈물을 흘렸겠죠. 역사가(歷史家) 개인이 겪은 발분의 역사와 거대한 시대상황이 합쳐져 그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저 자신도 외롭고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동질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정옥자 교수는 6·25 때 배를 타고 피란을 가던 중, 아버지가 세 여동생을 껴안고 호수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것을 목격했다. 남편이 물에 뛰어들자 어머니는 남은 맏딸(정옥자)을 잡아끌어 호수로 뛰어들려고 했다. 당시 8세였던 정옥자 교수는 안간힘을 써 어머니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난 죽기 싫어, 무서워, 무서워" 소리치면서 울었다.
'사기열전'은 서른이 넘어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정 교수가 역사학자로서의 방향을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스토리텔링 중심의 역사를 하면서 역사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듣는다. "'사기열전'에는 문(文)·사(史)·철(哲)이 다 있습디다. 요즘 문학하는 사람들은 허황된 수사만 나열하고 철학하는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없죠. 역사하는 사람들은 하부구조만 파고들고요. 그런데 사마천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역사의식과 자기가 고통 속에서 깨달은 세상의 진리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아름다운 문장에 곡진하게 담아냈어요. 제가 지성사·문화사 중심의 역사를 하게 된 것도 '사기열전'의 서술방법에서 받은 영향이 큽니다."
정 교수는 "아득바득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이 '사기열전'을 읽으면 인생을 관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삶이 너무 힘들 땐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쯤이야'라는 힘을 주고 내가 너무 위선적이고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질 땐 '세상엔 나보다 더한 놈들도 있는데, 뭐'라며 자위할 수 있도록 해 주니까요. 책을 읽고 있으면 옆에서 누군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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