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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바이족의 고향 다리(大理) 1200년 古城에서 호수에 취하고 매실주에 취하다

굴어당 2011. 5. 13. 14:05

윤태옥 다큐멘터리 제작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감수 신계숙 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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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의 음식점인 메이쯔징주가. 매실주로 유명하다.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서쪽 300㎞쯤에 다리 바이족 자치주(大理白族自治州)가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소수민족이 55개인데, 그중 윈난성 내 토착 소수민족이 16개나 됩니다. 이 가운데 이족(彛族)이 약 480만명으로 가장 많고, 두 번째가 바이족으로 180만명 정도입니다. 이 바이족의 고향이 다리입니다.
   
   바이족은 그 전설이나 역사상의 인구 이동으로 보면, 남으로 내려온 저강인(羌人)과 인도 쪽에서 장사를 하려고 들어온 사람들, 중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토착민들과 장기간 함께 어울려 살면서 하나의 언어와 문화로 수렴된 민족입니다. 바이족이라는 말 그대로 흰 옷을 좋아하고 전통가옥에서도 흰 벽이 시선을 사로잡곤 합니다.
   
   다리의 1200년 고성(古城)은 명나라 초기에 지어진 것인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많이 훼손된 것을 1982년부터 복원한 것입니다. 고성은 남북으로 다섯 개, 동서로는 여덟 개의 길이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창산(蒼山)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계곡물이 성 안의 길가를 흐릅니다. 중국말로 ‘쟈쟈류쉐이, 후후양화(家家流水 戶戶養花)’라고 할 수 있지요. 집집마다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뜻입니다. 다리시의 서쪽은 창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얼하이(海) 호수가 동쪽을 해자(垓字)처럼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으로만 출입이 용이한데 그 북쪽을 상관(上關)이라고 하고 남쪽을 샤관(下關)이라고 합니다. 윈난성의 이웃 도시인 리장(麗江)의 고성이 고색 위에 화려함을 더한 것이라면, 다리의 고성은 고색 위에 은은함이 가득한 곳입니다.
   
   다리에 가면 풍화설월(風花雪月), 바람과 꽃과 눈과 달을 수없이 마주칩니다. 이 네 가지를 실물로 보기도 하지만, 하얀 회칠이 예쁜 바이족 전통가옥의 담벼락에서 글귀나 그림으로 마주치거나, 바이족 여인네들이 쓰고 있는 모자에서 수없이 스치게 됩니다. 바이족 여자들이 쓰는 모자엔 이 네 가지가 숨어있다고 합니다. 모자 뒤로 늘어뜨린 흰 술은 샤관의 바람이고, 꼭대기의 흰 장식은 창산의 눈이며, 울긋불긋한 수는 상관의 꽃이며, 모자의 둥근 모양이 바로 얼하이에 비친 달이라는 것이지요.
   
▲ 메이쯔징주가 입구를 장식한 술병들.

   티베트 고원의 동쪽 끝자락인 창산은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봉우리들이 늘어선 산맥입니다. 창산은 다른 산과는 달리, 편하게 걸으면서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다리 고성에서 창산을 올려다보면서 해발 2000m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좋습니다. 더 좋은 것은, 해발 2600m 높이의 창산 허리춤을 옆으로 길게 걸어가는 윈여루(云游路)입니다. 가슴으로는 창산을 숨 쉬고, 눈으로는 다리 고성과 얼하이 호수를 훤히 내려다보며 걷는 것이지요. 이 길은 길이 16㎞에 폭이 3m 정도 되는 깔끔한 스판루(石板路)인데, 창산의 다섯 개 계곡을 들어갔다가 여섯 개 산허리를 돌아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유행인데, 이 길을 서너 시간 걸으면서 행복한 느낌에 푹 젖어볼 수 있습니다. 윈여루에 올라갈 때에는 말을 타든가(40위안), 케이블카(60위안)를 타면 되고, 운유로 북쪽 끝에서는 리프트(40위안)를 타고 내려오면 적당합니다.
   
   얼하이는 남북으로 길이가 40㎞나 되는 호수로 해가 뜰 때마다 아름다운 빛의 잔치를 벌여주곤 합니다. 아침 7시 정도에 선착장으로 나가면 해뜨기 전의 잔잔한 호수에서부터 해가 떠오르기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아침 하늘을 맛볼 수 있습니다. ‘디카 놀이’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지요.
   
   여기서 나오는 풍부한 수산물로 즐거운 식탁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얼하이에서는 장어가 많이 잡히는데, 비싸지도 않습니다. 혹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객잔(客棧)에 투숙한다면 주인장에게 미리 부탁해서 장어구이를 배 터지도록 맛볼 수도 있습니다.
   
   다리 고성의 번화한 거리에는 맥주바와 카페가 많고, 서양 음식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소수민족이라고 해서 그들만의 특별한 음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바이족의 고향에 왔으니 그들의 평범한 음식을 느긋하게 즐겨보는 것도 좋겠지요.
   
   첫 번째로 추천할 만한 식당은 ‘황청건 바이주반점(皇城根白族飯店)’입니다. 다리 고성의 남문에서 성벽을 따라 창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성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성문에서 들어가는 길이 보아이루(博愛路)인데 그 첫 번째 집이 황청건 바이주반점입니다. 바이족 가족이 운영하는데, 성문 바로 밖에 있는 ‘넘버3’라는 한국인 객잔의 손님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고, ‘넘버3’의 멋쟁이 주인장이 동행해서 음식 주문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이 식당의 주요 메뉴들은, 바이족식 잡탕찌개라고 할 만한 샤궈차이(沙鍋菜·35위안), 토마토로 만든 장으로 메기를 시고 맵게 요리한 솬라위(酸辣魚·22위안), 우리네 가래떡 같은 것을 얇게 썰어 맛있게 볶아낸 차오얼콰이(炒餌塊·10위안), 얼하이에서 나는 해초류를 요리한 차오하이차이(炒海菜·10위안) 등입니다. 4인 기준으로 120위안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소금에 절인 채소와 돼지고기를 함께 볶은 옌차이차오러우(菜炒肉·18위안), 돼지고기를 피망과 함께 요리한 후피칭자오(虎皮靑椒·10위안), 자더우피엔(炸豆片·10위안), 차오더우젠(炒豆尖·10위안), 피단(皮蛋·18위안), 칭자오차오러우(靑椒炒肉·20위안) 등등입니다. 평범하면서도 이 지방의 특색이 차분하게 묻어나는 백성들의 식단입니다.
   
▲ 차오얼콰이. 가래떡 같은 것을 얇게 썰어 볶아낸 음식이다.
매실주를 직접 담가서 파는 ‘메이쯔징주가(梅子井酒家)’를 찾는 것도 다리의 향기를 만끽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리 고성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푸싱루(復興路)와 런민루(人民路)가 만나는 곳에 있는 야채시장 바로 안쪽에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진열된 수십 개의 술병이 먼저 인사를 합니다. 이 식당은 대문을 들어서서 작은 마당을 지나 또 대문으로 들어가는데 이런 가옥 구조를 이진원(二進院)이라고 합니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서면 100년 넘은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옆에 옛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집에서 긷는 우물물과, 얼하이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수확한 매실로 빚는 술입니다. 술은 단맛이 조금 강합니다. 여기서는 식사를 하지 않고 구경만 하거나 무료 시음만 한 잔 해도 상관없습니다. 술 한 병만 사도 좋아합니다. 물론 식사도 느긋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식사를 한다면 꼭 가운데 마당의 식탁에서 하시길. 시골집 마당에 앉은 듯한 푸근한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이 집에서 몇 가지 요리를 추천하자면, 얼하이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시고 맵게 요리한 솬라위(30위안), 매실 향을 가미한 돼지고기 요리 메이샹러우(梅香肉·40위안)가 있습니다. 서넛이 먹어도 충분한 싼셴멘(三鮮面·20위안)을 주문하면 바이족 아가씨가 각자의 그릇에 능숙하게 비벼줍니다. 매실주 3년짜리는 한 병에 30위안입니다.
   
    저녁식사 후 홍등이 켜진 고성의 밤거리를 산책하다가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이 생각난다면 보아이루에 있는 ‘The Sweet Tooth’라는 케이크점을 찾아도 좋습니다. 청각장애자들이 운영하는 가게라서, 말이 없이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조금만 배려하면 언어가 다른 외국의 장애인들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작은 메시지를 덤으로 얻게 되는 조금 특별한 곳이고, 맛도 중국에서는 양호한 편입니다.
   
   다리에서 보는 얼하이의 일출과 창산의 석양은 그야말로 장관이지요. 또 큰길이든 작은 길이든 조용히 걸으면서 창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길을 따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윈난을 수차례 여행한 사람들이 반년이고 일 년이고 조용히 묻혀 있고 싶어하는 곳으로 첫손에 꼽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