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땅, 인재의 향기도 ‘은은’ | |||||||||||||||||||||||||||||||||||||||||||||||||||||||||||||||||||||||||||||||||||||||||||||||||||||||||||||||||||||||||||||||||||||||||||||||||||||||||||||||||||||||||||||||||||||||||||||||||||||||||||||||||||||||||||||||||||||||||||||
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전북 고창·부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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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고창군과 부안군은 곰소만(灣)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인접한 이웃이다. 오른쪽에는 정읍시가 있어 같은 생활권을 이룬다. 고창·부안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고(故)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1891~1955년)이다. 교육자이자 언론인이며 정치인이었던 인촌은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호남의 대지주인 김경중 공의 4남으로 태어나 세 살 때 큰아버지인 김기중 공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백부 소생의 아들들이 어린 나이에 차례로 사망해 대를 이을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인촌이 양자로 갔던 것이다. 생부 김경중 공의 뒤는 인촌보다 다섯 살 아래인 김연수씨(전 삼양사 회장)가 잇게 되었다. 인촌의 생가인 인촌리에서 한 울타리 안에 살던 백부와 생부는 인촌이 17세 때 줄포만 건너편의 줄포(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로 이사해 인촌리 시절처럼 형제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인촌은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는 먼저 민족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며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하고 민족 산업을 일으키는 바탕으로 경성방직을 세웠다. 이어 1920년 4월1일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1929년에는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설립했다.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문물과 교육 실태를 살피고 돌아온 그는, 1932년 재정난을 겪던 보성전문을 인수해 교장에 취임했다. 국권을 되찾은 후 1946년 1월 한국민주당 당수를 맡아 정계에 입문하고 그해 8월에 보성전문을 기초로 고려대를 설립했다. 1951년 5월 제2대 부통령에 취임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국회 탄압에 항거해 이듬해 5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인촌은 장남인 김상만 전 동아일보 사장을 비롯해 9남을 두었다. 차남이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이며, 김남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7남이다. 고려대 정외과 교수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김병국 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과 지난 3월 18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병철 고려대 총장이 김병관 전 동아일보 사장과 4촌 형제간이다. 김재호 사장의 동생인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의 남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청운중학교 동창인 김재열 사장은 미국의 경영컨설팅회사 등에서 근무하다 결혼 후 제일기획 상무를 맡아 삼성에 합류한 이듬해 제일모직으로 옮겼다. 고창에 뿌리 둔 인촌 집안의 위력 인촌은 딸을 이활 전 무역협회 회장의 외아들과 혼인시켜 사돈을 맺었다. 이회장이 런던 대학 유학 시절 세계 각국의 대학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런던에 들렀던 인촌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이런 사연이 이어져 그는 상당액의 재산을 고려중앙학원에 희사했고 1955~65년은 재단 주무이사, 1965~82년은 제1~4대 이사장을 맡아 고려대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자유당 정권부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걸쳐 내무·법무부 장관을 두 차례씩 역임한 이호 전 장관이 그의 동생이다.
김회장은 일본 교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지 3년 후에 설립한 삼양사를 한평생 주력 기업으로 키웠다. 슬하에 아들 일곱, 딸 여섯 등 모두 13명의 자녀를 둔 김회장의 직계 가족들은 삼양사를 중심으로 정·재계, 관계, 언론계에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폭넓은 혼인 관계를 맺었다.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 김종규 전 서울신문 사장,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 등이 모두 사돈 집안이다. 따라서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이 일가 친척이다. 김상하 회장의 장남인 김원 삼양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해 3세대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삼양그룹은 ‘형제 경영’에서 ‘사촌형제 경영’ 시대로 바톤이 넘어갔다. 고창과 부안에서는 상당히 많은 현역 정치인들이 배출되었다. 우선 고창·부안을 지역구로 둔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있다. 부안에서 출생해 전주고-경희대 치대를 졸업한 치의학 박사이다. 치과의를 하며 아태평화재단 서울지부 지회장과 김대중 대통령 의료자문의를 지냈다.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고창·부안에서 당선되어 17대 국회에 진출했고, 18대 총선에서는 77.4%의 득표율로 재선 의원이 되었다. 2008년에는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 선정한 ‘여성 유권자가 뽑은 우수 정치인상’을 받았다. 김희철 의원(민주당·서울 관악 을)은 관악구청장을 두 차례 지낸 초선 의원이다. 18대 총선에서 서울의 민주당 당선자 중 유일한 초선이다. 고창 출신으로 고창고-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건국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3선 개헌 반대 시위로 투옥된 적이 있다. 평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일찍이 평민당 관악구지구당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한광옥 부총재 보좌관,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대본부장 비서실장, 김홍일 의원 보좌관을 지내면서 터를 잡은 끝에 제2회 지방선거에서 관악구청장에 당선되었다. 제3회 지방선거에서 재선되었으나 4회 때 낙선하고 2년여 휴지기를 가진 후에 관악 을 지역구의 18대 의원으로 재기했다. 당내 공천 경선에서 이 지역구에서만 5선을 기록했던 이해찬 전 총리측이 민 정태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제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가 구청장으로 재직할 때 관악구는 서울시 25개 구청 가운데 청렴도 1위 평가를 받았다. 백재현 의원(민주당·광명 갑)은 1991년 지방선거 부활에 때맞춰 광명시 의원으로 시작해 경기도의회 의원, 광명시장(2, 3기)을 차근차근 밟아 18대 총선 가도(街道)까지 공백 없이 달려 온 행운아이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한나라당 돌풍이 불어 경기도 내 32개 시·군 단체장 중 민주당 후보가 4명만 살아남은 2002년 지방선거 때도 당선을 놓치지 않았을 만큼 지역에 뿌리가 튼튼하다고 자부한다. 고창에서 태어난 백의원은 검정고시로 경기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세무사 사무소를 열면서 광명에 정착해 광명청년회의소 회장을 지냈다. 동교동계 청년 조직인 ‘연청’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2007년 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손학규 대표를 지지했다.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4번으로 18대 국회에 들어간 안규백 의원은 당 사무처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다. 고창 출신으로 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평민당에 들어가 당보(黨報) 기자, 정치연수원 기획부장, 홍보부장, 조직관리국장, 지방자치국장을 지내고 17대 대통령 선거 중앙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았다. 통합민주당 조직위원장과 민주당 지방자치위원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홍영표 의원(민주당·인천 부평 을)은,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자동차에 생산직으로 입사해 노동운동을 했고 이후 정당 활동을 거쳐 관계에 몸담았다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정치인이다. 대우자동차 재직 중 대우그룹 노조협의회 사무처장을 지냈고 파업 투쟁과 관련해 두 차례 구속된 적도 있다. 개혁국민정당에 참여하고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을 지내다 국무총리 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발탁되어 공무원 신분을 갖게 되었다. 이어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지원단장, 재정경제부 FTA 국내대책본부장을 지내고 18대 총선에 인천 부평 을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한 후 2009년 4·29 재·보궐 선거에서 뜻을 이루었다. 지난 5월부터 민주당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규식 의원(민주당·서울 강북 을)은 언론인 출신의 재선 의원이다. 부안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초·중·고교를 다니고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일보 기자로 출발해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전주고와 서울대 문리대 동문인 정동영 의원의 언론특보로 정계에 입문해 처음 17대 의원에 당선되었다. 당 의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법조인 중에는 김지형 대법관, 최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이홍훈 전 대법관, 송찬엽 부산지검 1차장검사가 고위직에 올랐다. 이 지역 출신 고위 공직자로는 진영곤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 주영섭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김남성 경찰청 경찰교육원(전 경찰종합학교) 원장이 있으며 진념 전 경제부총리(법무법인 서정 고문),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한식재단 이사장), 이연택 2014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이 지역을 빛냈다. 고 미당 서정주 선생의 고향인 고창 출신 문화예술인으로는 강명채 도서출판 삼성당 회장, 김영만 사진작가, 소설가 은희경씨, 개그우먼 김지선씨가 있다. ‘빠떼루 아저씨’로 인기를 끌었던 레슬러 김영준씨(스포츠문화원 원장)와 우찬규 도서출판 학고재 대표, 이진권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는 부안 출신이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해직 기자 출신으로, <시사저널> 주필을 맡아 창간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던 박권상 전 KBS 사장은 지금도 강직한 언론인의 사표로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부안 출신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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