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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표준어만 되고 방언은 안 되나

굴어당 2011. 8. 9. 12:19

[4]표준어만 되고 방언은 안 되나

"표준어는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1933년 한글맞춤범통일안이 이렇게 규정한 이래 우리 언어생활은 표준어 사용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다양한 방언들이 죽게 생겼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어정책토론회 네 번째 주제는 '표준어만 되고 방언은 안 되나'. 표준어 위주 정책을 놓고 윤석민 전북대 교수와 강희숙 조선대 교수가 찬반으로 나뉘어 발표한다. 11일 방송회관에서 열릴 토론회에는 KBS 아나운서 강성곤과 소설가 성석제가 찬반 토론자로 나선다.

[표준어 필요하다]
국가 구성원의 동질감 안 해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 필요

윤석민·전북대 국문과 교수

표준어 폐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방언문제이다. 표준어 선정이 불합리한 우열성의 원인이 되고 표준어 사용 권고가 자연스러운 언어의 발달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표준어 개념과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를 오인한 데서 비롯한다. 표준어는 지역 공동체를 넘어 국가 공동체의 공통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표준어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표준어의 '잘못된 우월성'이 위험하다고 비난한다.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의 '서울말'에 방점을 두어 서울말이 아니면 왜 표준어가 될 수 없느냐, 서울말만 우월하냐 이의를 제기한다. 물론 방언도 우리말이며 아끼고 보존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방언이 언제나 비표준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표준어는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말이 아니라 방언을 바탕으로 한다. 어떤 방언이든 구성원이 널리 사용하면 표준어가 될 수 있다. '멍게'나 '빈대떡'도 원래 방언이었지만 지금은 표준어가 됐다.

표준어는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한국을 대표하는 말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 및 한국인 나아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세계 도처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관과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외국인들에게 제공되는 한국어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 전반을 두루 알려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표준어이다.

표준어와 방언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공적 대화에서 보편적으로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언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무엇이 좋으냐보다 표준어와 방언이 가진 각자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표준어가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발전에 장애라는 주장은 표준어가 우리말의 변화를 반영해왔음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표준어가 기본 소통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은 표준어가 우리말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표준어가 어렵다고 느끼거나 표준어와 다른 말을 사용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외국어,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의 사용 그리고 개인어의 오남용에 따른 우리말 파괴현상은 구성원의 동질감을 해치고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표준어는 이런 혼동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윤석민·전북대 국문과 교수

[표준어 필요없다]
방송선 표준어를, 사적 자리선 방언 쓰는 게 최선인가

강희숙·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교수

표준어 사정 원칙은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 처음 제시됐다. 그 뒤 표준어는 전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통일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 또는 대중적 정보 전달과 공통 문화 형성의 도구로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권력화된 나머지 비표준어에 해당하는 방언 사용자나 다양한 집단의 제한적 의사소통 방식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표준어는 좋은 말이고 올바른 말인 데 반해 방언은 나쁜 말, 잘못된 말이라고 보는 인식은 어떤 면에서 '서울 대 지방'이라는 특이한 이분법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방언은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전개되는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통의 도구이다. 언어생활이 결코 표준어 일색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잘 정제된 표준어의 배경하에서만 잉태되지 않았다. 또 자라는 과정에서 숱한 만남, 접촉 과정에서 정확한 표준어만을 습득해 구사하는 언어적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표준어 수호에만 연연해서는 안 된다. 해법으로 몇몇 표준어 규정의 손질이나 복수 표준어의 확대 등을 말하지만 그것만으로 미흡하다. 공적인 자리나 방송 매체 등에서는 '표준어'를, 사적인 자리에서는 '방언'을 가려 쓰는 방식도 최선은 아니다.

어떤 화자라도 표준어 구사는 서툴러도 방언으로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 어떠한 규범이나 인식도 그러한 언어 사용을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절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어정책의 방향은 표준어 중심의 획일적 언어정책이 아니라 일종의 다언어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이른바 글로벌 시대 또는 다문화 시대라는 사회적 변화에 부응해 다언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수의 국민이 둘 이상의 언어에 대해 거의 동등한 수준의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보면 얼마나 클 것인가? 이러한 언어 능력은 표준어와 방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표준어와 지역 방언을 모두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지닌 국민이 바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적 자원일 수 있음을 깨닫자. 지역 방언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이런 방향의 언어정책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 /강희숙·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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