尤庵 先生 〈首尾吟〉 134수 管窺*
鄭珉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Ⅰ. 머리말
Ⅱ. 우암의 시학관점과 ‘수미음체’의 양식사적 연변
1. 우암의 시학관점
2. ‘수미음체’의 양식사적 연원과 연변
Ⅲ. 우암 〈수미음〉 134수의 작품 특성
1. 창작 동기와 형식 특성
2. 작품 구조와 내용 특성
Ⅳ. 우암 〈수미음〉 134수의 문학가치 : 결론을 대신하여
* 이 논문은 2005년도 한양대학교 교내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것임.
〈논문 요약〉
본 논문은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의 〈수미음(首尾吟)〉 134수 연작 속에 담긴 우암의 학문 태도와 의리 정신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수미음〉은 분량만으로도 우암 전체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명실공히 우암 한시의 대표작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도학시의 새로운 기축(機軸)을 열어 보여 이후 제가들의 차운작을 낳았다. 134수 연작은 우암 사유의 전체상을 한번에 드러내는 총체성을 갖추고 있다.
우암은 음풍영월류의 시심을 혐오했다. 정서를 위주로 하는 시학관점에서 보면 시심이 틈입할 여지 없는 몰취미에 가깝다. 그렇다고 그가 시 창작에 등한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특별히 소옹의 시를 차운한 것도 흥미롭다. 그는 소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만년에 유배지에서 그의 시와 새롭게 만나 몰입하였다. 이 작품 외에도 소옹의 시를 차운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소옹이 처음 선보인 수미음체는 도학에 바탕을 둔 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적 이상을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자주 창작하였다. 형식적으로는 첫구의 내용이 끝구에 반복해서 나오고, 제 2구도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창작에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르는 불편한 방식이다. 그러나 우암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달리, 전체 134수의 시를 통해 일련의 연작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과 공부, 도맥(道脈)의 전승과 역대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대하적 구성을 펼쳐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단락별로 기획 주제를 두어 각 부분이 합쳐져서 전체를 구성하는 전작 형태를 선보인 것이다.
작품의 특성은 첫째, 연작성을 강화하여 주제가 집중화되었고, 의론성이 강조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둘째, 우암의 학문관, 역사인식, 독후감, 관물론이 망라된 우암 사유의 총정리에 해당하여, 사유의 전체상을 파악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셋째, 후대의 유사한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문학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무미건조하나, 송시열의 정신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대하적 구성으로 계열성을 지닌, 우암 사상의 총결판이라 할 수 있다.
주제어 : 우암 송시열, 수미음, 수미음체, 소옹, 주자, 한시.
Ⅰ. 머리말
이 글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한시 중 대표작이라 할만한 〈수미음(首尾吟)〉 134수 연작을 살펴 그 속에 담긴 우암의 학문 태도와 의리 정신의 일단을 살피는데 목적이 있다.**
우암의 한시는 현재 788수 가량 남아있다.1) 〈수미음〉은 이 가운데 134수를 차지하니, 전체 시의 17%에 해당하는 많은 분량이다. 그 나머지는 만시(挽詩)와 증별시가 대부분이고, 그밖에 자손에게 주는 훈학이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을 담은 시가 있다. 대부분 실용적 목적에서 창작되었다. 우암 한시에서 〈수미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우암의 한시에는 문학적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성은 찾기 어렵다. 음풍농월류의 한갓진 경물 묘사도 만나보기 힘들다. 권면과 자경(自警), 덕담과 평가가 내용의 주조를 이룬다. 일견해서 문예취가 없고, 산문에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이런 면이 그간 우암 시학에 대한 무관심의 한 원인이다.2) 반면 산꼭대기에서 바윗돌이 굴러내리는 듯한 웅혼한 기상의 산문은 방대한 분량에 질려 오히려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학자의 웅숭깊은 학문과 대로(大老)의 경륜이 빚어낸 도저한 시상은 도학시의 또 다른 풍격와 새로운 기축(機軸)을 열어 보이고 있어, 문학성의 잣대로만 말하고 말 일이 아니다. 특히 〈수미음(首尾吟)〉 134수 연작은 규모면에서 단연 이채를 발한다. 내용 또한 우암 사유의 전체상을 단번에 드러내는 총체성을 갖추었다. 우암의 시학에 대한 관점은 어떠했을까? 수미음체의 양식사적 연원과 연변은 어떻게 이어져 왔던가? 우암 〈수미음〉 134수는 어떠한 형식적 내용적 특성을 갖추고 있나? 이런 질문의 목록을 갖고 이 글을 시작한다. 논의의 과정에서 이 작품의 문학 가치와 학술 의의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Ⅱ. 우암의 시학관점과 ‘수미음체’의 양식사적 연변
1. 우암의 시학관점
우암의 한시는 이미지를 통한 정서 표달 보다 설리적 직설법을 택한다. 시의 언어이기 보다 산문의 언어다. 우암의 시학관점은 어떠했을까?
우암은 작시에 대해 묻는 제자의 질문에, 짓는 것도 좋지만 짓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두시(杜詩)를 가르쳐 달라는 요구에는 이같은 시사(詩詞)는 나는 모른다며 끝내 가르쳐주지 않았다.3) 그렇다고 우암이 시에 대한 공부가 깊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두보의 난해구에 대해 제자 김영숙(金永叔) 및 김중숙(金重叔) 등과 토론한 바 있고, 《어록》 곳곳에서 명가의 시를 외워 주며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4)
제자가 우암이 지은 것으로 잘못 알려진 수자시(愁字詩)의 진위에 대해 묻자 “내가 평생 이런 잡설은 지어본 적이 없다. 또 까닭 없이 쓸데없는 글을 지어본 적도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백이나 두보 또는 《당음(唐音)》같은 시는 평생 단 한 번도 남에게 가르쳐 본 적이 없다는 말도 남겼다.5) 학시(學詩)든 작시든 부정적 인식을 지녔고, 시를 짓기는 해도 실용적 필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창작 외에는 힘쏟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유 없이 쓸데없는 시를 지어본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문집의 시 제목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전체 시 중에 세상을 뜬 사람을 추모하며 그의 평생 학문과 의리를 밝힌 글이 가장 많다. 그밖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덕담과 당부의 뜻을 피력한 시나 손자들의 학문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가르침으로 내린 것, 그도 아니면 공부의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피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길가다 문득 마주친 경치의 아름다움이나, 즉흥적 감상의 발로, 즉 음풍영월에 해당하는 시는 단 한 수도 찾아볼 수 없다. 정서를 위주로 하는 시학의 관점에서는 시심(詩心)이 틈입할 여지가 없는 몰취미인 셈이다.
이러한 우암의 시인식은 석주 권필의 별집을 엮으며 쓴 〈석주별집발(石洲別集跋)〉에서도 드러난다. 원래 《석주집》을 엮고 나서 남은 시가 600수 가량 있었다. 다시 별집을 엮으면서 권필의 증손 권수가 우암에게 찾아와 더 취사할 것이 있는 지 묻자, 우암은 석주의 남은 시 가운데 어릴 때 희작과 승려들과 수창한 시, 또 풍자가 너무 심한 것들을 다 빼 버리고, 단지 1백수 가량만 골라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우암은 시를 가지고 석주를 보아서는 안 되고, 사람으로 석주를 볼 것을 주문했다.6) 말하자면 별집 산정 시에 문학적으로 석주의 진면목을 보여줄만한 시 500수 가량이 우암에 의해 삭제된 셈인데, 우암의 기준은 이들 시가 인간 석주가 아닌 시인 석주의 면모를 더 부각시켜, 그의 돈후독실한 내행(內行)을 가리게 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이밖에 방대한 《송자대전》을 통털어 시학에 대한 이렇다 할 견해를 제시한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우암은 시를 배우고 시를 짓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시란 어쩔 수 지어야 할 자리거나, 꼭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설리(說理)를 우선할 뿐 음풍영월의 한사(閑事)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도 우암의 〈수미음〉 134수 연작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2. ‘수미음체’의 양식사적 연원과 연변
우암의 〈수미음〉 134수 연작을 검토하기에 앞서 이른바 수미음(首尾吟)체의 양식사적 연원과 연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연원이다. 한시사에서 ‘수미음’이란 시체를 처음창시한 사람은 송나라 때 학자 소옹(邵翁, 1011-1077)이다. 그는 만년에 안락외(安樂窩)에 머물 때 135수의 연작시 〈수미음〉을 지었다.7) 명대 서사증(徐師曾)은 〈문체명변서설(文體明辨序說)〉에서 “수미음이란 것은 같은 구절을 첫 구와 끝 구에 모두 쓰는 것이다. 이 체는 다른 문집에는 실려 있지 않고, 오직 송나라 소옹의 문집에만 있다.”고 했다.8)
먼저 간략하게 수미음체의 형식 틀을 살펴보자. 수미음체는 제목대로 제 1구와 제 8구가 동일하다. 처음 말한 것을 끝에서 다시 강조하는 쌍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2구는 ‘詩是堯夫○○時’로 매번 두 글자가 교체된다. 때로 4글자, 혹은 6글자, 또는 7글자가 모두 바뀌기도 하지만, 기본형은 두 글자만 교체되는 것이다. 제 2구의 교체 부분은 해당 시의 주제이자 제목격으로 전체 내용을 암시 또는 압축한다.
1,2구와 8구의 정형구를 빼고 나면 3,4 5,6구와 7구가 남는다. 2구의 ○○ 부분을 풀이하여 서술한 것이 3,4 5,6구다. 7구는 2구의 ○○ 부분과 서로 묻고 답하는 호응 관계에 놓인다. 다시 말해 제 2구의 교체 부분에서 해당 시의 주제를 제시하고, 이어지는 네 구절로 주제를 구현한 후, 제 7구의 한 구절이 이를 받아 앞뒤로 호응하여 마무리되는 구조다.
이를 전체 구문으로 풀이하면 이렇다. “나는 시 읊기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다만 ○○할 때만은 예외다. 그 이유는 3,4구와 5,6구로 제시하겠고, 7구로 결론 맺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시 읊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구체적 예를 들어보자. 소옹 〈수미음〉의 제 12수다.
堯夫非詩愛吟詩 요부가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堯夫漸老時 시 읊기는 요부가 점차 늙어 갈 때라.
每用風騷觀物體 풍소(風騷)를 매양 써서 물체를 관찰하고
却因言語漏天機 언어로 인하여서 천기(天機)를 누설했지.
林間車馬自稀到 숲 사이로 수레와 말 찾아옴이 드물어
塵外盃觴不浪飛 티끌 밖서 술잔이 함부로 오가잖네.
六十一年無事客 61년 세월에 일 없는 손님이라
堯夫非是愛吟詩 요부는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닐세.
틀에 따라 분석하면, 이 시에서 다룰 내용은 2구의 교체 부분에 놓인 ‘점로(漸老)’다. 3,4구에서는 시를 지어 관물(觀物)하고 언어로 천기(天機)를 읽으며 지낸 삶을 돌아보았다. 또 5,6구에서는 거마(車馬)가 찾지 않는 한갓진 숲속이라 술잔 나눌 벗도 없는 조촐한 생활을 말했다. 이를 다시 한번 압축한 것이 바로 7구의 ‘육십일년무사객(六十一年無事客)’이다. 일없이 늙어가는 삶에 대한 예찬인 셈이다. ‘무사객’으로 ‘점로’하는 자신의 삶을 시의 형식을 빌어 읊었다.
1구와 2구, 그리고 8구 끝의 운자 자리에 ‘시(詩)’자와 ‘시(時)’자가 붙박혀 있다. 그 결과 전체 시는 별 도리 없이 평성 지운(支韻)의 운자를 134수 모두 되풀이 해 쓸 수밖에 없다. 수없이 같은 운자가 거듭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은 시인이 시상을 펼치는 데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제 2구는 ‘詩是堯夫○○時’가 기본형이고, ‘詩是○○○○時’나 ‘詩是○○○○○’, 또는 ‘○○○○○○時’, ‘○○○○○○○’ 등은 확장형이다. 확장형의 예를 하나 들어본다.
堯夫非詩愛吟詩 요부가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爲見興衰各有時 흥쇠(興衰)에는 때가 있음 보이기 위함일세.
天地全功須發露 천지의 전공(全功)이야 다 드러나 있다 해도
朝廷盛美在施爲 조정의 성미(盛美)만은 베품에 달렸다네.
便都黙黙奈何見 문득 모두 묵묵하니 어이해야 볼 것인가
若不云云那得知 누가 뭐라 말 안하면 어찌 알 수 있으리오.
事在目前人不慮 눈 앞에 일 있는데 근심하지 아니하니
堯夫非是愛吟詩 요부는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닐세.
2구는 6글자가 교체된 확장형의 구문이다. 시를 읊는 이유는 흥쇠에 저마다 때가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천지의 덕은 이미 환히 드러나 있는데, 이를 잘 본받으면 정치가 잘 다스려지고, 반대로 하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그런 조짐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일러주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당장 눈 앞에 큰 일이 벌어질 판인데도 사람들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태평이다. 그러니 내가 시를 지어서라도 이 일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옹의 〈수미음〉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첫수는 성현(聖賢)의 흥(興)이 때가 있음을 보이기 위해[爲見聖賢興有時] 고인이 미처 말하지 못한 설월풍화(雪月風花)의 궐전(闕典)을 품제(品題)하겠노라고 했다. 이후 ‘좌간(坐看)’, ‘득의(得意)’, ‘반취(半醉)’, ‘대주(對酒)’의 일상사를 비롯하여 ‘묵지(黙識)’, ‘자려(自勵)’, ‘가탄(可歎)’ 등의 영회, ‘어물(語物)’, ‘어도(語道)’, ‘자득(自得)’, ‘자희(自喜)’의 성찰, ‘춘진(春盡)’, ‘추진(秋盡)’, ‘한관소포(閑觀蔬圃)’ 등의 절서에 따른 관물(觀物) 등 다양한 주제를 특별한 차례 없이 펼쳐 보였다. 이들 작품은 물론 단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 틈틈이 생각이 고일 때마다 한 수씩 지은 것을 모아 묶은 것이다.
이후 수미음체는 도학 기반의 문인학자들이 자신의 찰리관물(察理觀物)의 결과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자주 창작되었다. 특히 사마광(司馬光)과 정호(程灝), 주희(朱熹) 등이 그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언급을 남긴 후, 수많은 사람들의 화운작이 나왔다.9) 중국은 잠시 미뤄두고, 우리나라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2,30명 작가가 수백수에 달하는 수미음체를 남기고 있다. 주요 작가별 목록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姜希孟 : 〈申參議歸來亭首尾吟〉 10수, 《私淑齋集》 권 2(총간 12-22)
―――― : 〈作首尾吟, 送人南歸〉5수, 《사숙재집》 권 2(총간 12-23)
―――― : 〈金頤叟誚余誇張, 作首尾吟奉呈希哂〉4수, 《사숙재집》 권 2(총간 12-33)
申光漢 : 〈和邵堯夫首尾吟八首〉 8수, 《企齋集》 권 9(총간 22-343)
金 淨 : 〈偶感. 首尾吟〉1수, 《冲庵集》 권 2(총간 23-125)
徐敬德 : 〈觀易. 偶得首尾吟, 以示學易輩諸賢〉 2수, 《花潭集》 권 1(총간 24-29)
―――― : 〈體述邵堯夫首尾吟, 聊表尙友千古之思〉 1수, 《화담집》 권 1(총간 24-292)
趙 昱 : 〈效康節先生首尾吟〉1수, 《龍門集》 권 3(총간 28-204)
崔 演 : 〈次卲子首尾吟〉 3수, 《艮齋集》 권 7(총간 32-127)
權好文 : 〈效康節首尾吟二絶〉 2수, 《松巖集》 권 1 (총간 41-124)
李 珥 : 〈乞退蒙允, 感著首尾吟四絶. 名之曰感君恩〉 4수, 《栗谷全書》 권 2(총간 44-32)
梁大樸 : 〈首尾吟. 奉呈松江相國〉1수, 《靑溪集》 권 1(총간 53-515)
河受一 : 〈首尾吟. 自警〉 4수, 《松亭集》 권 2(총간 61-86)
鄭經世 : 〈演雅. 效康節首尾吟體〉 1수, 《愚伏集》 권 2(총간 68-37)
金世濂 : 〈傚康節首尾吟〉 2수, 《東溟集》 권 3(총간 95-159)
河弘度 : 〈挽河長水首尾吟〉 1수, 《謙齋集》 권 2(총간 97-48)
河 溍 : 〈次康節首尾吟, 贈成而振四首〉 4수, 《台溪集》 권 4(총간 101-115)
―――― : 〈次成而振首尾吟二首〉2수, 《台溪集》 권 4(총간 101-116)
宋時烈 : 〈次康節首尾吟韻〉134수, 《宋子大全》 권 4(총간 108-166)
李殷相 : 〈次孫七休首尾吟〉1수, 《東里集》 권 5(총간 122-444)
―――― : 〈又次首尾吟〉1수, 《東里集》 권 5(총간 122-445)
李惟樟 : 〈次權聖則首尾吟〉2수, 《孤山集》 권 2(총간 126-43)
任 埅 : 〈多病牽宂, 孤負南湖之會. 吟成首尾吟二首, 寄洪九言〉2수, 《水村集》 권 1(총간 149-23
李萬敷 : 〈首尾吟〉15수, 《息山集》 별집 권 1(총간 179-9)
趙觀彬 : 〈效栗谷集感君恩體, 書首尾吟〉4수, 《悔軒集》 권 4(총간 211-224)
―――― : 〈效康節首尾吟體〉 8수, 《悔軒集》 권 7(총간 211-289)
南有容 : 〈和其首尾吟一首以謝之〉1수, 《雷淵集》 권 7(총간 217-153)
魏伯珪 : 〈首尾吟〉75수, 《存齋全書》 권 1
金正默 : 〈次首尾吟〉109수, 《過齋遺稿》 권 1(총간 255-220)
尹 愭 : 〈代人次人首尾吟〉3수, 《無名子集》 권 1(총간 256-44)
李德懋 : 〈次丘瓊山首尾吟〉1수(1백운), 《靑莊館全書》 권 1 (총간 257-20)
徐瀅修 : 〈和邵堯夫首尾吟〉 7수, 《明皐全集》 권 2(총간 261-44)
이상 모두 26명의 작가가 수미음체 한시를 창작했다. ‘○○非是愛吟詩’가 처음과 끝구에 들어가는 경우가 보통이나, 일부 작품은 권호문의 ‘松巖精舍獨閑居’나 남유용의 ‘人生七十古來稀’처럼 다른 구절을 앞뒤에 넣기도 한다. 또 이이는 수미음체라고 해놓고 1구의 처음 두 글자를 ‘군은(君恩)’으로 시작해서 끝구의 마지막 두 글자를 ‘군은’으로 맺는 방식으로 수미 일관의 형식을 약식 처리했다.
작품 수는 송시열의 작품이 134수로 소옹의 원운과 작품 수가 같고, 그밖에 김정묵의 〈차수미음(次首尾吟)〉109수와 위백규의 〈수미음(首尾吟)〉74수가 비교적 작품 수가 많다. 나머지는 보통 서너 수이거나 많아야 15수에 그쳤다.
Ⅲ. 우암 〈수미음〉 134수의 작품 특성
1. 창작 동기와 형식 특성
우암은 어떤 계기로 소옹의 〈수미음〉 134수를 창작하게 되었을까? 문집에는 이 작품을 1679년 8월 9일에 지었다고 적혀 있다. 1679년은 우암 73세 때다. 우암은 1674년 2차 예송논쟁의 패배 후 1675년에 덕원에 유배되었고, 장기와 거제 등지로 유배지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해배는 〈수미음〉을 지은 이듬해인 1680년에야 이루어졌다.
사실 우암은 이전까지 주자를 모범으로 삼고, 소옹의 시는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다 하여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10) 하지만 유배 이후 우암은 끊임없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남인들의 위협 속에 놓여 있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답답함 속에서 펼쳐 읽은 소옹의 《격양집(擊壤集)》이 마음에 큰 위로를 주었다. 그는 소옹의 시문을 되풀이해 읽으며 갈등과 절망의 나날을 담담히 견뎠다. 비록 해학의 기미가 짙어 완세불공의 뜻이 있지만, 의리의 변석과 선악의 분별이 단호하고, 시에 담긴 뜻이 시원함을 알아 점차 생각이 바뀌어 갔던 듯 하다. 심지어 소옹을 천고의 호걸이라 하고, 규모와 기상면에서 주자조차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기까지 하였다.11)
이 시기에 지은 작품 속에 집중적으로 보이는 소옹 시의 차운작만 보아도, 당시 우암이 소옹의 시문에 얼마나 잠심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문집에서 확인되는 소옹시의 차운작은 다음과 같다.
〈用堯夫先生意, 次朴受汝韻〉․〈戱效擊壤體, 和正平使君〉․〈觀擊壤集偶吟〉․〈觀擊壤集〉․〈康節有落便宜處得便宜之語, 喜其有會於余心, 因成一律, 示疇孫使和〉․〈用康節先生韻咏晦菴夫子〉․〈次擊壤竹庭睡起韻〉․〈用康節於聯句〉․〈次康節首尾吟韻〉․〈次康節先生新春韻示康錫使和〉
소옹과 관련된 작품이 10수에 달하는데, 모두 이 시기에 지은 것이다. 이 가운데 〈소강절에게 ‘마땅한 데 떨어져 마땅함을 얻었네’란 구절을 있는데, 내 마음과 꼭 맞는 것이 기뻐 율시 한 수를 지어 주손에게 화답케 하다(康節有落便宜處得便宜之語, 喜其有會於余心, 因成一律, 示疇孫使和)〉란 긴 제목의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落便宜處得便宜 마땅함에 떨어짐이 마땅함을 얻음이니
此事無由問伏羲 이 일은 복희씨께 물어볼 길이 없네.
松冒雪時心更傲 솔은 눈에 덮여야만 마음 더욱 오만하고
菊迎霜後意尤奇 국화 서리 맞은 후에 뜻이 한층 기특하다.
困亨誰識終非困 곤(困)이라야 형(亨)하나니 곤 아님을 뉘라 알리
危達方知不是危 위태해야 달(達)하나니 위기 아님 바로 아네.
寂寞囚山吾與爾 너와 나는 적막하게 산 속에 갇혔어도
不妨談道更吟詩 끄떡없이 도 말하며 다시 시를 짓는구나.
1구는 출전이 있는 말이다. 송 진종(眞宗)이 진단(陳摶)을 서울로 불렀을 때 진단은 이렇게 말했다. “즐겁게 노닌 곳은 오래 마음에 두지 말고, 득의의 장소는 두 번 가지 말라.” “마땅함에 떨어지는 것이 마땅함을 얻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지극한 말이라고 여겼다. 소옹이 늘 그의 말을 외우며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보배로운 지인(至人)께서 일찍이 말했나니, 마땅함에 떨어짐이 마땅함을 얻음일세.”12)라고 하였다.
우암은 주자가 엮은 《송명신언행록》에서 이 대목을 읽고 마음이 상쾌해져서 위 시를 지었다.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3,4구에 있다. 소나무는 천지에 눈이 내려 가지가 눈에 뒤덮힌 뒤에 그 세한(歲寒)의 자태를 뽐낸다. 국화는 서리를 맞고서야 오상고절(傲霜孤節)이 빛난다. 내 마음에 늠연함을 지녀 있다면 이깟 시련쯤이야 시련으로 칠 것도 못 된다. 참으로 드높은 기상이다. 5.6구는 《주역》의 말이다. 곤형(困亨)은 괘명이니, 곤궁한 처지에서 형통할 수 있으면 그 곤은 곤이 아니라 형이다. 위태로움을 딛고 일어선 달(達)은 또 그저 순탄 하게 얻은 달과는 다르다. 군자는 곤과 위를 딛고서 형과 달에 이른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진취의 밑바대로 삼는다. 그러니 곤경이니 위기니가 내 마음을 조금도 위축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격양집을 보다가[觀擊壤集]〉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七尺吾身立厚坤 일곱 자 내 몸뚱이 두터운 땅 위에 서니
推原本是自天根 근원을 미뤄보면 이 바로 천근(天根)일세.
靜中觀理分毫釐 고요 속에 이치 살펴 호리를 나누오고
夢裏尋人到皞軒 꿈 속에 사람 찾아 호헌(皞軒)에 이르렀네.
會有契時忘有罪 마음에 맞을 때는 죄 있음도 모두 잊고
到無心處却無言 무심한 곳 이르러선 문득 말을 않는도다.
蛇頭蝎尾干何事 뱀 머리 전갈 꼬리 따져서 무엇하리
可笑堯夫好議論 가소롭다 요부는 의론을 좋아했네.
7구의 ‘사두갈미(蛇頭蝎尾)’는 소옹이 〈감사음(感事吟)〉에서 “뱀 대가리 전갈 꼬리 서로 같지 않아도, 사람 독살 많이 함 이것이 공일레라. (蛇頭蝎尾不相同, 毒殺人多始是功)”라 한데서 따온 말이다. 우암은 소옹의 《격양집》을 읽으며 ‘정중관리(靜中觀理)’하고 ‘몽리심인(夢裏尋人)’하며 무심과 무언의 경계에서 분별을 떨쳐내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음을 마음으로 고마워했다.
유배 시기 우암은 소옹의 《격양집》을 읽으며 그 관물찰리(觀物察理)의 정신을 깊이 음미하고 체득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옹 공부의 결산으로 지은 것이 바로 〈차강절수미음운(次康節首尾吟韻)〉 134수이다. 우암은 작심하고 소옹의 〈수미음〉을 제 1수부터 제 134수까지 운자 순서대로 보운(步韻)하여, 소옹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삶과 학문을 돌아보는 자기 응시의 목소리를 여기에 담았다.
이제 이 작품의 형식 특성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우암의 시는 소옹의 시 134수를 그대로 차운한 것이다. 역대 많은 사람들이 수미음체 한시를 지었지만, 첫 수부터 마지막 수까지 전부 차운한 것은 우암의 이 작품이 유일하다. 앞서도 말했듯 이 시는 134수 모두가 평성 지운(支韻)으로 되어 있어, 같은 운자가 수도 없이 반복된다. 시상 전개에 제약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암은 134수의 연작에 소옹과 달리 주제별 연계성을 한층 강화했다. 그러면서도 운자만은 원작의 차례에 충실했으니, 창작 과정은 더욱 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요컨대 우암은 작심하고 이 연작에 도전했던 것이다.
구문 형식으로 보면 제 2구가 ‘詩是尤翁○○時’인 기본형이 31수이고, ‘詩是○○○○時’의 4자형은 43수이다. 또 ‘○○○○○○時’의 6자형이 56수이고, ‘○○○○○○○’의 7자형은 4수다. 가장 많은 경우가 6자 확장형이고, 그 다음이 4자 확장형이다. 7자형은 우암이 원해서가 아니라, 원시의 운자에 따르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구문 형식 또한 주제별 내용 변화와도 호응을 이루고 있어 창작 과정의 면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창작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작품에 1679년 8월 9일에 지었다고 했지만, 이 많은 작품을 순식간에 지었을 리는 만무하고, 상당히 오랜 시간 매만지고 정성을 쏟아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2. 작품 구조와 내용 특성
우암은 이 작품을 왜 썼을까? 전체 작품을 통독하여 보면, 그때그때 한 수 한 수 지어 모은 듯 산발적인 느낌을 주는 소옹의 작품과는 달리, 처음부터 주제 갈래를 두어 하나의 기획 속에서 일관된 흐름으로 창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암은 〈수미음〉 134수에서 자신의 인생과 공부, 도맥의 전승과 역대의 역사를 종관(縱觀)하는 대하적 구성을 펼쳐 보였다.
전체 단락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13)
제 1수~제 2수 : 서설
제 3수~제 29수 : 자경(自警)과 자회(自悔)
제 30수~제 58수 : 중국 역대사적
제 59수~제 78수 : 중국 도학연원
제 79수~제 82수 : 우리나라 역사
제 83수~제 123수 : 역대 유학경전
제 124수~제 129수 : 관물찰리(觀物察理)
제 130수~제 134수 : 존심함양(存心涵養)
제 1수부터 제 134수까지 우암은 철저한 기획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냈다. 이제 실제 작품을 바탕으로 전체 작품의 구조와 내용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서설 격인 제 1수와 제 2수를 읽어본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尤翁慕古時 시 읊기는 우옹이 옛날 사모할 때일세.
堯舜羲軒雖邈矣 요순과 복희 헌원 비록애 아득해도
禹湯文武却承之 우탕과 문무께서 문득 이를 이으셨네.
詩書禮樂無非敎 시서와 예악은 가르침 아님 없어
神聖仁賢儘著題 거룩하신 성현들이 글에 모두 드러났지.
千萬年人都一箇 천만년간 사람은 모두 다 한 가지라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尤翁著眼時 시 읊기는 우옹이 착안(着眼)하고 있는 땔세.
磅礴昆侖誰主是 드넓은 우주는 그 누가 주장하나
氤氳肅殺自無私 성한 기운 엄숙하여 삿됨이 절로 없네.
流行對待皆微顯 유행(流行)하고 대대(對待)함이 은미하게 드러나니
闔闢柔剛只偶奇 닫고 엶과 강유(剛柔)는 다만 우수 기수일세.
大小不同皆一貫 대소가 다 달라도 하나로 일관하니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이 첫 두 수는 전체 글의 종지를 선언한 내용이다. 제 1수의 주제어는 ‘모고(慕古)’다. 아마득한 상고 시절에서 우탕 문무를 거쳐 내려온 시서예악의 경전 속에는 신성(神聖)과 인현(仁賢)의 거룩한 자취가 그대로 담겨있다. 천만년의 세월이 흘러도 인간에게는 변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가치, 즉 도가 드리워져 있다. 지금에서 옛날을 사모함은 바로 이 흘러내려온 도의 소재를 깊이 음미코자 함이다.
둘째 수는 ‘착안(著眼)’을 주제어로 내세웠다. 착안이란 찰리(察理)를 위해 함축하여 관물(觀物)한 것이다. 끝 간 데 없는 우주와 아득한 천지의 기운 속에 천지만물이 유행대대(流行對待)하고, 합벽강유(闔闢柔剛)가 조화를 이루며 산다. 가만히 이를 음미하노라면 광대무변한 우주에 무사숙살(無私肅殺)한 기운이 가득 차 있어 저마다의 만물이 각금 달라도 일리(一理)로 꿰어져 융회관통(融會貫通)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모고(慕古)’의 한 축을 세워 고금 역대의 성현과 도학연원, 역대 사적을 훑어 내려오고, ‘착안(著眼)’의 한 축으로는 내면을 향한 끊임없는 자경(自警)과 함양으로 관물(觀物)하는 주체를 확립하는 모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을 우암은 각각 ‘도일개(都一箇)’와 ‘개일관(皆一貫)’으로 표현했다.
제 3수에서 제 29수까지는 자신을 돌아보는 자경(自警)과 자회(自悔)의 주제어를 내세웠다. ‘자경(自警)’․‘자탄(自歎)’․‘자구(自咎)’․‘안분(安分)’․‘만오(晩悟)’․‘자희(自喜)’․‘독어(獨語)’․‘독립(獨立)’․‘명사수고(冥思邃古)’․‘사긍세행(思矜細行)’․‘앙관부찰(仰觀俯察)’ 등이 그 대강의 목록들이다. 여기서 제 4수를 읽는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尤翁自歎時 시 읊기는 우옹이 자탄하는 때일세.
生此偏邦兼苦晩 외진 나라 태어나 뒤늦음도 괴로운데
矧玆褊性復難移 하물며 모난 성품 고치기가 어렵구나.
極知醉夢生而死 취한 꿈에 살다가 죽을 것이 뻔하니
無異紛綸走與飛 어지러이 날고 뛰는 짐승과 진배 없네.
虛負壯年今已老 장년을 헛보내고 이제 하마 늙었구나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그는 중화(中華) 아닌 편방(偏邦)에서, 옛날 아닌 지금에 태어나, 도의 길에서 멀어져 취생몽사(醉生夢死)로 금수처럼 살다 가는 인생을 자탄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자탄은 자괴로 함몰되는 대신, 바로 이어지는 제 5수 ‘음주(飮酒)’의 “주자를 뒤쫓아서 가슴을 씻으리니[自可盪胸追晦父]”와, 제 14수 ‘독어(獨語)’의 “지금 사람 어이해 모두 다 위태하리, 멀리 옛 도 생각하여 모두 떨쳐 없애리라.[豈必今人皆險巇, 還思古道儘平夷]”와 같은 다짐과 각오로 충일(充溢)해진다.
자경과 자회를 마무리 짓는 제 29수를 보자.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仰觀俯察時 시 읊기는 하늘 보고 땅을 살필 때라네.
蓋底一身如運轂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몸은 수레 같고
溫涼褫序若更棋 덮고 찬 계절 바뀜 바둑판 한 가질세.
山河井井華夷奠 산하는 가지런히 화이(華夷)로 구분되니
黎庶生生草木萋 많고 많은 백성들은 초목도곤 무성하다.
這裏陰陽無極妙 이 안에 음양과 무극이 절묘하니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주제어는 ‘앙관부찰(仰觀俯察)’이다. 우러러 하늘을 보면 춘하추동의 절서가 엄연하고, 굽어 땅을 살피면 산하대지 위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쉼 없다. 몸뚱이는 수레바퀴인양 잠시도 쉴 새 없고, 염량(炎凉)의 변화는 엎치락뒤치락 하는 바둑판 마냥 변화를 측량할 길 없다. 하지만 보라. 그 가운데 화이(華夷)의 나뉨이 오롯하고, 그 구분에 따라 천하 생민(生民)의 삶은 질서 있게 꼴 지워져 음양(陰陽) 무극(無極)의 오묘한 이치를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자기다짐을 세운 우암은 제 30수부터 제 58수까지 무려 29수에 걸쳐 중국 역대 치란의 자취를 살핀다. 내용으로 보면 증선지(曾先之)의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순서에 따른 듯하다. 먼저 첫 수인 제 30수부터 읽어본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閒看傳記時 시 읊기는 한가롭게 전기(傳記)를 볼 때일세.
一氣分時誰有見 한 기운 나뉠 때 그 누가 보았던고
三皇以上我無知 삼황(三皇)의 그 위로는 나는 아예 모를레라.
草衣木食何人說 풀옷 입고 열매 먹음 말한 이 누구던고
牛首蛇身史氏辭 소 머리에 뱀 몸뚱인 사씨(史氏)의 말씀일다.
其贗其眞姑舍是 거짓인지 진짠지는 잠시 여기 놓아두자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시의 내용은 《십팔사략》 첫 머리의 〈태고(太古)〉와 〈삼황(三皇)〉을 요약했다. 반고(盤古) 이후 삼황(三皇)이 다스리던 태고 적 사람들은 풀옷 입고 나무 열매로 연명했다. 소 머리에 뱀의 몸뚱이를 한 복희와 여와의 태고 적 일은 진위를 알 수 없으므로, 그 다음 시기부터 노래하겠다는 뜻을 피력하였다.
이후 ‘포희친견(包犧親見)’․‘신농몽견(神農夢見)’․‘진사황제(陳辭黃帝)’․‘유심전욱(幽尋顓頊)’․‘궁탐제곡(窮探帝嚳)’ 등을 주제로 삼황오제의 시절로부터 차례로 중국 문화 출발기의 모습을 살폈다. 이후 논의는 요순(堯舜) 우탕(禹湯)을 거쳐 문왕 무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우임금을 노래한 제 38수의 주제어는 흥미롭게도 ‘무간지언시중니(無間之言是仲尼)’이다. 바로 앞의 ‘흠유순씨(欽惟舜氏)’나 뒤쪽의 ‘탕참해석(湯慙解釋)’처럼 이름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엉뚱하게 중니(仲尼)를 내세운 것이 이상하다. 그 이유는 복잡한 데 있지 않다. 바로 소옹의 〈수미음〉 제 38수에서 ‘니(尼)’자를 운자 자리에 넣었으므로 이를 충실히 효칙키 위함이다. 작품을 보자.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無間之言是仲尼 틀림없는 평가는 공자의 말씀일세.
疏鑿平成功莫競 막힘 뚫어 트이게 한 큰 공적 나위없고
驅兼筆削事相追 오랑캐 몰아낸 일 기록으로 알 수 있네.
貢賦之篇精一法 공부(貢賦)에 담긴 내용 유정유일(惟精惟一) 한 법이니
如何不與易繫辭 어이해 〈계사전(繫辭傳)〉과 나란히 놓지 않나.
德衰定是齊東說 덕 쇠했단 그 말은 터무니 없는 주장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3구에서는 우임금의 치수(治水)를, 4구에서는 주공이이 묘족을 중원에서 몰아낸 일을 적었다. 4구는 《서경》 〈대우모〉에 보이는 유정유일(惟精惟一)의 가르침을 《주역》 〈계사전〉과 나란한 지위에 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전편이 우임금의 치적을 적었으므로 2구의 주제어에 마땅히 우의 이름이 드러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니를 내세웠다. 이런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원작의 보운(步韻)에 충실했던 것은 우암이 창작에 앞서 소옹의 충실한 전칙(典則)에 큰 비중을 두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면서도 차서를 흩트리지 않았으니, 〈수미음〉이 철저한 연작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본고의 논지를 강화시켜준다.
이후로는 춘추시대 제환공과 진문공, 전국시대 칠국(七國)과 진(秦)의 일을 잇달아 노래하고, 막바로 한나라 역사로 넘어 갔다. 이어 수당과 오계(五季)를 거쳐 송을 지나 ‘호원득지(胡元得志)’를 안타까워 하고, 막바로 제 57수에서 ‘흔봉성제(欣逢聖際)’를 기꺼워 하다 ‘갑신년 3월일을 아프게 우는도다[痛哭甲申三月日]’로 맺었다. 갑신년 3월은 1644년 명나라가 청에게 멸망한 날이다.
중국 역사는 이어지는 제 58수에서 마무리된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流觀宇宙時 시 읊음은 우주를 유관(流觀)할 때라네.
於萬於千年代去 만년 천년 연대가 아무리 흘러가도
其治其亂聖狂爲 성인(聖人) 광인(狂人) 따라서 치란(治亂)이 나뉜다네.
人間逝水無窮過 인간에 흐르는 물 끝없이 지나가니
泥上賓鴻底處飛 진흙 위 기러기는 낮은 데서 나는도다.
適此腥臊天下日 천하에 누린내가 진동하는 때 만나니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앞서 자회자겸의 단락을 마무리하는 제 29수의 주제어를 ‘앙관부찰(仰觀俯察)’로 한 것처럼 제 58수는 ‘유관우주(流觀宇宙)’로 귀결지었다. 치란과 흥망의 자취를 살펴보니 그 갈림은 결국 인주(人主)의 성광(聖狂)에 달린 것일 뿐이었다. 어짜피 인생이란 무궁히 흘러가는 물가에 잠깐 찍혔다 지워지는 기러기 발자욱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천하는 온통 오랑캐의 누린내가 진동하는 암흑천지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니 성주(聖主)를 잘 보필하여 천하의 누린내를 씻어내는 일이 자신의 할 일이 아니겠느냐고 다짐하는 듯하다.
이어지는 제 59수에서 78수까지는 역사의 피륙 위로 이어져 내려온 도학의 연원을 노래했다. 이것도 자세히 보면 둘로 대별되는데, 서설격인 제 59수를 빼고, 제 60수에서 제 67수까지는 주공(周公)․공자․안연(顔淵)․증삼․맹자 등을 차례로 노래하고, 제 66수에서는 ‘양척순양반도(攘斥荀揚反道)’를, 67수에서는 ‘왕한장단(王韓長短)’을 말했다.
이어지는 제 68수에서 제 78수까지는 송대 유학자들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제 68수의 주제어를 ‘재견건곤개벽(再見乾坤開闢)’이라 한 것만 보아도 우암이 송유(宋儒)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주렴계․정명도․정이천․소강절․주희 등을 한 수씩 따로 읊고, 이밖에 하남문하(河南門下)와 주문제자(朱門諸子)들을 따로 읊었다.
첫 수인 제 59수만 읽어보겠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自覺多言害事時 시 읊음은 많은 말이 일 해침을 알 때라.
道學淵源須著眼 도학의 연원을 눈을 감고 생각하다
古今成敗莫揚眉 고금의 성패를 치켜 뜨고 바라보네.
誰知精一相傳授 정일(精一)로 전수됨을 그 누가 알 것인가
恰似陰陽密拶移 음양이 비밀스레 옮겨감과 한 가질세.
從此門庭眞洞闢 이로조차 문정(門庭)이 실로 활짝 열렸으니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많은 말은 일을 그르칠 뿐이다. 이 명제를 앞에 내세운 채 우암은 도학의 연원과 고금의 성패를 따져본다. 요순 이래로 내려온 유정유일(惟精惟一)의 지극히 단순한 가르침은 음양이 돌고 돌듯 역대의 유학자들에게 비밀스레 전수되어 오늘까지 이어왔다. 이제 그 전수되어온 연원을 차례차례 노래하겠다는 것이다. 이 짧은 한마디 말로 도통이 전해져 왔으니 많은 말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이렇듯 우암은 큰 의미단락이 바뀔 때마다 서설 격의 시를 한 수 얹어 주제의 전환을 명시해 보였다. 단편 단편이 끊어진 소옹의 〈수미음〉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각각의 편들은 이렇듯 계기적으로 맞물려서 하나의 전체 주제를 향해 달려간다.
다음 제 79수에서 제 82수까지의 네 수는 우리나라 역사를 노래했다. 중국에 비해 우리 것이 워낙 소략한 것이 아쉽다. 주제어는 ‘부모오방소약기(父母吾邦小若棊)’․‘탄식삼한삼국(歎息三韓三國)’․‘종시고려오백(終始高麗五百)’․‘가송왕가만세(歌頌王家萬歲)’이다. 역시 서설격의 제 79수에 이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조를 각각 노래했다. 제 79수만 본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父母吾邦小若棊 부모의 우리나라 바둑판 도곤 작다.
宣聖欲居何陋有 선성(宣聖)께서 살려한 곳 무슨 누추 있을 것가
殷師敍範正無爲 기자(箕子)의 팔조금법 참으로 무위(無爲)일세.
華豐夷嗇言殊妄 오랑캐 비루탄 말 특별히 망녕되니
東舜西文道可窺 동순(東舜)과 서문(西文)에 그 도를 살피겠네.
魯國不妨周禮在 노나라에 주례(周禮) 있음 무슨 문제 될 것인가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군자가 사는 곳이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공자께서 동방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바둑판 보다 작은 땅덩어리지만, 일찍이 공자께서 살고 싶다고 하신 곳이 바로 이 땅이 아닌가? 은나라 때 현인 기자가 팔조금법으로 무위(無爲)의 다스림을 펼쳤던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사람들은 중화가 훌륭하고 오랑캐는 비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국에도 순임금의 도가 행해지고, 서쪽에도 문왕의 교화는 미칠 수가 있다. 무엇을 중화라 하고, 무엇을 오랑캐라 하는가? 요순공맹의 도가 살아있는 곳을 중화라 한다. 노나라에 주나라의 예법이 살아 있듯, 이 땅에는 요순공맹의 도가 맥맥히 살아있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가? 이것이 우암의 힘 있는 주장이다.
이어지는 제 83수에서 제 123수까지의 41수는 역대 유학경전에 관한 내용이다. 분량이 제일 많다. 이 또한 제 83에서 94까지는 사서삼경과 역사서를 읊었다. 다룬 경전은 《서경》․《시경》․《주역》․《춘추》․《예기》․《악기》․《대학》․《논어》․《맹자》․《중용》 등이고, 그밖에 ‘영사(詠史)’와 ‘제자지서(諸子之書)’를 주제어로 내세워 각각 한편 씩 지었다. 다음 제 95수에서 제 99수까지는 주자 보다 앞선 시기에 활동했던 송대 유학자의 저술을 거론했다. 주자서(周子書)․하남이집(河南二集)․격양집(擊壤集)․정몽(正蒙)․속수시서(涑水詩書) 등이 그것이다.
이후 제 100수부터 제 123수까지 24수에서 주자의 저술을 빠짐없이 각각 한수씩 차례로 읊었다. 시의 형식은 비록 소옹에게서 취해왔으나, 소옹에 대해 직접 노래한 것은 제 97수 뿐인데 반해, 전체 134수 중 무려 24수나 주자에게 할애했다. 우암의 궁극적 정신 지향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보시서(晦父詩書)․《소학(小學)》․《대학장구(大學章句)》․《대학혹문(大學或問)》․《논어집주》․《논어혹문》․《맹자주석》․《맹자혹문》․《중용장구》․《중용혹문》․《주역》․《시전》․전례(典禮)․한천사례(寒泉四禮)․《통감강목》․연원록․《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참동계고이(參同契考異)》․《창려고이(昌黎考異)》․《연평문답(延平問答)》․《문공전집》․《주자어류》․《자양서(紫陽書)》 등이 그 목록들이다. 이 가운데 제 122수를 읽어본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探索朱門語類時 시 읊음은 《주자어류》 탐색하여 볼 때일세.
細密都如鄕黨體 세밀함은 모두다 향당(鄕黨) 문체 같아서
聲容怳接考亭時 고정(考亭)에서 그 모습을 황홀히 접한듯 해.
一言一辭一書盡 한 마디 한 마디가 책 한 권에 다 담겨서
萬理萬事萬世知 온갖 이치 온갖 일들 만세토록 알게 하네.
記錄易差猶可擇 기록 약간 다르대도 오히려 가릴 것가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주자의 일거수 일투족,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담긴 《주자어류》를 읽어 보면 주자 당년의 성음(聲音)과 용지(容止)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한마디 말씀마다 온갖 이치가 담겨 있으니, 비록 군데군데 앞뒤가 안 맞는 대목이 있다 해도 마음대로 취택(取擇)할 수 없음을 말했다. 주자에 대한 우암의 존숭은 글씨체마저 닮고자 했을만큼 절대적이었다. 《송자대전》에 수록된 많은 시들 속에서도 주자 존숭은 한결같다. 여기서는 따로 부연하지 않겠다.
다시 제 124수에서 제 129수까지 여섯 수는 관물찰리(觀物察理)가 주제다. 각각의 주제어는 ‘만흥(漫興)’․‘한간초목(閒看草木)’․‘묵찰곤충다소(黙察昆蟲多少)’․‘파우오곡(播耰五穀)’․‘유관모우(流觀毛羽)’․‘대관(大觀)’ 등이다. 마지막 129수를 읽는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詩是尤翁大觀時 시 읊기는 우옹이 대관(大觀)할 그때라네.
地在天中爲一物 땅이란 하늘 속의 한 물건이 되나니
天於道裏却些兒 하늘은 도(道)에 있어 도리어 이와 같네.
古今運世忙如鳥 고금의 운세는 바쁘기가 새와 같고
表裏山河細似眉 표리의 산하는 가늘기가 눈썹이라.
許大心胸男子在 가슴이 드넓은 남자가 예 있나니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은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땅은 하늘 속에 있는 한 물건에 불과하고, 그 하늘은 또 도 속에 잠겨있는 한 물건일 뿐이다. 도 앞에서는 천지조차 이렇듯 미소하다. 그러니 저 바쁜 고금 운세나 저 잗단 산하의 이런저런 일들은 족히 따질 것이 못된다. 사나이의 드넓은 가슴 속에는 오롯히 ‘도(道)’란 한 글자를 깃들이면 그만이 아닌가.
마지막 제 130수에서 제 134수 끝까지의 다섯 수는 총결에 해당한다. 처음 자경(自警)에서 비롯되어, 중국 역대 치란흥망의 자취를 살피고, 도학연원을 검토한 후, 우리 역사와 역대 경전에까지 미쳤던 장대한 서사는 사물로 시선을 잠시 돌렸다가 막바로 존심함양(存心涵養)의 총결을 향해 달려간다. ‘어대(語大)’․‘어소(語小)’․‘근독(謹獨)’․‘계구(戒懼)’․‘도일원두불어(到一原頭不語)’가 각각의 주제어다. 다음은 전체를 총결하는 마지막 제 134수다.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니
到一原頭不語時 일 원두(原頭)에 이르러 말없이 있는 때라.
箇裏鳶魚雖活潑 그 속의 연비어약(鳶飛魚躍) 비록 활발하여도
初無聲臭況光輝 애초에 성취(聲臭) 없고 빛만 휘황하였네.
固知極致終難狀 지극한 이치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要識須臾不可離 잠깐도 떨어질 수 없음만은 알아야지.
多一惟詞還是妄 하나란 말 많다하면 도리어 망녕되니
尤翁非是愛吟詩 우옹이 시 읊기를 좋아함이 아니로다.
일원두(一原頭)란 결국 도(道)다. 그 앞에 말없이 있는다 함은 연비어약(鳶飛魚躍)하는 천지만물의 묘용(妙用)과 초무성취(初無聲臭)하여 극치난상(極致難狀)한 유정유일(惟精惟一)의 이치를 깊이 음미코자 함이다.
이렇게 해서 우암의 134수 〈수미음〉이 모두 끝났다. 단편의 토막을 모은 소옹과 달리, 우암은 처음부터 기획 주제를 정해 각 부분이 합쳐져 비로소 전체를 구성하는 전작 형태의 새로운 수미음체를 선보였던 것이다.
Ⅳ. 우암 〈수미음〉 134수의 문학 가치 : 결론을 대신하여
이상 우암 송시열 선생의 대표작인 〈수미음〉 134수 연작의 형식과 내용 특성을 밝혔다. 비록 문학성의 측면에서는 무미건조한 면이 없지 않으나, 시로 제출된 대유(大儒)의 경륜문자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134수의 시는 수미(首尾)에 동일 구절로 관주(貫珠)되어 계열성을 확보하면서, 작가의 평생 학문 종지(宗旨)와 역사 인식, 도학연원과 경전 이해 및 자기 성찰 등을 집약시키고 있다. 경전과 성현서(聖賢書)를 씨줄 삼고, 치란흥망의 자취를 날줄 삼아 짜낸 경경위사(經經緯史)의 장대한 피륙이요, 우암 사상의 총결판이다.
이제 이 작품의 문학 가치와 사적 의의를 재확인하면서 글을 맺는다.
첫째, 이 작품은 소옹의 〈수미음〉을 전작 차운하였으나, 연작성을 대폭 강화하여 주제가 집중화 되어 있으며, 의론성이 강조되었다. 몇 개의 의미단락을 선명하게 구별하여, 전절부(轉折部)에서는 서설격의 시를 얹거나 소결을 두어 전체 맥락을 잃지 않게 하였다.
둘째, 이 작품은 시로 쓴 우암의 학문관, 사론, 독후감, 관물론이 망라된 우암 사유의 총정리 결정판에 해당한다. 역사인식 뿐 아니라 도통의 전개, 성현 제서에 대한 평가, 그리고 관물찰리와 존심함양의 자기다짐에 이르기까지 우암 사상의 핵심 가치들이 고루 녹아든 의론적 성격의 연작시이다. 우암 외에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연작성은 찾아볼 수 없다. 명실 공히 우암 사유의 전체상을 파악하는데 더 없이 귀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셋째, 이 작품은 후대 창작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우암 이전에도 수미음체를 지은 작가가 적지 않으나 가장 많아야 15수에 그쳤다. 하지만 우암 이후 위백규(魏伯珪)와 김정묵(金正黙) 등은 각각 75수와 109수의 연작을 남기고 있다. 위백규의 〈수미음〉은 원래 134수였는데 75수만 남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또한 우암의 작품을 보고 분발 고무되어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낱낱의 작품 속에 녹아든 우암의 춘추의리와 존주대의, 주자 흠숭과 존심함양 공부의 구체적 내용들은 우암의 다른 글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심층 분석되기를 기대한다. 〈수미음〉 창작의 이면에 담긴 정치적 함의나 당세적 의미에 대해서도 더 깊은 논의가 진전되기 바란다.
〈참고문헌〉
송시열, 《송자대전》, 민족문화추진회 한국문집총간, 108-116책.
사문학회 편, 《우암사상연구논총》, 사문학회, 1992.
송자연구소 편, 《송자학논총》, 송자연구소, 1995.
김남기, 〈수미음의 수용과 잡영류 연작시의 창작 양상〉, 《한국문화》 제 29집(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2002), 65-87면.
김학주, 〈우암의 시관과 시〉, 《우암사상연구논총》(사문학회, 1992), 363-382면.
이두희 외 역, 《우암선생언행록》, 상당고전연구회, 2006.
이병주, 〈조선 후기의 우암 송시열의 시문학〉, 《동악어문론집》 제 31집(동악어문학회, 1996), 153-169면.
이종묵, 〈우암 송시열의 삶과 시〉, 《한국한시작가연구》 제 10집(한국한시학회, 2005), 419-453면.
조종업, 〈우암선생의 도의시(道義詩) 연구〉, 《송자학논총》 제 2집(송자연구소, 1995), 341-392면.
Abstract
An Editorial Paragraph of Uam Song Si-yel's Sumieum / Jung Min
This paper studies Uam's attitude of study and sense of obligation in Uam Song Si-yel's Sumieum(首尾吟): which consists of 134 through-composed poems〉. Quantitatively Sumieum made up great part of whole Uam's poems, and to be sure these works are the most important work of Uam's Chinese poetry. These works made a new departure of moral philosophy poetry and then brought forth various masters' poems which used Sumieum's rhyme. 134 through-composed poems had the whole that pointed to the totality of Uam's thought only once.
Uam hated taste for poetry dealing with the wind and the moon. In sentiment-centered point of view, taste for poetry never intrude into poetry. Which seemed to lack of taste. However he didn't neglect writing poetry. It is interesting that he especially used rhyme of So ong's ,a poet of the Song Dynasty, poetry. He didn't like So ong's poetry but he was immersed in So ong's poetry at a place of exile late in his life. In addition to these works, he wrote lots of poems using rhyme of So ong's poetry.
So ong wrote a literary style of Sumieum for the first time. After him, many moralists used this literary style because they wanted to express their philosophical ideal. Formally contents in the first line of verse was repeated at the last line of verse, and the second line of verse was standardized in a poem. This hard method has several restriction. However, unlike other writers' poems, Uam had through-composed consciousness through whole 134 poems. He extended marvellous constitution looking for his study and life, transmission of morality vein and history of generations in diachronic point of view. So to speak, he originally went on to the planning theme at each paragraph and showed form of the whole works which consisted of each parts.
The first peculiarities of these poems are centralization of the theme intensified through-composed feature and emphasized argument. The second peculiarity is mopping up works of Uam's thought consisted of his scholarship, historical consciousness, his impressions of a book and Gawnmulron; thought of things. Also this peculiarity offered very important information that we can examine entire conception of Uam's thought. Finally these poems had effect on similar works of future generations.
In conclusion, these poems were flat in literary but they were the whole of Uam's thought that had marvellous constitution spread Song Si-yel's mind like a panorama.
key words : Uam Song Si-yel, Sumieum, a literary style of Sumieum, So ong, Ju Ja, Chinese poetry
** 이 논문은 2007년 11월 27일 우암선생 탄신 400주년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서울대 이종묵 교수의 토론과 숭실대 곽신환 교수의 지적을 반영하여 다듬었다. 감사드린다.
1) 우암의 한시는 《송자대전》 권 1-권 4에 실려 있다. 5언고시 27제 51수, 7언고시 8제 8수, 5언절구 79제 97수, 7언절구 112제 166수, 5언율시 92제 97수, 5언배율 2제 2수, 7언율시 193제 346수 등 모두 513제 767수다. 또 습유 권 1에 7언고시 1제 1수, 7언절구 8제 9수, 5언율시 2제 2수, 7언율시 2제 2수가 있고 속습유 권 1에도 5언절구 1제 1수, 7언절구 5제 5수, 7언율시 1제 1수 등이 있어 문집에 수록된 한시의 전체 작품수는 모두 533제 788수가 된다.
2) 우암의 한시에 관한 주요 논의는 다음과 같다.
김학주, 〈우암의 시관과 시〉, 《우암사상연구논총》(사문학회, 1992), 363-382면.
조종업, 〈우암선생의 도의시(道義詩) 연구〉, 《송자학논총》 제 2집(송자연구소, 1995), 341-392면.
이병주, 〈조선 후기의 우암 송시열의 시문학〉, 《동악어문론집》 제 31집(동악어문학회, 1996), 153-169면.
이종묵, 〈우암 송시열의 삶과 시〉, 《한국한시작가연구》 제 10집(한국한시학회, 2005), 419-453면.
김남기, 〈수미음의 수용과 잡영류 연작시의 창작 양상〉, 《한국문화》 제 29집(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2002), 65-87면.
3) 이두희 외 역, 〈論詞章〉《우암선생언행록》(학민문화사, 2006), 77면 : “崔愼問: ‘士之不能作詩者何如?’ 先生曰: ‘詩詞作之可也, 不作亦可也. 不能作詩詞, 何害之有?’ 有人欲學杜詩, 先生却之曰: ‘此等詩詞, 吾所不知.’ 辭而不誨. 如李杜唐音等詩詞, 一不誨人.”
4) 관련 언급은 이종묵, 앞의 논문 420쪽을 참조할 것.
5) 이두희 외 역, 〈論詞章〉《우암선생언행록》(학민문화사, 2006), 77면 : “有人持愁字詩, 謂先生所作者, 多有雜說. 崔愼問其眞贋. 先生曰: ‘吾平生未嘗作如此雜說. 又未嘗無故作無用之文也.’”
6) 송시열, 〈석주별집발〉의 전체 번역은 정민, 《목릉문단과 석주 권필》(태학사, 1999), 668면을 참조할 것.
7) 소옹, 《격양집(擊壤集)》 권 6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는 135수라 하였는데, 실제 수록된 것은 134수다. 우암은 이 134수를 차운하여 〈수미음〉 134수를 지었다.
8) 서사증, 〈문체명변서설〉: “首尾吟者, 一句而首尾皆用之. 此體他集不載. 唯宋邵翁有之.”
9) 관련 언급은 김남기, 〈수미음의 수용과 잡영류 연작시의 창작 양상〉, 《한국문화》 제 29집(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2002), 68면을 참조할 것.
10) 송시열, 〈答趙士達〉, 《송자대전》(총간 109-358) : “康節詩云: ‘欹枕看兒戱,’ 又曰: ‘洛陽城裏眼慵開.’ 皆是玩世意也. 此正所謂無禮不恭者也.” 〈答金元會〉(총간 110-492) : “此來適得邵子詩一冊, 早晩閒閱. 又得一句, 可喜. 時時上口幽吟, 居然有無禮不恭意思. 此知舊之所當防戒也.”
11) 송시열, 〈與申聖時〉, 《송자대전》(총간 111-34) : “近看邵子詩, 雖詼諧縱謔, 若無意於人世, 而其辨析義理, 分別善惡處, 有毫釐不差者. 所以眼目高明, 胸襟灑落, 騰騰自在, 以送平生, 眞可謂千古之豪傑也. 然規模氣象, 與晦翁不同何也. 晦翁欲爲彼而不能耶? 抑以爲不足爲而不爲也. 欲質於知者, 而不能焉.”
12) 朱子, 《宋名臣言行錄》 권 10 : “康節嘗誦希夷之語曰: ‘得便宜事, 不得再作. 得便宜處, 不可再去.’ 又曰: ‘落便宜是得便宜.’ 故康節詩云: ‘珍重至人嘗有語, 落便宜處得便宜.’ 蓋可終身行之也.”
13) 단락별 구성에 처음 주목한 것은 이병주, 앞의 논문 165면에서이고, 김학주도 〈우암의 시관과 시〉 370면에서 단락별 내용을 구분한 바 있다. 필자의 분류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두 논문에서는 소개에 그쳤을 뿐 이러한 단락별 구성의 의미나 그 구체적 내용을 살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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