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에서는 여래(如來)의 가르침을 가지고 곧바로 그 신도들을 가르치지 모 나한(羅漢), 모 거사(居士)가 중간에서 대신 가르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서교(西敎)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을 가지고 곧바로 그 신도들을 가르치지 모 신부, 모 목사가 중간에서 대신 가르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활 잘 쏘는 사람이 못 쏘는 사람을 의식하여 자기 활 쏘는 법을 바꾸지 않으며 솜씨 좋은 목수가 서툰 목수를 의식하여 목재 다루는 법을 고치지 않으니, 이것이 불법과 서교의 중지(衆志)입니다. 그런데 우리 유가(儒家)는 이와 상반되어 굳이 주자(朱子)를 통하여 공자(孔子)에 도달하려 하니, 이것이 솜씨 좋은 목수, 활 잘 쏘는 사람, 서교, 불교의 도(道)는 아직도 쇠퇴하지 않았는데 공자의 가르침은 오늘날 부진하게 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佛法以如來直敎其衆, 未聞其有以某羅漢某居士者, 西敎以耶蘇直敎其衆, 未聞其有以某神父某牧師者; 弓不以拙射變其彀率, 匠不以拙斲改廢繩墨, 亦佛耶氏之物志也. 吾儒反是, 必欲由朱而達孔, 斯匠弓耶佛之道之迄尙無衰, 而孔敎之所以不振於今日者非耶?]
야소교의 경우는 내가 모르겠지만 불가(佛家)에는 전등(傳燈)이란 말이 있으니, 이는 그 여래의 법등(法燈)을 번갈아 전하여 비추고자 한 것이니, 번갈아 전하여 비추는 것이 곧바로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공자가 활 쏘는 법, 목재 다루는 법이라면 주자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활 쏘는 법과 목재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 분이니, 공자의 가르침이 변하고 쇠퇴할 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저 주자를 통하여 공자에 도달하는 것은 후세의 선비들만 그러할 뿐 아니라 주자도 자기보다 선대의 학자들을 통하여 공자에 도달하였습니다. 주렴계(周濂溪)와 정자(程子)는 진실로 시대가 많이 앞선 분들이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자 스스로 말하기를 젊을 때 사상채(謝上蔡), 호문정(胡文定)의 저서를 공맹(孔孟)의 말씀과 다름없이 보다가 오래 지난 뒤에 그 학설들에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주자는 마침내 주렴계, 정자 같은 사람들을 능가하였으니 사상채나 호문정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육상산(陸象山)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말하기를 “어릴 때 누가 이천(伊川)의 저서를 읽는 것을 듣고는 대뜸 ‘이천의 말이 어찌하여 공자와 다른가?’라고 생각했다.” 하였으니, 그 용맹스런 기상으로 보아 어찌 중간에 매개자 없이 곧바로 공자에 접할 수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마침내 그 성취한 바가 이천의 만분에 일도 미치지 못하고 그저 방자하게 자기 주장만 내세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주자보다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반드시 주자를 통하여 공자에 도달해야 하니, 주자의 공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응당 그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록 주자보다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주자가 주렴계와 정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이 점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耶則吾不知矣, 佛家有傳燈之說, 則是欲其遞傳而得照也. 遞傳而得照, 亦何以異於直接耶? 孔子爲彀率爲繩墨, 則朱子爲爲人指其彀率審其繩墨者, 何變與廢之有? 夫由朱達孔, 不獨後儒當然, 雖朱子亦未甞不由先乎己者而達之. 周程固尙矣, 觀其自言少時如謝上蔡胡文定之書, 亦把做孔孟言語一般看, 久之方見其未是處. 雖如此而朱子終爲駕軼周程之人而謝胡勿論也. 至陸象山則自言其幼時聞人誦伊川之書, 便思伊川之言何以不類孔子? 是其蹈厲之氣, 豈不可以無介無遞直接孔子? 而卒其所就, 不及伊川之萬一, 只成就其狂妄恣睢而已. 然則生於朱子之後者, 必由朱而達孔; 不惟不及朱子者當然, 雖過於朱子者, 不能不然, 如朱子之於周程也. 此又不可不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