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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199] 주자학과 반주자학(反朱子學)의 사이에 서서.

굴어당 2012. 1. 2. 12:19

주자학과 반주자학(反朱子學)의 사이에 서서
  근 백년 이래 우리는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다. 주자학이 변화를 거부하여 조선을 파국으로 몰아갔다는 뼈아픈 기억은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서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꾸만 재촉한다. 이제 주자학은 힘을 잃은 채 멀리 사상의 변방에 귀양 가 있는데도 지식인들은 기어이 반주자학(反朱子學) 편에 서고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강한 변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담담한 일상에서는 좀처럼 사는 재미를 못 느끼고 밥상에서 매운 고추를 찾듯이 새로운 충격을 즐긴다.
  기억은 우리를 일깨우는 힘도 되지만 또한 우리를 옥죄는 족쇄도 된다. 새해 벽두에 우리의 기억 창고부터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간직할 것은 간직하자. 먼저 주자학에 대한 기억부터 정리해 보자.

  불법(佛法)에서는 여래(如來)의 가르침을 가지고 곧바로 그 신도들을 가르치지 모 나한(羅漢), 모 거사(居士)가 중간에서 대신 가르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서교(西敎)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을 가지고 곧바로 그 신도들을 가르치지 모 신부, 모 목사가 중간에서 대신 가르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활 잘 쏘는 사람이 못 쏘는 사람을 의식하여 자기 활 쏘는 법을 바꾸지 않으며 솜씨 좋은 목수가 서툰 목수를 의식하여 목재 다루는 법을 고치지 않으니, 이것이 불법과 서교의 중지(衆志)입니다. 그런데 우리 유가(儒家)는 이와 상반되어 굳이 주자(朱子)를 통하여 공자(孔子)에 도달하려 하니, 이것이 솜씨 좋은 목수, 활 잘 쏘는 사람, 서교, 불교의 도(道)는 아직도 쇠퇴하지 않았는데 공자의 가르침은 오늘날 부진하게 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佛法以如來直敎其衆, 未聞其有以某羅漢某居士者, 西敎以耶蘇直敎其衆, 未聞其有以某神父某牧師者; 弓不以拙射變其彀率, 匠不以拙斲改廢繩墨, 亦佛耶氏之物志也. 吾儒反是, 必欲由朱而達孔, 斯匠弓耶佛之道之迄尙無衰, 而孔敎之所以不振於今日者非耶?]

  야소교의 경우는 내가 모르겠지만 불가(佛家)에는 전등(傳燈)이란 말이 있으니, 이는 그 여래의 법등(法燈)을 번갈아 전하여 비추고자 한 것이니, 번갈아 전하여 비추는 것이 곧바로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공자가 활 쏘는 법, 목재 다루는 법이라면 주자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활 쏘는 법과 목재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 분이니, 공자의 가르침이 변하고 쇠퇴할 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저 주자를 통하여 공자에 도달하는 것은 후세의 선비들만 그러할 뿐 아니라 주자도 자기보다 선대의 학자들을 통하여 공자에 도달하였습니다. 주렴계(周濂溪)와 정자(程子)는 진실로 시대가 많이 앞선 분들이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자 스스로 말하기를 젊을 때 사상채(謝上蔡), 호문정(胡文定)의 저서를 공맹(孔孟)의 말씀과 다름없이 보다가 오래 지난 뒤에 그 학설들에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주자는 마침내 주렴계, 정자 같은 사람들을 능가하였으니 사상채나 호문정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육상산(陸象山)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말하기를 “어릴 때 누가 이천(伊川)의 저서를 읽는 것을 듣고는 대뜸 ‘이천의 말이 어찌하여 공자와 다른가?’라고 생각했다.” 하였으니, 그 용맹스런 기상으로 보아 어찌 중간에 매개자 없이 곧바로 공자에 접할 수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마침내 그 성취한 바가 이천의 만분에 일도 미치지 못하고 그저 방자하게 자기 주장만 내세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주자보다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반드시 주자를 통하여 공자에 도달해야 하니, 주자의 공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응당 그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비록 주자보다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주자가 주렴계와 정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이 점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耶則吾不知矣, 佛家有傳燈之說, 則是欲其遞傳而得照也. 遞傳而得照, 亦何以異於直接耶? 孔子爲彀率爲繩墨, 則朱子爲爲人指其彀率審其繩墨者, 何變與廢之有? 夫由朱達孔, 不獨後儒當然, 雖朱子亦未甞不由先乎己者而達之. 周程固尙矣, 觀其自言少時如謝上蔡胡文定之書, 亦把做孔孟言語一般看, 久之方見其未是處. 雖如此而朱子終爲駕軼周程之人而謝胡勿論也. 至陸象山則自言其幼時聞人誦伊川之書, 便思伊川之言何以不類孔子? 是其蹈厲之氣, 豈不可以無介無遞直接孔子? 而卒其所就, 不及伊川之萬一, 只成就其狂妄恣睢而已. 然則生於朱子之後者, 必由朱而達孔; 不惟不及朱子者當然, 雖過於朱子者, 不能不然, 如朱子之於周程也. 此又不可不知.

조긍섭(曺兢燮) <변곡명에게 답하다[答卞穀明]>《암서집(巖棲集)》

  주자학이 본격적으로 비판받기 시작하던 시기인 1924년에 산강재(山康齋) 변영만(卞榮晩 1889~1954)이 묻고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1873~1933)이 답한 편지이다. 심재는 영남의 유학자이자 저명한 문장가였다. 산강재는 자가 곡명(穀明)인데 한문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법학, 영문학까지도 섭렵한 독특한 인물이다. 신구학(新舊學)을 겸하였고 중국에 망명하기도 했던 신진(新進) 산강재는 주자학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산강재가 불교, 기독교와 비교하여 주자를 거치지 말고 곧바로 공자를 배워야 한다고 한 것은 중국 강유위(康有爲 1858~1927)가 주창한 공자교(孔子敎)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주자 때문에 공자의 가르침이 부진하다고 한 말은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공자는 하늘을 배워서 공자가 되었고 맹자는 공자를 배웠기 때문에 맹자 밖에 되지 못했으니 우리는 하늘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와 다를 바 없는 터무니없이 큰 주장일 뿐이다.

  주자보다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반드시 주자를 통하여 공자에 도달해야 한다고 한 심재의 대답은 조선 주자학자의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아무리 주자학을 존신(尊信)할지라도 명색이 학자라면 주자교(朱子敎)의 신도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육상산(陸象山)은 어릴 때 누가 이천(伊川)의 저서를 읽는 것을 듣고는 대뜸 ‘이천의 말이 어찌하여 공자와 다른가?’라는 반감이 생겼다고 했다. 육상산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그의 독특한 심학(心學)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남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이천과 같은 대학자를 부정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학문에서 의문은 매우 중요하며, 또한 공부하는 학자라면 글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의문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의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문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다. 학문에 깊은 연찬(硏鑽)과 순수한 열정이 없는 상태에서 불쑥불쑥 일어나는 의문은 대개 덧없는 단상(斷想)이며, 심지어는 고인(古人)에 대한 반감이요 한갓 고인을 능가하려는 욕망이다. 학문에 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이러한 단상과 반감, 욕망을 누르지 못하면 자칫 공부의 단계를 건너뛰고 지레 자기 견해를 주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학문의 대로를 벗어나 위험한 오솔길로 들어가기 쉽다.

  우리나라만큼 종교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종교마다 교파는 또 얼마나 많은가. 불교를 제외하고는 외래 종교의 신자가 많지 않은 이웃나라 중국, 일본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가위 신시(神市)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판국에 강유위가 주창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진암(眞庵) 이병헌(李炳憲 1870~1940)이 수입한 공자교가 반주자학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도 살아남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신이 없고 내세의 구원을 주장하지 않는 유학은 항심(恒心)이 없는, 불안한 대중이 의지할 종교가 되기는 어려웠던 것이리라.

  산강재가 비판했던 주자학은 이제 우리의 두뇌 속에 DNA로 남아 있을지언정 형체조차 희미해져 간다. 주자학이 무엇인지 실체를 제대로 아는 학자도 드물어졌다. 변화를 싫어하는 주자학은 변화의 역사 속에서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화의 막장에 이른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주자학이 사회의 변화를 컨트롤하여 요동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줄 우리의 사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선시대처럼 도학(道學)을 하지 말고 리학(理學)을 해야 한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준수하여 다른 종교와 사상은 무조건 이단으로 배척하던 조선의 도학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이치를 연구하고 무엇이 바른 삶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학문인 리학의 본모습을 되찾아 보여준다면, 지식인들이 무턱대고 반주자학에 매력을 느낄 일도 없지 않겠는가.


이상하 글쓴이 :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무처장
  • 주요저서
    • - 한주 이진상의 주리론 연구, 경인문화사
    • - 유학적 사유와 한국문화, 다운샘(2007) 등
  • 주요역서
    • - 읍취헌유고, 월사집, 용재집,아계유고, 석주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