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11 23:05
어수웅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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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의 원제는 'The Sun Also Rises'이다. 두 출판사 번역판은 제목부터 다르다. 두 책의 1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고유명사 표기와 관련한 차이 하나를 발견했다. 프랑스 북동부 중소 도시 'Saint odile'을 김욱동 교수 번역판은 '생토딜'이라 표기했지만, 이한중씨 번역은 '생오딜'이라 적고 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Saint Exupery)를 생엑쥐페리라고 쓰지 않는 것처럼, 이 도시 이름의 한국어 표기는 생토딜이 맞다. 하지만 이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이한중씨 번역본이 품질 미달이라고 확대해석할 수 있을까.
최근 화제를 모았던 번역 논쟁 중에는 두 달 만에 50만 권이 팔려나간 스티브 잡스 전기가 있다. 안진환씨가 번역한 한국판에 대해 번역가 이덕하씨가 '오역(誤譯)투성이'라며 격한 표현으로 비판했는데, 대부분 이야기의 큰 흐름보다는 자구(字句) 해석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후 번역가 노승영씨가 가세하면서 '좋은 번역'이 무엇이냐는 논쟁으로 확대됐다. 압축하면 직역(直譯)이냐 의역(意譯)이냐의 논쟁, 번역학계 용어로는 '충실성'과 '가독성'의 논쟁이다.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느냐, 아니면 독자가 최대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옮기느냐의 차이다.
헤밍웨이와 잡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한국에서도 번역 비평과 관련해 좀 더 발전적인 토의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지적 역량이 축적되면서, 이제 전문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원전(原典)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는 급증했다. 게다가 인터넷 덕분에 '네티즌 번역 수사대'의 활동도 활발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번역 비평도 사소한 오류나 실수를 침소봉대해서 마녀사냥하는 차원을 넘어, 텍스트가 전달하려는 원저자의 정신을 얼마나 제대로 소화하고 옮겼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번역학 박사 학위를 가진 드문 현장 번역가 정혜용씨는 최근 출간한 저서 '번역 논쟁'(열린책들)에서 "번역 비평은 비평가와 번역자 중 누가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가를 겨루면서 지적 허영의 욕구를 충족하는 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헤밍웨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1차세계대전 이후 길을 잃은 젊은 세대에 대한 문학적 공감이자 응원이었다.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작가 정신의 진정한 구현이다. 진정한 번역 비평은 이 대목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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