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안거사(易安居士) ·수옥(漱玉). 산둥성[山東省] 지난[濟南] 사람. 금석문의 연구가 조명성(趙明誠)의 아내로, 남편을 도와 《금석록(金石錄)》을 완성하였다. 북송(北宋) 말 동란기에 남편과 사별하고 저장[浙江]의 각지를 유랑하여 고초를 겪었다.
사(詞)의 작풍은 이욱(李煜) → 진관(秦觀) → 주방언(周邦彦) 등의 이른바 '완약파(婉約派)' 계열에 속하며, 우미섬세를 기조로 하나 당시의 구어(口語)를 대담하게 삽입한 재기 넘치는 작품도 있다. 특히 유랑 후의 작품에는 인생의 고독과 불안을 투시한, 청렬(淸冽)한 맛이 가미된 송사(宋詞)의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문집에 《수옥집》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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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한·위(魏)·성당(盛唐)의 시의 격조를 중시했던 중국 명나라의 시인. 이·하를 중심으로 하는 홍치 칠자(弘治七子:前七子)의 '복고설(復古說)'을 계승하고 왕세정(王世貞) 등과 더불어 '고문사설(古文辭說)'을 제창했다. 주요 저서에는 《이창명선생전집》,《고금시산》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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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우린 |
호
| 창명 |
국적
| 중국 명 |
활동분야
| 문학 |
출생지
| 중국 산둥성 리청 |
주요저서
| 《이창명선생전집》(30권), 《고금시산》(34권) | | | |
본문 |
자 우린(于鱗). 호 창명(滄溟). 산둥성[山東省] 리청[歷城] 출생.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치우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고, 커서도 관직을 사임, 백설루(白雪樓)에서 은거하며 방문객을 사절하는 등 대범하고 오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더욱이 이몽양(李夢陽)·하경명(何景明)을 경모하였으며, 이·하를 중심으로 하는 홍치 칠자(弘治七子:前七子)의 '복고설(復古說)'을 계승, 왕세정(王世貞)·사진(謝榛)·서중행(徐中行)·양유예(梁有譽) 등과 더불어 '고문사설(古文辭說)'을 제창, 진(秦)·한(漢) 나라의 고문(古文)을 모범으로 삼고, 한·위(魏)·성당(盛唐)의 시의 격조를 중시하였으며, 송(宋)·원(元) 나라의 시를 배척하고, 이백(李白)·두보(杜甫)를 추앙하며, 원진(元稹)·백낙천(白樂天)을 배격하였다.
그의 문장은 힘차고 수사학에 뛰어났지만 난해(難解)하고, 시는 격조가 높지만 지나치게 모방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저서에는 《이창명선생전집(李滄溟先生全集)》(30권), 《고금시산(古今詩刪)》(34권)이 있다.
[출처] 이반룡 [李攀龍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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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가정 칠재 자(嘉靖七才子:後七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학식은 그 중에서도 제1인자였던 중국 명나라의 문학자. 명대 후기 고문사(古文辭)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장했다. 주요 저서에는 《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考)》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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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원미 |
호
| 봉주 ·엄주산인 |
국적
| 중국 명 |
활동분야
| 문학 |
출생지
| 중국 장쑤성 타이창 |
주요저서
| 《엄주산인사부고》,《속고》 | | | |
본문 |
자 원미(元美). 호 봉주(鳳州) ·엄주산인(弇州山人). 장쑤성[江蘇省] 타이창[太倉] 출생. 1547년 진사가 되고 형부(刑部)의 관리가 되었으나, 강직한 성격 때문에 당시의 재상 엄숭(嚴嵩)의 뜻을 거역하였다. 엄숭이 구실을 만들어 고도어사(古都御史)인 그의 아버지를 사형시키자, 벼슬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무고함을 주장하여 8년간이나 노력한 끝에 명예를 회복시켰다. 그 뒤 다시 지방관에 복귀하였고, 난징[南京]의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젊을 때부터 문명이 높아 가정칠재자(嘉靖七才子:後七子)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고, 학식은 그 중에서도 제1인자였다. 후칠자의 맹주격인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이왕(李王)이라 불려 명대 후기 고문사(古文辭)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이반룡이 죽은 뒤에는 그 지위를 독점하였다.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장하였으나, 이반룡이 진한(秦漢)의 글과 성당(盛唐) 이전의 시만을 그대로 모방한 데 비하여 왕세정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취하였다. 만년에는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 등의 작품에도 심취하였다.
그는 《엄산당별집(嚴山堂別集)》 등 많은 역사 관계 논문을 남겼다. 《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考)》(174권) 《속고(續稿)》(207권)는 그의 전집이며, 문학 ·예술론은 《예원치언(藝苑卮言)》에 수록되어 있다.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알려진 《금병매(金甁梅)》가 그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고, 희곡으로는 《명봉기(鳴鳳記)》가 유명하다.
[출처] 왕세정 [王世貞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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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중국 화베이[華北] 지방에 있는 성(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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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중국 화북지방 |
경위도
| 동경118°0′, 북위36°30′ |
면적
| 156867㎢ |
시간대
| UTC+8 |
행정구분
| 9시 |
행정관청소재지
| 濟南市省府前街1號 |
홈페이지
| http://www.shandong.gov.cn/ |
주도
| 지난(濟南)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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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다오 풍경 / 중국 산둥성 칭다오 TV타워에서 본 풍경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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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약칭하여 '루[鲁]'라고도 부르며, 성도( 省都)는 지난[济 南]이다. 중국 황허강[黄 河]의 하류, 타이항산[ 太行山] 동쪽의 황해(黄 海)와 보하이해[ 渤海]의 연안에 있으며, 해안선 길이는 3000여㎞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齐) 나라와 노(鲁) 나라 등의 영토였고, 진( 秦) 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뒤 제북(济 北)·임치(临 淄)·교동(胶东) 등의 군( 郡)이 설치되었으며, 한(汉) 나라 때는 청주(青 州)·연주(兖 州)·서주( 徐州)에 속하였다. 금( 金) 나라 때 산동( 山东)에 동·서 양로( 兩路)을 두었고, 명( 明) 나라 때는 산동포정사사( 山东 布政使司)가 설치되었으며, 청(清) 나라에 이르러 산둥성[ 山东 省]이 설치되었다.  면적은 15만여㎢이며, 행정구역은 지난· 칭다오[青岛]· 웨이하이[ 威海]· 웨이팡[潍 坊]· 옌타이[ 烟台]· 더저우[ 德州]·린이[临 沂]·쯔보[ 淄博]· 빈저우[滨 州]·허쩌[菏泽]·지닝[济宁]· 랴오청[ 聊城]·둥잉[东营]·타이안[ 泰安]· 짜오좡[枣 庄]· 르자오[ 日照]· 라이우[莱芜]) 등 17개 지급시( 地級市)와 31개 현급시(县 級市), 60개 현(县)으로 이루어져 있다. 40~50만 년 전에 이위안원인[ 沂源猿人]이 살았으며, 약 8000년 전에서 4000년 전까지 베이신 문화[ 北辛文化], 다원커우문화[ 大汶口文化], 룽산문화[龙 山文化]를 이룬 곳으로, 인류문화가 일찍부터 꽃피웠다. 역사적 인물도 많이 배출되었는데,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인 공자( 孔子)가 취푸[ 曲阜]에서 태어났고, 사상가 묵자( 墨子)는 텅저우[滕 州] 출신이며, 사상가 맹자( 孟子)는 쩌우청[邹 城] 출신, 군사가 손자(孙 子)는 후이민[ 惠民] 출신), 서예가 왕희지( 王羲之)는 린이 출신), 송( 宋) 나라의 애국시인 신기질( 辛弃 疾)과 이청조( 李清 照)는 모두 지난 출신, 《 요재지이( 聊斋 志異)》의작가 포송령( 蒲松龄)은 쯔좐[ 淄川] 출신이다. 예로부터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도 인구의 대성( 大省)으로 꼽혀왔다. 주민 구성은 한족(汉 族)· 후이족[ 回族]· 만주족(满 州族) 등 54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수민족의 비율은 0.68%이다.
[출처] 산둥성 [山東省(산동성), Shandong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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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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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산 / 중국 산둥성 타이안(태안). 198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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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에 제(齐) 나라와 노(鲁) 나라의 영토이자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며,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산천호해( 山泉湖海)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타이산[ 泰山]· 라오산[崂 山]· 자오둥[胶东] 반도 연안 등 국가지정 명승풍경지역이 5곳이 있고, 국가중점보호문화재는 50곳이 있다. '샘의 도시[ 泉城]'라 불리는 바오투취안[趵 突泉]은 다밍호[ 大明湖]· 첸포산[ 千佛山]와 더불어 '삼승( 三胜)'이라 불린다. 애국시인 신기질( 辛棄疾)을 기리는 자쉬안츠( 稼轩 祠)와 이청조( 李清 照)의 고택을 비롯하여 창칭[长青]의 링옌사[灵 岩寺], 공자의 고향인 취푸[ 曲阜]의 쿵푸[ 孔府]·쿵먀오[ 孔庙]·쿵린[ 孔林], 맹자의 고향인 쩌우청[邹 城]의 멍먀오[ 孟庙] 등의 유적지가 있다.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타이산[ 泰山]은 오악( 五岳)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동악(东 岳)'이라 불린다. 땅 위에 솟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자랑하며, 산기슭에는 역대 왕조의 제왕들이 대제를 올리던 다이먀오[ 岱庙]가 있다. 자오둥 해변의 피서 명승지인 칭다오[青岛]에는 잔산[ 湛山]·바다관[ 八大关]·잔차오[栈桥]와 해수욕장그리고 도교의 명산( 名山)인 라오산 풍경지역이 있다. 옌타이[ 烟台]에는 '소봉래( 小蓬莱)'라 불리는 위황딩[ 毓璜顶]과 옌타이산[ 烟台山] 그리고 진시황( 秦始皇)과 한무제(汉 武帝)가 선인을 찾던 장소인 즈푸섬[ 芝罘岛] 등지가 있다. 부근에 있는 웨이하이[ 威海]에는 환추이러우[环 翠楼]와 청나라 말기에 북양수사( 北洋水师)의 기지로 사용되었던 류궁섬[刘 公岛]과 양마섬[养马岛], 펑라이거[ 蓬莱阁], 역사항해박물관이 있는 창다오[长岛], 명나라 때 척계광( 戚继 光)이 왜적을 맞아 싸웠던 덩저우수이청[ 登州水城] 등지가 있다. 이밖에 루시난[鲁 西南]의 량산수이보[ 梁山水泊], 웨이산호[ 微山湖] 풍경지역 등의 명승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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