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어당

굴어당의 한시.논어.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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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2년.한시협회 제6회 중국 漢詩跡 탐방여행.최종확정안,관련인물 및 관련시사 소개.

굴어당 2012. 3. 2. 12:31

한시협회 제6회 중국 漢詩跡 탐방여행.최종확정안,관련인물 및 관련시사 소개.

 

시기:2012.4월 7일(토요일)~4월11일(수요일)

기간:4박5일

여행지:산동성 제남,태산,곡부 등

인원수:30인이내(부부동반 환영)

경비:1인당 106만원

연락처:02-765-5675,5677/  010-2594-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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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협회 제남 태산 곡부 추성 5(3-3)….국제연합KJ0323/0206작성

일자

도시

교통

시간

관광일정

식사

1

4/7(토)

인천

제남

 

KE847

 

전용차

13:20

14:15

인천 출발

제남 도착,

표돌천(표돌천)-샘물이 많아 샘물도시라 불리는 제남 유명한 샘물
  
창원 .. ( 왕설도 화가 기념관= 李 攀 龍 독서대 )

이청조기념당(纪念堂)-송대의 저명한 여류시인 이청조기념당

석식 및 호텔 휴식.

 

 

:현지시

숙박: 귀우호텔(4성급: 0531-8298-0088) 혹은 동급

2

4/8

(일)

제남

 

 

전용차

전일

호텔 조식후  대명호 및 대명호내 역하정 답사,

역하정(下亭)-대명호중에 있는 작은섬에 위치,

당나라 시인 두보가 제남에서 서예가 북해태수 이옹(李邕)과 만나고

《이북해를 따라 역하정에서 연회를 열다》(《陪李北海宴下亭》)

라는 시를 남겼다. , , 명대에 모두 이곳에 역하정이 있었는데

모두 페기되고, 현재의 건물은 청대에 건설한것이다.

王士관련유적지: 추류원  왕사정이 <추류> 4수를 지은 곳- 대명호남안 가건사부근(大明湖南岸稼轩祠附近)

신기질고거 및 신기질기념관-

 http://baike.baidu.com/view/809505.htm

신기질(1140-1207)은 남송시인, 역성(현재 산동성) 사람이다.

일찍 항금의군으로 활약, 소식과 함께 소신”(“”)으로 불린다.

전용차로 태산으로 이동( 1시간 30분소요)

:호텔식

:현지식

:두부연

숙박: 국제호텔(4성급: 0538-843-6688 )

3

4/9

(월)

태안

추성

곡부

전용차

전일

호텔 조식후

태산(泰山)--중국 5대 명산「五岳(오악)중 東岳(동악)등정,

(케이블카등정->남천문->옥황전->남천문->케이블카 하산)

이태백, 두보, 정철 등 수많은 시인들이 태산에 다녀갔고, 태산을 읊은 시문을 남겼다.

중식(두부연)  대묘 답사시비 중 중요한거 표시요망??

전용차로 추성으로 이동( 2시간 소요)

전국시기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인

맹자(기원전 372- 289)고향 답사,

맹묘(孟廟): 맹자를 위해 제사 지내는 곳,  

맹림(孟府): 맹자가 살던집, 맹묘와 이웃함,

답사후  전용차로 곡부로 이동(50분소요)

곡부 도착후 석식 및 호텔휴식.

:호텔식

:현지식

:공부연

숙박: 궐리빈사(4성급: 0537-486-6523 )

 

4

4/10

(화)

곡부

제남

 전용차

전일

호텔 조식후 ..노벽 표시요망?

공부(孔府) : 공묘의 오른편에 위치한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장원으로 1038년에 세워졌다.
공묘(孔廟) : 북경의 고궁, 태안의 대묘(垈廟)와 더불어 중국

3대 건축이라 불리는 공묘는 로()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 사후

1년에 건설한 사당이다.
공림(孔林) : 수많은 묘비의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광대한 떡갈나무 숲에 위치한 공자와 후예들이

묻힌 공씨가문 가족릉이다.

논어비원 서각  추가 한시 유적지.???

▶니산서원-공자가 태어난곳 = 부자동 답사

제남으로 이동( 2시간 50분소요) 하여 석식후 호텔 휴식.

:호텔식

:현지식

:현지식

숙박: 귀우호텔(4성급: 0531-8298-0088) 혹은 동급

5

4/11

(수)

제남

 

 

인천

전용차

 

KE848

 

 

15:15

17:55

조식후

산동성박물관 견학,  흑호천,  신화서점(책방) 방문후 공항행,

제남출발,

인천 도착.

:호텔식

:현지식

인원: 15+1FOC, (33인승),  25+2FOC(45인승),    호텔: 일정표 명시호텔, 혹은 동급 기준,

견적:     포함: 가이드, 기사팁, 참조금액: $   이 흥용   2011-12-28 / 2012-02-06(수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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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질 [辛棄疾, 1140~1207]
요약
호방파(豪放派)의 제1인자로 일컬어진 중국 남송의 시인 겸 정치가. “천고강산(千古江山), 영웅무멱(英雄無覓)”(산하는 영원히 있으나, 영웅은 얻을 수 없다) 등 강개무량(慷慨無量)한 구절을 남겼다. 북송의 유영(柳永) 등과 함께 사대사인(四大詞人)으로 일컬어진다.
유안(幼安)
가헌(稼軒)
국적 중국 남송(南宋)
활동분야 문학,정치
출생지 중국 산둥성[山東省] 역성(歷城)
주요저서 《가헌장단구(稼軒長短句)》,《가헌사(稼軒詞)》
본문

자 유안(). 호 가헌(). 산둥성[] 역성() 출생. 금()나라의 지배하에서 자랐으나, 경경()이 항금병()을 일으키자 그 휘하에서 싸우다가 경경이 죽은 뒤 정식으로 남송을 섬기어 효종()의 인정을 받았다. 후베이[] ·후난[] ·장시[西]의 안무사(使)를 역임하였으며, 후난에서 편성한 비호군()은 대강() 주변의 중진이 되었다. 1182년 탄핵을 받아 직()을 잃었으나, 얼마 후 다시 기용되어 용도각대제()에 임명되고 추밀도승지()에 이르렀다.

그의 호 가헌은 그가 은퇴하였을 때의 주거의 이름인 동시에, 농업을 중히 여기고 상공업을 경시하는 그의 사상을 상징한다. 시인으로서는 소식()의 흐름을 담은 사()의 명수로, 남송에 있어서 호방파()의 제1인자로 일컬어진다. 깊이 시사()를 생각하는 감회어린 작품이 많으며, 소식이 시에서 사()를 만든 데 대해, 그는 사로 논의를 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천고강산(), 영웅무멱()”(산하는 영원히 있으나, 영웅은 얻을 수 없다) 등 강개무량()한 구절을 남긴 반면, 섬세한 정서를 노래한 작품도 적지 않다. 《논어()》 《장자()》 등 경사()의 글을 비롯하여, 선인의 시부()에 나타난 어구를 종횡으로 구사한 점, 사()로서는 다소 산문에 가까운 형식이 엿보이는 점 등이 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북송의 유영() ·주방언(), 남송의 강기()와 아울러 사대사인()으로 일컬어진다. 사집()을 《가헌장단구()》 또는 《가헌사()》라고 한다. 

[출처] 신기질 [辛棄疾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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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조 [李淸照, 1081~1141?] 

 

 

'완약파(婉約派)' 계열에 속하는 사(詞)의 작풍을 갖은 중국 송 대(宋代)의 시인. 우미 섬세를 기조로 하나 당시의 구어(口語)를 대담하게 삽입한 재기 넘치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주요 저서에는 《수옥집》이 있다.
이안거사·수옥
국적 중국 송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수옥집》

본문

호 이안거사() ·수옥(). 산둥성[] 지난[] 사람. 금석문의 연구가 조명성()의 아내로, 남편을 도와 《금석록()》을 완성하였다. 북송() 말 동란기에 남편과 사별하고 저장[]의 각지를 유랑하여 고초를 겪었다.

사()의 작풍은 이욱() → 진관() → 주방언() 등의 이른바 '완약파()' 계열에 속하며, 우미섬세를 기조로 하나 당시의 구어()를 대담하게 삽입한 재기 넘치는 작품도 있다. 특히 유랑 후의 작품에는 인생의 고독과 불안을 투시한, 청렬()한 맛이 가미된 송사()의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문집에 《수옥집》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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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룡 [李攀龍, 1514~1570]

요약
한·위(魏)·성당(盛唐)의 시의 격조를 중시했던 중국 명나라의 시인. 이·하를 중심으로 하는 홍치 칠자(弘治七子:前七子)의 '복고설(復古說)'을 계승하고 왕세정(王世貞) 등과 더불어 '고문사설(古文辭說)'을 제창했다. 주요 저서에는 《이창명선생전집》,《고금시산》등이 있다.
우린
창명
국적 중국 명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산둥성 리청
주요저서 《이창명선생전집》(30권), 《고금시산》(34권)
본문

자 우린(). 호 창명(). 산둥성[] 리청[] 출생. 어려서부터 시문()에 치우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고, 커서도 관직을 사임, 백설루()에서 은거하며 방문객을 사절하는 등 대범하고 오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더욱이 이몽양(하경명()을 경모하였으며, 이·하를 중심으로 하는 홍치 칠자(:)의 '복고설()'을 계승, 왕세정()·사진()·서중행()·양유예() 등과 더불어 '고문사설()'을 제창, 진()·한() 나라의 고문()을 모범으로 삼고, 한·위()·성당()의 시의 격조를 중시하였으며, 송()·원() 나라의 시를 배척하고, 이백()·두보()를 추앙하며, 원진(稹)·백낙천()을 배격하였다.

그의 문장은 힘차고 수사학에 뛰어났지만 난해()하고, 시는 격조가 높지만 지나치게 모방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저서에는 《이창명선생전집()》(30권), 《고금시산()》(34권)이 있다. 

[출처] 이반룡 [李攀龍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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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정 [王世貞, 1526~1590]
요약
가정 칠재 자(嘉靖七才子:後七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학식은 그 중에서도 제1인자였던 중국 명나라의 문학자. 명대 후기 고문사(古文辭)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장했다. 주요 저서에는 《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考)》등이 있다.
원미
봉주 ·엄주산인
국적 중국 명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장쑤성 타이창
주요저서 《엄주산인사부고》,《속고》
본문

자 원미(). 호 봉주() ·엄주산인(弇). 장쑤성[] 타이창[] 출생. 1547년 진사가 되고 형부()의 관리가 되었으나, 강직한 성격 때문에 당시의 재상 엄숭()의 뜻을 거역하였다. 엄숭이 구실을 만들어 고도어사()인 그의 아버지를 사형시키자, 벼슬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무고함을 주장하여 8년간이나 노력한 끝에 명예를 회복시켰다. 그 뒤 다시 지방관에 복귀하였고, 난징[]의 형부상서()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젊을 때부터 문명이 높아 가정칠재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고, 학식은 그 중에서도 제1인자였다. 후칠자의 맹주격인 이반룡()과 함께 이왕()이라 불려 명대 후기 고문사()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이반룡이 죽은 뒤에는 그 지위를 독점하였다.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를 주장하였으나, 이반룡이 진한()의 글과 성당() 이전의 시만을 그대로 모방한 데 비하여 왕세정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취하였다. 만년에는 당나라백거이() ·한유() ·유종원(), 송()나라의 소동파() 등의 작품에도 심취하였다.

그는 《엄산당별집()》 등 많은 역사 관계 논문을 남겼다. 《엄주산인사부고(弇)》(174권) 《속고(稿)》(207권)는 그의 전집이며, 문학 ·예술론은 《예원치언()》에 수록되어 있다. 중국 4대기서()의 하나로 알려진 《금병매()》가 그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고, 희곡으로는 《명봉기()》가 유명하다. 

[출처] 왕세정 [王世貞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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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국 화베이[華北] 지방에 있는 성(省).
위치 중국 화북지방
경위도 동경118°0′, 북위36°30′
면적 156867㎢
시간대 UTC+8
행정구분 9시
행정관청소재지 濟南市省府前街1號
홈페이지 http://www.shandong.gov.cn/
주도 지난(濟南)
칭다오 풍경 / 중국 산둥성 칭다오 TV타워에서 본 풍경이다.
본문
약칭하여 '루[鲁]'라고도 부르며, 성도()는 지난[济]이다. 중국 황허강[黄]의 하류, 타이항산[] 동쪽의 황해(黄)와 보하이해[]의 연안에 있으며, 해안선 길이는 3000여㎞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齐) 나라와 노(鲁) 나라 등의 영토였고, 진() 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뒤 제북(济)·임치(临)·교동(胶东) 등의 군()이 설치되었으며, 한(汉) 나라 때는 청주(青)·연주(兖)·서주()에 속하였다. 금() 나라 때 산동(东)에 동·서 양로()을 두었고, 명() 나라 때는 산동포정사사(使)가 설치되었으며, 청(清) 나라에 이르러 산둥성[]이 설치되었다.  



면적은 15만여㎢이며, 행정구역은 지난·칭다오[青岛]·웨이하이[웨이팡[潍옌타이[더저우[]·린이[临]·쯔보[빈저우[滨]·허쩌[菏泽]·지닝[济宁]·랴오청[]·둥잉[东营]·타이안[짜오좡[枣르자오[라이우[莱芜]) 등 17개 지급시()와 31개 현급시(县), 60개 현(县)으로 이루어져 있다.

40~50만 년 전에 이위안원인[]이 살았으며,  약 8000년 전에서 4000년 전까지 베이신 문화[], 다원커우문화[], 룽산문화[龙]를 이룬 곳으로, 인류문화가 일찍부터 꽃피웠다. 역사적 인물도 많이 배출되었는데,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인 공자()가 취푸[]에서 태어났고, 사상가 묵자()는 텅저우[滕] 출신이며, 사상가 맹자()는 쩌우청[邹] 출신, 군사가 손자(孙)는 후이민[] 출신), 서예가 왕희지()는 린이 출신), 송() 나라의 애국시인 신기질()과 이청조()는 모두 지난 출신, 《요재지이()》의작가 포송령(龄)은 쯔좐[] 출신이다. 

예로부터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도 인구의 대성()으로 꼽혀왔다. 주민 구성은 한족(汉후이족[만주족(满) 등 54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수민족의 비율은 0.68%이다.
[출처] 산둥성 [山東省(산동성), Shandong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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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의 명승지
본문
타이산 / 중국 산둥성 타이안(태안). 198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 제(齐) 나라와 노(鲁) 나라의 영토이자 공자맹자의 고향이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며,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산천호해()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타이산[라오산[崂자오둥[胶东] 반도 연안 등 국가지정 명승풍경지역이 5곳이 있고, 국가중점보호문화재는 50곳이 있다.

'샘의 도시[]'라 불리는 바오투취안[趵]은 다밍호[첸포산[]와 더불어 '삼승(胜)'이라 불린다. 애국시인 신기질()을 기리는 자쉬안츠()와 이청조()의 고택을 비롯하여 창칭[长青]의 링옌사[灵], 공자의 고향인 취푸[]의 쿵푸[]·쿵먀오[庙]·쿵린[], 맹자의 고향인 쩌우청[邹]의 멍먀오[庙] 등의 유적지가 있다.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타이산[]은 오악()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동악(东)'이라 불린다. 땅 위에 솟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자랑하며, 산기슭에는 역대 왕조의 제왕들이 대제를 올리던 다이먀오[庙]가 있다. 자오둥 해변의 피서 명승지인 칭다오[青岛]에는 잔산[]·바다관[关]·잔차오[栈桥]와 해수욕장그리고 도교의 명산()인 라오산 풍경지역이 있다.

옌타이[]에는 '소봉래(莱)'라 불리는 위황딩[顶]과 옌타이산[] 그리고 진시황()과 한무제(汉)가 선인을 찾던 장소인 즈푸섬[罘岛] 등지가 있다. 부근에 있는 웨이하이[]에는 환추이러우[环楼]와 청나라 말기에 북양수사(师)의 기지로 사용되었던 류궁섬[刘岛]과 양마섬[养马岛], 펑라이거[莱阁], 역사항해박물관이 있는 창다오[长岛], 명나라 때 척계광()이 왜적을 맞아 싸웠던 덩저우수이청[] 등지가 있다. 이밖에 루시난[鲁西]의 량산수이보[], 웨이산호[] 풍경지역 등의 명승지가 있다.
[출처] 산둥성의 명승지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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陪李北海宴歷下亭
  東藩駐皂蓋⑴,北渚凌淸河⑵。
  海右此亭古,濟南名士多⑶。
  雲山已發興,玉佩仍當歌⑷。
  修竹不受暑,交流空涌波⑸。
  蘊眞愜所欲⑹,落日將如何⑺?
  貴賤俱物役,從公難重過⑻![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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淺析王士禛的詩《秋柳》

 

秋來何處最銷魂?殘照西風白下門。

他日差池春燕影,祗今憔悴晚煙痕。

愁生陌上黃驄曲,夢遠江南烏夜村。

莫聽臨風三弄笛,玉關哀怨總難論!

 
娟娟凉露欲爲霜,萬縷千條拂玉塘。

浦裏靑荷中婦鏡,江干黃竹女兒箱。

空憐板渚隋堤水,不見琅琊大道王。

若過洛陽風景地,含情重問永豐坊。


東風作絮糝春衣,太息蕭條景物非。

扶荔宮中花事盡,靈和殿裏昔人稀。

相逢南雁皆愁侶,好語西烏莫夜飛。

往日風流問枚叔,梁園回首素心違。


桃根桃葉鎮相憐,眺盡平蕪欲化煙,

秋色向人猶旖旎,春閨曾與致纏綿。

新愁帝子悲今日,舊事公孫憶往年。

記否靑門珠絡鼓,松枝相映夕陽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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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名稱】經鄒魯祭孔子而嘆之
  【創作年代】唐朝 
  【作者姓名】李隆基
   【作品體裁】詩
編輯本段詩作原文
  經鄒魯祭孔子而嘆之
  夫子何爲者,栖栖一代中。
  地猶鄹氏邑,宅即魯王宮。
  嘆鳳嗟身否,傷麟怨道窮。
  今看兩楹奠,當與夢時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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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稱】《遊泰山》
  【別名】《遊泰山六首》
  【年代】盛唐
  【作者】李白
  【體裁】五言古詩
  【出處】《全唐詩》

編輯本段作品原文
  遊泰山(1)
  【其一】
  四月上泰山,石平御道開(2)。
  六龍過萬壑,澗谷隨縈回(3)。
  馬迹繞碧峰,於今滿靑苔。
  飛流灑絶巘(4),水急松聲哀。
  北眺崿嶂奇(5),傾崖向東摧。
  洞門閉石扇,地底興雲雷。
  登高望蓬流,想象金銀臺(6)。
  天門一長嘯(7),萬里淸風來。
  玉女四五人,飄颻下九垓(8)。
  含笑引素手,遺我流霞杯(9)。
  稽首再拜之,自愧非僊才(10)。
  曠然小宇宙,棄世何悠哉。
  【其二】
  淸曉騎白鹿,直上天門山。
  山際逢羽人(11),方瞳好容顔(12)。
  捫蘿欲就語,卻掩靑雲關。
  遺我鳥迹書(13),飄然落巖間。
  其字乃上古,讀之了不閑(14)。
  感此三嘆息,從師方未還。
  【其三】
  平明登日觀(15),舉手開雲關(16)。
  精神四飛揚,如出天地間。
  黃河從西來(17),窈窕入遠山。
  凭崖覽八極,目盡長空閑。
  偶然値靑童,綠發雙雲鬟。
  笑我晚學僊,蹉跎凋朱顔。
  躊躇忽不見,浩蕩難追攀。
  【其四】
  淸齋三千日(18),裂素寫道經(19)。
  吟誦有所得,眾神衛我形。
  雲行信長風,颯若羽翼生。
  攀崖上日觀,伏檻窺東溟(20)。
  海色動遠山(21),天鶏已先鳴(22)。
  銀臺出倒景(23),白浪翻長鯨。
  安得不死藥,高飛向蓬瀛(24)。
  【其五】
  日觀東北傾,兩崖夾雙石。
  海水落眼前,天光遙空碧。
  千峰爭攢聚,萬壑絶凌歷。
  緬彼鶴上僊(25),去無雲中迹。
  長松入霄漢,遠望不盈尺。
  山花異人間,五月雪中白(26)。
  終當遇安期(27),於此煉玉液(28)。
  【其六】
  朝飲王母池(29),瞑投天門關。
  獨抱綠綺琴(30),夜行靑山間。
  山明月露白,夜靜松風歇。
  僊人遊碧峰,處處笙歌發。
  寂靜娛淸輝,玉眞連翠微(31)。
  想象鸞鳳舞,飄颻龍虎衣。
  捫天摘匏瓜(32),恍惚不憶歸。
  舉手弄淸淺(33),誤攀織女機(34)。
  明晨坐相失,但見五雲飛(35)。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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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孟頫《趵突泉》詩今譯

 

今晨打開博客,見有網友給我畱言:“我正準備給孩子們講解這首詩,可否請教每句話的譯文?謝謝!急急!”下面我就試著將元代學者趙孟頫的《趵突泉》詩用現代漢語譯出;不當之處,還請博友們指教。

 

 

【原詩】
濼水發源天下無,

平地涌出白玉壺。
谷虛久恐元氣泄,

歲旱不愁東海枯。
雲霧潤蒸華不注,

波瀾聲震大明湖。
時來泉上濯塵土,

冰雪滿懷淸性孤。

 

【今譯】

濼水之源在此,可謂天下皆無,

平地涌出波濤,就如白玉之壺。

虛谷長久噴涌,耽心元氣泄盡,

即使大旱年景,不怕東海干枯。

雲霧蒸騰而去,滋潤著華不注,

波瀾聲聲而起,震撼了大明湖。
時時來到泉上,濯洗滿身塵土,

倣佛冰雪滿懷,使人性情脫俗。

 

   【注】

   第一句:在元代,人們認爲,趵突泉是濼水的發源地。

   第三句:元代人認爲,趵突泉水是從地下的虛谷中涌出。

   第四句:元代人認爲,趵突泉水直通東海,亦即趵突泉水是從東海而來。

   第五句:“華不注”即今俗稱之“華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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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璉,字林寺,一字殷玉,號曉園

《歷下元夜》

滿城燈光接湖光,

士女嬌歌夜未央。

七十二泉明夜月,

誰憐春色是他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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阙里宾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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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店鸟瞰图   
酒店鸟瞰图

阙里宾舍位于孔子故里,右临孔庙、后依孔府,宾舍占地2万平方米,建筑面积13200平方米。宾舍拥有175余间儒家文化特色客房(设总统套间、豪华套房、商务房、标准间、单人间),温馨舒适;容纳500人的餐厅(内设大餐厅及8个宴会单间)可以让宾客一边品尝孔府菜,一边欣赏古乐舞表演。另有国际会议厅、古乐舞艺术团、贵宾室、“金钥匙”、商务中心、商场、书店、棋牌室、歌舞厅、酒吧、美容美发、按摩室、医务室等服务项目及设施,是一家集住宿、宴会、会议、商务、文化休闲于一体的挂牌四星级旅游饭店。

目录

宾舍简介
儒家文化主题酒店
酒店获得的荣誉
酒店接待过的政要人物

编辑本段宾舍简介

阙里宾舍二OO七年十一月被授予儒家文化主题酒店称号,二OO六年五月通过ISO9001国际质量管理体系认证,二OO七年五月加入中国饭店金钥匙组织。
  阙里宾舍始建于1983年5月,1985年9月试营业,1986年4月17日正式开业。1991年被评为鲁西南地区首家三星级涉外饭店,2002年12月改制,2006年4月由南池集团接管,2007年9月晋升为四星级旅游饭店。

编辑本段儒家文化主题酒店

  阙里宾舍建于孔府“喜房”遗址,由中国著名建筑设计大师戴念慈先生精心设计并获得国际建筑设计金奖,入选《中华百年建筑经典》百座典范。整个建筑采取中国四合院式的布局,组成几座院落,以回廊贯通,与孔庙、孔府融为一体、相得益彰。内部装修古朴典雅,书法、绘画、雕刻及各类艺术品,彰显着浓郁的儒家文化气氛,是国内最为典型的儒家文化主题酒店。
  店名“阙里宾舍”由当代艺术大师刘海粟先生亲笔题写,宾舍内还有赵朴初、吴作人等名家的墨宝,以及慈禧太后赐给孔子七十六嫡孙孔令贻的“寿”字和道光皇帝御笔“福寿”、唐代吴道子“孔子行教像”等各类汉碑、魏碑碑帖;寓意深刻、祝愿宾客吉祥如意的鹿角鹤、铜锣、商周十供、石阙、鱼纹、鸡型铜釉砖饰、雕漆牌等饰品,如今都已成为阙里宾舍的无价之宝,非常珍贵的文化遗产。
  “儒雅客房,礼乐餐饮”是阙里宾舍所拥有的接待风格,2006年成功创新开发了高规格、高档次的接待宴会—“孔府盛宴”,热情的迎宾仪式、独特的起菜仪式、宴会时的乐舞、送宾时的祝福,让无数贵宾依依不舍、流连忘返。

编辑本段酒店获得的荣誉

  宾舍先后获得全国职工职业道德百佳班组、山东省服务名牌、山东省优秀星级饭店、旅游消费信得过单位、青年文明号、旅游系统先进集体、餐饮A级达标单位、济宁市十佳旅游企业、创建“绿色饭店”先进单位、绿化工作先进单位、曲阜市先进企业、旅游标准化试点单位等荣誉称号;副总经理王芳被授予全国旅游系统劳动模范。

编辑本段酒店接待过的政要人物

  自开业以来,凭借特色鲜明的装饰风格、文化氛围和高标准的服务,先后接待过江泽民、李鹏、朱镕基、吴邦国、胡耀邦、李瑞环、万里、乔石、谷牧等50多位党和国家领导人,还接待过日本前首相福田康夫、美国国务卿舒尔茨、新加坡总理李光耀、爱尔兰总统希格里、柬埔寨国王西哈努克、加拿大总理特鲁多、朝鲜劳动党中央主席金日成、荷兰女王贝娅特丽克丝、韩国前总统卢泰愚、日本前首相村山富市、联合国副秘书长金学洙、柬埔寨首相洪森,并且在山东省运会期间接待了罗格先生等20多位外国元首、政要,可谓高朋满座,往来名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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稼轩祠

  稼轩祠,在大明湖南岸遐园西侧。占地1400平方米,为纪念南宋爱国英雄、豪放派词人辛弃疾而建。辛弃疾(1140~1207),字幼安,号稼轩,济南历城人。青年时代,在家乡参加以耿京为首的农民抗金起义军,后历任南宋地方行政长官。为主张抗金,多次上书朝廷,后被贬谪,抑郁而死。其词作与苏轼齐名,并称“苏辛”。著有《美芹十论》、《九议》、《南渡录》、《稼轩祠》、《稼轩长短句》等。
  稼轩祠于1961年由李公(鸿章)祠改建而成,为古代官署型建筑。祠院坐北朝南,南北向三进院落,建在一条中轴线上。大门悬匾额“辛弃疾纪念祠”,为当代陈毅元帅题书。门两侧雌雄石狮各一只。门南为照壁,门内太湖石矗立作障景。左右厢房各三间,北侧为过厅,面阔三间,分别陈列当代名人叶圣陶、臧克家、吴伯箫、唐圭璋等人赞颂辛弃疾的诗词、字画。院内国槐垂荫。
  穿 过过厅为第二院落,两侧是抄手半壁游廊。北为正厅三间,卷棚顶式,门楣额枋皆饰彩绘,上悬匾额“辛弃疾纪念祠”。楹柱挂对联:“铁板铜琶继东坡高唱大江东去,美芹悲黍冀南宋莫随鸿雁南飞。” 匾额与楹联皆为当代著名作家郭沫若1959年撰书。厅内迎门处为辛弃疾塑像,四壁挂其生平事迹和名人字画,橱中陈列有关辛弃疾的各种版本的书籍。院内植有青松、银杏及石榴、百日红、月季等花卉。
  厅后第三院落,北临湖滨,是游览休息的风景建筑。西廊壁饰有扇面、海棠叶等各种异形窗。北端游廊二层,与“临湖阁”相通。东廊向北依次叠升,直达阁上。每叠平台由假山石堆砌。中段台上建小亭,供登楼中途稍憩。阁为两层,上建凉台,下设茶座,可于内观赏明湖景物。院内秀石玲珑,槐荫铺地,竹影移墙,榴花溢丹。阁北水中七曲石桥,上饰石栏杆,下可通小舟。桥北接“藕亭”,六角攒尖,单檐宝顶,亭桥相衬,亭影浮动,也为明湖一景。
  李鸿章(1823年2月15日-1901年11月7日),字子黻、渐甫,号少荃、仪叟,谥文忠,安徽合肥人。中国清朝末期重臣,洋务运动的主要倡导者之一,淮军创始人和统帅。官至直隶总督兼北洋通商大臣,授文华殿大学士。光绪二十七年(1901年),78岁的李鸿章病逝,两宫“哭失声”,慈禧太后称赞他是“再造玄黄”之人。赠太傅,晋一等肃毅侯,谥文忠。赐白银五千两治丧。入贤良祠,在京师建专祠,光绪皇帝赐匾,亲书“功昭翌赞”四字,春秋两季,朝廷派员专门祭祀。原籍和立功省津、沪、宁、苏、浙、皖、冀、鲁等地修建祠堂十座,其中,济南李公祠建于光绪三十年(1904年),地址即今大明湖南岸的稼轩祠。大明湖景区扩建中,在稼轩祠东、原皖江公所一大殿内的墙壁上,发现了两块立于光绪二十九年的“李公祠皖江公所捐资题名”碑,从中可以知道,大明湖李公祠是由山东、直隶(河北)两省官员共同捐款,由山东巡抚周馥领衔捐建的。直到民国初年,李公祠改作他用。济南战役时,李公祠曾成为国民党军队的战时医院。 
 

 

 

출처 : 굴어당의 漢詩(唐詩.宋詩.漢文)
글쓴이 : 屈漁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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