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깨진 유리창', 酒暴. 이창무 [現] 한남대 사회과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1987년 봄에 방문한 뉴욕은 냄새로 다가왔다. 버스터미널 건물 안에는 김빠진 맥주의 비릿한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대낮인데도 술과 마약에 찌든 홈리스들이 거리 곳곳에 쓰러져 있거나 어슬렁거렸다. 지하철 철로에는 버려진 맥주병이 즐비했다. 뉴욕의 밤거리를 다니는 건 용기를 요구했다.
10년 후인 1997년 다시 찾은 뉴욕은 달라져 있었다. 버스터미널 부근은 물론이고 지하철역도 깔끔하게 바뀌었다. 왜 달라졌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뉴욕 경찰의 '삶의 질 향상' 정책을 지적한다.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의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s)' 이론이 토대가 됐다. 불량배들이 장난삼아 돌을 던져 동네 한 집의 유리창을 깬다. 깨진 유리창을 바로 갈아 끼우지 않으면 그 집의 다른 유리창이 깨지고 곧 다른 집 유리창들도 가만두지 않는다. 이어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서 동네 집값은 떨어지고 결국 슬럼화한다. 문제의 원인을 밝혀 초기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깨진 유리창' 이론의 핵심이다.
1994년 1월 뉴욕경찰청장에 임명된 윌리엄 브래튼은 '깨진 유리창' 이론에 입각해 노상 음주, 무임승차, 낙서 등을 집중단속했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기초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원칙에서였다. 아울러 뉴욕시 당국과 함께 버스터미널이나 지하철역 주변처럼 범죄의 온상이 되는 곳들에 대한 환경개선 노력도 병행했다. 2년이 지난 뒤 범죄는 40% 이상 감소했다. 시내 곳곳에 배어 있던 술 냄새도 사라졌다. 거리는 깨끗해졌고 사람들은 밤거리를 덜 걱정하며 걷게 됐다.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는 '주폭(酒暴)'의 문제가 있다. 맨정신에는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는 사람이 술만 들어가면 온 세상이 자기 것이 된다. 하지만 혼자만의 영웅에서 초라한 취객으로 돌아오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고 점점 심해진다는 데 있다. 상습범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술 탓으로 돌리고 이를 받아주는 사회문화가 문제를 악화시킨다.
우리나라 주폭의 특징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출소에 잡혀와서도 호통을 치고 심지어 경찰관을 때리거나 집기를 부순다. 술 취한 사람을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문제가 될까 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찰 탓도 있지만, 기껏해야 벌금형으로 마무리되는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다. 술 취해서 행패를 부려도 별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반복되는 것이다.
음주 폭력의 폐해가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면서 급기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깎아주지 않고 오히려 가중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뒤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형사처벌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이들이 대부분 중독환자라는 점에서 약물 치료를 포함한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술에 취하면 본인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술을 없앨 수는 없다. 1920년 미국은 헌법까지 고쳐가며 금주법(禁酒法)을 시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결국 술보다는 술 먹고 사고 치는 사람이 문제다. 작은 범죄를 놔두면 큰 범죄를 키운다는 것은 '깨진 유리창' 이론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주폭'은 우리 사회의 깨진 유리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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