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서 답은 하나가 아니지만
수능에서 정답은 꼭 있어야 시를 다양하게 풀이하면서 정답을 찾게 할 수도 있다
교실에서 현대시를 요리조리 읽히면 아이들 視野도 넓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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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핵심은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는 시구(詩句)다. 어떤 이는 ‘비가 한 닷새쯤만 내리고 그만 그쳤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비가 빨리 그쳐야 님이 나를 찾아오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어떤 이는 ‘이왕 비가 오려면 한 닷새쯤 퍼부었으면 좋겠다’고 해석한다. 님이 나를 잊은 게 아니라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님이 오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애틋함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 해석에는 미묘한 차이로 인해 단일 해답이 없지만 우리 시 교육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단답형 사고를 강요한다.
문학평론가인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교과서 시 정본 해설’을 내면서 시 교육의 이런 획일성을 개탄했다. 정지용이 1930년에 발표한 시 ‘유리창’은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은 뒤 홀로 밤중에 유리창을 닦으며 쓴 작품이다. 시에서 ‘물먹은 별’과 ‘새까만 밤’은 환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시각적 영상으로 대조한 것이다. 별의 환상 속에서 죽은 아들을 만나 황홀하지만 유리창에 비친 밤 때문에 아들을 잃은 현실을 외롭게 깨닫는다. 시인은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라는 절창(絶唱)을 남겼는데, 어떤 교과서에선 ‘밤’을 식민지 시대의 어둠으로 풀이했다고 한다. 시대 배경만으로 시인의 복잡한 내면을 단순화한 경우였다.
베이비붐 세대는 국정 교과서에 실린 시만 학교에서 배웠다. 주제와 제재, 비유법만 잘 외우면 시험을 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세대 시인 중에서 국어 교과서를 통해 문학에 눈을 떴다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인들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시를 찾아 읽으면서 학교가 주입하지 않는 상상력을 스스로 키웠다고 말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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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출제 기준은 시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암기해서 푸는 것이 아니라 처음 접한 시도 해석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 교실에서 학생들이 그렇게 시를 다룰 능력을 익히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시인들은 국어 교과서에서 차라리 시를 빼거나 시는 외워서 쓰는 시험만 보자고 한다. 국어 교사 외에 문학 교사를 따로 둬서 가르치고 시험을 보자는 의견도 있다.
시 해석에서 하나의 답은 없지만 시를 수능 시험에서 뺄 수 없는 게 우리 교육 현실이다. 학생들이 시를 즐기면서 점수도 높게 맞는 방법은 없을까. 시인인 정끝별 명지대 교수는 책 ‘시심전심(詩心傳心)’에서 다양성과 상상력이 있는 시 교육을 제안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여성 화자가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시”라는 교육이 반세기 넘게 우리 교실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 시의 화자가 남성이라고 가르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적 화자가 남성이기에 여성인 ‘님’에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고 했다는 해석이다. ‘님’이 남자였다면 ‘묵묵히’ 즈려 밟으라고 하지 않았을까.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화자의 절규도 눈물을 아끼는 남성의 태도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정답으로 단정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학생들이 시의 화자를 남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까닭을 이렇게 찾아내도록 가르치고, 시험 문제도 이해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 쪽으로 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제안이다.
전체 교육과정에서 시는 작은 부분에 그친다. 그러나 보잘것없이 작은 시 교육이 아이들에게 세상과 타인을 더 폭넓게 보는 눈을 틔워줄 수 있다. 문학은 본래 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간접 체험하고, 남을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길을 일러준다. 아이들을 다 시인으로 키울 수는 없지만 시인의 영혼은 길러줘야 한다. 국어 교과서만 개정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가슴에 시인의 씨앗을 심어주는 방법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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