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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하 [趙寧夏]

굴어당 2012. 8. 27. 10:09

조영하 [趙寧夏]조선 문신 | 브리태니커

 
세부정보 확인
태어난 때 1845(헌종 11)
죽은 때 1884(고종 21).
소속 국가 한국
소속 국가 부속정보 조선
직업 문신
1845(헌종 11)~ 1884(고종 21).

조선 말기의 문신.

민씨정권과 결탁하여 활동했으며, 전권대신(全權大臣)이 되어 미국·영국·독일과의 수호조약을 체결했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기삼(箕三), 호는 혜인(惠人). 아버지는 현령 병석(秉錫)이며, 총융사 병기(秉夔)에게 입양되었다. 조대비(神貞王后)의 조카이다. 1863년(철종 14) 정시문과에 급제했고, 이듬해 규장각대교가 되었다. 당시 대왕대비로서 섭정하고 있던 조대비의 총애를 받아 1865년(고종 2) 대사성으로 승진했고, 이어 이조참의·개성부유수를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다. 민비를 중심으로 대원군의 반대세력들이 결집하고 어린 왕 고종도 성장하여 친정(親政)을 계획하게 되자, 1873년 민승호(閔升鎬) 등 민씨세력과 결탁하여 대원군세력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대원군이 하야(下野)하고 고종이 친정하자 이듬해 금위대장이 되었고, 이어 우포도대장·무위도통사(武衛都統使)·훈련대장을 역임했다. 1876년 지경연사(知經筵事)·공조판서를 지냈고, 1880년 이조판서를 거쳐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같은 해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신설되자 예조참판 김홍집(金弘集) 등과 함께 상호군(上護軍)으로 통리기무아문의 당상(堂上)이 되고, 이듬해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사대교린당상(事大交隣堂上)·전선어학사당상(典選語學司堂上)·병조판서를 역임했다. 1882년 전권대신이 되어 조미(朝美)·조영(朝英)·조독(朝獨) 수호조규(修好條規)를 체결했다. 같은 해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윤웅렬(尹雄烈)을 통하여 일본공사 앞으로 서한을 보내 군란의 상황을 통고하고 자위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그후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자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가 되었고, 청군이 개입하자 접견대관(接見大官)으로 청나라의 도원(道員) 마건충(馬建忠)을 만나 군란발생배경을 설명했다. 청·일 양국의 출병으로 민씨세력이 다시 집권하자 진주사(陳奏使)로 청에 가서 청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대원군의 조속한 환국을 요구했고, 차관교섭 및 세관설립에 필요한 관세·외교 담당고문으로 묄렌도르프를 초빙했다. 그후 판리통리아문사무(辦理統理衙門事務)·독판통상사무(督辦通商事務)·도통사(都統使)를 역임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개화파의 계략에 의해 어명을 받고 경우궁(景祐宮)으로 가던 도중 살해당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