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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의 영광’ 이끌 5세대 지도부 10巨頭의 도전
천량위 숙청 어부지리 태자당·상하이방·공청단과 원만 실패한 첫 결혼이 약점
시진핑 現 국가부주석
‘어부지리’. 시진핑(習近平)에게 따라붙는 사자성어(四字成語)다. 당초 공산당 총서기 경쟁에서 시진핑은 리커창, 보시라이 등 경쟁자에게 밀렸었다. 부친 시중쉰(習仲勳)이 1980년대 후반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를 옹호하다가 최고권력자 덩샤오핑에 의해 ‘팽’ 당했을 때는 아예 가망이 없다고 봤다. 하지만 시진핑은 2006년 천량위 상하이시 당서기가 부패 사건으로 숙청되자 총서기감으로 급부상했다.
시진핑은 1953년 베이징에서 시중쉰 전 부총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원적은 산시(陝西)성 푸핑(富平)이다. 부친이 류즈단 필화사건과 문화대혁명에 휘말리는 통에 젊은 시절 산시성 옌촨(延川)으로 하방됐다. 이후 베이징 청화대에 입학해 화학공학을 공부했다.
시진핑은 국방부장을 지낸 겅뱌오(耿飇)의 비서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군부 내 태자당인 류위안(류샤오치 아들), 장하이양(장전 아들), 류야저우(리셴녠의 사위), 류샤오장(후야오방 사위)과도 가깝게 지낸다. 시진핑의 가장 큰 우군은 쩡칭홍(曾慶紅) 전 부주석이다. 장쩌민을 시진핑의 우군으로 돌린 것도 쩡칭홍이다. 장쩌민은 8대 원로들인 시중쉰의 아들 시진핑과 보이보의 아들 보시라이를 놓고 저울질했다. 쩡칭홍은 2007년 17대에서 자신의 2선 퇴진을 조건으로 시진핑을 ‘황태자’로 옹립하는 데 성공했다.
선친이 구축한 인맥도 빼놓을 수 없다. 8대 원로였던 시중쉰은 공청단의 거두 후야오방을 옹호해 공청단파 사이에서도 거부감이 덜했다. 시진핑은 매년 춘절 후야오방을 찾아 세배를 올렸다. 이에 각 정파에서 거부감이 없는 것은 시진핑의 최대 강점이다.
복잡한 형제관계는 그의 걸림돌이다. 선친은 시진핑의 친모이자 두 번째 부인인 치신(齊心)과 2남2녀를 뒀다. 모친 성을 딴 치차오차오(齊橋橋), 치안안(齊安安)이 누이고, 남동생 시위안핑(習遠平)이 있다. 치차오차오와 시위안핑은 외국 국적과 부동산 개발 등과 관련해 종종 구설에 오른다.
본인의 첫 번째 결혼 실패 역시 시진핑의 약점이다. 시진핑의 전처는 전 주영대사 커화(柯華)의 딸 커링링(柯玲玲)이다. 현재 영국에 있는 커링링과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이혼 사유는 명확지 않다. 1987년에는 인민해방군 가무단 펑리위안(彭麗媛) 소장을 두 번째 아내로 맞았다. 펑리위안과 사이에는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 중인 외동딸 시밍저(習明澤)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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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 법학과·학생회장 ‘황태자 코스’ 공청단 제1서기 밟아 후진타오 총애가 감점요인
리커창 現 국무원 부총리
‘리틀 후진타오’.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의 별명이다. 차기 국무원 총리로 유력하다. 후진타오 현 총서기와 원적도 같고 성장 배경, 정치적 기반도 똑같다. 리커창이 문화대혁명 때 하방된 곳은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이다. 펑양은 명(明)나라의 개국시조인 주원장(朱元璋)의 고향이다. 리커창은 하방 때 주경야독하며 ‘제황의 꿈’을 키웠다.
리커창은 1955년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에서 지방법원장을 지낸 리펑산(李奉三)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적은 딩위안이다. 문화대혁명 때 하방됐다가 대학입시 부활로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북대방(北大幇)의 대표주자로 베이징대 학생회장과 베이징대 공청단 서기를 지냈고,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에 들어갔다.
리커창의 정치적 기반도 공청단이다. 리커창은 베이징대 선배인 후치리(胡啓立)에 의해 공청단에 발탁됐고, 공청단 제1서기를 지낸 후진타오(胡錦濤)에 의해 중용됐다. 허난성 공청단 부서기를 지낸 장인 청진루이(程金瑞)와 신화통신 기자였던 장모 류이칭(劉益淸)의 도움도 받았다.
리커창은 후진타오가 아낀 고(故) 쑹더푸(宋德福)에 이어 ‘황태자 코스’인 공청단 제1서기를 지냈다. 공청단 경력을 바탕으로 리커창은 인구 1억명에 가까운 허난(河南)성의 최연소 성장, 허난성 서기, 랴오닝(遼寧)성 서기를 두루 거쳤다. 지방 행정경험을 쌓아 ‘황태자’로 키우려는 후진타오의 배려였다.
하지만 후진타오의 총애는 오히려 감점요인으로 작용했다. 후진타오와 안후이성으로 원적이 갔다는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허난성 서기와, 랴오닝성 서기 시절에는 각각 에이즈(AIDS) 창궐과 초대형 탄광 사망사고 등의 대응미숙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2007년 17대 당대회에서 대역전이 일어났다. ‘젊은 상무위원’으로 호명되며 시진핑과 함께 상무위에 입성했는데 순위가 뒤바뀌었다. 시진핑이 서열 6위 부주석에 올랐고, 리커창은 서열 7위 부총리에 그쳤다. 리커창은 원자바오의 뒤를 잇는 자리에 일단 만족해야 했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 인선을 놓고 막판 혼선이 빚어지는 것도 리커창 탓이다. 당초 총리감으로 지목됐지만 주룽지 전 총리의 지원을 받는 왕치산의 급부상에 그는 전인대 위원장으로도 거론된다. 베이징 수도경제무역대 영문과 교수로 있는 아내 청홍(程虹)과 사이에 베이징대를 나온 외동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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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골 태자당 대만과 인연 덩샤오핑 장남 덩푸팡의 절친 큰형의 미국 망명이 걸림돌
위정성 現 상하이시 서기
위정성(俞正聲) 상하이시 당서기는 성골 태자당이다. 8대 원로인 보이보와 시중쉰을 각각 부친으로 둔 보시라이와 시진핑에도 밀리지 않는다. 위정성의 부친은 초대 톈진 시장을 지낸 황징(黃敬)이다. 황징의 본명은 위치웨이(兪啓威)로 마오쩌둥의 네 번째 부인 장칭(江靑)과 한때 동거했다. 황징이 장칭과 헤어지고 만난, 위정성의 모친은 베이징일보 사장과 베이징시 부시장을 지낸 판진(范瑾)이다.
위정성의 큰할아버지인 위다웨이(兪大維)는 대만 국민당 정권에서 교통부장과 국방부장을 지내며 `1958년 금문도 포격전을 지휘했다. 위다웨이는 장징궈(蔣經國) 전 대만 총통의 딸이자 장제스의 손녀인 장샤오장(蔣孝章)을 며느리로 들였다.
위정성은 1945년 저장성 샤오싱에서 태어났다. 하얼빈군사공정학원에서 탄도공학을 전공했고, 칭다오시 서기, 건설부장, 후베이성 서기를 거쳐 상하이시 서기로 있다. 그의 아내 장즈카이(張志凱)는 국방과학기술위 주임을 지낸 장전환(張震寰)의 딸이다.
위정성의 출세에는 덩푸팡(鄧樸方)과의 관시가 도움이 됐다.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은 위정성의 둘째형 위민성(兪敏聲)과 친했다. 위정성의 여동생 위후이성(兪慧聲)도 문화대혁명 때 자살한 터라, 역시 문화대혁명 때 고문을 받다 빌딩서 뛰어내려 장애인이 된 덩푸팡은 장애인복리기금회 주석이었을 때 위정성에게 부주석을 맡겼다.
위정성의 형 위창성(兪强聲) 국가안전부 북미사장(국장)이 1985년 미국으로 망명해 CIA(중앙정보국)에서 40년간 암약한 간첩 진우타이(金無怠)의 정체가 노출됐을 때, 격노한 덩샤오핑을 말린 것도 아들 덩푸팡이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는 전자공업부에서 같이 일했고, 장쩌민과 덩샤오핑 일가를 이어준 것도 위정성으로 전해진다.
막강한 관시에도 불구하고 67세의 나이는 위정성의 최대 약점이다. 상하이시 공무원의 월급 일괄 삭감으로 관료사회에서 인기도 별로다.
만약 위정성이 중앙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하면 현재로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위원장 또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자리가 유력하다. 대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위정성이 정협 주석에 오를 경우 양안 관계를 풀어가는 데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겠냐는 것. 다만 상하이시 당서기를 지낸 시진핑과 더불어 상하이시 당서기 출신이 두 명이나 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한다는 점 때문에 지정학적 안배가 최대 변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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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8호 | 2012.10.22 지해범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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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8호 | 2012.10.22 이동훈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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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8호 | 2012.10.22 이동훈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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