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잘 읽히는 ‘사기’ 목표로 나홀로 10년 작업” |
미국 동부의 명문 프린스턴대 출신의 경제학자인 최익순씨는 재미로 읽기 시작한 지 10년 만에 3천쪽자리 방대한 분량의 <사기열전> 번역판을 펴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짬] ‘사기 열전’ 색다른 완역
저술가 최익순씨
중국 고전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원문과 함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사기열전>(백산서당 펴냄)이 나왔다. 상권 980쪽을 비롯해 모두 3000쪽에 가까운 46배판 판형 상·중·하 3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특히 각주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옮긴이 최익순(61·사진)씨는 “(한문) 초보자라도 각주를 활용해 사기열전을 원문과 함께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라고 자부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번역본이든 원서든 출간된 중국 고전들이 대개 전문가들이나 해독할 수 있는 간단한 각주 몇 개 달고, 본문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등 일관성도 없어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몹시 불편했다. 중국 고전에도 이른바 논문식 각주 달기로 그런 독해 때의 난점들을 해소해보고 싶었다.”
“술술 잘 읽히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삼은 그의 전략은 대체로 의도대로 구현됐다.
한문 전공 않은 경제학도 출신
7년간 70편 읽고 두 번 더 완독
원문에 각주 달고 지명 변천사 담아
“당시 상황 이해 높아져 흥미진진”
10여년 걸린 방대한 작업을 특유의 몰입과 뚝심으로 돌파해낸 최씨는 중국 고전 전공자가 전혀 아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나온 뒤 1981년부터 약 7년간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프린스턴대에서 공부한 경제학도였다. 홍콩 소재 무역회사에서 3년간 월급쟁이 생활도 한, 대학 초년생 교양필수 교과서 <대학 한문> 공부가 사실상 전부였던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이젠 그는 전문가에 손색이 없다. 중화서국 발행 <사기>, 대만 상무인서관 발행 <백납본 이십사사 송경원황선부간보>를 저본으로 삼고, 정문서국 발행 <신교본 사기 삼가주병부편이종>을 참고해서 열전 70편을 ‘나홀로’ 완역해낸 실력파다.
주석 달기 방식도 이채롭다. 우선 70편 각 편을 저본의 구분 방식대로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고, 각 단락의 번역문을 앞세운다. 바로 뒤에 그 단락 원문을 싣고 각주를 위한 표시들을 거기에 단다. 따라서 번역문에는 각주 표시가 없다. 원문 바로 아래에 각주들이 달렸는데, 그 내용도 특이하다. 원문의 인명과 지명을 예외없이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 명칭들의 변천사까지 꼼꼼하게 달았다. “고대 지명을 현대 지명으로 바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현대 중국대륙 나아가 아시아 전도를 눈앞에 펼쳐놓고 열전을 읽어내려가면 훨씬 더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지고 흥미 또한 배가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인명·지명 외에 한문 문장을 구성하는 여러 글자들, 오늘날 일상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자들, 이체자(異體字)들까지 우리식 표기와 간략한 뜻풀이를 하고 현재의 중국 간체자 알파벳 발음표기까지 해놓았다. 또 각주를 열전 각 편을 중심으로 달았기 때문에 같은 내용의 원문이 나올 때 똑같은 각주가 다른 편에서도 반복된다. 교열에만 전문가가 10개월을 매달렸단다.
“그렇게 해서 열전 전편에 걸쳐 거듭 나오는 단어들은 각주로 되풀이 학습하는 가운데 저절로 익혀지고 정리된다. 그래서 다시 앞쪽 각주로 돌아가 볼 필요도 없이 막히지 않고 계속 읽어갈 수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차례로 읽지 않고 책 중간 어느 열전을 골라 읽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씨는 “학술적 엄밀성은 좀 모자랄지라도 열전을 읽으면서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라며 책의 장점과 한계를 분명히 밝혔다. “이 모든 작업은 인터넷 덕분에 가능했다. 인터넷이 한문 독해의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한문 단어나 글자의 쓰임새를 비슷한 시대의 다른 문장에서 금방 찾아보고 참조할 수 있고 중국의 <한어대사전> 등 각종 사전들을 다 볼 수 있다. 고대 지명이나 오늘날의 중국 행정구획명도 인터넷에서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고 작업이 쉬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예전에 읽던 소동파의 <적벽부> 등을 다시 읽었다. 예전에는 몰랐던 백로횡강(白露橫江) 등 유명한 구절의 의미를 스스로 깨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재미가 붙어 적벽부는 외워서 쓸 정도가 됐고,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적벽부 강의까지 했다. 2000년 무렵부터 <사기>를 읽으며 관련 자료를 모았다. 2003년쯤부터 사기 열전의 글자들을 한자 한자 공부하고 옮겨 적으며 읽었다. 1년에 10~11편을 그렇게 읽다 보니 70편을 다 읽는 데 7년이 걸렸다. 2011년에는 다시 한번 완독했다. 그렇게 해서 2012년 말까지 모두 세번을 읽었다.”
70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열전으로 그는 ‘중권 처음에 나오는 제29편-당이 진여 열전’을 꼽았다. 잘 몰랐던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컸단다. 더불어 94년 홍콩에서 귀국할 무렵 내우외환으로 공황장애까지 겪었는데 그 역경을 넘는 데 ‘사기’ 공부가 큰 도움이 됐단다. 하권 뒷표지에 실린 ‘태사공자서’ 발췌문에 “내 마음도 좀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태사공자서’에서 사마천은 서백과 공자와 굴원과 손자와 여불위, 한비자 등 고전의 저자들이 “모두 마음속에 답답하게 막힌 것이 있었으나, 그것을 풀어버릴 방법이 없자 지난 일들을 서술함으로써 미래에 희망을 걸었다”고 썼다.
그는 다음 작품 역시 <사기>로 정하고, ‘세가’ 편을 열공중이다.
12일 오후 6시 서울 경운동 한식당 낭만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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