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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재전당서포’를 아십니까(在田堂書鋪)

굴어당 2014. 8. 1. 06:42

 

 

대구 ‘재전당서포’를 아십니까

1900년대 초 개인 상업용 출판 목판·납활자 펴내
전국 4대 출판지로 이름 높여

1907년 무렵부터 1930년대 초까지 대구지역에서 목판 방각본 및 납활자 서적을 출간했던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의 윤곽이 드러났다.

최호석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조교수는 ‘대구 재전당서포의 출판활동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대구가 4대 방각본 출판지로 꼽히는 것은 재전당서포의 활약 덕분”이라고 밝혔다. 방각본은 조선시대 개인이 상업적으로 출간한 목판 인쇄본을 말한다.

재전당서포는 당시 행정구역상 대구 동상면 후동(현재 중구 포정동), 또는 대구 쇄환동(남산동 일대 인쇄골목으로 추정)에 위치했던 출판사로 달성의 광문사와 함께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방각본 출판사. 발행인은 김기홍(1876~1941). 대구시 경정 1정목 27번지(현재 중구 종로1가)를 본적으로 김윤중과 반쾌련 사이에 2남으로 태어난 그는 두 부인 서부돌과 방학이 사이에 8남10녀의 자녀를 두었다. 대전당서포에서 낸 <통감구해>(1917)에 실린 42살 때의 사진을 보면 김기홍은 정자관 한복차림에 콧수염을 기른 퉁퉁한 체격(?사진)인데, 최 교수는 중인계급일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재전당에서 낸 출판물은 국립도서관 등에서 실물로 확인되는 것만도 43종. 김기홍은 서른한살 때인 1907년 <동몽선습>을 시작으로 1916년까지 <십구사략통고>, <의례경전통해보>, <주서백선>, <중용장구대전>, <효경대의> 등 유학서적, <대학언해>, <효경언해>, <중용언해> 등 언해서, <상례비요>, <전운옥편>, <천자문> 등 실용서를 목판으로 찍어냈다. 특히 1913년은 활동이 가장 활발해 모두 18종의 서적을 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1917년 이후는 <진본황극책수>, <통학경편>, <혼상비람>, <전체대용>, <찰병요결>, <영구결> 등 주로 실용 취미서적을 납활자로 출간했다.

1929년에는 <옥단춘전>을 시작으로 <권익중전>, <박효낭전> 등 구활자본 고전소설(일명 딱지본)을 펴냈다. 현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1930년 조선총독부 납본기록에는 <곽해룡전>, <강태공전>, <김진옥전>, <신유복전>, <박씨전>, <유문성>, <장백전> 등 영웅소설 외에 <산양대전>, <강릉추월>, <십생구사>, <적벽대전> 등을 발행한 것으로 되어있다. <권익중전>의 말미에도 구활자본으로 추정되는 48종의 발행도서 목록이 나와 있는데, 납본기록의 목록이 들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재전당에서 출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4년말 <박효낭전>이 마지막으로 낸 책. 목판과 납활자를 합쳐 재전당에서 낸 책은 90여종으로 추산된다.

목판본 가운데 감영(중용언해, 중용장구대전) 또는 개인의 판목(효경대의)을 인수해 재전당 이름으로 간행한 책도 포함돼 있어 당시의 출판 풍속도를 보여준다.

재전당서포는 서점과 출판을 겸했는데, 서울의 고유상이 운영하던 애동서관과는 그곳 발행의 서적을 판매하는 등 각별한 관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책에 따라 인쇄인이 아들 김경발(1904~1967) 등 현지인과 서울 대동인쇄주식회사 소속 인사로 돼 있어 자체 인쇄시설을 갖추었고 필요에 따라 서울에서 인쇄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서울에서는 18~19세기 말 방각본이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대구에서는 1910년대 초 많이 찍어내 경-향의 편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논문은 14일 성신여대 수정관에서 열리는 한국어문교육연구회 학술대회에서 정식발표된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