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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된 출판사 '명문당' 김동구]

굴어당 2014. 12. 10. 20:12

 

 

[91년된 출판사 '명문당' 김동구]

사서삼경 최초로 완역한 아버지, 아들인 나도 中고전 100선 완역 중
역사를 외면하는 나라는 망해… 고전 펴낸다는 데 자부심 느껴

1923년 10월 23일, 충남 보령에서 상경한 젊은 한학자 김혁제(金赫濟)가 적선동 골목에 조용히 서점 문을 열었다. 출판사를 겸한 서점 이름은 '명문당'이다. 고전 서적 전문 출판사다.

91년 세월이 흘러 2014년 명문당은 김혁제의 아들 김동구(金東求·71)가 지킨다. 김동구의 두 자녀 보영(甫英·33), 재열(載烈·32)도 함께 일하고 있다. 흐른 세월이 91년이니 이 고집스러운 출판 가문 앞으로 흐를 세월은 또 몇 년일까.

나이 스물에 상경한 김혁제는 YMCA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는 일본인 서점에서 일했다. 1923년 어수선한 세태에 주인은 점원에게 서점을 넘기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아들 김동구는 "선친께서는 출판업을 미래지향적 산업이라 생각하신 듯하다"고 했다.


	고집쟁이 출판인 김동구가 똑같이 고집스러운 명문당 건물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다. 미로 같은 사무실에는 90년 세월만큼 책이 쌓여 있다.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고집쟁이 출판인 김동구가 똑같이 고집스러운 명문당 건물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다. 미로 같은 사무실에는 90년 세월만큼 책이 쌓여 있다.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문맹률을 따지기도 민망하던 식민지 시절, 명문당은 논어집주, 맹자집주 같은 사서삼경을 조선 최초로 완역했다. 농촌 필수품인 책력도 찍었고 토정비결도 찍었다. 월간지도 창간했고 검인정 교과서, 참고서도 만들었고 총독부 공무원 수험서도 만들었다. 만주어사전도 펴냈다.

출판 시장은 지금보다 좋았다. 한반도는 물론 만주까지 시장이었고 식민 조선의 향학열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도 있는 인쇄소 보진재가 주 거래처였는데, 아들 김동구에 따르면 보진재 인쇄기 한 대는 24시간 명문당 책 찍느라 돌고 있었다. 김동구는 "매일 가마니에 쑤셔넣은 돈을 세느라 정신없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해방이 되었고 전쟁이 터졌다. 일제강점기 생겨난 출판사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대구로 피란 간 명문당은 북성로 기찻길 옆 판잣집에서 옥편을 만들었다. 근대 옥편의 효시요, 쇠락한 명문당을 재건한 공신이다. 편지 한 장 부치는 데도 한자를 모르면 불가능했고, 은행 일도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옥편은 1970년대까지 국민학생 졸업 선물로 인기였다.

아버지 김혁제는 경복고에 다니던 아들을 거래처에 데리고 다니며 영업과 판매를 가르쳤다. 아들은 경희대 사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그리고 1970년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하늘로 갔다.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아들은 명문당 2대 사장이 되었다. "'사람은 이름 석자를 남겨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이 귀에 박혀 있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적선동이 재개발되면서 명문당은 안국동에 있는 요리 학원 건물로 이사했다. 한옥마을 한가운데 있는 4층 건물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 가옥 건너편이다. 김동구가 말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데모대가 자주 몰려왔다. 종로경찰서 정보계 형사들이 우리 건물에 상주했다. 망루도 만들고, 입구에는 전화기도 설치하고." 그런데 1980년 어느 날 새벽,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이 윤보선을 찾은 다음 날 경찰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했다. 명문당 건물은 서울시가 미래 유산으로 지정하려고 추진 중이다.

명문당은 중국 고전 100선을 새로 완역 중이다. 20세기 초 아버지가 시작해 어쩌면 손자 대에 끝낼 일이다. "신세대에 맞게 쉽게 번역 중"이라고 했다. 1세대 출판사들로부터 사들인 신소설 300종도 내년에 원래 판형 그대로 복간할 계획이다.

그 많은 책 가운데 토정비결과 택일력이 있다.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전쟁 때도 펴냈던 책들이다. 각각 6만부, 24만부까지 나간 베스트셀러다. 지금도 연말연시면 각각 2만부, 15만부가 나간다. 음력과 절기가 나와 있는 택일력은 농촌 필수품이다. 이 고집불통 출판사가 고집을 부릴 수 있는 믿음직한 책들이기도 하다.

고집쟁이들이 운영하는 명문당 건물은 양쪽에 쌓인 책들로 어른들 교행이 불가능하다. 입구에서는 발송할 책들을 포장 중이다. 미로 같은 복도 한편 '영업부'라고 적힌 문을 여니, 또 책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못해도 20~30년은 됐음 직한 책상과 의자에 김동구가 앉아 있다. 출판사 사장이라기보다는 문인(文人) 칭호가 어울리는 풍채다. 언뜻 봐도 치부(致富)와는 거리가 먼 사무실이요 사장이다.

그 사장이 말했다. "관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없다. 직원들 월급 제대로 못 주는 때도 있지만 고전, 이거 누군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천지다. 한국의 고전을 가장 깊이 있게 펴낸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마디 더 했다. "국사와 역사 공부를 외면하는 나라는 망해야 한다"고. 고전과 역사를 필생지업으로 삼은 노(老)출판인의 독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