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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박물관 짓는 문제봉씨 부부

굴어당 2014. 12. 19. 21:28

 

주춧돌과 들보마다 추억… 인생을 쌓는거죠

-서지학박물관 짓는 문제봉씨 부부
돌 기둥부터 기와까지 직접 올려… 착공 7년 만인 내년 봄 개관 예정
"전국 돌며 모아온 古書 2만권… 전시 공간 만들어 개방합니다"

경기 여주 남한강 강천보를 끼고 들어가면 단현리에 오래된 한옥이 있다. 서문재(書文齋). '시 짓고 글 쓰는 선비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집주인이 380년 된 한옥을 직접 해체해 얻은 재료로 지은 집이다. 문제봉(61)·김수자(49) 부부가 산다. 남편이 지은 집에 아내가 스물하나에 시집와 근 30년을 살았다.

아내는 남편을 '3무(無) 선비'라고 말한다. 신용카드, 운전면허, 휴대폰이 없다. 서문재에서 글씨 쓰고 목판 만들고 옛 서적 탐독하며 농사를 짓는다. "전화 안 받으면 자기들이 몸이 달아 찾아오는데, 나야 앉아서 보고 싶은 사람들 맞으니 휴대폰 있을 이유가 없지요." 이런 삶을 고집하는 남편을 아내는 묵묵히 지켜왔다. 띠동갑 부부는 30년 전 문씨가 여주 시내에서 서예학원을 할 때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문제봉(왼쪽)·김수자는 그냥 봐선‘부부’같지 않다. 아내는“수염만 보고‘영감과 산다’며 놀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뒤에 보이는 한옥이 부부가 7년째 직접 짓고 있는 서지학 박물관.
문제봉(왼쪽)·김수자는 그냥 봐선‘부부’같지 않다. 아내는“수염만 보고‘영감과 산다’며 놀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뒤에 보이는 한옥이 부부가 7년째 직접 짓고 있는 서지학 박물관. /이진한 기자
둘은 2008년부터 앞마당에 2층 한옥을 짓고 있다. 문씨가 모은 고서적 2만권을 전시할 박물관으로, 부부의 오랜 소망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책들 가운데 가치 있는 것과 전국 헌책방을 돌며 발굴한 책들이다. 이 중 고려 승려 지눌이 낸 '별행록(別行錄)' 목판본과 조선 학자 송준길의 친필 서한 두 점은 올 초 경기도 문화재로도 지정됐다.

"평생 모은 책을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요. 장마철엔 꺼내서 곰팡이 슬지 않게 말려줘야 하고…. 책 보려고 제자들은 찾아오는데 마땅히 맞을 공간도 없어서 우리 문화 알림터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한두 해면 될 줄 알았죠."

도편수(우리 전통 건축의 공사 책임자) 없이 주춧돌부터 기와까지 부부가 손으로 다 했다. 공부해가며 짓자니 시간이 없고, 사람 불러 짓자니 돈이 없었다. 건축은 배운 적 없지만 한옥 서적을 탐독하고 짜맞췄다가 해체하기를 반복했다. 서문재 지으려고 한옥을 뜯어본 경험은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다들 '돌기둥 올리기도 전에 당신이 죽을 거다'라고 했어요. 여덟 달 동안 돌기둥 열두 개를 내 손으로 다 깎았어요. 살이 5~6kg 빠졌죠." 아내는 이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했다.

하지만 고정수입 없이 7년째 집만 짓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아내는 "남편 원망 많이 했다"면서도 "집 앞 논 두 마지기에 벼농사 짓고 마당에 푸성귀 기르니 굶을 걱정은 없다"며 웃었다. 묏자리·집터를 봐주거나, 현판에 글을 써주거나, 이름 지어주는 일로 이따금 수입이 생겼다. 그때마다 강원 진부에서 금강송을 구해와 기둥 세우고 보를 얹었다. 새벽부터 한밤까지 공사하는 날도 있지만, 재료가 떨어져 손 놓았을 때는 막걸리에 취해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더디고 더디게 4년 만에 상량식(上樑式)을 가졌다. 그날 아내는 남편에게 시 한 편을 건넸다. '나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남편이) 내가 그리도 싫어하는 담배를 피워무는데/ 오늘은 고것조차 용서가 되는/ 아주 속깊은 아낙이 되었다.'

부부의 서지학(書誌學) 박물관은 착공 7년 만인 내년 봄 개관한다. 일단 무료 개방할 계획이다. 1층은 전시실, 2층은 체험관으로 꾸려 학생들이 서예나 능판화를 체험하도록 돕는다.

아내는 "집이 아니라 사람이 완성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기둥 하나, 돌 하나에 추억이 서렸고 두고두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잖아요.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행복해요. 예쁜 옷 봐도 사고 싶지 않고, 눈가에 주름 하나 더 생겨도 맘이 편하네요."

자식들 다 컸을 즈음 시작한 고행이다. 딸 둘은 출가했고, 스물여섯 살 막내아들만 집에서 출퇴근한다. '아들에게도 한학(漢學)을 가르치느냐'고 묻자 문씨가 답했다. "제발로 찾아오는 놈 가르치기도 힘든데, 묻지도 않는 놈 가르쳐 뭐하게요? 때 되면 궁금해하고, 물어보고, 뜻을 잇게 돼 있어요."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