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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한국 총리 잔혹사 … 중국의 현능정치를 곁눈질하다

굴어당 2015. 5. 4. 20:51

 

[서소문 포럼] 한국 총리 잔혹사 … 중국의 현능정치를 곁눈질하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간쑤(甘肅)성은 중국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곳이다. 주민 소득 수준이 전국 31개 성(省) 중 최하위권이다. 취재 차 만난 리시신(李西新·41) 란저우(蘭州) 신구관리위 부주임. 그는 칭화(淸華)대 박사 출신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3년 가을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내놨을 때 그 의미를 가장 먼저 ‘네이찬(內參·고위 간부 내부 회람 자료)’에 올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정도 학력에 실력을 갖췄다면 중앙에서 일해도 되지 않겠나 싶어 질문을 던졌다.

 “왜 하필 이 오지에 박혀 일 하느냐.”

 “여기가 어때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바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주석을 꿈꾸나?”

 “(손사래를 치며)그건 아니고, 지방에서 실력을 쌓아 중앙으로 가는 게 우리 당의 인사 방식이다.”

 실제로 그랬다. 후 주석은 나이 32세 간쑤에서 지방 업무를 시작한 후 구이저우(貴州)·티베트 등을 거쳐 주석에 올랐다. 시 주석 역시 29세에 우리나라의 읍에 해당하는 현(縣)급 도시에서 시작해 푸젠(福建)·저장(浙江)·상하이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시 주석이 지방에서 ‘다스렸던’ 주민만 1억5000만 명에 달한다. 국가 주석이 되기 전 이미 어지간한 나라를 통치했던 경력을 갖춘 셈이다. 승진 고비마다 실시되는 엄격한 심사와 평가를 통과해야만 국가 리더십 구성원으로 뽑힐 수 있다. 당연히 행정 관리들은 정치에 기웃거릴 틈이 없다. 오로지 실적만 중요할 뿐이다.

 그 뒤에는 당(黨)조직부가 있다. 조직부는 8000만 명이 넘는 인적자원(당원)을 어떻게 운용할지 면밀하고도 조용히 움직인다. 우수 인재는 당교(黨校)로 보내 사상 교육도 시킨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을 감지할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주한 중국대사관의 정무공사 근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귀임한 외교부 중간 간부 천하이(陳海). 그는 지금 멀리 광시(廣西)성 난닝(南寧)에서 성정부 외교 업무를 담당한다. 좌천이라도 당했나 싶어 전화통을 잡았다.

 “아니 왜 그런 오지로 갔나?”

 “광시는 동남아 외교의 전초 지역이다. 여기도 할 일은 많다.”

 “그래도 중앙 공무원인데….”

 “(웃으며)과즈(<6302>職)로 나와 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과즈’는 중국 공직의 독특한 인사 제도다. 일정 직위에 오르기 전 반드시 지방(또는 전혀 다른 부문)에서 2~3년 일하게 된다. 지방의 현실을 이해해야 정책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거부감도 없다. ‘지자체의 대외협력 자리는 퇴직 직전 갈 곳 없을 때 한번 생각해 보는 보직’이라는 국내 인식과는 크게 비교된다.

 칭화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캐나다 국적 교수인 대니얼 벨은 ‘중국은 왜 강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공산당의 인재 운용 시스템에서 찾는다. 업무 능력이 출중한 인재를 발굴해 국가 리더로 양성하는 시스템이 살아 있다는 설명이다. 벨 교수는 이를 ‘현능의 정치(賢能政治)’라고 했다. 도덕성(賢)과 능력(能)을 겸비한 인재를 발굴하는 데 유리한 체제라는 지적이다.

 일당 독재 국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중국은 선거가 없다. 선거를 통해 국가 리더십을 재구성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당 내부 혁신을 통해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병패도 많다. 당이 옳다면 옳은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다양성은 무시당한다. 민주·인권·복지 등 보편적인 가치가 꺾일 수도 있다. 자정 기능이 약화되면 부패는 만연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현능정치’를 돌아보는 이유는 우리의 정치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완구 전 총리 후임을 뽑기 위한 또 다른 청문회가 열린다. 2명 퇴진에 세 번 후보자 낙마라는 ‘총리 잔혹사’는 ‘청문회라는 민주 시스템으로 과연 덕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한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일당 독재 국가의 정치시스템이 부러워진다면 우리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중국에 지는 것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