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말단 직원, 고전 국역 首長 되다
[신승운 제4대 고전번역원장]
우체국서 일하며 한문 공부 시작… 민족문화추진회에서 20년 근무
조선왕조실록 완역 등 이끌어 "백년대계 세우는 역 맡게 돼 영광"
"1986년 민족문화추진회가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 구기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 실무자로 거들었는데 이제 다시 돌아와 정든 건물을 파는 책임자가 됐습니다. 또 한 번의 도약기를 맞고 있는 고전 번역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역할을 맡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지난달 말 한국고전번역원 제4대 원장으로 취임한 신승운(66)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문 고전 번역의 '산증인'이다. 1974년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이하 민추) 부설 국역연수원이 문을 열 때 1기생으로 입학한 그는 민추에서 20년 근무하며 고전 번역과 편찬, 후진 교육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96년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대동문화연구원장, 동아시아학술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고전의 현대화에 관심을 쏟았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 한 그는 전환기에 놓인 '친정'으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다.
서울 구기동 한국고전번역원 건물 앞에 선 신승운 신임 원장. 30년 넘게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 새 청사로 이전하는 책임을 맡게 된 그는 “현대식 하드웨어에 걸맞은 우수 인력과 장기 계획 등 소프트웨어도 갖추는 것이 내부 출신 첫 원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서울 구기동 한국고전번역원 건물 앞에 선 신승운 신임 원장. 30년 넘게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 새 청사로 이전하는 책임을 맡게 된 그는 “현대식 하드웨어에 걸맞은 우수 인력과 장기 계획 등 소프트웨어도 갖추는 것이 내부 출신 첫 원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신승운 원장은 고교 졸업 후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5급(현재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서울 마포우체국에 근무했다. 단조로운 공무원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던 1971년 신문에서 태동고전연구소(소장 임창순) 한문강좌 모집 기사를 읽었다. 고교 시절 한문 공부를 좋아했던 그는 한달음에 달려가 등록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한문의 기초를 배우며 동양 고전의 세계에 빠져든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국역연수원에 들어갔다. 4년 동안 성낙훈·신호열·임창순·조규철 등 기라성 같은 한학 대가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그는 "성낙훈 선생께서는 연수생들이 우리 고전의 전통을 이어갈 '서종(書種·글종자)'이라고 매우 아끼셨다"고 말했다.
국역연수원에 재학 중이던 1976년부터 민추에 근무하게 된 그는 국역연구부장, 편찬실장, 국역연수원 교수를 역임하며 조선왕조실록 완역, 한국문집총간(叢刊) 간행 등 대형 사업을 주도했다. 특히 기획 분야에 능력을 발휘해 '고전국역 활성화 방안' '고전 현대화 계획' '민족문화추진회 장기발전계획' 등 굵직한 기획안이 그의 손을 거쳤다. 1983년부터 20년간 간판 슬로건으로 사용된 '우리 가슴에 우리 고전을'도 그가 만든 것이다.
신 원장은 늦은 나이에 대입 준비를 시작해 1980년 강남대 도서관학과에 진학했고 이어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에서 조선시대 문헌 연구로 석·박사를 받았다. 그는 민추를 떠난 뒤에도 민추의 고전 번역과 후진 양성에 참여했고 2007년 민추가 한국고전번역원으로 발전 출범할 때 종합계획안 수립을 맡았다.
한국고전번역원은 내년 4월 은평구 진관동에 지상 6층, 지하 2층의 새 청사를 건립해 이전할 예정이다. 신승운 원장은 '진관동 시대'를 준비하는 당면 과제로 고전 번역 장기 계획 수립과 우수 인력 확보를 꼽았다. "지금 중국이 방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서 인근 나라에서 간행된 한적(漢籍)을 수집·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 조상이 남긴 책을 중국에 가서 봐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관련 기관·정부 부처들과 함께 국가적인 고전 번역 마스터 플랜 을 세울 생각입니다."
신승운 원장이 한국고전번역원 출범 당시 외친 한국고전번역대학원 설립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우수한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교육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 원장은 "전문 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이 좋고 안 되면 관련 대학원과 공동 과정을 운영해 고전 번역의 수준과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6/20170316001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