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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몰이꾼서 巨匠으로… 새우·참새가 수묵에서 뛰어놀다 - 중국화 거장 '치바이스' 첫 한국展

굴어당 2017. 8. 4. 21:55

소몰이꾼서 巨匠으로… 새우·참새가 수묵에서 뛰어놀다
- 중국화 거장 '치바이스' 첫 한국展
詩·書·?·刻 두루 능통했던 작가… 배추·병아리 등 일상 풍경 그려
피카소 제치고 경매 최고가 기록

사석원·최정화 등 오마주作 전시… 예술의 전당서 10월 8일까지

2011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수묵화 한 장이 714억5000여만원에 낙찰됐다. 그해 피카소를 제치고 세계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이 그림의 제목은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영웅을 뜻하는 매를 둘러싼 이 그림은 중국 화가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가 대만 총통 장제스(蔣介石)에게 선물한 그림이다.





치바이스(왼쪽)에게 경의를 표한 사석원의‘닭’그림과 최정화의 설치작‘배추’. 치바이스가 88세에 그린‘채소와 풀벌레’가 왼편에 보인다. /김윤덕 기자






쌍사자 손잡이에 새긴 전각‘직심거사(直心居士)’.
쌍사자 손잡이에 새긴 전각‘직심거사(直心居士)’. ‘直心居’세 글자를 오른쪽에 몰아넣고‘士’자 한자만을 왼쪽에 펼치면서도 절묘한 균형을 이뤘다.




20세기 중국 미술의 최고봉으로 추앙받는 치바이스 전시가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7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한 '치바이스―목장에서 거장까지'전(展)은 한·중 수교 25주년, 치바이스 서거 60주년을 맞아 기획된 특별전으로, 작가 고향인 후난성(湖南省)박물관이 소장한 치바이스 그림·서예·전각 50점과 생애유물 83점 등 133점이 공개된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수석 큐레이터는 "사드 정국에도 이 전시가 열리게 된 것은 순전히 치바이스의 힘"이라며 "이번 전시 작품 보험가액만 1500여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소몰이꾼에서 중국화 巨匠으로




치바이스가 생애 후반부에 그린‘부용과 새우’
치바이스가 생애 후반부에 그린‘부용과 새우’. 꽃의 붉은색과 먹으로 그린 네 마리 새우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예술의전당




시(詩) 서(書) 화(畵) 각(刻) 모두에서 거장 반열에 오르며 중국화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치바이스는 후난성 시골 마을에서 살던 소몰이꾼이자 가난한 목수였다. 생계를 위해 가구를 만들고 도장을 새기고 그림을 그려 팔았던 그는 틈틈이 책을 읽고 선인들 작품을 파고들며 독창적인 필묵언어를 개척했다. 참새와 개구리, 병아리와 풀벌레들이 화선지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그린 수묵화는 대표적이다. 치바이스는 신선이나 용, 학 대신 일상에서 흔히 보는 꽃과 새, 열매와 곤충을 그렸다. 자서전 '치바이스가 누구냐'(학고재)에서도 "말을 하려면 남들이 알아듣는 말을 해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거든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그려야 한다"며 고답적인 문인화를 질타했다. 인물화 또한 해학과 유머로 가득하다. 등 긁는 늙은이, 술취한 이를 업고 헤벌쭉 웃으며 걷는 사람, 밥 지으려 불 지피는 남자 등 민초들의 풍경을 익살스럽게 그렸다.

전각도 당대 최고였다. 한칼에 글자를 새기는 '일도법(一刀法)'으로 명성이 높았던 치바이스는 "남들이 후벼 팔 때 나는 새긴다. 전각의 맛은 통쾌함이 중요한데 왜 쩔쩔매며 잘 새기려 한단 말인가"라는 말을 자서전에 남겼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치바이스 컬러라고 할 만큼 강렬한 원색 대비, 장검을 휘두르듯 단숨에 그어내리는 직필, 비울 곳은 텅 비우고 채울 곳은 꽉 채우는 허허실실(虛虛實實)한 공간 경영이 치바이스 조형언어의 진수"라고 말했다.

◇"400년을 산들 저 먹색 낼 수 있을까"

예술의 근본은 시(詩)라고 믿은 치바이스가 그림 옆에 남긴 시구를 음미하는 맛도 일품이다. '자그마한 연못가에 오이 시렁 하나, 오이 넝쿨엔 헛된 꽃이 달리지 않는다. 채소 먹으며 고향에서 배불리 사는 그대가 부럽거니, 문을 열고 조용히 개구리 소리 듣누나.'

이번 전시엔 치바이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중 작가들의 작품도 40여 점 전시된다. "고교 시절 헌책방에서 치바이스 화집을 발견하고 매료됐다"는 화가 사석원은 치바이스가 즐겨 그린 새우, 게, 소 등을 그린 작품 20여 점을 내놨다. 그는 "먹색 제대로 내는 데만 40년 걸린다는 말이 있는데 치바이스 선생의 새우 그림을 보니 400년을 살아도 저 먹색은 낼 수 없으리란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후난성박물관에서 온 류강 학예실장은 "청조(淸朝) 봉건사회, 중일전쟁, 마오쩌둥의 공산국가까지 20세기 격변의 중국을 살아낸 치바이스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오로지 붓으로 민중의 삶을 표현하고 어루만진 위대한 작가"라고 했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 (02)580-1300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1/20170801033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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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피카소' 치바이스 작품 韓 첫 공개···보험가액만 1500억치





치바이스, 새우




'중국의 피카소’로 통하는 치바이스( 1864 ~1957·齊白石)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이 '치바이스齊白石 -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를 타이틀로 총 136점을 선보인다. 보험가 1500억원에 이르는 작품들로한중 수교 25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마련됐다.

이번 전시회는 '새우', '병아리와 풀벌레', '물소', '포도와 청설모', '수양버들' 등 호남성박물관 소장 치바이스 그림과 서예 전각 50점, 국내소장 작품 3점, 치바이스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생애유물 83점 등 총 136점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됐다.

또한 한-중 현대작가들의 치바이스 오마주 작품 40여 점도 함께 전시, 한국과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서화미술의 21세기 정체성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치바이스는 누구인가

농민화가로 시작하여 중국인민예술가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시서화각(詩書畵刻) 일체의 조형언어로 ‘신문인화(新文人畵)’를 창출하여 중국 근현대미술을 혁신시킨 인물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며 20세기 동아시아 미술의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장다첸(張大千)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의 서화가(書畵家)로 대중적 인기나 예술적 경지에서 사실상 독보적인 위치로 평가받고 있다.

2011년 그의 이름이 세계미술시장에 떠올랐다. 중국 경매업체 가디언이 베이징에서 주최한 '2011 춘계경매회'에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전서사언련(篆書四言聯)'이 714억5000여만원에 낙찰돼면서다.

그해 피카소, 클림트 작품을 제친 최고의 미술품 경매가를 기록해 세계 미술시장을 놀라게 했다. 또 다른 작품인 '화조사병(花?四?)'도 154억4800만 원에 팔렸고, 선전(深?)에서 열린 경매에서 '군룡입해도(群?入海?)'는 1억2000만 위안(200억 원)에 거래되는 등 작품값은 현재에도 고공행진중이다.

천문학적인 작품가격과 거장의 빛나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치바이스는 유년부터 찢어지는 가난으로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치바이스 자신도 77세에 이르러 “가난한 집 아이가 잘 자라 어른이 되어 세상에서 출세하기란 진정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새우와 개구리가 뛰쳐나올것 같은 그림

글공부는 친할아버지의 가학(家學)(4세)과 외할아버지의 서당 출입(8세)으로 시작하였고 시(詩)?화(畵)는 후친위안?천사오판 문하(27세)에서 본격화 되었다.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와 명대의 슈웨이와 명말청초의 바다산렌(Bada Shanren, 八大山人)으로 잘 알려진 주다(朱?)와 같은 거장들을 평생 사숙하며 그림을 깨쳤다.

일생동안 오직 짓고 새기고 쓰고 그리면서 생존과 자아완성을 이룩해냈다. 이런 맥락에서 치바이스의 생애와 예술창작 궤적은 인간세상의 기적으로 통한다. 소몰이꾼, 시골 목수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강인한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고전과 자연을 교과서로 삼아 시서화각을 독학으로 마스터해냈다.

그는 평생 수 만 점에 이르는 예술품을 세상에 남겼을 정도로 다작을 했다. 주목되는 점은 대부분 작품이 최고의 격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작이 많은 다작 작가의 병폐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천재성 이전에 노력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흔하디 흔한 소재를 일생에 걸쳐 무수히 반복 묘사한 결과 대상의 본질과 미의 질서를 굵고 단순명료한 필획으로 추출한 그림은 독보적이다. 특히 꽃, 새, 풀, 벌레를 ‘살아있음’ 그 자체의 생동감으로 표현하였다. 물고기, 새우, 게, 개구리는 마치 화선지 속에서 뛰쳐나와 헤엄쳐 다니는 착각에 들 정도다.

치바이스는 청조(淸朝) 봉건사회가 망하고, 서구문명과 민주?공산?사회주의 득세와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 격변하는 20세기 중국사회를 관통하면서 근 한 세기를 살았다. 그러나 낡은 봉건주의 관습에 얽매이거나 시세에도 영합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실존을 직시하며 정치인이나 관리들을 경계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시대와 사회를 생활 주변의 물상을 가지고 풍자와 우화로, 해학과 골계로 필묵으로 비틀고 녹여내며 예도 외길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치바이스는 시서화각 일체 언어로 평화사상을 그려낸 거장이다. 1956년 세계평화평의회에서 국제평화상을 받으며 치바이스는 이렇게 답사를 했다.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하고 , 내 조국의 풍요로운 산과 강 그리고 흙을 사랑하고, 대지위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기에 한평생 평범한 중국인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시로 썼다. 최근 몇 년 동안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끊임없이 추구한 것은 다름 아닌 평화(平和)였다는 것을”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은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아 한중 양국의 문화교류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할 뿐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는 치바이스의 작품 세계를 우리나라 관람객에게 처음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