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는 작품에 교묘한 방식으로 '정치 메시지'를 숨겨 놓았다." "추사는 '뜻을 그린다(寫意)'고 여러 번 말했는데 연구자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동양화가이자 미술사가인 이성현(58·작은 사진)씨는 최완수·유홍준 등 유명 추사 연구자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문화재에 낙서를 해댄 꼴" "광개토대왕비 글자를 변조한 일제처럼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씨는 2년 전 '추사 코드'에 이어 최근 '추사난화'(들녘)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추사 글씨를 치밀하게 분석했다면 이번엔 추사의 난(蘭) 그림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대학' '논어' '시경' 같은 유학 경전과 당대 정치사를 넘나들며 도발적 해석을 제기한다.
추사의 난 그림 '불이선란(不二禪蘭)' 화제(畵題·그림에 붙여 쓴 글)에서만 전문가들은 글자 넷을 오독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흔히 '부작난화이십년(不作蘭画二十年)'으로 읽는 글귀의 '作(작)'은 '正(정)'을 잘못 읽은 것. '시위달준(始爲達俊)'으로 읽는 글귀에선 두 자를 오독했다. '始(시)'는 '妃(비)'이고, '俊(준)'은 사람 인(人)변이 없는 '갈 준(夋)'이다. 선객노인(仙客老人)으로 읽는 '客(객)'자는 윗부분이 '갓머리(宀)'가 아니라 '비 우(雨)'인 '비 떨어질 락'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 미술사가 이성현은 이 그림의 화제에서 ‘부정난화이십년’ ‘비위달준’ ‘선락노인’(왼쪽 위부터)의 일부 한자를 전문가들이 오독해 엉뚱하게 번역했다고 주장했다.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 미술사가 이성현은 이 그림의 화제에서 ‘부정난화이십년’ ‘비위달준’ ‘선락노인’(왼쪽 위부터)의 일부 한자를 전문가들이 오독해 엉뚱하게 번역했다고 주장했다. /들녘
글자만 오독한 게 아니다. 이씨는 "추사가 반(反)안동김씨 세력인 자신의 정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 코드'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점을 연구자들이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부작난화이십년'으로 읽어 '난 그림 그리지 않은 지 20년'으로 해석하는 구절은 '엉터리 난 그림과 함께한 20년은 조정의 쇄신을 이끌어내고자 함이었다'는 뜻이라고 이씨는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부작(不作)'은 부정(不正)의 오독이다. 이십년에서 '이(二)'는 '풍신(風神)'이란 뜻이 있고, 십(十)은 '지(地)', '년(年)'은 '나아갈 진(進)'과 뜻이 중첩된다. 추사는 '이십년'이라는 표면적인 뜻에 '바람의 신이 나아가 먼지를 쓸어낸다'는 속뜻을 숨겼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자들이 '처음에 달준(사람 이름)을 위해 그렸으니…'로 풀이했던 '시위달준' 역시 "글자를 임의로 바꾸고, 존재하지도 않는 '달준'이란 사람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시위달준'은 '비위달준'으로 여기서 '비(妃)'는 헌종·철종대 수렴청정을 했던 순원왕후 김씨를 가리키며 '대비가 (추사의 정치 세력을 우습게 여겨 살려두는) 거만한 결정을 하도록 만들라'는 정치적 조언을 담고 있다고 했다. '선객노인'이 아닌 '선락노인'은 정치 동지인 당시 영의정 권돈인을 가리키며, '불이선란'은 권돈인에게 보낸 것으로 안동 김씨에게 눈물로 선처를 호소해 조직을 보호하고 목숨을 보전하라고 조언하는 '비밀문서'였다는 주장이다.
이씨는 개인전을 21회 연 동양화가이면서 미술학 박사학위(홍익대)를 받고 30년간 우리 미술사를 연구했다. 그는 "추사 작품에 관한 기존 번역과 해석론을 보다가 억지 주장이 많음을 발견했다"면서 "화가의 눈으로 보면 추사가 글자 를 비틀어 '코드'를 심어놓은 점이 보인다"고 했다. 이씨의 파격 주장에 추사 전문가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씨는 "추사는 신분제 철폐와 능력 본위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적(政敵)의 눈을 피해 정치 세력을 규합한 정치인인데 전문가들은 그를 괴팍한 예술가 정도로만 여긴다"면서 "내가 쟁점화해 이끌어낸 주장을 다른 학자들은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