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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孟子 修學記.글: 허성도 교수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굴어당 2019. 11. 21. 23:51

나의 孟子 修學記.글: 허성도 교수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학문에도 믿음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보다"
글: 허성도 교수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대학시절 나는 한문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3 학년 봄을 맞이했다. 5월이었다. 가난한 시절에는 봄도 추웠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동숭동 캠퍼스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시간 강의를 나오시는 선생님 한 분이 내 옆에 앉으셨다. 연구실도 없이 강의만 하고 가시는 길이었으니 그 분의 마음도 추웠을 것이다.
그 분은 나에게 요즈음은 무슨 생각으로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문 공부를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분은 “한문 할라꼬? 나 지금 서당 가는데 니도 갈래?”하고 물으셨다. 그 길로 나는 그 분을 따라 나섰고, 그래서 도착한 허름한 한옥에서 나의 선생님을 만났다. 매일 아침 7시에 와서 맹자를 배우기로 했다.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맹자 한 줄을 가르쳐 주셨다. 서당까지 오고 가는 데에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공부 시간은 5분이 못 되었다.
나는 맹자의 철학적 의미와 같은 깊은 뜻을 듣고자 했으나 “그런 것은 나는 모른데이, 나중에 니 혼자 생각하그레이.” 하시는 것이 대답의 전부였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더러는 며칠씩이나 서당에 가지 않았다. 혼자 공부해도 그만큼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학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게으름은 친구처럼 다가와 나의 의지가 얼마나 약한 지를 자주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며칠 후에는 다시 서당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꾸중하시는 법이 없었다. 그 분은 맹자 한 줄을 200 번씩 읽어 오라고 하셨고, 후에는 500 번씩 읽어 오라고 하시더니 나중 에는 천 번을 읽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문리과 대학에 있던 중앙도서관에서 이것을 읽었다.
어느 날 내가 “그 동안 배운 것을 외워 볼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고대 읽으라고 했제? 언제 외우라고 했나? 고대 읽기만 해라이.” 이것이 그 분의 대답이었다. 선생님께는 한문을 물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때마다 선생님은 막힘없이 그것을 해석해 주셨다. 그 모습은 나에게 경이로운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공부하면 그렇게 되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대답은 맹자만 천 번 읽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과연 그럴까라는 회의 속에서 흉내를 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선생님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맹자만 천 번 읽으면 정말 한문을 잘 하게 되는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 이제 임종 을 앞두고 계십니다. 그러하오니 평소의 고집이 아니라 진실을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린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의 응답은 똑 같았다. “맞다. 고대 천 번 읽으레이.” 이것이 선생님과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로 孟子千讀은 내 삶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옳은가라는 의심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내 생애를 통해서 선생님의 말씀이 과연 맞는가를 증명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증명될 때 선생님 묘소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1999년 이후로 나는 읽는 횟수를 세지 않았다. 천 번이라는 횟수는 의미가 없으며, 그저 한 구절 한 구절을 무한히 생각하기로 하였다. 작년에 나는 안식년을 맞았고, 이 동안 맹자를 끝내기로 작정하였다. 나이로 보아 이미 늦었다는 초조감이 들었을 것이다. 몇 번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금년 1월 13일, 나는 맹자를 일단 완독했다. 이 한 권을 읽는 데에 35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全文을 다시 보니 뜻을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곳곳에서 나를 맞는다. 앞으로도 몇 년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내 생애의 많은 세월이 이곳으로 흘렀다. 그러나 이러한 독법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더러는 가슴 터질 것 같은 흥분을 경험하기도 하였고, 더러는 맹자와 고즈넉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지를 증명하겠다는 꿈은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늦은 것이다. 왜 늦었을까? 그것은 이 방법에 대한 믿음의 부족 때문이었다. 방황의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학문에도 믿음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보다. 이 방법에 대한 확신을 가진 후에 나는 이를 믿고 따라줄 제자를 찾았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제자를 만나지 못했다. 내 삶에 가을처럼 소슬한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다. 금년 한식에는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가려 한다. 평소 좋아하시던 약주 한 잔 올리며, 세월 지나 풀잎 푸르를 그곳에서 號哭을 바람에 날리고 싶다. 그리고 한참이나 묘소 옆에 앉아 있고 싶다.
<인문대 소식지> 2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