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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送孟浩然之廣陵 七言絕句 李白

굴어당 2020. 10. 27. 08:54

268 送孟浩然之廣陵 七言絕句 李白

시제의 之는 무슨 뜻?가다.廣陵=揚州.한국에도 광릉국립수목원이 양주에 있다.

이 시를 지을 즈음 이백은 신혼으로 안륙에 약 10여년 머물면서 황학루가 있는 무창에 갔다.

맹호연이 40세 이백이 28세.맹호연은 이미 문명을 세상에 날렸고 이백은 증맹호연시에서

"吾愛孟夫子,風流天下聞"이라고 할 정도로 그를 존경했고 老朋友라 했다.

故人西辭黃鶴樓,老長께서 서쪽 황학루를 떠나
煙花三月下揚州。꽃 피고 새 우는 삼월에 양주로 내려 가누나
孤帆遠影碧空盡,외로운 돛배의 먼 그림자는 푸른 하늘에서 사라져 가고
惟見長江天際流。장강만이 하늘에 맞닿아 흐르네.
[注釋]
  1.黃鶴樓:옛터는 湖北 武漢市 武昌 蛇山의 黃鵠磯에 있다.傳説에 의하면 神仙이 여기서 黃鶴을 타고 승천했다하여 黃鶴樓라 한다。
  2.孟浩然:李白보다 열살정도 많은 당대시인。
  3.之:往。
  4.廣陵:即揚州。
  5.故人:老朋友=孟浩然。
  6.烟花:아름다운 봄 경치。
  7.盡:사라지다。
  8.唯見:只見。
  9.天際:天邊。

孤帆:외로운 돛단배.
碧空:푸른 하늘.

孟浩然(689年—740年),字浩然,號孟山人,襄州襄陽(今湖北襄陽)人,唐代著名的山水田園派詩人,世稱“孟襄陽”。主要作品《孟浩然集》《過故人莊》《春曉》《宿建德江》等.

산수전원시파의 대표시인으로 왕유 위응물 류종원과 함께 王孟韋柳라 병칭됐고 관운은 없어 장구령의 막부에서 잠시 지냈을 뿐, 轉喉觸諱라는 고사성어를 남겼다.(轉喉觸諱,漢語成語,拼音是zhuǎn hóu chù huì,한 마디 말이나 한 줄 문장으로 삼가해야 할 바를 촉발 저촉됨.觸犯忌諱。한유의《送窮文》에서 유래 )

왕유가 황궁에서 맹호연을 초대해 만나는 중 갑자기 현종이 오자 맹호연이 숨었으나
왕유가 이실직고하니 현종이 나오라해 근래에 지은 시를 보자니 "不才明主棄,多病故人疏"가 현종의 심기를 건드려 "그대가 나에게 벼슬을 청한바도 없고 내가 거절하지도 않았는데
그런말을 하느냐"고 했다.

이 시는 269번 下江陵=《早發白帝城》과 장법이 흡사.제2구는 당시300수 편저자인 형당퇴사 손수가 千古麗句라 평했다.3,4구는 오버랩으로 장면이 겹쳐 流水格으로 두 구를 한 문장으로 마무리.다만 사족을 단다면 주제가 송별인데 4구가 모두 서사와 서경을 읊어 서정이 부족하다고나 할까.당여순은 당시해에서 슬피 바라보는 정을 시어 밖에서 볼 수 있다"悵望之情 見于言外"고 했다.

황학루:악양의 악양루 남창의 등왕각과 함께 강남3대명루 중 하나.오래된 중국의 주석서에는

그 터만 있고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고 나오는데 81년에 공사를 시작해 85년 완공.

아래 최호의 황학루 시는 전시대 시사부 운문을 통틀어 독보적인 최고의 시.여기에는 그럴만한 전설이 전해 온다.

장강변 蛇山=龜山의 黃鹄磯=黃鶴磯에 신씨 주막이 있었는데 허름한 차림의 선비가 돈이 없으니 외상 술을 줄수 있냐고 묻고는 반년쯤 됐을때 외상값을 줄수 없으니 주막 판자벽에 학 그림을 그려 주겠다며 그 지방에서 나는 누런 귤로 그리고 갔다.후에 취객들이 젓가락 장단으로 노래를 부르면 판자벽이 흔들리며 황학이 덩실덩실 춤을 추니 천하의 구경거리가 됐고 주인 신씨는 거부가 된 어느날 예의 그 선비가 와서 장사가 잘 되느냐고 묻고는 신이난 주인의 거나한 대접을 받고는 벽에 그렸던 학을
불러 타고는 유유히 승천했다는 전설.

10여년 전에 황학루에 갔더니 막 주차장 확장공사와 주변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옛 정취를 더듬어 대포 한 잔 하려고 신씨의 주막일 듯한 데가 있을까해서 살펴보았으나 현대식 아케이드 같은 붉은 건물만 있어 실망.가까이에 중소국경분쟁시 소련기술로 장강대교를 짓다 소련기술자들이 돌아가 자국기술로 완공한 장강을 가로 지르는 첫번째 다리가 이층으로 경광철로 운행.

산 아래에는 동굴이 있었는데 방공호로 만들었으나 여름이라 삼대화로에 드는 무한시민들이 그 안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모택동이 장강을 수영으로 건넌 곳이 여기라 한다.

이백이 최호의 시를 보고 붓을 꺾었다는 각필정도 뒤에 다시 가 보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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赠孟浩然.作者:李白

吾愛孟夫子,風流天下聞。
紅顔棄軒冕,白首臥松雲。
醉月頻中聖,迷花不事君。
高山安可仰,徒此揖清芬。

歲暮歸南山/歸故園作/歸終南山.【作者】孟浩然【朝代】唐.
北闕休上書,南山歸敝廬。
不才明主棄,多病故人疏。
白髮催年老,靑陽逼歲除。
永懷愁不寐,松月夜窗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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黄鹤楼 崔颢.<译文:吕昭君>
昔人已乘黄鹤去,옛날에 신선은 이미 황학을 타고 날아가 버리고
此地空余黄鹤楼。지금 이 땅에는 그저 황학루만이 남아 있다.
黄鹤一去不复返,황학은 신선을 태우고 간 뒤 돌아올 줄 모르고
白云千载空悠悠。흰 구름만 천년 동안 변함 없이 하늘에 떠 있다.
晴川历历汉阳树,맑은 양자강 건너편에 한양거리 나무들 보이고
芳草萋萋鹦鹉洲。강 가운데 앵무주에는 향긋한 풀이 무성하다.
日暮乡关何处是,해지고 고향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둘러보니
烟波江上使人愁。강위에 저녁 안개 서리고 시름만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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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顥(hào),704—754,변경 汴州(今河南開封市)人. ,原籍博陵安平(今河北安平縣) . 出身“博陵崔氏”,唐朝著名詩人.박릉최씨는 중국의 명문가.

最為人稱道的 是他那首《黃鶴樓》。최호의 황학루는 중국 전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시.
《全唐詩》收錄詩四十二首。
《黃鶴樓》一詩,據説李白為之擱筆,曾有“眼前好景道不得,崔顥題詩在上頭”的贊嘆。

이백이 황학루에 도착해 마음을 가다듬고 시를 구상했으나 못내 붓방아만 찧고 시를 이루지
못하자 “眼前好景道不得,崔顥題詩在上頭”라 贊嘆찬탄하고 붓을 던졌으니 그 곳이
오늘날의 각필정 擱筆亭 。

“眼前好景道不得,崔顥題詩在上頭” 눈 앞에 절경이 있으나 말을 잇지 못하고,최호의 題額詩만 머리 위에 있누나.

黃鶴樓

昔人已乘黃鶴去,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鄉關何處是,烟波江上使人愁。

이백은 황학루를 떠나 남경의 봉황대에 가서 《登金陵鳳凰臺》를 남겼으나 세인들은 이 시를
최호의 황학루를 베꼈다 혐의를 받으니 천하의 詩仙이 얼마나 억울할까?

李白也倣照《黃鶴樓》寫下
《登金陵鳳凰臺》:
鳳凰臺上鳳凰遊,鳳去臺空江自流。
吳宮花草埋幽徑,晉代衣冠成古丘。
三山半落靑天外,二水中分白鷺洲。
總為浮雲能蔽日,長安不見使人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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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護(772年—846年),字殷功,唐代博陵(今河北定州)人,
生平事迹不詳,唐代詩人。其詩詩精練婉麗,語極清新。《全唐詩》存詩六首,皆是佳作,尤以《題都城南莊》流傳最廣,膾炙人口,有目共賞。該詩以 “人面桃花"로 불리는 전에 소개한 바 있는 崔護는 동명이인.
《題都城南莊》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