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소통하고 있는가” 프랑스 석학 도미니크 볼통의 ‘국제 불어권의 날’ 기념 한국 강연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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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석학 도미니크 볼통의 ‘국제 불어권의 날’ 기념 한국 강연 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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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석학 도미니크 볼통이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다’라고 정의한 캐나다의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 3월18일 서울 남대문 프랑스문화원 강당에서 열린 ‘국제 불어(프랑스어)권의 날’ 기념 특별 강연에서다. 맥루한은 ‘미디어의 속성이 수용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라는 미디어 결정론을 주장했다. 또 “기술이 진보하면 소통에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볼통은 이에 대해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 혁명은 오히려 더 많은 불신, 증오를 양산시켰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도미니크 볼통은 프랑스 국립 과학연구센터(CNRS) 리서치 디렉터이자, CNRS 산하 소통과학연구소 소장이다. 지난 30여 년간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했으며 현재 프랑스 방송과 뉴스, 신문에서 문화 비평과 사회 현상 분석에 관해 인터뷰 요청을 가장 많이 받는 학자이기도 하다. 빠르고 높은 목소리에 적절한 비유와 유머를 섞어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진 볼통의 강연은 이날 문화원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다음은 강연 요지이다. “진정한 소통, 스피드가 아닌 느림이 만든다” “1880년대에는 전화가, 1910년대에는 라디오가, 1930년대는TV가, 1940년대에는 컴퓨터가 발명되었다. 지난 1세기 동안 이루어졌던 놀라운 기술의 진보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 소통의 열망이 폭증했다. 사람들은 정보가 풍부하고 빠를수록 더 많은 소통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특히 1980년대에 월드와이드웹과 인터넷이 탄생하자 세계의 인터넷 사용자 6억5천만명은 인터넷 덕분에 이제야말로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인터넷 신화에 열광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진보하고 정보통신 기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점점 더 소통은 힘들어지고 있다. 정보를 교환하면 할수록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이 더 현저하게 드러나고 협상의 여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정보 공유는 빛의 속도로 빨라졌는데 그만큼 빠른 속도로 오해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기대나 예측과는 다른 결과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어째서 소통을 하면 할수록 불통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는 사람들이 정보와 소통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는 소통했다고 할 수 없다. 수신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보는 오히려 서로 다른 사회·문화·계층·인종 간의 오해와 불신, 증오를 양산할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9·11 테러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진보라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송출했지만 이슬람 세계는 그것을 제국주의의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정보의 세계화와 소통의 세계화는 다른 문제이다. 더 많은 정보가 쏟아질수록 쏟아지는 정보를 가려내는 역할이 중요하다. 정보를 분류하고 서열화하고 검증하고 해석하고 정당화하고 추려내고 비판하기 위한 기자들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삶은 소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휴대전화는 우리가 시간과 공간 모두를 정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휴대전화로 하는 소통은 ‘지금 어디야?’ ‘몇 시에 만나기로 했지?’ 정도의 단순 화법이 대부분이다. 인터넷은 어떤가? 실시간 뉴스가 순식간에 익명의 다수에게 전달되지만 거짓 뉴스와 소문도 같은 속도로 확산된다. 선한 사람은 인터넷에서도 착한 행동을 하지만, 악한 사람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악행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네트워크의 마지막에 있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저마다 특정한 문화에 속한 존재이다. 문화 간의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발신자와 수용자는 동일한 맥락에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타자를 자신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소통에 이를 수 없다. 소통은 개인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상대방의 자유와 평등을 인정할 때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술에 의한 정보 교류를 훨씬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결과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통을 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해왔지만 실제로 서로를 더 이해하고 소통하게 된 것이 아니다. 단지 그렇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소통이란 정보의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그 정보를 이해시키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섭하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에 필요한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느림이다. 빠름은 기술의 시간이고 느림은 인간의 시간이다. 소통은 곧 공존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IT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첨단 미디어와 최신 전자 기기가 즐비하다. 하지만 수많은 거짓 정보들의 범람과 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전달, 국민들의 몰이해 역시 심각한 수위에 올라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오히려 오해와 불신, 불통이 증폭되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에 매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접속해 글을 남기고 있으니 사회적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묻는 볼통의 강연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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