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기행① ‘봄의 도시’ 윈난성 쿤밍서159년 역사의 식당을 만나다
청나라 시대 전통가옥 구경하는 재미도
매운 요리 많아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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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쿤밍의 ‘이커인 라오팡쯔’. 159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음식점이다. (우)정초에 먹는 전통 음식인 차오얼콰이. |
저는 일 년에 5~6개월 정도 중국 곳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한국인 여행객들을 마주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현지 음식에 즐겁게 도전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은 음식 문제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고 싶어할 정도로 힘들어 합니다. 여행에서 만난 어떤 분은 현지 음식을 가능한 피하겠다며 열흘치 빵을 배낭 안에 빼곡하게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또 최근 10년간 중국 배낭여행을 일상으로 하다시피 해온 분은 그동안 차오판(炒飯·볶음밥)만 하도 많이 먹은 탓에 너무너무 질린다고 하더군요. 하루 세 끼가 즐거운 이벤트가 아니라 ‘때우지 않으면 안되는 버거운 숙제’로 짊어지고 여행을 한 것이지요.
제 생각에는 중국 음식이 냄새 나고 거북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맛이 지나치게 옹졸하거나 자기 ‘냄새’에만 취해서 다른 냄새는 전부 이상한 냄새로만 느끼는 ‘냄새 불구자’이거나, 중국 음식에 관해서 나쁜 경험만을 축적해온 불운한 사람이란 것입니다. 유럽만한 땅에서 유럽의 세 배나 되는 인구가 살면서 즐기는 그 풍부하고 다양한 중국 음식을 외면하고 산다는 건, 그만큼 행복의 기회를 포기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일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넓은 축구장을 주었더니 한 구석에서 그것도 공기놀이만 하는 꼴입니다.
한국 사람은 대부분 중국 음식에서 샹차이(香菜·고수)의 향을 특히 거북하게 느낍니다. 중국 음식의 그 ‘이상한 냄새’의 주범 가운데 하나지요. 이 샹차이는 중국 사람도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국 식당에서는 음식 주문을 받을 때 지커우(忌口·가리는 음식)가 있는지 묻곤 합니다.
그런데 샹차이와 똑같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데 중국 사람들은 못 먹는 채소가 있습니다. 바로 깻잎이지요.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는 제 작은 아들이 장난 삼아 중국인 친구를 열심히 설득해서 깻잎을 먹인 적이 있었답니다. 집요한(?) 노력 끝에 먹이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목으로 넘긴 지 10초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토해버렸답니다! 이상한가요? 아닙니다. 맛과 향은 이런 것입니다. 깻잎이 이상한 풀이 아닌 것처럼 샹차이도 이상한 풀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야채일 뿐입니다. 냄새나 입맛은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게 아닙니다. 조금만 친숙해지면 괜찮다는 걸 이해하고 이런 발상법으로 중국 음식을 대하면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샹차이를 먹어야만 중국 음식을 먹는 거라고 강변하는 건 아니니까 혹시라도 오해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중국 여행에서 음식이 좀 더 즐겁고 맛있어질까요. 마음과 입맛을 열고,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구해보고, 좋은 사람들과 유쾌하게 여행을 하면 상당 부분은 해결이 됩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중국 음식 역시 ‘관대한 만큼, 아는 만큼, 즐거운 만큼 맛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독자분들을 모시고 중국 음식기행을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윈난성의 대문 쿤밍
중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 티켓이 한 장만 주어진다면? 저는 두말없이 윈난(云南)으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중국 음식기행의 첫 번째 목적지를 윈난성 쿤밍(昆明)으로 정했습니다.
윈난, 구름의 남쪽이라는 아주 낭만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윈난성은 중국인에게도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로 꼽힙니다. 조용한 고색의 도시 다리(大理), 설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흐르는 살아있는 고성 리장(麗江)을 비롯해서, 해발 5000m가 넘는 위룽쉐산(玉龍雪山)과 하바쉐산(哈巴雪山) 사이를 흐르는 협곡 후타오샤(虎跳峽), 그리고 샹그릴라(香格里拉)로 이어지는 여정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실감케 하지요.
이 윈난성의 대문이 바로 쿤밍입니다. 쿤밍은 해발 1891m에 위치해 있고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곳이라 사시사철 봄 같아서 ‘춘성(春城)’이라고도 불립니다. 골프를 치기에 좋은 곳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방송사가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윈난에서 생산된 푸얼차(普茶)가 티베트로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이후 윈난은 더욱더 많은 한국인들이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가 되었지요.
윈난에서 소수 민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도시에 파묻혀 사는 우리네들에게는 마치 신선한 샘물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게도 하지요. 최근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배낭을 메고 후타오샤 트레킹에 도전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찾다 보니 윈난의 편의시설 역시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족과 이족의 가옥문화 결합
- ▲ (좌)2층에서 내려다본 마당의 테이블.
(우)민물고기 요리
쿤밍에서 소개하고 싶은 식당은 1852년에 개업해서 오늘까지 159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이커인 라오팡쯔(一顆印 老房子)’입니다. 어느 지역이든 괜찮은 식당을 찾는 방법의 하나가 ‘오래된 식당’입니다. 장사를 하는 식당이 오래됐다는 것은 그동안 식당의 종합평점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시류의 변화에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지요.
저는 아직 한국에서 100년 이상 이어져온 식당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이 윈난에서 159년 동안 살아 숨쉬고 있는 식당을 만나보는 건 꽤 흥미가 당기는 일입니다.
음식 또한 훌륭합니다. 이 식당에서 중국 음식과 첫 대면을 한다면 아마도 중국 음식이 거북한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쿤밍을 갈 때마다 한국인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이구동성으로 “베리 굿”이라 하는 걸 보니 한국인 입맛에도 잘 들어맞는다는 뜻이지요.
식당 이름인 이커인(一顆印)에서 ‘인(印)’은 도장이란 뜻이고 ‘커(顆)’는 그것을 세는 단위입니다. 즉 ‘하나의 도장’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이 지방 특유의 청나라 시대 전통 민간가옥 구조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한족(漢族)과 이족(彝族)의 가옥문화가 합쳐진 것인데 이 식당의 건물이 바로 전통적인 가옥 그대로입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찬찬히 가옥구조를 뜯어보는 것도 요즘 주목받는 인문학적 즐거움의 하나가 될 만한 그런 가옥입니다.
평면으로 보면 전형적인 사합원입니다. 사합원이란 사방의 방이나 벽(四合)이 가운데 위안쯔(院子·마당)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 즉 미음(ㅁ)자 형태라는 뜻입니다. 평면도로 보면 대개 정사각형이고, 4면 가운데 3면은 방이고, 나머지 한 면은 대문이지요. 그러나 베이징의 사합원과는 다르게 방들이 모두 2층 구조로 돼 있는데 1층과 2층의 가운데 칸은 침실입니다. 1층의 좌우에 있는 방은 창고 또는 축사로 사용하곤 합니다. 가운데 사각형의 마당이 하늘을 향해 만들어내는 공간은 우물과 같은 형태가 되어 천정(天井)이라고 부릅니다. 이 천정과 사면의 방들이 합쳐져 사각형의 도장과 같은 모양이 되기 때문에 이커인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1, 2층 모두 마당과 방 사이에는, 마당을 향해서 열려 있는 복도가 이어져 있어서 일단 집으로 들어오면 비를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면의 방들이 모두 층고가 높은 편이라 자외선이 강한 태양광도 피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자외선이 강하고 비가 자주 내리는 이 지역의 날씨가 잘 반영된 구조이지요. 이 식당은 이런 전통을 잘 보전하고 있는 가옥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어 건축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지역의 전통 민간가옥의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밀가루 반죽 ‘얼콰이’ 요리 도전할 만
- ▲ (좌)훈제 돼지고기를 기왓장에 구워내는 와장펑러우.
(우)박과 감자를 볶아낸 샤오과볜양위.
이커인 라오팡쯔는 실제 민가와는 달리 1, 2층이 모두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방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마당에는 파라솔이 가려주는 식탁이 몇 개 있을 뿐, 보통의 식당에서 보게 되는 홀은 따로 없습니다. 비가 오지만 않는다면 1층 마당의 식탁을 권합니다. 만일 두 사람만 식사를 한다면 2층 복도에 놓인 2인용 식탁을 권합니다. 1층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것도 좋고, 2층 복도에 걸린 홍등도 멋지고, 윈난의 파란 하늘도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주 낭만적이지요.
잘나가는 식당이라 예약을 하는 게 좋습니다.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전화를 걸어보시길.
윈난의 음식은 매운 맛이 많은 편입니다. 물고기는 주로 굽는 것이 특징이고, 아열대 지방이라 대나무에 하는 밥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쓰촨(四川)의 얼얼하게 매운맛(麻辣)과 후난(湖南)의 달고 매운맛(香辣)이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매운맛을 기피하지만 않는다면, 또 ‘샹차이를 넣지 않고(不要放香菜)’ ‘너무 짜지 않게 한다(不要太咸)’면 한국인에게는 그만입니다.
다행히 메뉴판에 요리 사진도 있어서 주문하기에 편리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고르는 한 가지 비법은 사진이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과감하게 찍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직감을 믿고 과감하게 주문해 보면 대개 큰 실패는 없습니다.
네댓 사람이 식사를 한다면 일반적으로 네 가지 요리에 탕 하나를 시키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형식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만들어서 차갑게 식혀놓은 량차이(凉菜) 한 접시, 주요리로 뜨겁게 나오는 러차이(熱菜) 세 가지, 채소 요리(素菜) 하나에 주식으로 밥이나 면을 주문하면 충분합니다.
그래도 너무 낯선 음식들이라 사전에 메모라도 해두고 싶다면 이런 음식들을 추천해 드리지요.
샤오과볜양위(小瓜洋芋): 샤오과(小瓜·박)와 양위(洋芋·감자)를 뜨거운 기름에 오랫동안 달달 볶아낸 것. 윈난의 토란이 유명하니 꼭 맛보시길.
카오루콰이(乳): 치즈를 불에 구운 것.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것이니 탐구할 만합니다. 치즈에 이미 친숙해진 한국인 입맛에 의외의 발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오얼콰이(炒餌): 밀가루를 반죽해서 밀대로 얇게 민 다음 손가락 길이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로 잘라낸 것을 얼콰이(餌)라고 합니다. 차오얼콰이는 이 얼콰이를 각종 양념과 부재료를 넣고 볶아낸 것인데 윈난에서는 정초에 먹는 전통적인 음식이자 서민들의 먹거리입니다. 얼콰이 자체가 얇게 썰어낸 떡과 비슷해서 밥을 대신할 수도 있지요.
와장펑러우(瓦掌홵肉) 와장카오위(瓦掌횆): 소금에 절였다가 굴뚝에 걸어두어 훈제한 돼지고기 라러우(肉) 또는 민물고기를 와장(瓦掌·기왓장) 위에 구워낸 것입니다. 약간 짭짤하면서도 불에 구운 고기의 맛이 입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기왓장 위에 뭔가를 구워내는 것이 이 식당의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인데 꼭 맛보시길 바랍니다.
주소 昆明市 東風西路 吉祥巷 18,19號 전화 0871(쿤밍)-364-4555, 4인 기준 예상 식대 200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