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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 惺所覆瓿藁 ) 해제.한고번
굴어당
2011. 7. 11. 07:53
성소부부고 ( 惺所覆瓿藁 ) |
형태서지 | 저 자 | 가계도 | 행 력 | 편찬 및 간행 | 구성과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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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거 : 亡妻淑夫人金氏行狀(許筠 撰), 許澣神道碑銘(宋寅 撰, 頤庵遺稿 卷4), 許曄神道碑銘(盧守愼 撰, 草堂集 附錄), 李士星挽(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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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거 : 朝鮮王朝實錄, 文集 등에 의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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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611년(광해군 3) 咸悅에 유배중일 때에 기왕의 저술을 刪定하여, 文 400여 편, 詩 1400여 수, 說 300여 편을 추려서 詩, 賦, 文, 說의 四部로 나누어 64권으로 편차하고 이름을 「覆瓿藁」라고 하였다. 그 후 陳奏使였을 때에 알게 된 朱之蕃을 통하여 明의 李廷機에게 〈惺所覆瓿藁序〉를 부탁하였다. 본 문집 권수에는 1613년(광해군 5)에 李廷機가 쓴 서문이 들어 있는데, 이 서문에 ‘覆瓿稿四部’라는 말이 있으니, 李廷機가 본 것은 저자가 自編한 「覆瓿藁」였음을 알 수 있다. 본 문집 권2 끝에는 〈文集完用閑吟韻〉이라는 절필시가 실려 있는데, 이 詩에 “43년 동안 翰墨에 전심하였다.”느니 “詩文 10권을 이제 다 쓰기를 마쳤다.”느니 하는 말이 있다. ‘43년’을 저자의 나이라고 추정해보면, 저자가 43세이던 1611년에 詩文을 10권으로 刪定하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때가 바로 咸悅縣에 있던 시기이다. 여기에 말한 10권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는 미상이나, 자편한 64권을 10책으로 분책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현존하는 사본과 거의 비슷한 定稿本이 이 시기에 완성된 것인데, 그 이후의 修潤 과정은 미상이다. 저자는 역모로 탄핵을 받은 1617년경에 이 정고본을 다른 서책들과 함께 사위 李士星의 집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李士星의 아들인 李必進의 墓誌銘(恬軒集 卷33)에 “수천권의 書冊을 家藏하고 있었으니 이는 許氏의 책들이었다. 그것들을 읽으며 나날을 보냈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정고본은 저자가 1618년에 역모 혐의로 복주되었으므로 간행되지 못하였다. 현존하는 寫本들은 李士星의 집안에서 보관해오던 정고본을 바탕으로 轉寫된 것으로 보이는데, 寫本에 따라 수록 편목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寫本들은 26권 8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재 규장각(奎6718), 국립중앙도서관(貴192-한46-가1880) 등에 소장되어 있다. 기타 저자의 저술로는 「鶴山樵談」, 「閒情錄」 등이 있다. 「鶴山樵談」은 詩話集이며, 「閒情錄」은 1606년에 원접사 柳根의 종사관으로 중국 사신 朱之蕃 등을 만났을 때에 朱之蕃으로부터 받은 「世說刪補」, 「玉壺氷」, 「臥遊錄」 등과 1614년에 중국에 가서 구입해온 「學海」, 「林居漫錄」 등의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요약하고 이후에 이것을 증보하여 만든 것이다. 본서의 저본은 寫本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이다. 기사전거 : 序(李廷機 撰), 李必進墓誌銘(任相元 撰, 恬軒集 卷33) 등에 의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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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집은 26권 8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용에 따라 詩部(권1~2), 賦部(권3), 文部(권4~21), 說部(권22~26)로 구분하여 편차되어 있다. 권수에는 1613년에 明 나라 李廷機가 지은 서문이 실려 있고, 권미에는 白沙 李恒福이 지은 〈惺所雜稿序〉가 실려 있다. 권1~2는 詩이다. 저작 시기별로 篇名을 붙였다. 권1에는 1597년(선조 30)의 작품을 모은 丁酉朝天錄, 1598년의 작품을 모은 戊戌西行錄, 1601년에 試官이 되어 호남에 다녀올 때에 지은 작품을 모은 南征日錄, 1602년의 작품을 모은 壬寅西行錄, 역시 1602년에 병조 정랑일때의 작품을 모은 騎省稿, 司僕寺 正일 때의 작품을 모은 太僕稿, 1603년 금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작품을 모은 楓嶽紀行, 1604년 황해도 遂安 郡守 시절의 작품을 모은 遼山錄 등이 저작 순서대로 실려 있으며, 권2에는 1607년 三陟 府使로 있을 때에 지은 작품을 모은 眞珠稿, 파직되었다가 다시 內資寺 正에 제수되었을 때에 지은 작품을 모은 太官稿를 비롯하여 病閑雜述, 宮詞, 和思潁詩, 續夢詩, 和白詩 등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1603년에 금강산 유람을 마치고 江陵 外家에 돌아와 4개월 동안 지내며 지은 작품을 모은 溟州雜著는 내용이 없이 篇題만 실려 있다. 권3은 賦와 辭이다. 그중 〈東征賦〉는 1603년에 司僕寺 正에서 파직되어 금강산을 유람하고 江陵에 가 머물 때에 지은 것이고, 〈思舊賦〉는 1607년에 三陟 府使로 부임하면서 강릉을 지나갈 때 느낀 바를 읊은 것이며, 〈竹樓賦〉는 삼척 부사로 재임할 때 竹西樓에 올라 읊은 것이다. 그리고 〈毁璧辭〉는 누이 許蘭雪軒을 기리는 내용이며, 〈和歸去來辭〉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차운한 것이다. 권4~5는 序이다. 權韠의 詩稿에 대한 서문인 〈石洲小稿序〉, 저자가 抄選하여 엮은 「古詩選」, 「唐詩選」, 「宋五家詩鈔」, 「明四家詩選」 등에 대한 서문, 梁大樸의 문집에 대한 서문인 〈靑溪集序〉, 서쪽 국경 방비에 대한 高麗 때의 史蹟과 山川의 형편과 關守의 險易 및 軍士와 軍糧의 숫자를 기록한 「西邊備虜考」에 대한 서문, 黃廷彧의 詩卷에 대한 서문인 〈黃芝川詩卷序〉 등이 실려 있다. 권6~7은 記이다. 그중 〈湖墅藏書閣記〉는 저자가 중국에서 구입해온 서책들을 보관하기 위해 江陵에 藏書閣을 짓고 그 기문을 쓴 것이며, 〈四友齋記〉는 1611년(광해군 3)에 書齋를 四友齋라고 이름하고 위로 陶淵明, 李太白, 蘇子瞻 등을 벗삼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읊은 내용이다. 권8은 傳이다. 강릉 사람 嚴忠貞을 立傳한 〈嚴處士傳〉, 蓀谷 李達을 立傳한 〈蓀谷山人傳〉, 臨陂 사람 南宮斗의 일대기인 〈南宮先生傳〉 등이 실려 있다. 권9~10은 書이다. 당시 우의정이었던 完城 李憲國에게 보낸 편지, 石洲 權韠에게 보낸 편지, 이조 판서 許頊에게 보낸 편지 및 成俊耈, 趙緯韓 등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권11은 論이다. 학문의 목적과 眞僞에 대한 논한 〈學論〉, 정치의 방도와 관직 제도를 논한 〈政論〉과 〈官論〉, 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나라의 방비를 강화해야 함을 논한 〈兵論〉,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논한 〈遺才論〉, 민심의 무서움을 논한 〈豪民論〉 등이 실려 있다. 권12는 說, 辨, 解, 雜文이다. 古文의 문체를 문답식으로 논한 〈文說〉, 詩道를 논한 〈詩辨〉 및 〈夢解〉, 〈對詰者〉 등이 실려 있다. 권13은 題跋과 讀書記이다. 題跋에는 「批點唐音」, 「四家宮詞」, 「明尺牘」, 「歐蘇文畧」, 「明詩刪補」, 「四友叢說」, 「使東方錄」, 「溫李艶體」 등에 대한 跋文 및 畫帖에 대한 발문 몇 편이 실려 있다. 讀書記에는 諸子書에 대한 독후감이 실려 있는데, 1608년에 公州 牧使에서 파직되어 扶安으로 移住한 뒤에 「老子」, 「列子」, 「莊子」, 「管子」, 「韓非子」 등 16종의 書籍을 읽고서 쓴 것이다. 권14는 箴, 銘, 頌, 贊이다.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함을 말한 〈睡箴〉, 꿈에 宣祖에게서 帶와 筆槖, 靴 등을 하사받은 일을 적은 〈夢賚四物銘〉, 저자 자신에 대해서 지은 〈惺翁頌〉, 추앙의 대상인 陶淵明, 李太白, 蘇子瞻의 畫像을 李楨을 시켜 그리게 하고 지어 붙인 〈三先生贊〉 등이 실려 있다. 권15는 誄, 哀辭, 祭文, 行狀이다. 丁酉倭亂 때에 南原에서 순절한 병마절도사 李福男에 대한 誄辭, 저자의 벗 李春英에 대한 誄辭, 畫家 李楨에 대한 哀辭, 李憲國, 沈友勝에 대한 祭文 등이 실려 있다. 행장은 저자의 첫째 부인이었던 金氏夫人에 대한 것이다. 권16은 碑文, 神道碑銘, 墓碣銘이다. 碑文은 關王廟, 東海龍王廟, 兜率院彌陀殿의 碑文이며, 신도비명은 崔演에 대한 것이며, 묘갈명은 벗 任守正에 대한 것과 李楨의 叔父인 畫家 李興孝에 대한 것이다. 권17은 墓表와 墓誌이다. 묘표는 朴始亨, 沈長源에 대한 것이고, 묘지는 尹繼善, 申櫓, 邊洽 등에 대한 것이다. 권18~19는 紀行, 雜記이다. 紀行에는 〈漕官紀行〉, 〈西行紀〉, 〈丙午紀行〉, 〈己酉西行紀〉 등이 실려 있다. 〈漕官紀行〉은 1601년에 轉運判官이 되어 三倉에 가서 漕運을 감독한 일정을 일기체로 적은 것으로서, 銅雀 나루를 건너는 날로부터 溫陽, 保寧, 扶安, 法聖倉, 高敝, 井邑, 定山, 全州, 公州 등을 거쳐 서울에 돌아오기까지의 일이 날짜별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西行紀〉는 轉運判官에서 도중에 체차되어 원접사 李廷龜의 종사관이 되어 중국 사신 顧天埈과 崔廷健을 맞이한 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것이며, 〈丙午紀行〉은 1606년에 원접사 柳根의 종사관이 되어 중국 사신 朱之蕃과 梁有年을 맞이한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雜記에는 〈夢記〉 한 편이 실려 있다. 권20~21은 尺牘이다. 西厓 柳成龍, 漢陰 李德馨, 鰲城 李恒福, 一松 沈喜壽, 芝川 黃廷彧, 月汀 尹根壽, 柳根, 李廷龜, 申欽, 崔天健 등을 비롯하여 저자의 師友들에게 보낸 편지가 인물별로 실려 있다. 권22~24는 惺翁識小錄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옥중에 있을 때에 조종조의 어진 사대부들의 行迹 및 掌故에 도움이 될 만한 故事들을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였는데, 1611년 咸悅縣에 유배되었을 때에 이것을 정리하여 편차한 것이다. 권25는 惺叟詩話이다. 1611년에 咸悅縣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지은 것으로서, 東國 詩人들의 詩에 대한 간략한 評論이다. 권26은 屠門大嚼이다. 역시 1611년에 유배지에서 지은 것이다. 온갖 음식물들에 대한 간략한 기록으로서 떡 종류, 과실 종류, 새와 짐승의 고기 종류, 물고기와 조개와 새우 종류, 채소 종류, 기타 차, 술, 꿀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 ||||||||||||||||||||||||||||||||||||||||||||||||||||||||||||||||||||||||||||||||||||||||||||||||||||||||||||||||||||||||||||||||||||||||||||||||||||||||||||||||||||||||||||||||||||||||||||||||||||||||||||||||||||||||||||||||
필자 : 辛容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