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한반도 등뼈 채운 ‘든든한 인맥’ |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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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동북부의 영양, 영덕, 봉화, 울진 4개 군은 뜻밖에도 상당 기간 오지로 남아 있었다. 산간(山間)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요즘에야 새로 길이 뚫리면서 소통이 원활해졌지만 우리 땅의 등뼈 모양을 한 동해안을 따라 뻗어내려간 7번 국도가 주요 교통로 구실을 했을 뿐 실상은 대구 등지와도 거리가 멀었다. 영양군의 경우는 도서 지역인 울릉군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이다. 영양의 옛 이름인 ‘고은(古隱)’은 ‘풍광이 수려해 선비가 숨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을 함축한다. 인구 현황을 보면 영양 1만8천6백66명(8천4백95가구), 영덕 4만9백79명(2만54가구), 봉화 3만4천3백76명(1만5천8백14가구), 울진 5만2천4백30명(2만3천91가구)이다. 지난해 제5회 지방선거 당시 선거인 수는 영양 1만6천66명, 영덕 3만5천5백48명, 봉화 2만9천7백21명, 울진 4만2천7백41명이었다. 대체적으로 유권자(만 19세 이상) 숫자를 전체 인구의 80% 선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시골로 갈수록 19세 미만의 비율은 더 낮아지는 추세이다.
이 지역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인사를 꼽으라면 단연 소설가 이문열씨일 것이다. 그 많은 작품, 수상 기록을 가진 ‘영원한 이야기꾼’으로 우뚝 서 있다. 근자에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리투아니아 여인>을 끝냈다. 그는 요즘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에서 ‘명사 초청 세계 명작 특강’을 맡은 석좌교수로 있다. 수많은 독자의 성원에 대한 보답으로 사재를 들여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세운 ‘부악문원’은 여전히 문인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아이를 업은 모습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부아악산(負兒岳山) 자락에 자리 잡은 부악문원은 사람을 돌본다는 의미를 아울러 가진 현대적인 ‘서원’이며 ‘후학 양성소’이다. 이를 두고 그는 후배들을 지도·양성한다기보다 후원·장려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은 여성 속옷으로 기업을 일으킨 개척자이다. 광복 직후인 20세 때 만주에서 일본인 난민을 상대로 과자를 팔았고, 귀국 후에는 고향인 영양 부근에서 화차로 장작을 실어다 파는 장사를 했다. 유창한 중국어를 무기로 스물아홉 살에 남영산업을 설립해 무역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브래지어 공장을 세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제대로 된 여성용 속옷이 없었다. 남회장은 외국에서 직접 제품 스케치를 받아오고 가정학과를 갓 졸업한 여사원을 시켜 디자인을 모방한 신식 브래지어를 처음 시판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40년 외길 란제리 사업에 몰두한 그는 6년 전 7녀1남의 막내인 아들 남석우 회장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제주도로 가 골프장과 리조트 개발 사업을 하는 것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고급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고품격 실버단지를 그린 것이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무일푼으로 원양어선에 승선해 연매출 1조원에 달하는 기업 그룹으로 키운 권영호 인터불고그룹 회장의 스토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울진에서 태어난 권회장은 부산의 동아대 영문과를 나왔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불행을 당했으나 가진 것 없이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그 역시 바다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생 철학에는 몇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기회를 잡기 위해 도전한다는 것, 고생을 함께 나누며 신뢰를 쌓는다는 것 등이다. ‘CEO가 절약하면 절대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는 1980년에 인터불고(Inter-Burgo)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스페인어로 ‘생각과 마음을 함께하는 화목하고 자그만 마을’이라는 뜻이다. 대구에 있는 인터불고호텔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는 변변한 집무실이나 비서, 운전사가 없다. 자신이 프라이드 차를 몬다. 그러면서 학교를 세우고 장학 사업을 펴며 병원을 지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돕는다.
이용태 숙명학원 이사장은 우리나라 IT 산업의 선두 주자이다. 1980년대 초 컴퓨터 바람과 통신 혁명이 몰아쳤을 때 현업에서 전도사처럼 뛰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 대학에서 통계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데이타통신㈜ 사장을 지내고 삼보컴퓨터㈜를 설립해 초기 컴퓨터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그 공로로 ‘정보통신 발전에 기여한 인물 2위’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중 1인으로 선정되었다. 영덕은 이이사장 외에도 문태준 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이수호 민주노동당 혁신재창당위원회 위원장, 황영기 차병원그룹 부회장 등 유명 인사들의 고향이다. 문태준 명예회장은 4선의 국회의원, 대한의학협회 회장, 보건사회부장관 등을 역임한 의료계의 거목이다. 이수호 위원장은 교사 출신의 노동운동가로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4기 위원장을 지냈으며, 황영기 부회장은 젊은 나이에 우리은행장과 KB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이다.
영양·영덕·봉화·울진 지역구의 현역 국회의원은 강석호 의원이다. 원적은 영덕이고 포항에서 출생했다. 2000년 본적지를 울릉읍 독도리 20번지로 옮겼다. 중동고와 한국외대 서반아어과를 졸업한 그는 가업인 삼일그룹에서 근무했다. 포항의 대표적 향토 기업인 ‘삼일가족’은 경찰공무원 출신인 부친 강신우 창업주가 세운 삼일운수를 밑바탕으로 성장해 철강 운송업체인 ㈜삼일, 삼일스톨베르그, 삼일상호저축은행, 학교법인 벽산학원(포항 영신중·고등학교), 경북매일신문 등 9개 회사를 가지고 있다.
영양 출신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정치인이다. 현 정권에서 ‘2인자’로 통하는 등 권력 실세 중 실세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그의 행보는 항상 큰 관심을 모은다. 김충환 의원(한나라당·서울 강동 갑)은 봉화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해 휘문중-경복고-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정무장관실과 서울시에서 공직 생활을 했으며, 민선 강동구청장으로 3선을 하고 17대 국회에 들어간 후 재선 의원이 되었다. 고향이 같은 울진인 주성영 의원(한나라당·대구 동구 갑)과 주호영 의원(한나라당·대구 수성구 을)은 그 밖에도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 등 유사한 점이 많다. 주성영 의원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 생활을 했고, 주호영 의원은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을 거쳐 판사 생활을 했다. 두 사람 모두 2선 의원이다. 주호영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 경선대책위 비서실장, 이명박 후보 비서실 부실장,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으로 이대통령 가까이 있었던 때가 많았고 특임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울진은 김중권 법무법인 에이스 고문변호사의 고향이다. 그는 법관 생활을 거쳐 정계에 들어가 11~13대 의원을 지내고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과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한 중진이다. 한때는 대선 주자의 한 사람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18대 총선에 고향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광원 한국마사회장은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을 시작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에서 시장·군수를 지내고, 15대 때 고향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16·17대까지 의원을 역임하면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명박 후보 경선대책위원회와 한나라당 경북 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고 18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지금은 국내 승마 산업의 저변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초대~3대 한국디지털대 총장으로 재임 중인 김중순 박사, 12~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중위 고려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 정해린 부산외국어대 총장이 봉화에서 태어났다. 권영택 영양군수, 김병목 영덕군수, 박노욱 봉화군수, 임광원 울진군수 네 사람은 모두 그 지역 출신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