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 - 도홍경(陶弘景, 456-536). 南朝
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 - 도홍경(陶弘景, 456-536). 南朝
산속에 무엇이 있느냐고요?
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 산속에 무엇이 있느냐고요?
嶺上多白雲(령상다백운) :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이 있지요.
只可自怡悅(지가자이열) : 저 혼자서 바라보며 즐길 수가 있을 뿐
不堪持贈君(불감지증군) : 가져가서 폐하께 드릴 수가 없군요.
남조시대 사람 도홍경(陶弘景, 456-536)은 제나라 때 잠시 벼슬살이를 하다가 양나라가 들어선 뒤로는 벼슬을 그만두고 구곡산(句曲山)으로 들어가 은거하고 있었다. 구곡산은 지금의 모산(茅山)으로 강소성 진강(鎭江)에서 남쪽으로 100여 리, 상주(常州)에서 서쪽으로 100여 리 떨어진 곳에 있다. 그는 구곡산에 숨어 살면서 양나라 무제가 조정으로 와서 자신을 보필해달라고 간곡하게 부름에도 불구하고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황제인 무제로서는 도홍경이 왜 그렇게 은거생활을 고집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조서를 내려 도홍경에게 물었다. “도대체 산속에 무엇이 있기에 그대는 이토록 짐의 뜻을 몰라주는가?”
도홍경은 아마 무제의 질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왜 산속에 은거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무제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시원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산이 좋아서 산에서 사는 것일 뿐 꼭히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겠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도연명은 “산 기운은 저녁 맞아 저리도 아름답고, 새들도 삼삼오오 둥지로 돌아오니, 이 속에 사람 사는 참 의미가 있을 터, 무어라고 말하려다 그만 말을 잊었네(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라고 하여 전원생활의 묘미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황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터라 한참 동안 고심하고 있는데 문득 산꼭대기에 솜털인 듯 명주인 듯 하얗고 결이 고운 구름이 한 무더기 지나갔을 것이다. 늘 보는 구름이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을 연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래 저것이다. 나를 산속에 붙잡아두는 것은 바로 저 구름이다.”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났을 것이다. 무제에게 들고 가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한없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도홍경이 양나라 무제의 조서를 받고 쓴 답장이었다.
도저히 도홍경의 마음을 돌릴 수 없겠다고 생각한 무제는 그에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산속에 은거하되 중대한 사안이 있으면 자문을 구할 테니 그때라도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도홍경은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도홍경은 이처럼 시보다 더 시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그는 결코 시인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 시는 그 어느 유명 시인의 시보다도 감동적으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