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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曺植, 1501-1572), 〈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천왕봉.정민

굴어당 2011. 8. 21. 13:57

 

천왕봉



천석들이 저 커다란 종을 보게나
큰 공이 아니고선 울리지 않네.
어이해 우뚝 솟은 저 지리산이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음 같으랴.


請看千石鍾 非大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조식(曺植, 1501-1572), 〈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

큰 종은 거기에 걸맞는 공이가 있어야 한다. 젓가락으로 두드려서야 큰 종의 우렁찬 소리를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자! 여기 천석 들이의 큰 종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이 종소리를 들으려면 또 얼마나 큰 공이가 있어야 하겠는가? 사람이 만든 종일진대 거기에 맞는 공이인들 만들지 못할 까닭이 없겠다. 그러나 저 구름 위에 높이 솟은 저 지리산은 마치 엄청난 크기의 종을 허공에 매달아 둔 것만 같다. 하늘이 천둥 번개를 공이 삼아 우르릉 꽝꽝 울려대도 그 종은 요지부동, 끄떡도 하지 않는다. 누가 저 종을 울리게 할 것인가?
남명 조식이 덕산계정(德山溪亭)의 기둥에 쓴 시다. 그는 만고상청(萬古常靑)의 자태로 의연히 서 있는 우람한 지리산 천왕봉을 언제나처럼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면에서 솟구치는 도도한 시흥을 가눌 길 없어 종이를 기다릴 겨를 없이 정자 기둥에 이 시를 휘갈겼던 모양이다.
《예기》〈학기(學記)〉에,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것은 종을 치는 것과 같다. 작은 것으로 두드리면 작게 울고, 큰 것으로 두드리면 크게 운다”고 한 대목이 있다. 학생이 물어 오면 선생은 대답한다. “너희가 자질구레한 것을 물어오면 나는 자질구레하게 대답해주겠다. 그렇지만 크게 물어오면 나는 비로소 큰 소리로 대답하리라. 나는 종이다. 나의 맑게 울려 널리 퍼지는 큰 종소리를 듣고 싶으냐. 그렇다면 너희는 이 종에 걸맞는 공이를 가져오너라. 그렇지 않고는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내 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 나를 울게 할 자가 누구냐?” 남명이 이 시를 학생들과 강학하던 시냇가 정자 기둥에 적은 뜻은 여기에만 있었을까?
신흠의 《상촌잡록》에는 3구가 ‘만고천왕봉(萬古天王峯)’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3,4구는 “만고에 우뚝한 천왕봉, 하늘이 울려도 울리질 않네”가 된다. 그리고 나서 이 시에 대해 그는 “그 시운(詩韻)이 호방하고 장쾌할 뿐 아니라 자부 또한 대단하다”고 적었다. 말하자면 신흠은 조식이 자기 자신을 지리산 천왕봉의 맞잡이로 자부했다고 읽었던 것이다. “나는 침묵한다. 누가 나를 울려다오. 아스라이 퍼져가는 맑은 울음을 울고 싶다. 나는 종이다.” 내게는 이말이 남명 자신의 세상을 향한 묵언의 사자후로만 들린다. 그렇지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또 저 우뚝한 천왕봉을 올려다보며 그 자신조차 다다를 길 없는 그 어떤 아마득한 정신의 높은 경계를 다시금 사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산 안개 말끔히 비 씻어 가니
그림 속 드러나는 뾰족 묏부리.
저물녘 녈 구름 낮게 깔리어
그 모습 제 절로 한가롭구나.
雨洗山嵐盡 尖峯畵裏看
歸雲低薄暮 意態自閑閑
-조식(曺植, 1501-1572), 〈무제(無題)〉

역시 지리산을 노래했다. 산은 하루 종일 푸른 이내 속에 가려져 모습을 보여주질 않는다. 오후 들어 보슬비가 한차례 지나가 이내를 씻어내자, 한 폭의 그림 같은 안개 속에 뾰족한 천왕봉의 묏부리가 거룩한 자태를 잠깐 내비친다. 뉘엿한 오후, 구름도 돌아갈 채비를 한다. 그러나 그 유유자적한 모습 속에 서두는 기색은 조금도 찾을 수가 없다.
산이 이내에 가려 있을 땐 구름인지 안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비가 이내를 말끔히 씻어가자 가렸던 본체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망(迷妄)에 사로잡혀서는 본질을 꿰뚫어 볼 수가 없다. 날카로운 정신의 끝은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위로 무시로 왕래하던 구름조차 오늘은 유난히 한가롭기만 하구나. 본체가 씻기워져 투명해진 내 마음처럼.
한번 울리면 천하가 놀랄 그 소리를 속으로만 간직한 채, 지리산 천왕봉은 오늘도 그 자태 그대로 우뚝 솟아 있다. 선생 계시던 산천재(山天齋) 앞 뜰의 고매(古梅)는 해마다 봄이면 그 검고 해묵은 등걸에서 숨가쁘게 꽃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