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李鈺)의 한시에 나타난 부부윤리의 성격과 의미. 전경원(건국대 강사)
이옥(李鈺)의 한시에 나타난 부부윤리의 성격과 의미
전경원(건국대 강사)
- 목 차 - 1. 서론 2. 부부윤리의 인식 3. 부부윤리의 형상화 방식과 의미 3.1. 아조(雅調)의 단아함과 이상(理想) 3.2. 염조(艶調)의 농염함과 현실(現實) 3.3. 탕조(宕調)의 질탕함과 좌절(挫折) 3.4. 비조(悱調)의 비분함과 질곡(桎梏) 4. 부부윤리의 새로운 질서 모색 5. 결론 |
1. 서론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타인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삶을 영위한다. 그 가운데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맺어지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부부관계와 같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관계도 있다. 물론 과거의 혼인제도 아래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는 ‘인정(人情)’과 ‘도리(道理)’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의 조화에 따라 삶의 구체적 형상이 결정된다. 여기서 말하는 ‘정’은 인간의 자연적 ‘감정’을 의미하고, ‘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삶의 규범을 의미한다. 일회적 만남을 제외하고, 우리 인간이 맺는 지속적 관계에서는 ‘정’과 ‘이’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된다.
이 논문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부부관계의 윤리적 문제 또한 ‘정’과 ‘이’의 흐름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부부의 정이 돈독한 경우는 서로에 대한 도리를 지켜나가는데 큰 문제가 없겠으나 부부의 정이 돈독하지 못한 경우에는 서로에 대한 도리를 지켜나가는데 갈등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정’과 ‘이’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에 따라 부부윤리의 성격이 결정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 후기 이옥의 한시 작품에 형상화된 부부윤리의 성격과 당대적 의미를 고찰하는 동시에 이러한 작업을 통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떠한 시사점(示唆點)을 주는지 살펴보겠다.
한시를 포함한 모든 시가 장르는 당대(當代)의 사상과 정서를 담아내기에 적합한 형식과 내용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이같이 하나의 문학 장르는 시의성(時宜性)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성장, 소멸한다. 이 말은 당대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종래의 장르는 쇠퇴하고 새로운 장르가 요청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시가 지닌 생명력은 대단하다. 물론 여기에는 한시라는 장르가 오랜 세월 동안 장르의 정체성을 획득하기까지 나름대로의 많은 전통을 지닌 채 발전했다는 점이 인정된다.
그런데, 한시가 지닌 많은 전통 가운데 소재적 측면에 주목할 때, ‘남녀지정(男女之情)’을 소재로 삼고 있는 시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설사 ‘남녀지정’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도 그것은 거의가 악부시 계열에서 이미 정형화된 시풍을 모방하는 정도이거나 혹은 시인 자신은 문면에 드러나지 않고, 제3의 화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남녀지정을 표출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논의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이옥의 경우는 다른 소재보다 유독 ‘남녀지정’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이 논의의 주제인 부부윤리의 성격을 밝히기에 적합한 부부윤리를 중심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옥은 여타의 작가와 달리 부부윤리를 중심으로 시 창작에 임했는데, 그렇다면 이옥이 말하고자 했던 부부윤리의 핵심은 무엇이었으며, 그 성격은 어떠한가? 이같은 의문이 해결되어야 이옥이 남녀지정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부부윤리의 성격이 구체화되어 드러날 것이다.
이옥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작가론 및 작품론에 치우져 진행되어 왔다. 이 논문들에서는 주로 그의 생애와 관련하여 작품의 특성을 평가하고 있다. 이들 연구의 공통된 결과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시 창작에서 자연발생적 창작 원리를 중시한 점, 둘째, 주체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의 시를 창작해야 함을 선언한 것, 그리고 셋째, 시의 소재로 남녀의 정(情)을 중요시했다는 점 등을 들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옥이 남녀지정을 형상화하기 위한 소재로 부부의 모습을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들에서 형상화된 부부윤리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이옥이 말하는 남녀지정의 온전한 실상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이옥의 한시에 나타난 부부윤리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그가 인식하고 있었던 부부윤리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이어 그가 형상화하고 있는 구체적인 시 작품을 대상으로 부부윤리의 성격을 살펴보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가 지니고 있었던 부부윤리의 성격이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는 어떠한 의미로 다가서고 있는지 하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명될 것이라 기대한다.
2. 부부윤리의 인식
이옥의 『이언(俚諺)』소재 66수의 작품 가운데, 부부(夫婦)의 윤리(倫理)와 인정(人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총 23수의 작품은 다음의 표<1>과 같다.
<표1>
|
총작품수 |
해당작품 |
문집 내의 개별작품 번호 |
평균비율 |
아 조(雅 調) |
17 수 |
7수 |
1, 2, 3, 5, 9, 12, 14. |
4 1 % |
염 조(艶 調) |
18 수 |
2수 |
2, 18. |
1 1 % |
탕 조(宕 調) |
15 수 |
1수 |
15. |
6․6 % |
비 조(悱 調) |
16 수 |
13수 |
1, 2, 3, 4, 5, 6, 8, 9, 10, 11, 12, 15, 16. |
8 1 % |
한가지 주목할 점은, 위의 <표1>에서 제시된 23수는 작품의 표층적 차원에서 부부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작품만을 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품의 표층적 차원에서 부부 관계를 다루고 있는 23수 외에, 기녀와의 관계를 소재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 7수 였고, 나머지 33수는 시집살이의 일상과 즐거움, 고단함 등을 소재로 하여 여성화자의 개인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머지 작품군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사대부와 기녀의 관계 혹은 여성화자의 개인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손치더라도, 그 이면에는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로서의 입장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위의 도표에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 ‘염’, ‘탕’, ‘비’의 각 조(調)에서 부부의 형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의 비율이다. ‘아조’의 경우는 전체 17수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7수가 부부의 모습을 형상화하였고, ‘염조’는 전체 18수 가운데 11%에 불과한 단 2수만이 해당되었고, ‘탕조’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하여 전체 15수 가운데 7%에도 미치지 못하는 단 1수만이 부부관계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반면에 ‘비조’의 경우는 전체 16수 가운데 81%에 해당하는 13수가 부부관계를 주된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통계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아조’의 경우는 절반 정도의 작품이 부부의 형상을 다루고 있고, ‘비조’의 경우는 대다수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들이 부부의 형상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염조’와 ‘탕조’의 경우는 부부의 형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의 비중이 급격하게 감소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어째서 ‘염조’와 ‘탕조’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인가? 그에 반해 ‘아조’와 ‘비조’에서는 그 많은 작품들을 통해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논의가 출발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말하자면 ‘염조’와 ‘탕조’에서는 그 중심이 부부관계에 있지 않고, ‘염조’의 경우에서와 같이 단지 ‘아내’의 모습만을 형상화하고 있거나 ‘탕조’의 경우에서처럼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어야 할 자리에 ‘남편’과 ‘기녀’의 모습으로 전이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문제 상황에 직면한다. 즉 ‘남편:아내’의 관계가 ‘염조’와 ‘탕조’에서는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염조’와 ‘탕조’는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있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떠한 제약 내지는 압박이 가해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작품을 토대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일단 위에서 산출된 통계수치에 주목하여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이옥이 인식했던 부부윤리의 근저에는 ‘염조’와 ‘탕조’에 해당하는 작품군에서는 ‘부부윤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부부의 관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혐의를 포착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제3장에서 구체적인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하기로 하겠다.
우선,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해결해야 하는 두 가지 난제(難題)가 있다. 그 하나는 과연 이옥이 강조하고 있는 ‘남녀지정(男女之情)’을 ‘부부지정(夫婦之情)’으로 치환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지정’의 문제를 통해서 ‘부부윤리’의 문제를 검토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우선, 이 두 가지 의문을 해결하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
첫째, ‘남녀지정(男女之情)’과 ‘부부지정(夫婦之情)’의 문제이다.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부부의 정’에 대한 문제이지만, 이옥은 부부간의 정을 포함한 ‘남녀의 정’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의 논의를 위해서는 남녀지정의 다양한 양상 가운데 부부지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이옥의 『이언』소재 작품 66수 가운데, 부부지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은 총 23수로 전체의 1/3인 34.8%를 차지한다. 어쨌든 표면적으로 명확하게 제시된 부부지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만으로 한정한다면 첫째로 제기되었던 문제는 자연 해결되는 셈이다.
둘째, ‘부부지정(夫婦之情)’과 ‘부부윤리(夫婦倫理)’의 관련성 여부이다. 이를테면 ‘부부지정’을 통해서 ‘부부윤리’를 고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곧 ‘정(情)’과 ‘윤리(倫理)’의 문제로 집약된다. 여기서 말하는 정(情)이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희노애락(喜怒哀樂)과 같은 정서를 의미한다. 즉 인간이 어떤 사물이나 대상 또는 특정 상황에 부딪쳐 일어나는 온갖 감정, 상념 또는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 등을 의미한다. 반면, ‘윤리(倫理)’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곧 실제의 도덕 규범이 되는 원리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情)은 자연발생적임에 비하여 윤리(倫理)는 인위적인 것이다. 이처럼 정은 자연적이고 윤리는 인위적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이 둘이 서로 대립하거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성질이 상존한다. 예컨대 한 시대의 보편적 윤리가 특정한 정서를 금기시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경우, 이같은 정서는 그 시대에 용인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흔히 주자주의라 일컬어지던 성리학적 사유구조로 무장된 조선조 지식인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관심이나 욕망표출 및 자신의 아내에 대한 애정표출 행위가 일종의 금기시 되었던 경우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나 문학 작품 등을 통해 타인에게 자신의 아내를 대상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행위는 사회 통념상 쉽게 용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情)’과 ‘윤리(倫理)’는 이처럼 대립적이기도 하지만 상호보완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말은 특정 시대의 지배이념이나 보편적 정서는 ‘정’과 ‘윤리’라는 두 축을 통해 새로이 형성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情)을 살핌으로써 당대 윤리의 실상 내지 윤리의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의 구체적 형상화 방식에 따라 윤리적 성격을 추단해 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지정(夫婦之情)을 살피는 것은 곧 부부윤리의 성격과 그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유용한 방법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부부윤리의 본질적 특성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
우리의 전통적 사유체계에서 부부(夫婦)관계는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가 작용했다. 이점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었던 특징이 아니라 동양문화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교문화권의 범주에 속한 국가에서 형성된 사고 체계였다. 이같이 이분법적 사고를 반영하는 삶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구체적 사례로 나타나는데, ‘내(內)와 ‘외(外)’, ‘천(天)’과 ‘지(地)’, ‘음(陰)’과 ‘양(陽)’ 등의 관계가 그것이다. 여기서 외(外), 천(天), 양(陽) 등이 ‘남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이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내(內), 지(地), 음(陰) 등이 ‘여성’을 상징하는 또 다른 하나의 축으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당대에 세계를 인식하던 방식은 존재하는 만물의 법칙과 상호 관계를 토대로 이분법적 대립 구조로 인식하였다. 부부관계 역시 이러한 사고 체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지켜야할 윤리적 문제 또한 이같은 관계 속에서 파악되었다. 남편과 아내의 구분과 역할은 내외(內外)의 구분과 같이 엄격하였다. 그러한 과거 역사는 오늘날에도 우리 언어생활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데, 이를테면 아내와 남편을 지칭할 때, ‘안사람’, ‘바깥양반’ 등의 표현이 그 예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체제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추구되었던 윤리 즉 부부윤리는 구체적으로 어떠했는가? 우리는 이제 당대 부부윤리의 실상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여말선초의 성리학자인 삼봉 정도전의 다음 글을 통해 당대인들이 지녔던 부부윤리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옥이 살던 조선 후기 사회의 부부윤리를 살피는데, 여말선초의 학자인 정도전의 글을 살피는 것은 비록 시간적 거리차가 있다손 치더라도 여말선초(麗末鮮初)로부터 조선 후기 사회에 이르기까지는 주자주의 성리학적 사유구조에 물든 시기로 시대차를 극복할만한 부부윤리의 편폭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분윤리의 경직성은 여말선초보다는 조선 중기 이후로 갈수록 더 강화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글은 삼봉이 유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삶의 괴로움과 원망을 토로하자 삼봉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여 아내에게 보낸 글이다.
내가 죄를 지어 남쪽 변방으로 귀양간 후부터 비방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구설이 터무니 없이 퍼져서 화가 측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두려워서 사람을 보내 나에게 말하기를,
㉮ “당신은 평일에 글을 부지런히 읽으시느라 아침에 밥이 끓든 저녁에 죽이 끓든 간섭치 않아 집안 형편은 경쇠를 걸어 놓은 것처럼 한 섬의 곡식도 없는데, 아이들은 방에 가득해서 춥고 배고프다고 울었습니다. 제가 끼니를 맡아 그때그때 어떻게 꾸려나가면서도 당신이 독실하게 공부하시니 뒷날에 입신양명하여 처자들이 우러러 의뢰하고 문호에는 영광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는데, 끝내는 국법에 저촉되어서 이름이 욕되고 행적이 깎이며, 몸은 남쪽 변방에 귀양을 가서 독한 장기(瘴氣)나 마시고 형제들은 나가 쓰러져 가문이 여지없이 탕산하여, 세상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현인 군자도 진실로 이러한 것입니까?”, 하므로 나는 답장을 아래와 같이 썼다.
“그대의 말은 참으로 온당하오. 나에게 친구가 있어 정이 형제보다 나았는데 내가 패한 것을 보더니 뜬 구름같이 흩어지니, 그들이 나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본래 세력으로 맺어지고 은혜로써 맺어지지 않은 까닭이오, ㉯ 부부의 관계는 한번 결혼하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 것이니 그대가 나를 책망하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미워서가 아닐 것이오. 또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으니, 이 이치는 허망하지 않으며 다 같이 하늘에서 얻은 것이오. 그대는 집을 근심하고 나는 나라를 근심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른 것이 있겠소? 각각 그 직분만 다할 뿐이며 그 성패와 이둔과 영욕과 득실에 있어서는 하늘이 정한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그 무엇을 근심하겠소?”
위의 인용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남편과 아내의 언급은 비단 정도전과 그의 아내라는 특수한 개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전형적이며 보편적인 부부의 윤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인용문 ㉮부분은 부부윤리 가운데 남편에 해당하는 윤리를 기술하고 있다. 남편은 집안의 형편보다는 부지런히 글 공부에 전념하며 자신을 부단히 연찬하고 출세하여 세상을 바르게 다스림이 그 도리였다. 이는 당대에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절차로 인식하였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개념과도 일치되는 것이다. 반면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어 입신양명 하기까지 자녀를 양육하고, 가사(家事)를 돌보며, 가계(家計)마저 유지해야 하는 삼중고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 밑줄 친 ㉯에 주목하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서, “또한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으니, 이 이치는 허망하지 않으며 다 같이 하늘에서 얻은 것이오. 그대는 집을 근심하고 나는 나라를 근심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른 것이 있겠소? 각각 그 직분만 다할 뿐(且婦事夫 猶臣事君 此理無妄 同得乎天 子憂其家 我憂其國 豈有他哉 各盡其職而已矣)”라는 진술을 통해 부부관계를 임금과 신하의 관계와 동일시하고 있음이 포착된다.
남편과 아내의 도리가 대략 이와 같이 정리되는데, 얼핏보면 아내에게만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만을 강요하는 듯 하지만 남편에게는 아내에게 지켜야 할 다른 도리가 있었다. 그것은 ㉮부분의 후반부에 기술되어 있듯이, 남편이 출세를 이룬 후에 아내에게 그 영광을 돌리고 아내의 노고에 보답하도록 되어 있었던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었다. 요컨대 남편은 학업에 전념하고 아내는 가정을 책임지는 대신 출세를 이루면 아내는 그간의 노고를 보답받게 되는 관계였다. 이같은 부부윤리의 근저에는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서로의 ‘도리(道理)’를 강조하는 사고 체계를 지닌 부부윤리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 위의 인용문 ㉯에서 삼봉이 말하고 있는 아내의 ‘사랑(愛)’도 사실은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이(理)’로부터 시발(始發)된 의미의 사랑이지 오늘날의 개념에 입각한 정서적 차원의 사랑과는 그 성격이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정도전에 비해, 이옥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1536-1584)의 글을 통해 부부윤리의 한 단면을 살펴보겠다.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비록 밖으로는 긍지를 가지고 있으나, ㉮안으로 독실함이 적어서 부부간에 이부자리 속에서 정욕을 방종하게 하여 그 위신과 예의를 잃었으므로, ㉯ 부부사이에 서로 희롱하지 않고 서로 공경할 수 있는 자가 매우 적다. 이렇게 하고서 몸을 닦고 집안을 바루려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지아비는 화(和)하여야 하되 의(義)로서 어거하며, 지어미는 순(順)하되 바름(正)으로써 지아비의 뜻을 이어받아 부부간에 예와 공경함을 잃지 않은 후에야 집안 일이 다스려질 수 있음이라.
인용문에서도 부부 사이의 ‘정(情)’과 ‘이(理)’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율곡은 부부 사이에 정(情)이 지나쳐 부부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용문에서와 같이 부부는 정욕(情慾)과 같은 ‘정(情)’에 휘둘려서는 안되고, 남편은 화(和)하면서도 의(義)로써 행동하고, 아내는 순(順)하면서도 바르게(正) 살아야 하는 부부윤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렇지 못한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다소 억압되고 경직된 부부윤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성욕(性慾)’과 같은 욕망은 부부사이에서는 점잖지 못하다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욕망은 부부간에 서로 공경하고 집안을 바로 다스리는 데, 한갓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을 드러낸다. 부부사이에 필요한 윤리는 인용문 ㉰와 같이 ‘화(和)’와 ‘의(義)’ 그리고 ‘순(順)’과 ‘바름(正)’이고, 이를 통해 부부간에 ‘예(禮)’와 ‘공경(敬)’을 잃지 않아야 집안이 바로 다스려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번에는 이옥(1760-1813)과 동시대를 살았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글을 통해 부부윤리 인식의 한 단면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부모를 애정으로 대하고 봉양하는 것을 효(孝)라고 일컫고, 형제끼리 우애함을 제(弟)라 일컫고, 자기 자식 교육하는 것을 자(慈)라 일컫는다. 이것이 이른바 오교(五敎)이다. 아버지 섬기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 어진이를 어질게 여김으로써 사도(師道)가 정립된다. 이것이 바로 “임금․스승․부모 이 세 사람에 의하여 생존하는 것으로 한결같이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 섬기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 존장을 섬기고, 자식 기르는 일을 바탕으로 삼아 대중을 부려야 한다. ㉮ 부부(夫婦)란 함께 이 덕(德)을 닦음으로써 그 안을 다스리는 사이이고(夫婦者 所與共修此德 而治其內者也),㉯ 친구란 함께 그 도(道)를 강구 연마함으로써 그 밖이 잘못이 없도록 서로 돕는 사이인 것이다.
인용문의 밑줄 친 부분에서도 드러나듯,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친구’의 관계와도 동일하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다만, 아내는 ‘안(內)’에서의 관계에 해당하는 존재이고, 친구는 ‘밖(外)’에서의 관계에 해당한다. 이처럼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부부윤리에서 둘만의 내밀한 요소가 배제된 채, 규범(規範)과 도리(道理)만이 차고 넘치는 상황을 부부윤리의 본질로 인식하는 경우, 정(情)과 같은 요소가 개입되기는 다소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당시의 혼인제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혼인 자체가 결혼 당사자들의 애정과 상호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성립했던 것이 아니라 두 가문의 신뢰를 바탕으로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부부윤리 역시 당사자 사이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 애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도리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대의 혼인제도 아래에서는 부부간의 애정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같은 혼인제도 아래에서는 부부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출발하여 도리를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애정이 싹트게 되는 것이라 이해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결국, 이같은 혼인제도에서의 부부지정은 오랜 규범에 예속된 형식의 정(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과 견주어 보면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과거의 혼인제도 하에서는 ‘이(理)’에서 출발하여 ‘정(情)’으로 발전해 나아갔으나, 오늘날의 혼인제도 아래에서는 ‘정(情)’을 토대로 출발하여 ‘이(理)’로 나아가는 경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옥은 이러한 부부윤리의 기저(基底)에는 근원적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고 인식한다. 그는 위에서 기술했듯이 ‘이(理)’가 중심이 되는 부부윤리 보다는 ‘정(情)’을 중시하는 부부윤리에 주목한다. 이러한 점은 그의 시론(詩論)인 ‘삼난(三難)’과 시작품을 통해 그 견해를 구체화하고 있다. 삼난은 세가지 어려움이라하여 그의 시론을 전개하는데, 이 내용은 당시의 문풍과는 경향이 사뭇 다른 점에 대해 비판적인 가상 인물과의 문답 형식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옥 자신의 『시경(詩經)』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삼난(三難)’의 형식 자체가 『시경(詩經)』에 실려있는 주자의 서문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혹자(或者)’와의 문답 형식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천명한다. 이는 주자가『시경집전(詩經集典)』의 서문에서 밝힌 견해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옥 나름대로『시경(詩經)』인식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一難) 그대는 왜『시경(詩經)』의 국풍(國風), 악부(樂府), 사곡(詞曲)과 같은 것을 짓지 않고 이언(俚諺)을 짓는 것인가? 라고 묻는다. 이는 기존의 고문을 법고(法古)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으로 일종의 장르론적 차원에 대한 비판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이옥은 시를 창작하는 주체는 작가 자신이 아니라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주가 되고 작가는 다만 천지만물의 통역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통해 자연발생적 창작임을 강조한다. 이말은 당시의 일반적 문학관이었던 “재도적(載道的) 문학관의 작시 과정이 사물(事物)→사유(思惟)→지(志)→언(言)→시(詩)처럼 인식된다면 이옥의 작시 과정은 사물(事物)→정(情)→성(聲)→시(詩)의 과정이라 인식했다”는 것이다.
2. (二難) 그대는 어째서 시의 소재가 모두 ‘남녀지정(男女之情)’에 국한되어 있는가? 라며 소재론적 차원에서의 비판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이옥은 천지만물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고,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는데, 정(情)을 보니까 사람의 정이란 기쁘지 않으면서도 기쁜 것처럼 하고, 슬프지 않은 데도 슬픈 것처럼 하고, 화가 난 것이 아니면서도 화난 체하는 등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가식인지 알 수 없지만, 유독 남녀의 정이야말로 진실되기 때문이라고 답변한다.
3. (三難) 그대는 어째서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 기존의 경향과 달리 중국식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일상어와 향명(鄕名), 이어(俚語) 등을 사용하는 것인가? 하는 표현론적 차원에서의 비판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이옥은 사람의 이름이든 사물의 이름이든 우리가 이것을 사용한 것은 이미 오래된 사실이고, 특히 사물의 이름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지 않은 것이니 자기가 처한 시간과 공간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지 굳이 자신이 살지도 않는 시간과 공간(중국)에서 사용하는 이름을 추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반문하면서 민족적 주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위의 삼난(三難) 가운데 본고의 논의와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는 이난(二難) 즉 ‘남녀지정(男女之情)’의 문제를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남녀지정’의 문제는 부부윤리의 성격과 그 의미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옥이 그의 시론인 이난(二難)에서 언급하고 있는 남녀지정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무릇 천지만물을 보면 사람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을 보면 정(情)보다 더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보면 남녀의 정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 이 세상이 있고 이 귀가 있으며 이 몸이 있고 이 일이 있으며, 이 일이 있으니 곧 이 정이 있다. 그러므로 이 정(情)을 보면 그 마음의 사악하고 바름과 그 사람의 어짐과 그렇지 않음 그리고 그 일의 득실과 그 풍속의 사치와 검소(奢儉), 그 땅의 후박(厚薄)과 그 집의 흥함과 쇠함, 그 나라의 치란과 그 세상의 오륭(汚隆)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정이란 기뻐할 바가 아닌데도 거짓으로 기뻐하고 화를 낼 바가 아닌데 거짓으로 화를 내기도 하며, 슬퍼할 바가 아닌데도 슬픈 체 하는 것처럼 하며, 즐겁고 슬프고 악하고 바라는 바가 아니면서도 혹 즐겁고 슬프고 악하고 바라는 것처럼 하니, 어느 것이 진실(眞實)이고, 어느 것이 가식(假飾)인지 알 수 없고, 그 정의 진실은 유독 남녀의 정에서만 볼 수 있으니, 이는 곧 인생이 진실로 그러한 일이며, 또한 천도(天道)이자 자연의 이치이다.
인용문에서 밑줄 친 부분과 같이 이옥은 남녀의 정(情)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것이며, 그것은 ‘하늘의 도(天道)’이자 ‘자연의 이치(自然之理)’라고까지 인식한다. 그가 시론에서 말하고 있는 남녀의 정은 실제『이언(俚諺)』작품에서는 주로 부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부부의 정을 통해서 그 마음의 사악함과 바름, 사람의 어짊과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일의 득과 실, 풍속의 검소함과 사치스러움, 심지어 그 집안의 흥함과 망함, 심지어 나라의 치란 및 세상의 오륭(汚隆)마저도 알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셈이다. 이처럼 그는 부부지정을 포함한 ‘남녀지정(男女之情)’의 소재를 자신의 시론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종래의 성리학적 사유구조에 젖어있던 학자들이 생각했던 부부윤리와는 그 성향이 매우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종래의 사대부들이 지녔던 부부윤리의 근간은 서로에 대한 도리(道理)와 신뢰(信賴)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반해 이옥이 주장하는 부부윤리의 근간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情)’으로 집약되고 있다. 물론 그가 시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情)’에는 애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정의 범주에는 부부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 등과 같은 정서가 모두 포함된다.
이옥은 ‘이(理)’를 바탕으로 지탱되어 오던 부부윤리에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그간 도학적(道學的) 사유체계의 만연으로 인해 담론화되지 못했던 부부간 정(情)의 문제를 표면화시키고 있다. 요컨대, 이옥이 살던 조선 후기 사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성리학에서는 예학(禮學)을 강조하고, 문학 또한 인간 심성의 수양에 도움이 되는 것만이 가치있는 문학이며, 남녀의 정을 표출한다거나 하는 문학 작품은 속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라고 간주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시기였다. 그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며 그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근본적 회의를 느끼게 되고,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 도리적 측면에서 강조되던 부부의 윤리에 주목하기 보다는 정서적 측면의 부부윤리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그의 주장을 구체화하고 있는 결과물이 그가 남긴 한시 작품집인 『이언(俚諺)』이다.
3. 부부윤리의 형상화 방식과 의미
그는 정(情)의 구체적 실현 양상을 크게 ‘아(雅)’․‘염(艶)’․‘탕(宕)’․‘비(悱)’의 네가지로 구분하여 범주화했다. 그가 구분해 놓은 네가지 범주의 개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雅) - “아(雅)는 떳떳함이요, 바름이라. 조(調)는 곡조이다. 무릇 부인이 그 부모를 섬기고, 그 남편을 공경하며, 그 집에서 검소하며, 그 일에 근면함은 모두 천성의 떳떳함이고 또한 사람 도리의 올바름이라, 그러므로 이 모든 작품들은 어버이를 사랑하며 남편을 공경하고 근면하여 검소한 일을 일컫는다.”
(2) 염(艶) - “염(艶)은 미(美)이다. 이 편에서 말하는 바는 거의가 교만, 사치, 부랑, 경박, 지나친 꾸밈의 일이라 비록 위로는 아(雅)에 미치지 못하지만 아래로는 또한 질탕함(宕)에 이르지 않는 고로 이름하기를 염(艶)으로써 한다.”
(3) 탕(宕) - “탕은 흐트러져서 가히 금할 수 없음을 이름이라. 이편이 말하는 바는 모두 창기의 일이다. 사람의 도리가 이에 이르면 또한 질탕한지라 가히 제어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이름하기를 질탕(宕)으로써 하니 또한 시경에는 정풍과 위풍이 있음이라”
(4) 비(悱) - “시경에서 말하는 아(雅)는 원망이 있어도 슬퍼서 말문이 막힐 정도는 아님이라, 비(悱)란 원망스러우면서도 그것이 깊은 것을 이름이라, 무릇 세상의 인정은 아(雅)에서 하나를 잃으면 곧 염(艶)에 이르고 염하면 곧 그 형세가 반드시 탕(宕)으로 흐르니 세상이 이미 탕(宕)함이 있으니 곧 또한 반드시 원망함이 있고, 진실로 원망을 하면 곧 반드시 매우 심해질 것이다. 이것이 비(悱)를 짓는 까닭인데, 비탄은 그 방탕함을 슬퍼하는 까닭이니 곧 이 또한 어지러움이 극한데서 다스림을 생각함이니 도리어 추천의 뜻에서 구하자는 것이다.”
위와 같이 정(情)의 구체적 실현 양상을 아(雅)․염(艶)․탕(宕)․비(悱)로 나누었다. 여기서 아(雅)․염(艶)․탕(宕)․비(悱)는 각각이 별개의 독립된 체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적 체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고 있는 네가지 범주의 개념에 주목해 보면, 그 가운데서도 특히 ‘비조’에 주목해 보면 네가지 범주를 그 가치에 따라 서열화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의 말대로 “세상의 인정은 ‘아(雅)’에서 하나를 잃으면 ‘염(艶)’에 이르고 염하면 곧 ‘탕(宕)’으로 흐르고 탕함이 있으면 원망함이 있고 진실로 원망하면 그것이 반드시 심해져서 ‘비(悱)’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곧 그는 ‘아’를 이상적이며 추구해야할 가치로 평가하고 있으며 ‘비’를 지양(止揚)해야할 가치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아 → 염 → 탕 → 비’ 라는 네 범주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삶의 동일선상에 순차적으로 상존(常存)하는 구체적 실상임을 인식한다.
마지막 부분의 언급에 주목하면 비(悱)를 짓는 까닭은 질탕함을 원망하다가 원망이 심해지면 비(悱)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라 하면서, 어지러움이 극도로 심한 곳에서 바르게 다스려야 함을 생각하듯이 부정적 모습을 통해서도 타산지석으로 삼아 배울 것이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처럼 이옥은 부부사이에서 볼 수 있는 총제적인 삶의 실상들을 아(雅)․염(艶)․탕(宕)․비(悱)의 네가지 범주로 포괄하여, 사실적 표현기법으로 형상화한다.
그의 시론과 시작품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현우는 그의 논문에서, “ ‘삼난(三難)’에서 펼친 논의에 비해『이언(俚諺)』의 미적 수준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은 이옥의 시론인 ‘삼난’과 시 작품집인『이언』과의 연관성을 유기적 관계에서 파악하지 못한 결과에서 기인된 판단이다. 김균태는 ‘아’, ‘염’, ‘탕’, ‘비’를 각각 아조(雅調)는 ‘사족녀(士族女)’, 염조(艶調)는 ‘중인부녀(中人婦女)’, 탕조(宕調)는 ‘창기(娼妓)들’, 비조(悱調)는 ‘여염녀(閭閻女)’들의 노래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탕조’의 경우에는 이옥 스스로가 직접 ‘창기(娼妓)’의 일을 다루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시적 대상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조와 염조와 비조를 신분 계층별로 파악한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며 도식적인 해석의 결과라 판단된다. 즉 ‘단아함’은 ‘사족녀’, ‘농염함’은 ‘중인여성’, ‘슬픔’은 ‘여염집 여성’이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인 작품 해석에 따른 결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이옥의 시론(詩論)과 그의 한시 작품의 관련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는 종래의 부부윤리가 ‘이(理)’를 중시하던 경향을 지양(止揚)하면서 ‘정(情)’이라는 새로운 측면에 주목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구체적 한시 작품에서는 이같은 ‘정(情)’을 어떠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시작품을 통해서 시론을 구체화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의 시문집인『이언(俚諺)』에는 총 66수의 작품이 아조(雅調) 17수, 염조(艶調) 18수, 탕조(宕調) 15수, 비조(悱調) 16수의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3.1. 아조(雅調)의 단아함과 이상(理想)
‘아조(雅調)’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부부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한 쌍의 남녀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과 결연한 후, 신혼 때의 마음 가짐을 형상화하고 있다. 아조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다소간 형식과 내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조’에 그려진 모습들을 오늘날의 상황에 비유한다면, 두 남녀가 ‘만남’을 이루고 서로에 대한 관심을 통해 애정을 쌓아가는 과정, 그리고 결혼한 후의 신혼 초기에 해당할 것이다.
<1>
郎執木雕雁 서방님은 나무 기러기 잡으시고,
妾捧合乾雉 첩은 말린 꿩을 받들었지요.
雉鳴雁高飛 그 꿩이 울고 기러기 높이 날도록,
兩情猶未已 서방님과 저의 정은 그치지 않을 테지요.
<2>
一結靑絲髮 하나로 결합하였으니 검은 머리가,
相期到葱根 파뿌리 될 때 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했지요.
無羞猶有羞 부끄럼 없는데도 오히려 부끄럽기만 하여,
三月不共言 서방님과는 석달 동안이나 서로 말도 못했지요.
아조(雅調)에 속한 작품으로 <1>은 혼례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신랑은 나무로 조각된 기러기 한쌍을 들고, 신부는 말려 놓은 꿩을 받들고서 혼례를 치루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꿩이 울고 나무를 조각해 만든 기러기가 높이 날아가는 날까지 서로의 정(情)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신부의 마음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부부의 연을 맺는 혼례 장면을 소재로 하여 부부간의 애정을 바라는 여인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당대의 결혼제도를 토대로 여기서 혼례를 올리는 두 당사자 간의 상황에 주목해보면, 혼례를 올리는 이 두 남녀는 혼례 이전, 상호간에는 어떠한 애정도 전제되지 않고 있다. 오직 이들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남녀가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정(情)이 끊어지지 않도록 살아야 하는 당위적 현실 앞에 서 있을 뿐이다.
작품 <2>는 혼례를 마치고 부부로서의 의미를 되새기며 평생 동안 함께 하기를 다짐하는 모습과 신혼시절에 서로 부끄러워 말도 잘 하지 못했던 순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당시의 결혼제도 아래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3>
屢洗如玉手 여러번 씻어 옥같은 손으로
微減似花粧 조금 덜어내 꽃처럼 단장하네
舅家忌日近 시댁 제삿날 가까워 오면
薄言解紅裳 말수를 줄이고 붉은 치마 벗었다네
<4>
人皆輕錦綉 사람들은 모두 비단 수 놓은 옷도 가벼이 생각하지만
儂重步兵衣 저는 막일 할 때 입는 옷조차 소중히 여기지요
旱田農夫鋤 가뭄든 밭에서는 농부가 호미질을 하고 있고
貧家織女機 가난한 집에서는 여인네가 베를 짜고 있기 때문이지요
작품 <3>은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조심하고 삼가는 신중한 부녀자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1구의 “여러번 씻어 옥같은 손”이라 함은 부지런하며 청결한 여인의 형상을 제시하는 것이고, 2구에서는 검소함을, 3구와 4구에서는 제삿날이 가까워 오면, 말수도 줄이고, 화려한 붉은 의상같은 것은 입지 않을 정도로 조신하며 삼가는 미덕을 보이고 있다.
작품 <4>에서는 절제하며 검소한 부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비단옷과 같은 고급품조차 가벼이 생각하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면서 화자는 일할 때 입는 옷조차도 소중하게 다루는 모습을 대비시킨다. 아울러 자신이 그처럼 생활하는 것은 가뭄이 극심한 밭에서 고생하고 있을 농부님네와 가난한 집에서 밤을 새워 가며 베틀을 돌리고 있을 아낙네가 있기 때문이라는 진술을 통해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함께 더불어 살 줄 아는 미덕을 지닌 여인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위에서 제시했듯이 ‘아조’에 속한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 특질은 부부윤리에서 인간의 자연 발생적인 ‘정(情)’의 측면보다는 당위적 현실규범인 ‘이(理)’의 차원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 혼례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 <1>에서 혼인 당사자인 두 남녀의 관계를 주목하면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제4구에서 “兩情”이라하여 ‘情’을 언급하고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情’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돈독하게 마련해야 할 情에 해당하는 것이지, 혼례를 앞두고 그동안 쌓아온 당사자간의 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혼인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는 앞으로의 삶에서 情을 쌓아가야 할 당위적 규범 즉 ‘도리(道理)’ 앞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같은 상황은 작품 <2>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다. 제3구와 4구에서도 형상화되었듯이 “부끄럽기만 하여 석달동안이나 서로 말도 못했다”는 표현은 ‘理’로부터 출발하여 ‘情’을 쌓아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3>과 <4>는 부부윤리의 덕목 가운데 ‘아내’로서의 도리에 해당하는 내용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3>에서는 부지런하며 청결한 아낙네의 모습을 제시하는 동시에 시댁의 제삿날에 맞추어 언행을 조신하고 삼가는 부인으로서의 미덕을 형상화하였고, 작품 <4>에서는 세상의 경박한 세태와는 달리 검소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도덕적인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이처럼 아조(雅調)에 속해 있는 작품들에 형상화된 바와 같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보다는 당위규범인 도리를 우위에 둔 부부윤리를 가장 이상적인 부부윤리의 모습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아조(雅調)’에 형상화된 ‘정(情)’ 또한 혼인에 임하여 앞으로 잘 살아보고 싶은 간절한 설레임과 기대감 역시 순아한 ‘정(情)’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조’에서 형상화된 ‘정(情)’은 당대의 혼인제도(婚姻制度)라는 이미 갖추어진 규범에 종속된 욕망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아조(雅調)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밝힌 부분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성정’보다 당위규범으로 간주되었던 ‘도리’가 우선시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시발(始發)되는 ‘아조(雅調)’의 부부윤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필연적이며 순차적으로 ‘염조(艶調)’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미 오래 전부터 잉태하고 있는 셈이었다.
3.2. 염조(艶調)의 농염함과 현실(現實)
작가의 언급대로 염조(艶調)에 속한 작품들은 대개가 교만(驕慢), 사치(奢侈), 부박(浮薄), 과식(過飾)의 일을 다루고 있어서 위로 ‘아(雅)’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 ‘질탕함’에 이르지 못하는 작품들이다. 따라서 ‘염조’에서 그려지고 있는 작품들은 ‘아조’에서 다짐했던 당위적이며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부터 다소 유리된 상황이 형상화된다. ‘만남’과 ‘연애시절’, 그리고 ‘신혼시절’에 생각했던 이상(理想)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5>
莫種鬱陵桃 울릉도 복숭아는 심지를 마세요
不及儂新粧 내가 새로 화장한 것에 미치지 못하니까요
莫折渭城柳 위성의 버드나무일랑은 꺾지 마세요
不及儂眉長 내 눈썹 길이에 미치지 못하니까요
<6>
歡言自家酒 술집에서 온 것이라며 즐겁게 말하지만
儂言自娼家 창가에서 온 것이라고 저는 말하지요
如何汗衫上 어찌하여 땀 베인 저고리 위에
臙脂染作花 연지 기름이 물들어 꽃이 만들어 졌나요
작품 <5>는 자신의 미모에 대단한 관심과 자부심을 지닌 부인을 형상화하고 있다. ‘울릉도의 복숭아’도 자신이 새롭게 화장한 것보다는 아름답지 않을 것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3구와 4구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고자 하는 교만한 부인의 모습이 형상화되고 있다.
작품 <6>에서는 다소 우스운 상황이 그려져 있다. 남편이 귀가해서는 술집에서 술 한 잔 하고 온 것이라고 말하자 아내는 술집에서 온 것이 아니라 창가에서 온 것이라며 남편을 힐책(詰責)한다. 아내는 남편의 땀 베인 적삼에 묻은 여성의 붉은 연지를 보고 따지듯이 기롱(譏弄)하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7>
頭上何所有 머리 위에 있는 게 무어냐고요?
蝶飛雙節釵 나비 날아가는 두 갈래 비녀랍니다
足下何所有 발 아래 있는 게 무어냐고요?
花開金草鞋 꽃 피고 금풀로 수 놓은 가죽신이랍니다
<8>
蹔被阿娘罵 잠깐 시어머니 꾸지람 듣고는
三日不肯飱 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지요
儂佩靑玒刀 내가 청강도를 차고 있는데
誰復愼儂言 누가 다시 내게 삼가라고 말하겠나요
작품 <7>에서 그려진 여인의 모습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속적이다. 머리에는 나비가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화려한 비녀를 꽂고, 신발은 꽃무늬와 금빛 풀 모양이 새겨진 화사한 가죽 신발을 신고서 자신의 화려함에 도취된 듯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는 앞의 ‘아조’에서 보이던 검소와 절약의 형상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작품 <8>은 시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고는,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식사까지 거르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부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3구와 4구에서는 푸른 옥돌로 된 칼-일종의 은장도-을 차고 있는데, 누가 감히 나를 꾸짖겠는가 하면서, 당돌하며 대담한 여인의 형상을 제시한다. 이 작품을 앞의 ‘아조’에서 형상화되었던 작품과 견주어보면 선명한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아조’에 형상화된 부인은 청결, 검소하며 시댁의 제삿날만 다가와도 화려하다고 생각되는 붉은 치마는 입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고 삼가는 생활자세를 보였던 데 비해 이 작품에서 보이는 부인의 형상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다분히 현실화되고 세속화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염조(艶調)’에 실린 작품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모든 작품들이 ‘교만(驕慢)’과 ‘사치(奢侈)’, ‘부박(浮薄)’, ‘과식(過飾)’을 그 중심내용으로 삼고 있다. 위에서 제시했던 작품 <5>의 경우는 ‘교만’과 ‘과식’ 그리고 ‘사치’스러운 부인의 모습을 다루었고, 작품 <6>에서는 ‘부박’한 모습을, 그리고 작품 <7>은 ‘사치’와 ‘과식’을, 작품 <8>의 경우는 ‘부박’한 부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옥은 왜 ‘아조’에 형상화되었던 모습들이 필연적으로 ‘염조’로의 전이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였을까? 그것은 이옥이 주목하고 있는 ‘남녀지정(男女之情)’이 부부윤리에서는 온전하게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그가 그의 시론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인간의 모든 ‘정(情)’ 가운데 ‘남녀지정’만큼 진실된 것이 없건만 부부관계에서만큼은 이러한 점이 용인될 수 없었고, 오히려 당위적 규범만이 차고 넘칠 뿐이었다. 또한 ‘염조’에 형상화되고 있는 부인들의 ‘정’또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인간의 성정인데, 그에 대한 인식은 옹색하면서도 부부윤리상 용인될 수 없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아내의 농염함을 경직된 부부윤리의 범주에서는 쉽게 허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아내의 욕망은 남편으로부터의 공감과 상호교긍(相互驕矜)을 확보하지 못하고, 남편이 배제된 상황에서 일방적인 형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처럼 ‘염조(艶調)’에서 그려진 부부의 형상은 현실에서 용인되지 못한 채, 또 한 번의 지연과정을 거치면서 ‘탕조(宕調)’로 흘러들어간다.
3.3. 탕조(宕調)의 질탕함과 좌절(挫折)
작가는 ‘탕조’에 대해, “탕(宕)은 흐트러져서 가히 금할 수 없음을 이름이라. 이편에서 말하는 바는 모두 창기(娼妓)의 일이다. 사람의 도리가 이에 이르면 또한 질탕한지라 가히 제어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이름하기를 ‘탕(宕)’으로써 하니 또한 시경에는 정풍과 위풍이 있음이라”고 기술하면서 총 15편을 소개한다. ‘탕조’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들은 기녀(妓女)를 시적 화자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기녀(妓女)가 시적 화자로 문면에 나서서 자신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지만, 기녀의 발화 대상인 남성의 건너편에는 문맥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언제나 그 남성의 아내가 상정되어 있다고 해도 무리한 해석은 아니다.
<9>
歡莫當儂髻 그대여 제 머리를 마주하지 마세요
衣沾冬栢油 옷에 동백 기름이 젖는다니까요
歡莫近儂脣 그대여 제 입술을 가까이 하지 마세요
紅脂軟欲流 붉은 연지가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려니까요
<10>
盤堆蕩平菜 쟁반에는 탕평채가 쌓여 있고
席醉方文酒 술자리에서는 방문주에 취하였네
幾處貧士妾 그 어느 곳 가난한 선비의 아내는
鐺飯不入口 쇠솥의 밥조차 입에 넣지 못하네.
작품 <9>는 기녀의 목소리를 통해 질탕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1․2구에서는 기녀 스스로가 자신의 머리에 바른 동백 기름이 옷에 묻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표현이며, 3․4구에서는 입맞춤을 하면 붉게 바른 입술 연지가 입안으로 흘러들테니 주의하라는 식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염조(艶調)에서 살펴보았던 작품 <6>과 짝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염조의 작품 <6>에서는 술집에서 온 것이라며 거짓말을 하는 남편에게, 부인은 창가(娼家)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면서 남편의 옷에 묻은 여성의 입술 자국을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작품<10>은 남편의 술자리에 넘쳐나는 음식을 그린 후, 술에 취한 남편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쇠솥에 밥조차 없어 굶고 있는 그 아내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증폭시키는 작품이다. 집 안에는 곡식이 다 떨어져서 아내는 끼니도 거르고 있는 극한적 빈곤 상황과 술자리에 넘쳐나는 음식과 술에 취한 남편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작품의 비극성을 고조시켰다. 그래서 작가는 탕조의 서두 부분에 “사람의 도리가 이에 이르면 또한 질탕한 것이니 가히 막을 수 없다”고 기술하였다. 이처럼 탕조(宕調)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기녀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면적 의미에서의 부부윤리에 주목할 때, 염조(艶調)에서 보이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지향이 이제는 질탕한 정조(情調)로 흘러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작가는 이러한 좌절의 과정을 필연적인 순환 과정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은 남편과 아내가 자리해야 할 상황에서 아내를 대신하여 ‘기녀(妓女)’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말하자면 ‘질탕함’ 또한 부부윤리의 범주에서 다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질서가 파괴된 채, ‘부(夫) : 부(婦)’의 관계가 아닌 ‘부(夫) : 기(妓)’의 관계로 전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부부윤리는 완전히 균형을 잃고, 말문이 막혀서 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비조(悱調)’로 유입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옥이 인식했던 부부윤리에 대한 의식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그는 ‘염조’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남편 : 아내’의 관계를 제외시켜 버리고는 일방적인 ‘아내’의 형상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염조’의 작품군에서는 부부윤리의 한 축이자 동반자인 남편의 모습이 형상화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탕조(宕調)’에 이르러 더욱 고조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질탕함 또한 ‘남편’과 ‘아내’의 몫이어야 하는데, ‘아내’는 질탕함에 이르러 그 지위를 ‘기녀(妓女)’에게 빼앗기고 만다. 달리 말하면, ‘질탕함’은 부부윤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남편과 아내 사이에 요구되었던 부부윤리의 범주에 ‘질탕함’은 개재(介在)될 수 없었을뿐더러 용인할 수 없는 하나의 상징에 해당했다. 반면 기녀(妓女)와의 관계에서는 아무리 질탕한 관계라고 해도 그다지 책망과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이같은 인식의 태도는 당대에 진보적 사고를 지녔다고 평가받았던 이옥 자신도 부부윤리와 관련하여서는 중세적 사고체계의 굴레로부터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의 한계를 그대로 노정(露呈)하고 있는 결과인 셈이다.
3.4. 비조(悱調)의 비분함과 질곡(桎梏)
작가는 서두에서 비조(悱調)의 개념을 언급하면서, “... 비(悱)란 원망스러우면서도 그것이 깊은 것을 이름이라, 무릇 세상의 인정은 아(雅)에서 하나를 잃으면 곧 염(艶)에 이르고 염하면 곧 그 형세가 반드시 탕(宕)으로 흐르니 세상이 이미 탕(宕)함이 있으니 곧 또한 반드시 원망함이 있고, 진실로 원망을 하면 곧 반드시 매우 심해질 것이다. 이것이 비(悱)를 짓는 까닭인데, 비탄은 그 방탕함을 슬퍼하는 까닭이니 곧 이 또한 어지러움이 극한데서 다스림을 생각함이니 도리어 추천의 뜻에서 구하자는 것”이라고 기술한다. 따라서 ‘비조(悱調)’는 원망스러우면서도 그것이 깊은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하는 작품을 칭하는 것이고, 작가의 생각대로라면, ‘아조(雅調)’→‘염조(艶調)’→‘탕조(宕調)’→ ‘비조(悱調)의 필연적 전개 과정을 거쳐 도달한 작품군에 해당하는 셈이다.
<11>
謂君似羅海 당신을 사나이라고 일컫기에
女子是托身 여자인 이 몸을 맡겼는데
縱不可憐我 방자하여 저를 가엾게 여기지 아니하니
如何虐我頻 어쩌자고 나를 자주 학대하는 건가요
<12>
亂提羹與飯 밥상의 국과 밥을 어지럽게 끌어서는
照我面門擲 내 얼굴에 보이고는 문간으로 던졌지요
自是郎變味 이로부터 서방님의 입맛이 달라졌지
妾手豈異昔 첩의 솜씨가 어찌 옛날과 다르나요.
<13>
早恨無子久 일찍이 자식없어 오래도록 한(恨)이었는데
無子反喜事 자식 없는 것이 도리어 기쁜 일이로다
子若渠父肖 자식이 만약 애비를 닮았다고 한다면
殘年又此淚 남은 인생 또 이처럼 눈물 흘렸겠지
<14>
嫁時倩紅裙 시집 올 때 입었던 예쁜 붉은 치마는
留欲作壽衣 남겨두었다 수의를 만들려고 했지요
爲郞鬪箋倩 투전 놀음을 청하는 남편을 위해서
今朝淚賣歸 오늘 아침에는 눈물 흘리며 팔고 왔지요
위의 <11>, <12>, <13>, <14>는 모두 비조(悱調)에 속한 작품이다. 작품 <11>은 ‘사나이’라는 남편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겼는데,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학대만 하는 남편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고 있다. 이 부부의 모습에서는 신혼시절 다짐했던 굳은 다짐과 맹서(盟誓)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이지러지고 질곡된 삶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작품 <12>는 아내가 차려다 준 밥상을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하여 ‘이것도 밥상이라고 차린 거냐’는 식으로 아내에게 한 번 보이고는 집어던지는 매정한 남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에는 어디에도 서로를 위하거나 아껴주는 모습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작품 <13>에서는 자식이 없어 늘 한(恨)스러웠는데, 이제와서는 오히려 다행이고 기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약 남편을 닮은 자식을 낳았더라면 그동안 남편 때문에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는데, 남은 인생 동안, 아비를 닮은 자식 때문에 또 다시 눈물 흘릴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식 없는 것이 지금은 도리어 기쁘다고 언급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14>에서의 부인은 자신이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색 치마를 잘 보관하였다가, 자신이 죽으면 그 옷으로 수의를 삼는 것이 한가지 소망이었는데, 남편이 놀음밑천을 내 놓으라는 성화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치마를 팔아버리는 가엾은 부인의 모습이 형상화되고 있다.
이처럼 비조(悱調)에 속해 있는 작품 16수의 작품들은 비조에 언급되었듯이 질탕함이 지나쳐서 극도로 어지러운 질곡(桎梏)의 상황을 나타낸다.
그런데, 아조(雅調)에서 형상화되었듯이 단아함과 이상적인 정(情)을 바탕으로 한 부부지정을 긍정적 가치로 제시했던 작가가 이처럼 방탕함을 슬퍼하는 비조(悱調)를 통해 작품을 형상화할 수밖에 없었던 궁극적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아(雅)․염(艶)․탕(宕)․비(悱)의 네 조(調) 가운데 부부윤리의 형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 비율이 가장 높은 조(調)가 바로 다름아닌 ‘비조(悱調)’라는 사실은 주목을 요하는 점이다. ‘비(悱)’란,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 뜻은 알고 있으나 말을 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혀버림을 의미하는데, 위에서 제시한 ‘비조(悱調)’에 속해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러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다수의 부부윤리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조’를 시발로 ‘염조’와 ‘탕조’를 거치면서 궁극에 가서는 ‘비조’로 귀결되고 있다.
한가지 특징은 ‘염조’와 ‘탕조’에서는 형상화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비조’에 이르러서는 다시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부부윤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부부의 형상이 함께 제시되고 있는 작품은 ‘아조(雅調)’와 ‘비조(悱調)’만 국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조’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혼인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신혼 초의 생활을 다루고 있기에 누구나가 그렇듯이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시기이기에 혼인 당사자인 부부의 형상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아조’에서 그토록 단아하고 아름답게 그려졌던 부부의 형상이 ‘염조’와 ‘탕조’에서는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질곡을 언표하는 ‘비조(悱調)’에 와서야 다시 부부의 형상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결국 ‘염조’와 ‘탕조’에 해당하는 작품군은 부부윤리와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달리 말하자면 부부윤리의 범주에서 수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옥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부부지정(夫婦之情)의 구체적 실현양상이 ‘아(雅)’, ‘염(艶)’, ‘탕(宕)’, ‘비(悱)’로 나누어지고, 네 범주가 순차적인 흐름에 따른 필연적 과정임을 상정할 때, ‘염조’에서는 ‘아내’만이 등장할 뿐 ‘남편’은 ‘염조’의 형상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탕조’에서는 ‘남편’만이 기녀와 등장할 뿐 ‘아내’는 ‘탕조’의 형상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을 때, ‘비조’로까지 유입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염조’와 ‘탕조’의 내용을 부부윤리의 범주에서 함께 용인하고 교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때에도 ‘아조’에서의 다짐이 ‘비조’로의 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은 의문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두 가지 준거에 입각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하나는 부부윤리의 주체라 할 수 있는 ‘남편(夫)과 아내(婦)’의 관계에 주목하였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편의상 ‘인정(人情)’이라 칭했던 ‘욕망(慾望)’의 문제와 이와는 대립적 개념으로 편의상 ‘도리(道理)’라 칭했던 ‘규범(規範)’의 문제와의 상호 관련성에 주목한 논의였다. 이를 ‘아(雅)’․‘염(艶)’․‘탕(宕)’․‘비(悱)’의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우선 ‘아조(雅調)’의 경우, 남편과 아내라는 주체는 함께 형상화되고 있었지만 두 주체 사이에는 당위적 규범만이 존재할 뿐 애정(愛情)에 토대를 두고 있는 주체의 어떠한 실존적 욕망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염조(艶調)’에서는 부부윤리의 두 주체라 할 수 있는 남편과 아내의 자리에 ‘남편’이 존재하지 않고 아내의 ‘농염함’만이 존재하였다. 이말은 아내의 농염함에 대해서는 부부윤리의 범주에서 용인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했다. 또 욕망과 규범도 부부윤리의 범주 내에서 상호 조화를 모색하지 못하고 다만 아내의 현실적 욕망만이 앞서 있을 뿐이었다.
‘탕조(宕調)’의 경우를 보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남편은 존재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아내의 자리가 상실되어 있고 대신 아내의 자리에 ‘기녀(妓女)’가 그 지위를 대신하고 있었고, 아내에 대한 윤리적 규범은 존재하지 않고 기녀를 향하는 욕망만이 넘칠 뿐이었다.
‘비조(悱調)’에서는 부부윤리의 주체인 남편과 아내가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존재가 형상화된 모습은 이지러질대로 이지러진 남편과 아내의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두 주체 사이의 욕망과 규범은 균형을 상실한 채, 오로지 질곡된 욕망만이 앞서고 있을 따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옥이 자신의 시론(詩論)으로 삼았던 ‘삼난(三難)’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긋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론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난(二難)’ 즉 ‘남녀지정(男女之情)’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①혼례때 푸른 술잔과 붉은 화촉을 켜고 혼인하여 서로 묻고 인사 나누는 것도 또한 진실된 정(情)이요, ②향기로운 규방에서 상자에 수를 놓는 것이나 ③이리마냥 싸우고 다투며 성내고 화내는 것도 또한 진실된 것이요, ④담황색 주렴의 백모란같은 눈물을 흘리며 꿈속에서나마 사모하기를 바라는 것 또한 진실된 정이요, ⑤푸른 누각과 버드나무 저작 거리에서 웃으며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 또한 진실된 정이요, ⑥원앙금침과 비취이불의 명주실 붉음에 의지함도 또한 진실된 정이다. 오직 이 한 종류의 진실된 남녀지정(男女之情)이야말로 진실되지 아니한 곳이 없으니, 그 단정함과 장엄함과 정숙함을 하나로 온전하게끔 하면 다행스럽게 그 올바름을 얻을 수 있음이니 이 역시 참되고 오롯한 정이다. 그러나 방만하고 편협하고 게으르게끔 하면 불행하게도 그 올바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또한 진실로 오롯한 정이다. 오직 그 진실됨이기 때문에 그런 까닭에 그 올바름을 잃은 것 또한 경계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①과 ②는 ‘아조(雅調)’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④는 ‘염조(艶調)’에 해당하며, ⑤와 ⑥은 ‘탕조(宕調)’에 해당하고, ③은 ‘비조(悱調)’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는 이처럼 ‘아’, ‘염’, ‘탕’, ‘비’를 모두 진실된 정(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된 정(情)임은 인정을 하면서도 이 진실된 정을 특정한 기준에 따라 서열화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말하자면 ‘아조(雅調)’만을 긍정하면서 ‘염조(艶調)’와 ‘탕조(宕調)’ 그리고 ‘비조(悱調)’에 대해서는 진실된 정이기는 하지만 ‘올바름을 잃어버린(失其正)’ 정(情)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의식 속에는 이같은 인식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염조’와 ‘탕조’에서만큼은 ‘남편 : 아내’의 관계를 긍정하지 못했던 것이라 판단된다.
이번에는 관점을 달리하여, 이옥은 자신이 인식했던 부부윤리의 ‘아’→‘염’→‘탕’→‘비’라는 필연적 연쇄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묘사함으로써 무엇을 얻고자 하였던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단지 당대의 혼인제도가 초래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일반적이며 대다수의 부부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형상을 그려내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질서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인가? 그가 강조하고 있는 ‘남녀지정(男女之情)’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4. 부부윤리의 새로운 질서 모색
지금까지는 ‘아조(雅調)’․‘염조(艶調)’․‘탕조(宕調)’․‘비조(悱調)’를 중심으로 부부(夫婦) 사이에서 형상화된 정(情)의 네가지 구체적 범주를 통해 부부윤리의 한 측면을 살펴보았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한 시대의 윤리나 규범은 그 시대가 허용하는 정(情)의 흐름에 따라 마련된다. 말하자면 특정한 정(情)에 대하여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용납하기를 꺼린다면 그 정(情)은 규범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되는 반면 어떤 정(情)에 대하여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고 용인하게 될 경우, 그 정(情)은 ‘관습’이나 ‘도덕’ 혹은 ‘법’과 같은 사회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고, 윤리적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처럼 ‘정(情)’과 ‘윤리(倫理)’는 상호견제와 절충을 통해 끊임없이 한 사회의 윤리적 성격을 바꾸어 가면서 발전한다.
비유하자면, ‘정(情)’은 자연스러운 ‘물(水)’의 흐름과 같고, ‘규범(規範)’은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일정한 격식 안에 담아두려는 ‘댐’과 같다. 다행히 댐의 규모가 물을 담아두기에 충분한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규범이라 할 수 있는 댐의 규모보다 정(情)이라 할 수 있는 물(水)의 흐름이 거대한 경우에는 반드시 물이 범람하거나 댐이 무너지는 법이다. 그처럼 물이 범람하거나 댐이 무너지게 되는 경우, 한 사회는 기존의 윤리나 규범이 아닌 새로운 규범과 윤리를 요구하게 된다.
이옥이 바라본 조선후기사회의 부부윤리 역시 이미 거대한 물(水)의 흐름을 담아두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하나의 낡고 오래된 댐과도 같다는 인식이 기본 전제로 작용했다. 그러기에 이옥은 부부윤리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도리(道理)’나 ‘규범(規範)’, ‘의리(義理)’, ‘신의(信義)’라는 낡은 부부윤리의 틀을 가지고는 더 이상 변화하고 있는 질서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기에 새로운 틀을 찾고자 하였고, 그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정(情)’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옥은 자신이 말하는 ‘정(情)’에는 이중적 가치가 혼재되어 있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종래의 유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정(情)’은 ‘기(氣)’가 드러난 것이기에 정(情)에는 순정(純正)한 정(情)도 있지만, 순정하지 못하여 많은 수양(修養)을 통해 걸러내야 할 혼탁한 정(情)도 존재하고 있음을 이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탁한 기운의 정(情)조차도 거짓 꾸밈이 없는 진실된 정(情)이기에 그것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인식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소중한 효용적 가치를 지닌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인간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인정(人情)’과 ‘도리(道理)’, ‘규범(規範)’과 ‘욕망(慾望)’은 그 사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부부(夫婦)라는 작은 사회에 주목했을 때, 이옥 이전의 시대가 ‘도리(道理)’를 우위에 둔 부부윤리가 지배적이었다면, 이옥은 그러한 편향성(偏向性)을 지적하면서 부부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었고, 그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은 ‘정(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점에 주목할 때, 부부윤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문학사에서조차 소외시되어 오던 ‘정(情)’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그 중에서도 남녀의 정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는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꺼풀을 벗겨내고 그가 언급하고 있는 ‘정(情)’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아조(雅調)’․‘염조(艶調)’․‘탕조(宕調)’․‘비조(悱調)’의 구체적 형상 가운데, ‘아조(雅調)’만을 올바른 ‘정(情)’의 실상으로 인정할 뿐, ‘염조(艶調)’이하에 대해서는 사실상 용인(容認)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은 한계(限界)로 지적할 수 있다. 어찌보면, 이옥(이(李鈺)의 시론(詩論)인 삼난(三難)과『이언(俚諺)』소재 66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긍정과 부정의 혼재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과 질서를 모색하면서도 과거 가치로의 회귀와 같은 엇갈린 모습들 자체가 중세적 질서로부터 벗어나 근대적 질서로 넘어가고 있었던 이행기(移行期) 문학으로서의 한 단면을 반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판단한다.
5. 결론
이 논문은 이옥의 한시에 형상화되어 있는 부부윤리의 성격과 의미를 밝혀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나아가서 이옥이 주장하였던 부부윤리의 의미가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 지를 살펴보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그는 당대에『시경(詩經)』을 이해하던 방식과는 다소 변별되는 차원에서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그동안 문단에서 그다지 담론화되지 못했던 ‘남녀의 정(情)’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이 ‘남녀의 정’에 주목하여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했지만, 작품의 실상은 부부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작품에 그려진 부부의 정(情)에 주목하여, 부부윤리의 한 단면을 읽어내는 동시에 현대적 의미를 반추해 보고자 한 것이다.
이옥은 부부 관계에서 정(情)과 이(理)의 조화에 따른 흐름이 마치 계절의 변화와 같아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아(雅), 염(艶), 탕(宕), 비(悱)의 질서를 따라 필연적이며 순차적으로 ‘이상(理想)’ → ‘현실(現實)’ → ‘좌절(挫折)’ → ‘질곡(桎梏)’의 궤도를 따라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음을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의 근저에는 당시의 혼인 제도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전제되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부부지정(夫婦之情)’을 포함하는 거시적 관점에서 ‘남녀지정(男女之情)’의 문제를 화두(話頭)로 삼아『이언(俚諺)』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론과 작품 66수를 읽어나가면서, 혹시 그가 부부지정을 포함한 부부윤리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문제삼지 못하고, ‘남녀지정’이라는 보다 포괄적이며 일반화된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같은 점에 혐의를 두고, 그가 거대한 담론으로 쌓아올린 ‘남녀지정(男女之情)’이라는 포장을 한꺼풀 벗겨내고 싶었다. 무리한 집착이 작품의 실상을 다소 작위적으로 분석한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옥의『이언(俚諺)』이 철저하게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작된 결과물이 아닌 이상, 연구자에게 그만한 자유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이 갖는 한계로는, 이옥이 인식했던 ‘아(雅)’․‘염(艶)’․‘탕(宕)’․‘비(悱)’의 필연적 순환 과정을 보다 정치(精緻)하게 논의하지 못했다는 점과 논의 과정을 통해 제기된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는 계속되는 공부를 통해 보강해 나가도록 하겠다.
* 참고문헌 *
1. 자료
『藝林雜佩』(國立中央圖書館 所藏本)
『俚諺』(奎章閣 所藏本)
2. 단행본 및 논문
김균태, 「한국 악부시 연구」(국어교육65,66, 한국국어교육연구회, 1989.7).
, 「이옥의 문학이론과 작품세계의 연구」(서울대 박사논문, 1985).
, 「이옥 연구」(서울대 석사논문, 1977).
, 「이옥의 문학사상연구」(현상과 인식, 1977 겨울호).
김은희, 「이옥의 ‘이언’ 소재 시연구」(성균관대 교육학석사논문, 1990).
김흥규, 『조선후기 시경론과 시의식』(고대민족문화연구소, 1995), 180-190쪽.
윤기홍, 「이옥의 문학론과 문체연구」(한국한문학연구 13집, 1990).
이동환, 「조선후기 한시에 있어서의 민요취향의 대두」(한국한문학연구3.4집, 1979).
이은애, 「이옥의 이언 연구」(성균관대 석사논문, 1990).
이현우, 「이옥 문학에 있어서의 ‘眞情’의 문제」(한국한문학연구19집, 1996).
임유경, 「이옥의 傳연구」(이대 석사학위논문, 1980)
정우봉, 「이옥 시연구」(현대문학, 1994.6).
최은숙, 「조선 후기 민요풍 한시연구」(경북대 석사논문, 1995).
* 부록 -『이언集(俚諺)』소재 한시 작품 66수
◎ 아조(雅調)
1.郎執木雕鴈/妾捧合乾雉/雉鳴雁高飛/兩情猶未已.
2.福手紅絲盃/勸郞合歡酒/一盃生三子/三盃九十壽.
3.郎騎白馬來/妾乘紅轎去/阿孃送門戒/見舅拜勿遽.
4.兒家廣通橋/夫家壽進坊/每當登轎時/猶自淚沾裳.
5.一結靑絲髮/相期到葱根/無羞猶自羞/三月不共言.
6.早習宮體書/異凝微有角/舅姑見書喜/諺文女提學.
7.四更起掃頭/五更候公姥/誓將歸家後/不食眠日午.
8.養蠶大如掌/下𡏨摘柔桑/非無東海紬/要驗趣味長.
9.爲郞縫衲衣/花氣惱儂倦/回針搯襟前/坐讀淑香傳.
10.阿姑賜禮物/一雙玉童子/未敢顯言佩/結在流蘇裏.
11.小婢牕隙來/細喚阿哥氏/思家如不禁/明日送轎子.
12.艸綠相思緞/雙針作耳囊/親結三層蝶/倩手奉阿郞.
13.人皆戱鞦韆/儂獨不與偕/宣言臂力脆/恐墜玉龍釵.
14.包以日紋褓/貯之皮竹箱/手剪阿郞衣/手香衣亦香.
15.屢洗如玉手/微減似花粧/舅家忌日近/薄言解紅裳.
16.眞紅花布褥/鴉靑土紬衾/何必雲紋緞/四龜鎭黃金.
17.人皆輕錦綉/儂重步兵衣/旱田農夫鋤/貧家織女機.
◎ 염조(艶調)
1.莫種鬱陵桃/不及儂新粧/莫折渭城柳/不及儂眉長.
2.歡言自酒家/儂言自娼家/如何汗衫上/臙脂染作花.
3.白襪瓜子樣/休踏碧粧洞/時軆針線婢/能不見嘲弄.
4.頭上何所有/蝶飛雙節釵/足下何所有/花開金草鞋.
5.下裙紅杭羅/上裙藍方紗/琮琤行有聲/銀桃鬪香茄.
6.常日夭桃髻/粧成腕爲酥/今戴簇頭里/脂粉却早塗.
7.且約東隣嫗/明朝涉鷺梁/今年生子未/親問帝釋傍.
8.未耐鳳仙花/先試鳳仙葉/每恐爪甲靑/猶作紅爪甲.
9.纖纖白苧布/定是鎭安品/裁成角岐衫/光彩似綾錦.
10.莫觸頂門簇/轉墜簇頭理/恐有人來看/呼儂老處子.
11.儂有盈箱衣/個個紫繢粧/最愛兒時着/蓮峰粉紅裳.
12.三月松錦緞/五月廣月紗/湖南賣梳女/錯疑宰相家.
13.細吮紅口兒/杻來但空皮/返吹春風入/圓似在傍時.
14.甛嫌中白桂/烈怕梨薑膏/在腥惟花鰒/於果六月桃 .
15.細梳銀魚鬂/千回石鏡裏/還嫌齒太白/忙嗽淡墨水.
16.蹔被阿娘罵/三日不肯飱/儂佩靑玒刀/誰復愼儂言.
17.桃花猶是賤/梨花太如霜/停勻脂與粉/儂作杏花粧.
18.郞愛雙燕美/儂愛燕兒多/一齊生得妙/那個是哥哥.
◎ 탕조(宕調)
1.歡莫當儂髻/衣沾冬栢油/歡莫近儂唇/紅脂軟欲流.
2.歡吸烟草來/手持東萊竹/未坐先奪藏/儂愛銀壽福.
3.奪儂銀指環/解贈玉扇墜/金剛山畵扇/留欲更誰戱.
4.西亭江上月/東閣雪中梅/何人煩製曲/敎儂口長開.
5.歡來莫纏儂/儂方自憂貧/有一三千珠/纔直十五緡.
6.拍碎端午扇/低唱界面調/一時知我者/齊稱妙妙妙.
7.卽今秋月老/年前可佩歸/文君何樣生/儂不愼渠詩.
8.人疑儂輩媒/儂輩實自貞/逐日稠坐中/明燭度五更.
9.不知歡名字/何由誦職啣/挾袖惟捕校/紅衣定別監.
10.聽儂靈山曲/譏儂半巫堂/座中諸令監/豈皆是花郞.
11.六鎭好月矣/頭頭點朱砂/貢緞鴉靑色/新着加里麻.
12.章有後庭花/篇有金剛山/儂豈桂隊女/不曾解魂還.
13.小俠保重金/大俠靑綉皮/近日花房牌/通淸更有誰.
14.儂作社堂歌/施主盡居士/唱到聲轉處/那無我愛美.
15.盤堆蕩平菜/席醉方文酒/幾處貧士妻/鐺飯不入口.
◎ 비조(悱調)
1.寧爲寒家婢/莫作吏胥婦/纔歸巡邏頭/旋去破漏後.
2.寧爲吏胥婦/莫作軍士妻/一年三百日/百日是空閨.
3.寧爲軍士妻/莫作譯官婦/篋裏綾羅衣/那抵別離久.
4.寧爲譯官婦/莫作商賈妻/半載湖南歸/今朝又關西.
5.寧爲商賈妻/莫作蕩子婦/夜每何處去/今朝又使酒.
6.謂君似羅海/女子是托身/縱不可憐我/如何虐我頻.
7.三升新襪子/縫成轉嫌寬/箱中有紙本/何不照憑看.
8.間我梳頭時/偸得玉簪兒/留固無用我/不識贈者誰.
9.亂提羹與飯/照我面門擲/自是郞變味/妾手豈異昔.
10.巡邏今散未/郎歸月落時/先睡必生怒/不寐亦有疑.
11.使盡闌干脚/無端蹴踘儂/紅頰生靑後/何辭答尊公.
12.早恨無子久/無子反喜事/子若渠父肖/殘年又此淚.
13.丁寧靈判事/說是坐三災/送錢圖畵署/另購大鷹來.
14.夜汲槐下井/輒自念悲苦/一身雖可樂/堂上有公姥.
15.一日三千逢/三千必盡嚇/足趾鷄子圓/猶應此亦罵.
16.嫁時倩紅裙/留欲作壽衣/爲郞鬪箋倩/今朝淚賣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