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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퇴계(李退溪)와 두향(杜香)의 이야기
굴어당
2011. 9. 19. 12:43
[명상음악] 매화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었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나흘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