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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31.寒食(韩翃)

굴어당 2011. 9. 25. 08:50

우리 선조들은 한식(寒食)을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사절일(四節日)로 중시했다. 신라인 최치원의 『계원필경(桂苑筆耕)』에는 전사한 장사(將士)들을 한식 때 위로하는 제문(祭文)이 남아 있어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속담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가 한식(寒食)이고, 106일째가 청명(淸明)이기에 나왔는데 올해처럼 청명이 하루 먼저 오기도 하니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한식은 불을 금하는 금화일(禁火日)로서 찬밥을 먹는데 여러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진세가(晉世家)』 에는 진 문공(晉文公)과 19년간 망명생활의 고초를 겪은 개자추가 문공 즉위 후 소외되자 면산(綿山)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뒤늦게 문공이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지만 거부하고 타 죽었기 때문에 이날에는 화식(火食)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晉)의 육홰(陸翽)가 편찬한 『업중기(鄴中記)에는 “병주(幷州) 풍속에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애도해 3일 동안 불 때기를 금한다”고 적고 있다.

 국가에서 계절에 맞춰 새 불씨를 내려주기 전까지 불을 금하는 개화(改化) 때문이란 설도 있다. 『주례(周禮)』에 ‘사철마다 나라의 불[國火]을 바꿔서 계절 질병[時疾]을 구제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불씨를 오래 쓰면 양기(陽氣)가 강해져 전염병[厲疾]이 돌기 때문에 주(周)나라 때는 계절마다 나라에서 바꾸어 주었다. 새 불씨를 받기 전까지 불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이때 나무를 문질러 불을 일으키는 것을 찬수(鑽燧)라고 하는데, 그 철의 방위색에 맞는 나무로 불을 일으켰다. 예컨대 겨울의 방위색은 검은색이다. 『태종실록』 6년 3월 24일자는 ‘푸른 느릅(楡)·버드나무(柳)는 봄에 사용하고, 붉은 살구(杏)·대추나무(棗)는 여름에 사용하고, 한여름에는 황색의 뽕(桑)·산뽕(柘)나무를 사용하고, 가을에는 흰 조롱(柞)·줄참(楢)나무를 사용하고, 겨울에는 검은 회화(槐)·박달(檀)나무를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한식에는 바람이 급하기 때문에 3일 동안 불을 금했다’고 화재 방지의 목적도 있다고 전하는데, 세종도 재위 13년(1431) 이날 불이 났다는 보고를 듣고 앞으로는 아침에 저녁밥까지 짓고 오후에는 불을 쓰지 말라고 명했다. 한식 성묘 때가 1년 중 가장 산불이 많다고 한다. 올해 한식 전후 성묘는 선조들처럼 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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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 寒食 ]

  • 유형

    개념용어

명절의 하나.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든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다. 그래서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아 3월 한식에는 꽃이 핀다.’는 말이 전한다.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淸明節) 바로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우리 나라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4절후 속에 들어 있지는 않으나 습속으로 전해 내려오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舊火〕을 일절 금단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벼슬을 마다하고 면산(?山)에 숨어(혹은 19년을 섬겼는데 俸祿을 주지 않으므로 숨었다고도 전한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제사)하고, 민간에서는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만일 조상의 묘가 멀 때에는 묘지기가 대리로 제향(제사)를 올려준다. 이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 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한식 성묘

참고문헌

「洌陽歲時記」
「朝鮮常識問答」(崔南善, 東明社, 1947)
「韓國의 歲時風俗」(崔常壽, 弘人文化社, 1960)
「朝鮮風俗集」(今村? -京城斯道館, 191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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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면산(綿山)과 한식(寒食)
2011.07.08 검색어표시
한식(寒食)의 유래지 중국 산서성 면산(綿山) 면산(綿山)을 출발하기 전 중국인과 함께한식(寒食)을 아십니까? 흔히 말하는 청명(淸明), 한식(寒食) 이날에 묘를 건드려도 아무 탈이 없다고 전해오는 한식을 제대로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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