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음식기행 .쑤저우 강남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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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전체를 리조트 단지로 개발한 우전의 야경. |
이 지방은 하나라 시조인 우왕(禹王)이 자신의 치수사업에 공헌했던 서(胥)라는 대신에게 식읍으로 주었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고서(姑胥)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러나 ‘胥’는 자주 쓰는 글자가 아니라 발음이 비슷한 ‘蘇’로 바뀌었고, 원대에 ‘郡’을 ‘州’로 바꾸면서 ‘蘇州’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지요. 지명, 국명, 족칭이나 성씨와 같은 어휘에는 쑤저우의 ‘蘇’와 같이 그에 관련된 역사와 문화가 퇴적되어 있습니다. 언어란 인류사의 화석이고, 고유명사는 역사의 DNA가 새겨진 귀중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쑤저우에서는 원림(園林)과 수향고전(水鄕古鎭)을 둘러보면 좋지요. 줘정위안(拙政園)은 중국 4대 원림(園林) 중의 하나로 명나라 때 생겼습니다. 당시 문인 묵객들이 누렸을 호사를 가히 짐작해 볼 만합니다. 누각을 따라 자연 풍광을 즐기다 보면 출출해지지요. 이때 이 지방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식당에서 쑤저우의 대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역사도 오래된 유명한 식당은 쑹허러우(松鶴樓·平江區 太監弄 72號 近玄妙觀, 0512-6770-0688)와 더웨러우(得月樓, 平江區 太監弄 43號, 0512-6523-8940)입니다. 두 식당 모두 쑤저우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관첸제(觀前街) 바로 남쪽의 타이감농(太觀弄)에 있어서 찾기 쉽습니다.
두 곳 모두 쑹수구이위(松鼠桂魚), 칭차오샤런(淸炒蝦仁), 인위춘차이탕(銀魚蒓菜湯)이 대표적 음식이지요. 쑹수구이위는 계어라는 생선을 반으로 갈라 칼집을 내어 튀기면 생선 모양이 다람쥐 모양으로 변하는데, 여기에 달콤새콤한 소스를 얹어 먹는 요리입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 남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입니다. 칭차오샤런은 신선한 새우의 껍질을 벗겨 소금간만 살짝 해서 볶아낸 요리입니다. 한입에 쏘옥 들어가는 새우가 탱글탱글하고 맛이 깔끔합니다. 더웨지(得月鷄)도 폭신하게 씹히는 고기 맛이 일품입니다.
물길 따라 과거로의 여행
쑤저우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수향고전입니다. 크고 작은 하천과 소택지가 수없이 많고 그 사이에 인공수로까지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물에 기대어 발전해 왔기 때문에 강남수향(江南水鄕)이라고도 합니다. 강남수향은 집 앞으로도, 뒤로도 물길이 이어진 물의 마을입니다. 물길과 뭍길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어디든 작은 배로 닿을 수 있지요. 집들이 밀집되어 있어 도시와 유사하지만 일반적인 도시와는 다르고 물이 풍부해서 농업과 어업이 발달했으나 농어촌과도 또 다른 독특한 취락 형태를 보여줍니다.
수운이 용이해서 상업이 발달했고 교역망을 따라 수공업 역시 많이 발달했으니, 이 강남수향은 중국에서 친수성(親水性)이 가장 입체적으로 발달된 취락 구조입니다. 강남수향의 물길을 따라 걷거나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다 보면,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없는 물의 마을에서 잠시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 간 것 같기도 합니다. 밤에 등을 밝혀 수로에 불빛이 반사되고, 물가에 놓은 테이블에서 맥주라도 한잔 하게 되면 여행객의 로망에 흠뻑 젖어들기도 하지요.
강남수향은 저우좡(周庄), 퉁리(同里), 우전(烏鎭) 등을 꼽습니다. 이 가운데 저우좡은 중소도시의 느낌이고, 퉁리는 시골스러운 정취가 그득하고, 우전은 한 마을을 통째로 리조트 단지로 개발한 곳으로 각기 특성이 달라 이들을 차례대로 둘러본다면 아주 멋진 중국 음식 기행이 됩니다.
강남수향에서 식사할 때는, 물이 흐르는 길가에 식탁을 낸 식당들이 꽤 있으니 수향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해가 지고 집집마다 붉은 등에 불을 밝히면 식탁 주변에 낭만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강남 거부 이름 붙은 족발 요리
- ▲ 저우좡의 토속음식인 완싼티, 민물조개와 연두부를 넣고 끓인 방러우더우푸바오.
저우좡은 상하이 훙차오(虹橋)공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습니다. 송대부터 문헌상에 등장하는 옛 마을이지요. 원나라 말기에는 강남 최고의 부자였던 심만삼(沈万三)이 살았습니다. 이 강남 거부는 명태조 주원장에게 군자금을 대주었으나 나중에는 주원장의 오해를 받아 윈난으로 유배를 당했던 사람인데, 그가 살았던 집터와 후손들이 살았던 저택인 심청(沈廳)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저우좡의 토속음식으로, 돼지족발로 만든 완싼티(万三蹄)가 상당히 유명합니다. 심만삼의 이름이 붙어있고, 저우좡에서는 설날이나 잔칫상에 꼭 올라야 하는 음식입니다. 한 덩어리에 40~50위안 정도 하니 서넛이 함께 주문한다면 맛볼 만합니다. 육질이 아주 부드럽고 남방 특유의 단맛이 조금 강한 편이지요.
그런데 족발 요리에 강남 거부의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주원장이 집권 초기에 자신에게 군자금을 대주던 심만삼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탐내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심만삼 가문의 유명한 요리인 돼지족발 요리가 자연스레 상에 올랐고, 주원장은 심만삼에게 무엇으로 만든 요리냐고 물었습니다. 당시에는 주원장의 성인 ‘朱’와 발음이 같지만 욕설로 들릴 수 있는 ‘猪(돼지 저)’란 말을 주원장 앞에서 입 밖에 냈다가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돼지족발 요리를 무엇으로 만들었냐고 물었으니, 너를 죽이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심만삼에게는 목숨이 걸려있는 난감한 질문이었지요.
이때 심만삼은 기지를 발휘해 내 다리(万三的蹄)라고 답을 해서 죽음을 면했고, 그로부터 이 요리는 만삼제, 곧 완싼티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전해져 왔답니다. 물론 심만삼은 이 순간에는 죽음을 면했지만 결국 다른 일을 핑계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는데, 주원장의 황후가 직접 구명을 호소하여 죽음만은 면한 채 윈난으로 유배를 갔다고 전해집니다. 권력이란 피할 수도 없지만 가까이 할 게 아니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입니다.
저우좡에서라면, 물가가 아니라 아예 작은 배 위에서 식사를 즐겨볼 만합니다. 저우좡의 난스제(南市街) 끝에 동쪽으로 건너가는 조금 긴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 근처에 작은 배를 정박해 두고는 배 위에 식탁 세 개를 차려놓은 식당이 있습니다. 번듯한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뱃머리에 작은 칠판을 세우고 ‘난후위자차이(南湖漁家菜)’라고 써놨으니 이게 식당 이름인 셈입니다. 문의 136-0626-4986.
완싼티를 포함해서 다섯 가지 요리에 58위안을 받는 세트 메뉴도 있고, 주인장이 근처 호수에서 잡은 삼백(三白)도 있고 언제나 반가운 채소 요리도 많습니다. 가격도 비싸지 않으니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객들도 수향다운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는 명소로 칠 만하지요.
타이호 주변의 민물생선 요리
- ▲ 둬자오위터우, 계어로 요리한 쑹수구이위.
저우좡을 포함한 타이호(太湖) 주변 지역의 식당에서는 타이후싼바이(太湖三白)라는 말이 자주 보입니다. 흰색 세 가지라는 말인데, 민물고기 바이위(白魚)와 민물새우(河蝦), 몸통이 하얀 은어(銀魚)입니다. 이 세 가지를 세트 메뉴로 내는 식당도 많습니다. 바이위는 잔가시가 많은 편이지만 육질이 부드럽고 맛도 담백합니다. 쪄서 발갛게 된 새우요리는 가볍게 맥주에 곁들이면 좋습니다. 은어는 자잘한 크기의 민물고기인데 계란을 넣어 볶기도 하지요.
퉁리(同里)는 저우좡에서 서쪽으로 10여㎞ 거리에 있습니다. 저우좡보다 훨씬 시골스러운 분위기지요. 마을 중심부의, 물이 교차하는 곳에 세워진 작은 세 다리(三橋)가 꽤 유명하고 퇴사원(退思園)과 같은 원림(園林)도 유명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주탄쯔판퉁(酒 子飯桶)이란 작은 식당을 찾아볼 만합니다. 퉁리 마을 입장권을 검표하고 들어서면 바로 다리를 하나 건너게 되는데, 건너자마자 좌회전해서 20여m 거리에 식당이 있습니다. 크지 않은 문 좌우로는 메뉴와 함께 갖가지 사진들을 붙여두고 있습니다.
이 식당의 대표 요리는 토종닭으로 만든 주탄쯔투지(酒 子土鷄)입니다. 식사 시간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기 일쑤여서, 조금 늦게 가면 매절되는 바람에 군침만 흘릴 수도 있으니 조금 이른 시간에 가는 게 낫습니다. 민물조개와 연두부를 뚝배기에 넣고 끓인 방러우더우푸바오(蚌肉豆腐煲)도 고소한 맛이 부드러운 두부와 잘 어울립니다. 연 잎사귀로 싸서 쪄낸 허예자러우(荷葉扎肉)도 일인당 하나씩은 즐겁게 맛볼 수 있지요.
물의 나라에 떠있는 마을, 우전
우전은 동서남북 네 마을인데, 둥자(東柵)·시자(西柵) 두 곳이 강남수향으로 잘 개발되어 있고, 남북 두 마을은 일반 주거지입니다. 저우좡이나 퉁리는 마을 안쪽으로 물이 흘러 지나가는 반면, 우전은 물의 나라에 작은 마을이 둥둥 떠 있는 느낌입니다. 경영 체계는 저우좡이나 퉁리와는 좀 달라 보입니다. 우전은 개발회사가 이 마을 전체를 사들여 체계적이고 통일성 있게 정비한 다음, 다시 원 거주자들에게 민박이나 상점 등을 위탁해서 경영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집의 주인이었고 지금도 그 집에 살지만 이제는 리조트의 직원인 셈이지요.
민박을 정할 때에도 여행객이 직접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찾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민박 안내센터에서 일괄적으로 접수해서 배정합니다. 민박센터에서는 컴퓨터를 통해 객실 침대에서 안팎의 조망까지 실제 사진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합니다. 방값은 200위안에서 500위안 정도로 싸지는 않지만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합니다.
개개의 민박뿐 아니라 골목골목 구석구석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어서, 중국의 전통마을에 일본 사람들이 집단 이주해서 사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지요. 주민들은 위생과 서비스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는지 거북한 호객행위 하나 없이 친절하고 깨끗하며 중국의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볼거리 측면에서도 개인 사업자가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는 훌륭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수공업 방식 그대로 누에에서 실을 추출하고, 베틀에 앉은 처자가 직접 직조를 하고, 특히 화려한 수를 놓아가며 황제의 옷을 만드는 것도 한 과정 한 과정 모두 무료로 참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도구들을 나열해 놓은 전시가 아니고, 옛날 흉내만 내는 시연도 아니고, 실제 고급 기술자들이 직접 생산을 하는 현장을 재현해 놓고, 누구나 부담 없이 무료로 참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지요. 찻잔이나 부채와 같은 작은 기념품 역시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 품질 좋은 상품들만 매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카페나 맥주바 역시 멋진 인테리어에 세련된 서비스가 휼륭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중국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게 되는 곳이지요. 중국의 전통이 현대적 서비스와 체계적인 시스템과 잘 어우러져 있어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나 관광산업 관련 인사들에게 한 번씩은 답사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우전은 야경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물의 표면과 집을 짓기 위해 쌓은 낮은 축대와 오래된 기와지붕에 비쳐 있는 조명, 그리고 골목골목 구석구석까지 센스 있고 세련되게 비춰주는 조명은 사람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포근하게 끌어안습니다. 우전에는 몇 개의 전문 식당이 있지만 수향(水鄕)다운 식사는 역시 수십 개에 달하는 민박에서의 식사입니다. 물가에 테이블을 놓고 오붓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음식은 민박의 주인장이 만드는 탓에 민박에 따라 기복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중국 식당의 평균치보다는 좋습니다.
민박센터에서 둘러보면 민박의 음식들을 평가해서 어느 민박의 어떤 음식을 추천한다고 하는 안내자료가 걸려 있기도 합니다. 올 여름에는 민박 9동(棟)의 둬자오위터우(剁椒魚頭)가 최고로 평가받았답니다. 이 지방의 토속음식이 아니라서 약간은 아쉽지만, 매운맛이 일품인 이 후난성 요리에 가벼운 반주를 곁들여서 저녁을 한다면 환상적입니다. 특히 이 찜요리의 남은 육수에 넣어주는 삶은 면(바이멘·白面)이 아주 맛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