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장안의 밤 ‘자오쯔’를 맛봐라! 산시성 시안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입니다. 장안은 춘추전국시대를 포함해 주(周)나라와 진한(秦漢)시대의 수도였고, 수당(隋唐) 시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융성했던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당 제국의 수도 시절 장안의 인구는 100만명이 넘었습니다. 당시 중동과 유럽 쪽에서 큰 도시를 꼽으면 로마와 바그다드, 이스탄불 정도였으나, 인구나 면적 등에서는 장안과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장안이 인구 100만명 규모의 제국 수도로 꽃을 피우고 있었을 때, 로마는 인구 10만여명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세우지 못한 채 부패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으니까요. 장안은 북방에서 새로운 기운을 몰고 내려온 선비족이 중원의 다수 한족을 융합해 개방적인 국제국가로 번영을 구가한 반면, 로마는 게르만이라는 북방 신진세력과 부딪치자 속절없이 파괴와 퇴행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진한시대 장안의 경우 멀리서 찾아온 외국인들이 일만 마치면 모두 돌아가는 곳이었지만 당시대의 장안은 달랐습니다. 서역이나 북방, 동방에서 수많은 유학생과 장사꾼들이 몰려들었고, 한번 들어오면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살려고 했습니다. 이질적이었던 호(胡)와 한(漢)이 융합하여 세워진 당나라는 누구든지 받아들였고 어떤 종교나 사상이든 관대하게 용인했으며 어떤 물자든 시장에서 교역이 되게 했습니다. 국립교육기관인 국자감에는 8000여명의 외국 유학생이 있었고, 외국인이 거주하던 집이 장안에 1만여채나 됐다고 합니다.
이때 맛있고 멋있는 것은 주로 서쪽에서 많이 들어왔습니다. 서역 고창(高昌)의 포도주가 중원에서 직접 양조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고, 우즈베키스탄에서 들어온 복숭아도, 네팔에서 들어온 시금치와 흰파도 이때부터 널리 재배되었습니다. 서역에서 온 미인들이 있는 주점인 호희주사(胡姬酒肆) 역시 장안의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자오쯔(餃子)도 실크로드를 통해 활발하게 이뤄진 동서 교류 품목 중 하나였지요. 자오쯔를 중국 동북지방의 음식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연원으로 따지면 그렇지 않습니다. 1972년에 신장성 투루판(吐魯番)에서 발굴된 아스타냐 고분군 가운데에 포함돼 있던 당시대의 묘에서는 온전한 모양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자오쯔가 발굴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장안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통해 자오쯔를 비롯해 많은 음식문화가 오고갔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안에서 진시황의 병마용과 실크로드의 흔적들을 보면서 수천 년의 중국 역사를 음미하는 여행길에 ‘장안의 화려한 밤처럼 화려한 자오쯔’를 맛보는 것도 괜찮은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오쯔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얇은 만두피에 고기·채소 등으로 만든 소를 넣고 여러 가지 모양을 낸 다음에 쪄낸 음식인데, 시안에는 단순한 자오쯔가 아니라 자오쯔옌(餃子宴)이 꽤 유명합니다. 자오쯔옌은 말 그대로 갖가지 모양과 맛과 향이 총출동하는 자오쯔 잔칫상입니다. 자오쯔가 100가지라면 100가지 모두 모양이 다르고, 소도 전부 다릅니다. 맛도 100가지라 해서 ‘일교일형일태, 백교백함백미(一餃一型一態, 百餃百餡百味)’라고 합니다.
만들어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소로 만들고, 낼 수 있는 모든 모양을 다 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에는 일반적인 고기에 채소는 물론이요, 상어지느러미와 전복과 같은 고급 재료까지 있습니다. 익히는 방법도 증기에 찌고(蒸), 끓는 물에 익히고(煮), 지지거나(炸) 굽기도(烤) 합니다. 맛도 짜고(咸) 달고(甛) 얼얼하고(麻) 맵고(辣) 시고(酸), 또는 이상한 맛(怪)도 냅니다. 그렇게 익혀내면 향도 다양합니다. 고기향(肉香), 계란향(卵香), 과일향(果香), 장향(醬香), 또는 해산물향(海鮮香)도 있습니다. 모양도 다양합니다. 꽃이나 새, 물고기, 벌레 모양에서부터 기묘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지경입니다.
산시가무대극원(陜西歌舞大劇院, 주소 碑林區 文藝路 161號, 전화 029-8785-3295)에서 당락무(唐樂舞)를 보면서 자오쯔옌을 경험합니다. 하늘거리는 춤사위가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펼쳐지고 식탁 위에 갖가지 자오쯔가 풍성하게 올라오면 장안의 밤에 호희주사(胡姬酒肆)를 찾은 느낌이 듭니다.
공연관람을 빼고 자오쯔옌에 집중하고 싶다면 시안 중러우(鐘樓) 서북쪽에 접해 있는 ‘더파장 자오쯔관(德髮長餃子館)’을 찾으면 됩니다. 1936년에 개업했으니 66년이나 된 자오쯔옌 전문점입니다. 1층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과 비슷합니다. 홀의 중앙에 있는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식대를 선불한 뒤 빈 테이블을 골라 앉으면 잠시 후에 자오쯔가 정확하게 자리를 찾아옵니다. 자오쯔 이외의 량차이(凉菜)는 종업원들이 카트에 싣고 다니므로 눈으로 보고 직접 고르면 됩니다.
더파장에서는 주문하기 전에 입구에 있는 모형 자오쯔를 구경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모두 먹어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자오쯔가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여행객이라면 ‘디카 놀이’를 한참이나 해야 합니다. 동행 인원이 많고 자오쯔옌의 상차림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2층으로 올라가 방에서 식사를 하면 됩니다. 세트 메뉴를 선택하면 되는데 사람 수로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시안에서 맛볼 만한 또 다른 특색있는 음식은 파오모(泡饃)입니다. 서역을 통해 들어온 밀가루와 북방 초원의 신선한 양고기가 어우러진 독특한 음식입니다.
파오모의 ‘파오(泡)’는 거품이란 뜻 이외에 물에 담근다는 뜻도 있습니다. 모(饃)는 발효되지 않은(부풀지 않은) 반죽으로 만들어 딱딱하게 만든 빵을 말하지요. 파오모는 딱딱한 빵을 새끼손톱 크기로 잘게 뜯어 그릇에 넣은 다음 푹 고아진 양고기 또는 쇠고기 국물을 부어서 먹습니다. 다른 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음식입니다.
이 파오모와 관련해서는 송 태조인 조광윤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조광윤이 아직 뜻을 펼치기 전, 빈곤에 시달리며 장안의 거리를 배회할 때 지니고 있는 거라고는 마른 빵 두 덩어리였으나 너무 딱딱해서 도저히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더랍니다. 마침 근처의 양고기 가게에서 양고기를 넣고 삶고 있기에 주인에게 간청해서 국물을 좀 얻어 그것을 찍어 먹었답니다. 조광윤이 측은해 보인 가게 주인이 다시 그릇에 마른 빵을 잘라 넣게 하고는 끓는 양고기 육수를 부어 주었고, 조광윤은 너무나 맛있게 그릇을 비웠답니다. 곤궁한 시절에 생면부지의 고깃간 주인의 호의로 배고픈 한끼를 잘 해결했으니 얼마나 기억에 남았겠습니까.
10년 후 조광윤은 황제가 돼, 장안으로 순행을 갔다가 그 양고기 가게가 생각나더랍니다. 행차를 멈추고 그 가게를 찾아 10년 전에 먹었던 것을 다시 청했답니다. 그러나 이 가게는 고깃간이라 준비된 빵이 없었고, 부인에게 서둘러 빵을 구우라 했으나 발효된 반죽이 없어 딱딱한 빵을 구웠답니다. 고깃간 주인이 생각하니 황제에게 소화도 잘 안 되는 빵을 올릴 수가 없어 고민하다가, 빵을 잘게 잘라 그릇에 넣고는 끓는 양고기 육수를 부어 올렸습니다. 황제 조광윤은 파오모 한 그릇을 잘 먹고는 은 100냥을 하사했답니다. 곤궁했던 시절의 호의에 감사를 표시한 것이겠지요. 황제가 돌아간 뒤 장안에는 이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답니다. 그 이후 장안에서는 딱딱한 빵을 잘게 부순 다음 양고기 국물을 부어먹는 파오모가 크게 유행했답니다. 당시의 황제 마케팅은 요즘의 톱스타를 활용한 마케팅보다도 훨씬 파워가 있었겠지요.
시안에서 역사가 있는 파오모 전문 식당을 찾는다면 라오쑨자(老孫家, 주소 雁塔區 雁塔路2號 大雁塔北廣場 美食街 音樂噴泉 西側 燈具城 對面, 전화 029-8553-3855)와 퉁성샹(同盛祥, 주소 碑林區 西大街5號 중러우 근처, 전화 029-8721-8711)을 권할 만합니다. 라오쑨자는 1898년 청나라 광서제 시절에 개업한 식당이니 110년이 넘었고, 퉁성샹 역시 80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중국 정부가 공인하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라오쯔하오(老字號)입니다.
어느 지역이든 여행객에게 가장 흥미로운 곳의 하나는 야시장 먹자골목입니다. 실크로드의 동쪽 출발점인 시안에서라면 이슬람풍의 먹자골목을 찾아보는 게 그 역사적 위상과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더파장에서 식사를 했다면 그 뒤편의 베이위안먼(北院門) 후이팡제(回坊街)를 찾아보면 재미있습니다. 해가 질 때가 되면 노점상들마다 불을 켜고 장사를 시작하는데, 그 북적거리는 거리 자체가 재미있지요. 잡화상도 많지만 가장 많은 것은 역시 먹는 것, 샤오츠(小吃)입니다. 제대로 된 식당도 있지만 길거리 포장마차와 노점상들이 많습니다. 하나하나 구경하다가 한두 개쯤은 가볍게 맛을 볼 만합니다. 이슬람교도가 하는 곳에서는 술을 팔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