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양고기, 한 손엔 단도 들고 바이주 한잔.초원의 전사 기분 느낄 수 있는 초원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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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멍구의 초원 |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의 초원이 제대로 새겨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방영 시기부터인 것 같습니다. 1990년대에는 유목민의 영웅 칭기즈칸이 지난 1000년간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인물로 꼽히면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발흥했던 초원에 한층 더 깊은 관심이 쏠리게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가 한반도에서만 맴돌던 기존 사학의 옹색함을 깨뜨리고 북방과 유라시아로 시각을 넓히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초원의 역사가 코앞으로 다가왔지요.
아시아에서 초원이라 하면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떠올리겠지만, 중국에서 초원이라 하면 바로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입니다. 네이멍구는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여덟 개의 성과 접하면서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좌우의 길이가 3000㎞나 됩니다. 초원의 역사와 문화, 초원의 음식을 맛보기에는 적격입니다.
네이멍구는 역사적으로는 몽골족의 강역이었지만 현재의 몽골공화국과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의 영토입니다.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워 대륙을 경영할 때 일부 몽골족이 만주족과 협력하여 청나라에 속했는데 당시 청나라에 협력한 몽골족들의 땅이 네이멍구자치구가 됐습니다. 당시 청나라에 복속하지 않았던 몽골족들의 땅이 오늘날의 몽골공화국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원은 네이멍구 동북부인 후룬베이얼(呼倫貝爾)입니다. 베이징에서 직선거리로 1000㎞ 이상 북으로 가야 하는 먼 곳이라 우리나라 사람의 발자취는 많지 않습니다.
6~8월이 가장 아름다워
적은 강수량에 기대어 낮게 자라는 풀로 가축을 키워 생존해온 유목민들의 고향은 5월부터 풀이 나면 6~8월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8월 말이면 초원이 벌써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고 겨울에는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한이 몰아칩니다. 후룬베이얼은 후룬(呼倫)과 베이얼(貝爾)이라는 호수의 이름을 합친 것인데, 행정 단위로는 ‘시’지만 넓이가 남북한 면적보다 큰 26만4000㎢나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구려를 건국한 북방 민족들이 고구려 건국 이전에 머물던 곳의 인접지역이고, 훗날 북위를 세워 수당제국을 건설한 선비족들이 AD 1세기경 남하하기 시작한 곳입니다. 10~12세기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가 힘을 떨치던 시절에는 칭기즈칸의 가까운 조상들이 이곳에 살다가 오늘날의 몽골공화국 동부지역으로 이동했고, 칭기즈칸과 그의 후손들이 세계를 정복할 때에는 몽골제국의 후방으로서 몽골 정예군이 전쟁의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넓게 보자면 고구려와 북위·수당제국과 몽골제국 모두 이 초원, 또는 초원의 인근에서 발원한 것이지요. 실제로 초원은 아름다운 풍경보다 더 위대한 동아시아의 거대한 역사를 품고 있으니 역사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두고 여행한다면 후룬베이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지요.
후룬베이얼을 여행한다면 탁발 선비족이 남긴 족적을 따라가는 것도 좋습니다. 후룬베이얼 동쪽, 헤이룽장성에 가까운 어룬춘자치기(鄂倫春自治旗) 아리허전(阿里河鎭)에는 알선동(嘠仙洞)이란 동굴이 있습니다. 이 동굴은 AD 4세기 북위(北魏)를 세운 탁발선비족의 조상들이 AD 1세기경 서남으로 이동하기 전에 살던 곳이라는 사실이 완벽하게 고증된 동굴입니다.
이들은 고구려 조상의 이웃사촌으로서, 역사를 조금만 넓게 보면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민족입니다. 이 동굴 앞을 흐르는 물이 아리허(阿里河)인데, 우리 한강의 옛 이름인 아리수와 똑같습니다. 압록강의 중국어 발음이 ‘야뤼’인데 모두 같은 발음입니다. 민족이 이동하면서 지명도 가져간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지역이 우리 고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고구려의 사촌인 탁발선비족의 자취
- ▲ 네이멍구의 양떼
기원전 이 지역에 살던 탁발선비족은 남쪽의 고구려와 서남쪽의 한나라에서 전해지는 번영의 소식을 접했을 것이고 인구가 늘어나자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민족이동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고구려와는 다른 방향, 즉 대흥안령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해 초원으로 나갑니다. 지금도 아리허전에서 건허(根河)로 가는 기차나 버스를 타면 대흥안령 삼림지대를 통과하는데, 그 옛날 탁발선비족이 이동했던 루트와 같은 경로입니다.
건허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어얼구나(額爾古納)로 가는 길은 삼림에서 초원으로 바뀌는 지역인데 초원을 흐르는 강과, 삼림에서 초원으로 바뀌어가는 차장 밖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지요. 자작나무의 하얀 줄기가 숲을 이뤄 햇살에 반짝이기도 하고, 넓은 구릉에 하얀 양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습니다.
어얼구나에서 다시 진장한(金帳汗·깁차크칸) 몽골부락으로 내려가 초원의 집인 게르에서 유숙한 다음, 후룬베이얼의 중심도시인 하이라얼시(海拉爾市)를 거쳐 후룬호(呼倫湖)까지 가면 AD 1세기에 이루어진 탁발선비족의 1차 이동이 끝납니다.
탁발선비족은 이 호수 인근에서 살다가 다시 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해서 오늘날 네이멍구자치구 중부지역을 거쳐 산시성 다퉁(大同)에서 북위를 세운 다음 낙양으로 수도를 옮겨갔습니다.
탁발선비는 한나라와 흉노제국이 수백 년간 사생결단의 전쟁을 벌여 두 나라 모두 쇠망한 것과는 반대로, 북방 유목문화와 남방 농경문화를 한데 융합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합니다. 북위는 북방에서 출생한 유목국가지만 중원의 백성을 포용하여 중원에 터전을 잡았고 남북 문명융합의 진통 끝에 수나라를 출산하여 썩어빠진 남조를 정벌하며 대륙을 통일했습니다. 수나라는 대륙의 정치적 통일이라는 역사적 역할을 이루자마자 또 다른 탁발선비 왕조인 당나라에 동아시아 국제국가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물려줬습니다.
북방이 주도하여 남방과 북방이 융합된 당나라는 아시아 최초의 국제국가라고 할 만합니다. 신라와 일본은 물론이고 서역과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동아시아 최초로 남북의 문명을 한데 융합해낼 수 있었던 초원의 힘을 후룬베이얼 초원여행에서 느낄 수 있다면 더 없이 귀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음식 이야기로 넘어가지요. 21세기 초원으로의 여행은 로망일 수 있지만 전통시대 초원에서의 삶은 거칠고 척박하기만 했습니다. 강수량이 적어 생활용수는커녕 식수 조달도 수월치 않았습니다. 다만 순한 동물들과는 눈높이를 맞추고 야생동물에겐 활을 겨누면서 유목과 사냥과 전투와 이동 속에서 생존했지요.
환경이 이러하니 초원의 음식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채소가 거의 없고 오직 가축에서 나오는 고기와 젖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원의 음식문화를 ‘홍과 백’이라고 하는데 붉은 고기와 흰 젖을 말합니다.
양고기는 매콤한 양념장에 찍어 먹어
- ▲ 양고기 요리인 서우바러우. 옆에 놓인 단도로 고기를 잘라 먹는다.
후룬베이얼 초원에서는 전통적인 초원의 음식 서우바러우(手扒肉)를 즐겨볼 만합니다. 거친 초원에서 부드러운 고기를 음미하면서 호방한 북방 유목민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알선동에서 후룬호까지 가는 동안에 많은 식당에서 서우바러우라는 음식 이름을 볼 수 있는데 초원에서 가장 전통적인 음식입니다.
바(扒)는 뜯어내다는 뜻으로, 서우바러우는 손으로 뜯어먹는 고기라는 말이지요. 실생활에서는 대부분 양고기이기 때문에 ‘손으로 집어먹는 양고기(手抓羊肉)’라고도 합니다. 주로 저녁식사 때 많이 먹는데 조리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고기가 붙은 뼈를 마디에 따라 큼직하게 자른 다음, 소금이나 양념을 일절 넣지 않은 맹물에 삶아냅니다. 너무 삶아버리면 고기가 퍽퍽해지기 때문에 7~8분 정도 삶으면 반쯤 익지요. 반숙을 하면 겉만 살짝 익어 부드럽습니다. 속은 덜 익었어도 느끼하거나 누린내가 나지 않으며 동물 체내에 있던 비타민이 살아있어서 영양학적으로도 좋다고 합니다.
먹을 때에는 한 손으로 살이 붙어있는 뼈를 잡고 한 손으로는 멍구다오(蒙古刀)라고 하는 짧은 칼로 잘 익은 살점을 발라 매운 양념장에 찍어 먹습니다. 양념장은 파와 생강, 산초, 후추, 소금, 식초, 고추기름 등으로 만들어서 톡 쏘는 매운맛입니다.
이때 보드카나 바이주와 같은 북방의 독한 술을 한잔 곁들이면 그야말로 초원의 풍취가 그득하게 됩니다. 양고기는 부드럽게 씹히고, 독한 술의 진한 향기는 코를 자극하고, 한 손에는 고깃덩어리를 잡고 있고, 한 손에는 단도가 들려 있으니, 그야말로 초원의 전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지요.
삼림에서 나와 초원을 거쳐 중원을 정복하여 당나라라는 위대한 국제국가를 탄생시킨 탁발선비의 호방한 족적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 아닐까요? 초원을 여행하면서 서우바러우를 진하게 즐겨보지 못했다면 초원을 여행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탁발선비족은 후룬베이얼을 떠나 지금의 산시성 다퉁에서 북위를 세우고, 북위가 중원과 북방을 통일하지만, 호한융합이라고 하는 강력한 정책을 둘러싸고 동위·서위와 북주·북제라는 왕조 격변의 곡예를 넘습니다. 그러다가 수나라로 통일되고 다시 이연·이세민 부자의 당나라로 탈바꿈을 합니다.
당나라가 탁발선비 왕조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나라를 항상 중국이라고 배워왔으니 그렇겠지만, 당나라는 한족의 왕조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당 고조 이연은 모친이 탁발선비족이고 부친이 한족인 혼혈입니다. 하지만 그는 몇 대에 걸쳐 탁발선비 부족에 속해 탁발선비의 문화와 습속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부모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탁발선비족일 뿐입니다. 오바마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해도 오바마는 이미 미국인인 것처럼, 이미 탁발선비족 속에서 탁발선비의 일원으로 살아온 가문 출신인 이연으로 시작되는 당나라 황제들은 그저 탁발선비족일 뿐이지요.
중국 또는 중국인이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일어났던 역사라는 의미에서 ‘중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호한융합의 당나라, 최초의 정복왕조 요나라, 세계사 최초의 세계제국 몽골, 만주족의 청나라를 ‘중국이 말하는 중국의 역사’로 고정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큰 ‘동아시아 역사’라는 넓은 시각으로 다시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