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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밥상을 받다

굴어당 2011. 12. 11. 07:24
▲ 황제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베이하이공원 내의 팡산판좡, 팡산판좡의 상차림.
베이징은 황제의 도시입니다. 베이징성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높이가 11m나 되는 붉은 담장을 두르고 절대 권력을 누렸을 황제. 황제는 매일 몇 번 무엇을 먹었을까? 이 세상에 좋은 것은 다 먹었겠지? 궁금함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황제의 음식을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설날과 같은 큰 명절에 황제가 주관해서 베푸는 연회의 상차림이지 일상적인 황제의 식탁은 아닙니다. 지금도 만한전석은 이벤트 음식으로 가끔 차려진다고 합니다. 물론 일상적인 황제의 식탁에는 각 지방에서 올라온 특산물이 풍부하여 호화롭고 다채로웠지요. 그러나 온갖 산해진미가 쌓여 있어도 황제는 한 가지 음식을 한 끼에 세 번 이상 집어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황제가 어떤 음식에 젓가락이 자주 가는 것이 알려지면 바로 그 음식에 독을 넣을 수 있다는 보안상의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황제가 식사를 할 때 같은 음식을 세 번째 먹으면 옆에 지키고 있던 환관이 기침을 해서 그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도록 신호를 보냈다고 하네요.
   
   이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동북 삼림에서 중원으로 나와 대륙을 평정하고 동아시아 문화대국을 이룬 청나라의 황제, 그 가운데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세 황제의 경우, 상차림은 호화롭고 풍성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황제는 소식(小食)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 황제는 식탐에 빠지지 않았던 소식주의자였습니다.
   
   여하튼 베이징은 전국 각지의 진귀하고 좋은 음식들이 모두 황제의 음식을 책임지는 주방으로 모여들었다가 백성들에게 퍼져나가는 일종의 길목이었습니다. 베이징의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카오야(烤鴨)도 원래는 산둥성 음식이었으나 황제의 주방을 거쳐 민간으로 퍼져나오면서 베이징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톈안먼광장의 톈안먼팡산도 유명
   
   1912년 청나라 왕조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지면서 황제를 둘러싸고 있던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황제의 요리사들 역시 민간으로 나와 생업으로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레 황실의 음식이 퍼져나갔습니다. 그 가운데 1925년 쑨차오란(孫超然), 왕위산(王玉山), 자오융서우(趙永壽), 뉴원즈(牛文質), 원바오톈(溫寶田) 등 궁중의 유명 요리사들이 모여 베이하이공원에 팡산자이(倣膳齋)라는 식당을 열어 황제의 음식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팡산판좡(倣膳飯庄)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팡산이란 황제의 밥상인 위산(御膳)을 모방하여 만든 음식이란 말입니다. 이 식당에서는 지금까지 100년 가까이 800여 가지의 음식을 제공해 왔는데, 새우요리인 뤄한다샤(羅漢大蝦)와 허화다샤(荷花大蝦), 쏘가리로 만든 과이타이구이위(怪胎鱖魚), 펑황파워(鳳凰爬窩), 오리발 요리 진위야장(金魚鴨掌), 전복 요리 하마바오위(蛤鮑魚), 좌차오리추이(抓炒里脊), 샥스핀인 펑황좐츠(鳳凰展翅), 룽펑청샹(龍鳳呈祥), 메추라기 요리 서우싱안춘(壽星鵪鶉) 등은 대표적인 음식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음식 이름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라면 세트 메뉴를 주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인 이상인 경우에 주문할 수 있는데 1인당 200위안짜리부터 단계별로 있으니 적절한 세트를 고른 다음에 느긋하게 황제의 마음으로 즐겨볼 수 있습니다. 식기들도 모두 황색과 금색으로 화려하고 홀 한쪽에 있는 황제의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이 식당은 베이하이공원 동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가까운 작은 섬에 자리 잡고 있어 식당을 오가면서 호숫가에서 운치 있는 풍경도 즐길 수 있지요.(주소 西城區 景山西街 北海公園 東門內, 전화 6404-2573)
   
   이 팡산판좡 이외에 황실음식을 하는 곳으로 톈안먼광장의 마오쩌둥기념관 동쪽 건너편에 있는 톈안먼팡산(天安門倣膳)도 유명합니다. 이곳에서도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들로서는 세트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가장 편리합니다. 1인당 98위안, 158위안, 198위안 세 종류가 있습니다. 불도장이나 지느러미류는 1인당 300위안이 넘는 고가의 음식도 있습니다.
   
   그리고 식당 입구에서는 황실의 간식거리를 별도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톈안먼광장을 구경하다가 잠시 다리를 쉬는 셈 치고 이 식당에서 황실의 간식거리를 주문해서 맛보는 것도 좋지요. 허타오쑤(核桃酥), 첸청쑤(千層酥)와 같은 것들은 바삭하게 만든 과자류입니다. 수롱진위안바오(薯茸金元寶)도 좋습니다.
   
   
   국보급 요리사 이지강의 궈야오샤오쥐
   
   나자성옌(那家盛宴)도 황실 주방의 전통을 기반에 두고 현대적 기법으로 만든 퓨전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고급 식당입니다. 베이징 서북쪽 시내에서 가까운 향산 입구 근처에 있습니다.(주소 海淀區 香山 買賣街 乙15號, 전화 6286-8566) 이 식당은 앞의 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나자샤오관(那家小館)의 고급화된 식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은 전통적 가옥이지만 메뉴는 전자책으로 되어 있는 등 황실의 전통과 현대적 요소가 잘 혼합된 곳입니다. 메뉴에는 음식의 사진이 있어 주문하기에 편리합니다. 홀이 아닌 방에서 식사할 경우 가격도 다르며 최소 주문액이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8인 미만이면 홀에서, 8인 이상일 경우 방에서 식사하는 게 적당합니다.
   
   팡산이나 나자성옌 등은 규모가 있는 식당이지만, 작고 소박한 사합원에서 품위 있는 황실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전문점도 있습니다. 궈야오샤오쥐(國肴小居)라는 식당인데, 베이징에서 국보급 요리사로 추앙받는 이지강(베이징판뎬 北京飯店 담가채 요리장) 선생과 그 제자들이 만드는 황실요리를 그리 비싸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고풍스러운 작은 식당입니다. 원탁이 들어있는 방이 하나뿐이고, 홀에는 테이블이 예닐곱 개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식당이지만 명성은 상당히 높습니다. 고풍스러운 목각들이 많아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도 그만입니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생선 부레를 채썰어 넣은 농탕위투쓰(濃湯魚肚絲), 랴오둥지역 해삼요리 차이단파랴오찬(菜膽扒遼參),대하요리 전주샤파이(珍珠蝦排), 쇠고기볶음인 샤오미자오차오뉴린(小米椒炒牛林) 등을 맛보면 좋습니다. 주문할 때에는 주인장 할머니의 추천 의견을 경청하는 것도 좋으며 무엇보다도 이 식당의 대표적 요리인 농탕(濃湯)을 맛보아야 합니다.(주소 東城區 交道口北 三條 58號, 전화 6403-1940).
   
   
   황제가 다녀간 식당, 두이추
   
▲ 나자성옌의 요리. 황실 주방의 전통과 현대 요리 기법이 접목된 퓨전요리를 맛볼 수 있다, 두이추 샤오마이. ‘꽃만두’라 할 수 있다.

   베이징에는 황제의 요리사들이 만든 황제의 밥상 외에도, 백성들이 다니는 식당에 어느 날 황제가 다녀가서 유명해진 식당도 있습니다. 첸먼다제(前門大街)에 있는 두이추(都一處)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두이추는 ‘꽃만두’라고 할 수 있는 샤오마이(燒賣)가 유명한 곳입니다. 갖가지 색깔을 낸 만두피로 만든 차이쉬안샤오마이(彩炫燒賣)는 진짜 꽃처럼 예뻐서 먹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 식당은 1738년 건륭제 시절에 개업했으니 270여년이나 된 식당입니다. 왕씨 성을 가진 산시성 사람이 연 식당인데 당시 황제였던 건륭제와의 인연으로 유명합니다.
   
   건륭제 17년(1752년) 섣달 그믐, 건륭제는 사복 차림으로 두 사람만 대동하고는 베이징 동쪽의 퉁저우(通州)를 다녀옵니다. 그러나 베이징 시내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날이 저물었고 날이 날인지라 모두들 문을 닫아버린 후였습니다.
   
   황제 일행은 시장기에 지친 채 이리저리 식당을 찾다가 이름도 없는 식당 하나를 발견했지요. 식당 주인은 한눈에 귀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2층으로 모신 다음 술 한 병과 함께 식당에서 가장 잘나가는 마롄러우(馬蓮肉) 등을 올렸답니다. 허기에 지쳐가던 건륭제는 너무 맛있게 식사를 하고는 주인을 불러 식당이름을 물었으나 이름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건륭제는 “도성에 이 집 하나만 문을 열고 있었으니 ‘都一處’로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말했지요.
   
   이때 주인은 이 손님이 황제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흘려들었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건륭제는 ‘都一處’ 세 글자를 직접 써서 편액을 만들게 한 다음 태감, 곧 황제의 비서를 시켜 이 식당에 내려줬답니다. 이 식당은 섣달 그믐에도 열심히 장사를 하다가 황제가 찾아오는 행운을 만난 터에 황제가 하사한 편액까지 받아서 그것을 내걸고 장사를 했으니 운수대통에서도 최고의 대통이었던 셈입니다.
   
   샤오마이는 건륭제가 찾아갔던 당시에는 없었던 메뉴입니다. 100여년 후에 추가된 메뉴지만 맛도 좋고 모양도 좋아 베이징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음식입니다. 일본이 점령했던 시기에는 영업이 부진했으나 해방 후에 다시 옛 명성을 살려냈고, 문화혁명의 광풍이 모든 전통적인 것을 파괴하던 시기에도 무사히 살아남아 현재는 첸먼점(前門店·전화 6702-1555)과 팡좡점(方庄店·전화 6760-6235)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식당은 메뉴판에 음식 사진까지 있어서 외국인도 주문하기 좋으니 눈길이 가는 예쁜 꽃만두를 주문하면 됩니다. 아울러 건륭제도 맛있게 먹었다는 마롄러우도 맛보면 황제도 부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