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승도절목.교감:청계 조면희. 번역 : 고전번역원 황재운.
*北漢僧徒節目」
北漢山城卽保障重地也寺刹之剏建僧徒之募」
入是豈徒然哉卽由於爲山城守護之意是去」
乙夫何挽近以來僧殘寺敗莫保朝夕此曷故焉」
盖僧徒之不殫燥濕竭力奉公者渠之所望惟」
在於摠攝一窠而每當差代城外僧圖差之弊」
比比有之由是而僧無固志散而之四勢所固然」
今當摠攝瓜遆之時若不申明定式以圖永久」
則其何以慰悅僧徒俾盡守護之責哉況受」
敎定式不啻鄭重則其在遵奉之道豈敢少」
忽茲成節目刻之于石爲去乎依此遵行毋墜成」
憲事」
一 摠攝有闕差代時依今番例初受缿筩更捧」
圈點後以多點施行俾知其公平無私之意是」
齊」
一 今此申明定式之後如有城外僧圖差者城內」
諸僧以受 敎定式及今番節目齊訴營門」
期無毀劃之地是齊」
一 今番定式寔出於爲僧徒支保之意則摠攝」
軆此憧憧之心寺弊則期於矯革奉公則克盡」
恪勤俾有來頭實效之地是齊」
乙卯五月 日寺洞金 等內」
*북한산승도절목
번역 : 고전번역원 황재운.
북한산성은 방어기능이 있는 중요한 곳이다. 사찰을 창건하고 여러 승려들을 모집해 들인 그러한 일들을 아무 까닭 없이 하였겠는가? 바로 북한산성을 수호하려는 생각에서 비롯하였거늘, 어째서인지 근래 이후로 승려들이 흩어지고 사찰이 폐기되어서 어찌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까닭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뭇 승려들이 어떠한 상황도 꺼리지 않고 힘을 다하여 나라일[公事]을 받들었던 것은 그들이 오직 승려군대의 총 책임자인 총섭(總攝)이라는 한 자리에 올라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번 교체하게 되어 후임자를 뽑을 때마다 산성 밖에 있는 승려들이 그 자리에 임명되기를 꾀하는 폐단이 비번이 있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산성 안의 승려들이 고착하여 살겠다는 의지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게 되었으니 형세로 보아 당연한 결과이었다.
지금 총섭의 임기가 만료되어 교체되는 때를 당하매, 정해진 법[定式]을 자세히 밝혀서 영구히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뭇 승려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여 수호의 책무를 다하게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왕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법[受敎定式]은 더할 수 없이 정중히 지켜야 할 것이므로 법에 따라 실행하는 도리를 어찌 감히 소홀히 해서 되겠는가?
여기에 그 법의 세세한 조목[節目]을 만들어서 바위에 새기니, 이에 의거해서 이루어진 법[成憲]이 무너지지 않도록 할 것임.
1조, 총섭(總攝)이 자리가 비어 후임자를 뽑을 때는 이번의 예(例)에 의거하여 처음에 *비밀 투표함[缿筩]에서 명단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 명단에 동그라미표인 권점(圈點)을 표시하여 그 권점이 많은 자를 왕에게 보내어 낙점을 받도록 시행함으로써 공평무사한 뜻을 알리게 할 것.
2조, 지금 이처럼 정식(定式)을 자세히 밝힌 뒤에도 만약 산성 밖의 승려로써 임용되기를 꾀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는, 산성내의 여러 승려들이 수교정식(受敎定式)과 이번에 정한 절목(節目)을 근거로 삼아 일제히 해당 군문[營門]에 호소하여 훼손되고 무너지는 상황이 없도록 기약할 것.
3조, 이번의 정식(定式)은 진실로 여러 승려들을 유지 보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총섭(總攝)은 이렇게 염려하는 마음을 본받아서 사찰이 피폐해지면 고쳐서 바로잡고, 공사(公事)를 받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해 앞으로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상태를 만들 것.
1885년(고종22년) 5월. 사동(寺洞) 승군현직(僧軍?인 現職) 김 아무개.
*용어풀이.
1.是去乙(~이거늘), 爲去乎(~하니),是齊 (~이다. ~임).
2.定式 : 일정한 법시.
3.受敎 : 황제(皇帝)의 명령을 조칙(詔勅)이라고 함에 반하여 제후왕(諸侯王)의 명령을 교(敎)라하며, 교령(敎令)을 받은 관사(官司)에서는 이를 수교라고 함. 임금의 교명-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4.等內 : 관원(官員)의 재임기간(在任期間). 그 벼슬을 살고 있는 동안. 등(等).-출처(古法典用語集, 法制處)
*절목 1조는 본인이 당시 제도를 추측하여 임의로 약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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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승도절목비문(北漢僧徒節目)
선정비가 있는 바위면에는 선정비와 더불어 북한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이라는 319자의 명문이
가로 225cm, 세로 110cm의 화강암벽에 새겨져 있다.
북한산도절목은 19세기 중엽, 산성내의 대사찰들이 피폐하여 승도가 흩어짐에 따라 책임자인
승군대장인 팔도도총섭의 임명시 발생하는 각종 폐단을 없애고 산성수호에 완벽을 기할 것을 촉구하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