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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의 '근묵' 완역

굴어당 2012. 2. 7. 18:44

근묵 미리보기

저자
오세창 지음
출판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9.06.30
형태
판형 규격外 | 페이지 수 0 | ISBN
ISBN 10-8979867972
ISBN 13-9788979867978
정가
1,000,0009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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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때요?

<근묵(槿墨)>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생이 모아서 엮은 조선시대의 글씨첩이다. 선인들의 묵적(墨蹟) 중에서 서간류의 소품(小品)을 오랜 세월에 걸쳐 모아서 34첩의 첩장본(帖裝本)으로 만들었다. 고려의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조선 초기의 정도전(鄭道傳), 성삼문(成三問) 등을 위시하여 이황(李滉), 이이(李珥), 정약용(丁若鏞) 등은 물론 대한제국 말기의 민형식(閔衡植), 이도영(李道榮)에 이르기까지 모두 1,136명에 달한다. 연대로 보면 맨 처음의 정몽주가 1341년에 사망하였고, 민형식이 1947년에 가장 늦게 사망하였으므로 상하 600여년에 걸친다. 작가를 신분별로 보면 위로 국왕과 왕후로부터 문무 관료와 학자뿐만 아니라, 승려와 중인까지 모두 망라되어 있다.
위창은 비슷한 종류의 글씨첩을 2부 만들었다. 그중 한 부는 <근역서휘(槿域書彙)>라고 제목을 붙여 1911년에 완성하였는데, 일찍이 박영철(朴榮喆) 씨의 손에 들어갔다가 그에 의해 당시의 경성제국대학에 기증되어 현재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다른 한 부가 곧 이 <근묵(槿墨)>인데 ‘槿墨’이란 제목을 80세에 썼으므로 1943년에 첩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묵>은 위창댁에 전해오다가 지난 1964년에 성균관대학교박물관에서 그 유족으로부터 양도받았다. 1981년과 1995년 부분적으로 영인하여 간행했다가, 전 작품의 탈초와 한글 번역을 마치고, 정밀한 원작 촬영을 거쳐 이번에 새로운 모습으로 완간하게 되었다. 위창의 필생의 공력이 담긴 거질의 두 필첩(筆帖)은 서로 쌍벽을 이룬다. ‘근묵(槿墨)’이란 근역(槿域), 즉 무궁화가 피는 우리나라의 묵적(墨蹟)이란 뜻이므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글씨의 흐름과 수준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 출판사 제공

저자소개

::지은이(엮은이) 소개::

1943년 34첩으로 <근묵>을 펴낸 위창 오세창선생은 1864년 7월15일 서울 시동(詩洞: 청계천 2가)에서 역관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오경석은 중인 출신으로 한어역관이 되어 청나라를 왕래하며 신학문에 일찍 개명하였고,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홍영식(洪英植) 등 소장 정치인들을 지도하여 개화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박규수(朴珪壽)와 함께 국가의 문호를 개방할 것을 적극 주장하여 병자수호조약(丙子條好條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일을 담당하였다. 또한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고 <삼한금석록(三韓金石錄)>을 편찬할 만큼 금석학(金石學)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위창은 넉넉한 집안 형편과 높은 학문의 분위기 속에 성장하였고, 8세 때부터 부친의 친구인 유대치(劉大致: 1831~?. 본명은 鴻基, 의원)를 스승으로 모셔 1879년(16세)에 역과에 합격하였다. 위창의 주요 행적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882년(19세) 임오군란 직후 9월에 후원주위청영차비관(後苑駐衛淸營差備官)이라는 벼슬을 받아 창덕궁 후원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군사들의 통역을 맡았다. 1886년(23세)에 사역원직장에 임명되었다. 1894년에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이 되었고, 이어 농상공부 참서관, 통신원 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 일본공사의 초청으로 동경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1년간 체류하였다. 귀국 후 개화파 역모에 연루되어 1902년에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이때 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4년 뒤인 1906년에 손병희와 함께 귀국하여 <만세보>를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하였으니, 이때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애국계몽운동의 지도자로 나서게 되었다. 1918년에 근대적 미술가 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가 결성될 때 13인의 발기인으로 참가하였으며, 민족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3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서울신문사명예사장·민주의원·대한민국촉성국민회장·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동란 중 피난지 대구에서 사망하여 사회장(社會葬)이 거행되었다.
위창은 일찍부터 서화골동의 가치를 인식하여 국외로 유출되는 서화를 동분서주하며 수천 점을 구입하였다. 또한 간송 전형필이 10만 석의 사재를 헐어 골동서화를 수집하는데 감식안을 제공하였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의 고서화 명품 가운데 상당수가 오세창의 감정과 평가를 거쳐 수집된 것이다.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수준 높은 감식안을 더욱 발전시켜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위창은 서화의 수장뿐만이 아니라, 저술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다. 문집이나 국고문헌(國故文獻)에서 인명․미술사 자료를 두루 모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1928년)을 출간하여 한국미술사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명화(名畵) 251점을 모아 <근역화휘(槿域畵彙)>를 만들었고, 우리나라 문인화가 830여명의 도장 3,930여방을 모아 <근역인수(槿域印藪)>(1937년)를 만들었다. 위창은 이런 여러 편의 대저(大著)를 만들어 불모지인 우리 미술사학에 기초적인 공적을 남겼다.

::옮긴이 소개::

* 탈 초 : 임창순(1914-1999).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역임. 태동고전연구소 설립.
* 탈초번역 :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 문학박사.
* 교 열 : 김채식.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사. 문학박사.

목차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생이 모아서 엮은 총34첩의 글씨첩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다섯 권의 책으로 엮었다. 약 60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우리 선조 1,136분의 묵적(墨蹟), 1,136점이 망라되어 있다.
전 작품을 인(仁)․의(義)․예(禮)․지(智) 네 권에 영인해 싣고, 신(信) 권에 번역문을 실었다. 정밀한 촬영을 거친 작품들은 1:1 실물대 영인(책이 사이즈는 가로 30cm․세로 42cm, 다섯 권 전질의 무게는 30kg에 육박한다)을 원칙으로 하여 원본의 색감과 질감을 그대로 드러냈으며, 또한 번역문에도 상세한 주석을 달아 놓았다. 이로써 서예를 전공하는 분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도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으므로, <근묵>의 가치에 걸맞는 모습을 비로소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서예사의 집대성이랄 수 있는 <근묵>은 경제사․생활사․사회사 연구의 필수작일 뿐 아니라, 한국서예사의 기준작이며 동시에 간찰과 수결 그리고 한국전각사의 소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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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부터 이준 열사까지..옛글씨 600년>오세창의 '근묵' 완역
고려말부터 대한제국까지 1천136명 서간 등 엮어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정몽주, 길재, 정도전, 성삼문, 이황, 정약용 등의 글씨를 서화 감식의 대가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엮은 글씨첩 '근묵(槿墨)'이 66년 만에 완역돼 출간됐다.

   '근묵'이란 근역(槿域), 즉 무궁화가 피는 우리나라의 묵적(墨蹟)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글씨의 흐름과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943년 나온 '근묵'에는 오세창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고려말부터 대한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 1천136명의 서간이나 시가 1편씩 실렸다.

   '근묵'은 전체 글 가운데 편지가 3분의2를 차지하는데 서간을 통해 당시 의식주, 생활도구 등 일상을 파악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는 아내를 잃은 지인을 위로하면서 쓴 편지에서 자신이 일찍 아내를 잃어서 슬픔을 안다면서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위로한다.

   정조가 친척에게 물품을 하사하면서 보낸 물목에서는 창덕궁 후원의 농장에서 담배를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근묵'은 1911년에 엮은 '근역서휘(槿域書彙)'(서울대박물관 소장)와 함께 오세창이 엮은 대표적인 글씨첩으로, '근역서휘'가 1부, '근묵'이 2부격이다.

   '근묵'은 성균관대 박물관이 1964년 유족으로부터 양도받아 소장하고 있으며, 1981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영인본이 발간됐으나 간행 부수도 적었고 크기도 작고 해설과 주석도 없는 등 아쉬움을 샀다.

   6년간의 작업을 거쳐 나온 이번 간행본은 원첩 그대로 촬영해 필묵의 질감을 최대한 살렸고, 난해한 초서의 경우 정자체로 다시 적었다. 또 각 글씨에 대한 번역과 주석도 붙여 일반 독자들도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전체 5권으로 내놓았으며, A3 용지 크기에 각 권당 500쪽이 넘고 무게는 무려 28㎏에 달한다.

   성균관대 박물관 김대식 학예실장은 "근묵은 서예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이해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었다"면서 "오세창 선생이 빼어난 감식안으로 수집한 자료이므로 역대 인물의 필적의 진위를 판가름할 수 있는 한국 서예의 기준작"이라고 말했다.

  




kimy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