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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박철상, 백승호, 장유승, 권두환, 안대회 저 |푸른역사 |2011.03.29

굴어당 2012. 2. 27. 13:31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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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 백승호, 장유승, 권두환, 안대회|푸른역사 |2011.03.29
페이지 515|ISBN 9788994079479
판형 A5, 148*210mm
정가 27,800원
또 하나의 정조실록, 정조어찰첩!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는 2009년 두 차례의 연구발표회에서 정조의 친필 편지 297건이 수록된 <정조어찰첩>에 대한 11편의 논문을 모은 논문집이다. 글을 성격을 구분하여 2부로 나눴는데, 1부는 <정조어찰첩>의 자료적 특성을 검토한 논문들이고, 2부는 정조가 비밀 어찰을 쓴 시기의 정치사를 검토한 논문들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근엄한 성군의 모습이었던 정조의 일상생활과 다혈질적인 성격을 파악하게 되었고, 노론 벽파의 의리와 활동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박철상

저자 : 박철상
저자 박철상은 고문헌 연구가

저자 : 백승호
저자 백승호는 홍익대학교 국문과 강사

저자 : 장유승
저자 장유승은 서울대학교 국문과 강사

저자 : 권두환
저자 권두환은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저자 : 안대회
저자 안대회는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자 : 유봉학

한신대학교 사학과 교수



저자 : 김문식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저자 : 박현모

한중연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



저자 : 최성환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



저자 : 이근호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책을 내며
주석
찾아보기

1부 또 하나의 실록,《정조 어찰첩》
새로 발굴한《정조 어찰첩》의 자료적 가치_박철상
새로 발굴한《정조 어찰첩》의 내용 개관_백승호
《정조 어찰첩》의 사료적 성격-《승정원일기》와의 대조를 중심으로_장유승
《정조 어찰첩》의 설득력과 논리_권두환
어찰첩으로 본 정조의 인간적 면모_안대희
심환지의 생애와 문학 활동_백승호

2부《정조 어찰첩》과 18세기 조선 정치사
조선시대 정치사 연구와 사료-'정조독살설'의 오류 비판_유봉학
정조 어찰에 나타나는 당대 인물 및 정파에 대한 평가_김문식
18세기 노론의 정치론과 정국 운영 기술_박현모
정조의 의리탕평과 노론 벽파의 대응_최성환
정조대의 정국 동향과 소론_이근호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출판사 서평

또 하나의 정조실록
정조, 그의 시대를 다시 말하다

정조와 18세기를 낯설게 바라보다

《정조어찰첩》은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로, 기존의 사료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당대 정치의 이면과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 귀중한 사료이자 18세기와 정조에 대한 역사적 서술의 근간을 뒤흔들며 재해석을 요구하는 기록이다.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는 이러한《정조어찰첩》을 분석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집약했다.
정조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소비’되었기에 한편으로는 정조와 18세기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미완의 개혁가, 조선의 르네상스로만 변주된 정조와 18세기를 추슬러 차분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정조와 18세기를 재해석하며, ‘정조의 시대’를 다시 바라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조가 보낸 편지
편지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받는 이 외에는 그 내용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도록 봉투에 담아 봉한다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글이다. 따라서 드러냄에 대한 욕구와 숨김의 긴장이 교차하는 편지는 종종 공식적인 사료를 통해 드러난 ‘역사’ 외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준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통치하는 시대의 제도 정점에 위치하여 언행 하나하나가 곧 사료가 되는 군주가 사적으로 주고받은 편지는 드러난 역사를 전복하기도 한다.
2009년 2월 9일 정조의 비밀 어찰 묶음인 《정조어찰첩》이 공개되면서 역사학계는 물론 세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개된 《정조어찰첩》은 군주의 폐기 명령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의 편지를 정리ㆍ보관한 첩帖으로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정조 어찰의 수신인이 정조와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였다는 것이다. 심환지가 받고 보관한 정조의 비밀편지는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와 당대 인물들에 대한 평가, 병세病勢와 같은 민감한 정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사적인 기록인 동시에 인사문제와 정치현안, 심환지를 조종해 정국을 조율한 증거들이 담겨 있는 정치문건이기도 하다.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는 시간문의 양식적 특성상 텍스트만으로는 맥락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정조어찰첩》의 비밀편지들을 다양한 주제로 접근해 분석한 11편의 논문을 엮어,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듬어 정리한 책이다.

정조의 비밀 편지를 열다
-새로 발굴한 《정조어찰첩》의 자료적 가치
먼저 박철상 고문헌 연구가는 《정조어찰첩》의 자료적 가치를 소개하며 장차 발굴될 정조의 어찰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경기도박물관에 이르기까지 현재 공개된 정조 어찰의 개황을 살폈다. 또한 어찰에서 봉함인, 관직명, 지명 등을 분석해 정조가 사용한 다양한 서체, 어찰 용지, 피봉의 기록, 본문의 투식에 나타나는 특징을 밝혀 정조의 어찰을 판별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단규개탁端揆開坼(우의정은 열어보라)’라는 표현을 통해 수신자와 발신자를 고증하고, 정조가 1798년 12월 3일 이후로는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호를 새긴 봉함인을 사용한 사실이나 ‘고차姑此’(이만 줄인다)라는 맺음말을 고수하는 등 정조 특유의 글말투를 분석했다.

-새로 발굴한 《정조어찰첩》의 내용 개관
이어서 백승호 홍익대 국문과 강사는 《정조어찰첩》의 전반적인 내용을 개괄했다. 2009년 공개된 정조 어찰은 기존의 사료를 바탕으로 하는 당대 해석의 근간을 흔들었다. 예를 들어 정조는 심환지가 이조판서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심환지와 비밀리에 소통하며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뜻을 심환지의 주장인 것처럼 말하도록 지시하는 등 일종의 막후정치를 펼쳤음이 정조 어찰을 통해 밝혀졌다. 한편으로 정조는 어찰을 통해 심환지 가족의 안부를 염려하는가 하면 정세에 대한 심회를 털어놓고 신료들의 험담도 하며 국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이러한 정조 어찰의 대략적인 내용과 성격, 흐름을 독자들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정조어찰첩》의 사료적 성격
그렇다면 《정조어찰첩》에서 정조의 시각으로 재구성되는 사건들을 다른 사료들은 어떻게 기록했을까. 장유승 서울대 국문과 강사는 정조의 어찰을 연대기와 비교ㆍ대조하면서 그 사료적 특성을 밝히고 검증했다. 저자는 정조의 어찰을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같은 연대기 기록과 교차시키며 당대의 정치적 사건의 내막과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고, 정조가 심환지 이외의 신료들과도 광범위하게 서신을 교환하며 국정 운영을 주도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정조어찰첩》을 통해 실록에서 확인되는 심환지의 상소나 차자가 실제로는 정조의 지시 하에 이루어진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며 정조와 당대 정치 세력 간의 역학관계 등 정조대 정치사에 대한 해석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조어찰첩》의 설득력과 논리
정조는 정치적으로 자신과 적대적인 위치에 있었던 벽파의 영수 심환지를 포섭해 측근으로 끌어들여 허물없는 밀담을 나누었다. 권두환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정조어찰첩》를 통해 이러한 정조의 설득력을 분석했다. 정조가 심환지를 정국 운영의 은밀한 동반자로 설득한 논리의 근거는 “의리를 밝히고 국가사업을 바르게 한다[明義理正事業]”는 것이었다. 저자는 정조가 어찰을 통해 시파와 벽파로 대립하는 정국을 조율하려 했다는 데서 비밀 어찰의 동인을 찾고 있으며, 심환지가 어찰을 통해 정조에 예속된 것을 비롯해 정조가 밀서 교환 대상으로 심환지 외에도 서용보와 어용겸 등을 선택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증한다.

-어찰첩으로 본 정조의 인간적 면모
글은 글쓴이의 전인격을 담고 있는 거울이기에 글쓴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정조의 어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소개한다. 비밀 어찰에서 정조는 자신이 아끼는 한원진을 비방한 선비에 대해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린다” 등의 격정적인 표현으로 비난하는 등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는가 하면 “뒤?박?”, “눈코 뜰 새 없다[眼鼻莫開]”, “모쪼록[某條]”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속담이나 비속어도 적절히 활용했다. 또한 ‘껄껄[呵呵]’과 같이 현재 인터넷의 유행어를 연상시키는 의성어를 사용하면서 유머러스하게 농을 치기도 한다. 한편으로 심환지 부인의 건강을 자주 묻거나 심환지의 자제를 합격시키지 못한 데 따른 안타까움을 밝히는 등 인정을 보이기도 하며, 국정으로 잠을 설치거나 “갑자기 눈곱이 불어나고 머리가 부어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른다 … 그 고통을 어찌 형언하겠는가?” 라고 자신의 병세를 알리며 아픔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글은 성군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드러나는 어찰을 분석하며 정조의 새로운 모습을 복원한다.

-심환지의 생애와 문학 활동
《정조어찰첩》은 ‘개혁적인 군주’와 대립한 ‘보수적인 신료’로 알려진 심환지 또한 재해석할 것을 주문한다. 백승호 교수는 《정조어찰첩》의 수신인인 심환지의 생애와 문학 활동을 소개하며 심환지의 자취를 더듬어 복원한다. 심환지가 남긴 《만포집》은 18세기 노론 벽파 문인의 교유 모습과 선비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로서, 이를 통해 심환지가 교유한 인물들을 정밀하게 추적해 보면 벽파의 계보를 그릴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된 《청송심씨만포가기증고문서》를 연구 자료로 삼아 심환지의 생애를 개관하고, 심환지의 문학 활동을 남산, 용인의 정자평, 삼청동을 무대로 한 시기로 구분해 정리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심환지의 문학 활동이 벽파 문인의 결속에 기여한 바를 밝혔다.

-조선시대 정치사 연구와 사료
조선 사회를 이루는 이데올로기와 이를 전복코자 하는 갈망이 충돌했던 18세기는 드라마와 영화, 소설 등에서 자주 변주되는데, 그중 정조독살설은 특히 인기 있는 소재이다. 유봉학 한신대 사학과 교수는 《정조어찰첩》을 탕평정국의 최종 단계를 보여 주는 사료로 파악하며 이를 통해 정조독살설의 오류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정조독살설은 정조의 급작스러운 붕어에 실망한 영남 남인에게서 유포된 이래 현재까지 생존하여 몇몇 창작물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공개된 《정조어찰첩》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심환지는 정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을 연기한 심복에 가까웠다. 저자는 사료를 오독한 결과가 널리 유포되면서 정조독살설이 마치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대해 경계하며 여기에는 정조와 노론 벽파 사이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제대로 파악해 알리지 못한 학계에도 책임의 일부가 있음을 지적한다.

-정조 어찰에 나타나는 당대 인물 및 정파에 대한 평가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정조 어찰에 나타나는 당대 인물과 정파에 대한 평가를 정리하며 노론 벽파계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보다 정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조어찰첩》에서 정조는 노론 벽파인 심환지와 노론 시파인 이병모는 서로 합치되기 어려운 사이지만, 심환지와 남인인 채제공 사이에는 일정한 소통이 있기를 기대했다. 또한 정조는 각 정파의 인물을 고루 등용하는 탕평인사를 선호했고, 신임의리와 정조의 의리를 지지하던 노론 벽파를 당대의 주요 정치 세력으로 정립시키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18세기 노론의 정치론과 정국 운영 기술
박현모 한중연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은 한원진과 김종수를 중심으로 노론의 정치관과 정국 운영 기술을 소개했다. 저자는 노론들의 공통점으로 군주의 성학을 강조하며 붕당을 긍정하는 것을 꼽았고, 이러한 노론이 정국을 주도한 까닭은 벌열이라는 특수집권층을 형성해 국가의 핵심요직인 언론, 인사권, 군권 등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정조의 의리탕평과 노론 벽파의 대응
최성환 한국 고전번역원 전문위원은 정조대의 노론 벽파의 동향을 정밀하게 정리해 정조가 주도한 의리탕평이 각 정파가 고수했던 의리를 넘어서는 고차원의 것이었고 노론 벽파도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음을 논증했다. 정조의 의리탕평은 각 정파의 의리를 넘어 이를 포용할 수 있는 기준을 가졌고, 노론 벽파는 이런 정조에게 원칙론의 차원에서 반대하면서도 의리변통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또한 이 글은 노론 벽파의 의리와 활동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노론 벽파가 자신들의 의리를 견지하면서도 정조와 어떻게 화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 글은 정조대 노론 벽파의 유연한 움직임과 이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조의 의도를 밝힌다.

-정조대의 정국 동향과 소론
이근호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정조 시대 정치의 한 축을 이루었던 소론의 국정운영론을 김상철 계열과 서명선 계열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저자는 이 글에서 정조 4년(1780)에 홍국영이 밀려나면서 소론계가 김상철이 주도하는 동당과 서명선이 주도하는 남당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정리했고, 나아가 각각의 가계 연혼도를 표로 제시해 독자들이 한눈에 소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세신을 배제하고, 화폐를 주조하는 기관을 호조로 일원화하며 사족이 주도하는 향교나 서원에 서얼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소론 공통의 정치운영론이 존재했음을 아울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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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연구가 박철상씨 “추사 이해의 틀 부실”

 

지난 17일 오후7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건물에 자리한 ‘청파

서실’에는 겨울비가 뿌리다 멈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대

여섯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문헌과

해석’의 독회(讀會)로 이날은 이종묵 교수의 ‘유배객 이산해가

평해를 빛낸 글’과 안대회 교수의 ‘이덕무의 소품문’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문헌과 해석’은 고전문학 한문학 국사학 철학 종교학 국악 문

헌정보학 민속학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우리의 여

러 문헌자료들을 발굴, 소개하는 국학(國學) 연구모임으로 지난

97년 10여명으로 시작한 것이 현재는 100여명에 이른다. 회원구

성에서 보듯 전공분야의 다양함은 물론 관심있는 사람 누구에게

나 문이 열려 있는 것이 특징.

이 자리에서 최근 계간 ‘문헌과 해석’겨울호에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학고재)을 분석, 추사 김정희의 호와 유래, 사상적

평가, 교유관계, 서체, 인장(印章), 인용자료, 번역 등 40여곳

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한 글을 발표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모은 박철상(36)씨를 만났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현재 한 은행의 자금부에서 일하는 박씨는 20

년째 고문연구에 몰두해온 고서연구가로 특히 인장에 관한 한 손

꼽히는 전문가로 통한다.

박씨는 “‘완당평전’의 문제는 단지 지엽말단적인 오류라기보

다는 전반적인 추사 이해의 틀이 부실하다는데 있다”며 “기존

연구의 이해나 새로운 해석의 제시 등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어

느 면에서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저작”이라고 말했다.

미술계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추사 작품의 진위논란도 단지 감식

안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 학문적 연구수준의 일천함에서 비

롯된 것으로 ‘완당평전’이 추사연구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이

러한 학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뼈아픈 일침도 서

슴지 않았다.

그는 “경학 서예 전각 고증학 감상 장서 어느 것 하나 해당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조선 후기 문화사의 중추였던 한 추사

는 당대 지식사회의 ‘저수지’역할을 하는 동시에 근대성의 씨

앗을 품고 있었던 인물”이라며 “조선후기 사대부뿐만 아니라

중인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 후학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추사 연구에 있어 활발한 논쟁과 참여의 전기를 마

련하고자 ‘완당평전’의 오류를 지적했다”고 밝혔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고문서 연구에 빠져들었

다는 그는 “학문을 업으로 삼아 학술계에 몸담고 있었다면 과연

이런 비판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앞으로도 현실적인

직업과는 별개로 연구를 계속, ‘완당평전’의 오류를 추가적으

로 밝히는 것을 비롯해 추사가 갖는 의미를 짚을 수 있는 저작을

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서 연구중에 ‘문헌과 해석’모임을 알게 돼 2년전부터

참여해왔다는 그는 “전공과 인맥, 학벌 등 형식의 벽을 허물고

뜻맞는 이들 누구나 모여 공부에 정진하는 이 모임을 통해 자료

를 공유하고 생각을 교류하면서 학문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고 말했다.

이수진기자 lul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