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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로 논어를 풀다,이한우 지음|해냄|1404쪽|5만8000원

굴어당 2012. 5. 19. 07:18

 

논어 어려운가? 논어 속에 그 답이 있소이다

논어 구절 추적해 논어 내용 푸는 독특한 시도…
공자의 말뿐 아니라 마음까지 헤아려야 제대로 된 해석

베이징 천안문 광장의 공자상.

논어로 논어를 풀다

이한우 지음|해냄|1404쪽|5만8000원


논어만큼 요즘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고전도 드물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는 아주 독특한 논어 해설서다. 조선일보 기자인 저자는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논어라는 점에 궁금증을 갖고, 5년에 걸쳐 연구·집필해 이 책을 냈다.

책은 1400쪽이 넘는 방대한 두께에 저자의 해설 방식 또한 아주 독특하다. 저자가 찾은 방식이란, 제목이 밝혔듯, '이론해론(以論解論)' 즉 논어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논어를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이시습(學而時習)'의 학(學)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학이(學而) 6'과 '학이 7' 등 논어의 다른 구절에 나오는 학의 의미를 먼저 파악하고, 이와 관련해 해석하는 식이다. 그 결과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의 첫 구절을 '(문〈文〉을) 배워서 그것을 늘 쉬지 않고 (몸에) 익히면 진실로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해석한다. '문(文)'은 우리말로는 '애쓰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을 저자는 해석학 이론의 기본 원칙이라 했다. "부분과 전체는 순환 관계를 형성하므로 부분은 전체를 통해 해석하고, 전체는 부분에 대한 해석의 총합을 통해 완성한다"는 논리다. 이는 논어라는 텍스트를 완결된 것으로 보고 의미 역시 그 안에서 유기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논어가 그 자체로 아주 교묘하면서도 치밀하게 얼개가 짜인 하나의 완벽한 체계를 가진 책이라고 본다. 예수님 말씀 자체보다 '요한복음' 편찬자인 요한의 편찬 의도를 추적하듯, 논어 편찬자가 했던 작업을 역추적해 편찬 의도를 찾아내는 방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해석 방식은 학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이다. 통상적인 기존 해석과 비교하자면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여기에 5년을 투자한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런 해석 방식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요컨대 저자는 논어로 논어를 푼 것이지 공자로 공자를 푼 것이 아니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라는 말 중에는 공자가 한 말도 있고 제자가 한 말도 있다. 이런 경우 각각 의미가 다르다. 저자는 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공자가 한 말의 의미를 제자가 한 말의 뜻으로 해석함으로써, 오히려 공자의 말이 왜곡된 곳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학이(學而)'편 첫 구절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 대한 해석. 저자는 학(學)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학이편 7에 나오는 공자 제자 자하(子夏) 말 속의 학(學)과 연계한다. "'배운 사람은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기'→'여색을 좋아하는 마음', '부모 섬기기'→'기꺼이 온 힘을 다하며', '임금 섬기기'→'기꺼이 온몸을 다 바치고', '벗과 사귀기'→'말을 하면 반드시 책임을 져 믿음을 주는 식으로 한다'"로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하가 말하는 학의 내용과 공자가 말하는 학의 내용 차이를 무시한 데서 오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자하는 마음보다 행동을 중시하고 예법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자하가 말하는 학(學)의 목적은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예의와 범절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하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예의와 범절을 지키는 사람은 배우지 않았더라도 배운 사람과 같다고 생각했다.

반면 공자가 말하는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仁)을 회복하는 데 있었다. 공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집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충성스럽고 신실함이 나와 같은 자가 있으나, 나처럼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 않다." 충성스럽고 미더운 사람이 되는 것이 공자에게 배움의 목적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따라서 공자의 말로 공자의 말을 이해하지 않고, 공자 제자의 말을 갖고 공자의 말을 이해하는 해석 방식에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해석법이 가진 또 다른 문제는 논어에 나오는 말을 말로만 이해하려 한 데 있다. 말이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공자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서도 텍스트를 넘어 공자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안 된다. 공자 마음을 이해하려면 공자의 말 한마디를 음미, 또 음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자가 아파했던 삶의 흔적을 이해해야 한다. 공자처럼 아파보기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곰삭아 공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공자의 말도 제대로 해석되는 법이다. 책에는 이런 흔적이 안 보인다. 공자의 말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논어 속의 또 다른 말들과 연계해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급급해 보인다.

공자의 말만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면, 공자의 마음에 이르기란 어렵다. 공자의 말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더라도 공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의 문제를 공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도 없다. 고전을 읽는 목적은 결국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데 있다. 논어를 읽는 가장 중요한 목적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점들이 보완된다면 책에서 시도한 새로운 해석법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