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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曲、불우한 이들의 통곡≫ (윤현숙 지음, 천지인

굴어당 2012. 6. 28. 09:26

 

 

元曲、불우한 이들의 통곡≫

(윤현숙 지음, 천지인, 2010년 12월 15일)


 元曲,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원나라 때 유행한 散曲과 雜劇을 통칭하는 말이 아니던가. 산곡은 宋詞의 영향을 받고 북방의 민간음악을 토대로 형성된 새로운 형식의 운문체이며, 잡극은 이들 산곡의 체제를 연결해 무대에서 일정한 스토리를 공연한 형식인데 후일 중국희곡의 토대가 된다. 元曲은 중국문학사에서“唐詩宋詞”와 함께 병칭될 만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장르임에도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출간된 윤현숙 선생님의 ≪원곡、불우한 이들의 통곡≫은 중국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우리에게 낯선 산곡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원대를 대표하는 산곡작가 23인의 작품 25편을 엄선하여 수록하고 있다. 그중에는 ≪漢宮秋≫의 작가 馬致遠, ≪梧桐雨≫의 작가 白朴, ≪西廂記≫의 작가 王實甫 같은 익히 잘 알고 있는 문인들의 작품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맛깔스런 역문과 자상한 해설 그리고 친절한 주석이다. 산곡은 시사와는 달리 구어체적인 특징이 매우 강해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자는 원문의 의미를 아주 심도 있게 음미한 듯 맛깔스런 우리말로 옮겨주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내려 갈 수 있다. 또한 그 역문에 대한 해설 역시 독자들에게 자상하게 이야기 해주는 듯해서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제7편에 나오는 王惲의 ≪平湖樂≫을 보자(56쪽). 이 작품의 첫 구절은“물안개 너머 들려오는 연꽃 따는 여인들의 말소리(采蓮人語隔秋烟).”로 시작되는데 이곳에서“너머”라는 말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이 구절은 호수의 풍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시인의 눈에 들어온 가을 호수는 사방에 안개만이 자욱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적막한 호수에 안개 너머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립니다. 그것도 경쾌한 여인들의 말소리가. 연꽃을 따러 나온 여인들의 말소리입니다. 연꽃을 따러 나왔으니 배를 타고 나왔겠죠. 그럼 간간이 노 젖는 소리도 들려올 것입니다.“너머”라는 의미로 해석된“隔”자, 그 사용이 매우 절묘하군요. 안개가 자욱한 호수의 가시거리는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호수의 공간은 시인의 시야가 미치는 곳과 안개 때문에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너머”는 시각적으로 공간을 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공간, 즉 안개“너머”에서 말소리와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청각을 자극하는 이 소리들로 적막하기만 한 가을 호수에 생기가 돕니다. 靜과 動이 어우러진 멋진 묘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러분 안개“너머”그쪽의 상황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여러 상상을 하게 됩니다. 안개“너머”그곳의 상황에 대해.“너머”라는 이 글자는 독자의 상상력까지 자극하는군요.


 사실“격”자는 단순히“너머”혹은“건너서”로 이해하고 지나가기 쉬운데 저자는 이 구절에서 아주 논리적으로“격”자의 의미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라면 그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 질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선물은 원대라는 이민족 통치시기에 차별을 받은 중국지식인들의 울분과 체념에서 달관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조용히 지난 일들을 떠올려 본다. 현명한 사람은 그대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나인데, 무엇을 다투리오.(關漢卿의 ≪閑適≫, 80쪽)

무엇이 영광이고 무엇이 굴욕인지 알아도 입을 굳게 다물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아도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인다. 시와 책더미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남의 일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白朴의 ≪知幾≫, 90쪽)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십만 냥을 허리에 두른 채 학의 등에 올라 양주로 가니, 소매 자락에는 구름만 감기고 시상이 넘친다. 장자의 ≪추수≫편을 읽고, 헐렁한 도포를 걸친 채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네.(張可久의 ≪次韻≫, 151쪽)


 어찌할 수 없는 제도적 모순 때문에 지식인들이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였는지는 모름지기 오늘날 우리가 처세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중국문학에 낯선 독자라도 이 책의 일독을 한번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