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뜰 안에 갇힌 孔子,최유식
박물관 뜰 안에 갇힌 孔子,최유식
"가족 내에서 나이 든 사람이 존경받고,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40대 이상 중·노년층 중국인에게 한류(韓流)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유를 물어보면 이런 대답을 듣곤 한다. 중국은 지난 30여년의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경제적 생존 문제를 해결했지만, 대신 '도덕 붕괴'라는 달갑지 않은 후유증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 언론에서는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각종 패륜에 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길거리에서 사고나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전혀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은 이제 뉴스 취급을 받지 못할 정도로 흔한 일이 됐다. 가족 윤리와 사회 도덕 문제에 대해 중국인들이 느끼고 있는 갈증을 한류 드라마가 대신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정부가 공자(孔子) 부활에 나선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공자의 고향인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묘(孔廟)가 크게 복원되고, 공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와 TV 드라마가 제작되는 등 공자 띄우기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초에는 베이징 중심부의 톈안먼(天安門)광장 대로변에 높이 9.5m에 무게가 17t이나 되는 초대형 공자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밖으로 중국의 문화적 파워를 널리 알리고, 안으로는 사회주의 이념과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 유교의 보편적 윤리관과 가치관을 도입해 사회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게 중국 위정자들의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 달리, 공자는 중국 내에서 좀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국의 청·장년층에게 공자는 여전히 19세기 중국의 쇠망과 국가적 치욕을 부른 구시대 인물로 치부되고 있다. "공자가 부활한다면 5·4 신문화운동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들은 반문한다. 중국의 정치·경제 개혁을 주장하는 우파 지식인들은 '공자 부활'이 중국 역대 왕조가 그랬듯이 공산당 집권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는 공자의 인애(仁愛) 사상보다 자유·평등, 주권재민(主權在民)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와 원칙이 더 우선이다. 그런가 하면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 국민은 부활한 공자를 기복(祈福)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베이징의 공묘와 국자감(國子監) 주변에서는 고가의 합격 부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공자상을 향해 자녀의 합격을 비는 학부모들로 문전성시가 벌어진다. 지난해 4월, 톈안먼광장의 대형 공자상이 100일 만에 철거된 데는 중국 사회가 공자에 대해 느끼고 있는 이런 이질감이 주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얼마 전 확장 공사를 끝내고 새로 문을 연 톈안먼광장 옆 중국국가박물관을 찾았다. 광장에서 철거된 대형 공자상이 'ㄷ' 자 모양의 박물관 건물들로 둘러싸인 좁은 정원 안으로 옮겨져 있었다. 온종일 건물 그림자에 가려져 있고 관람객들은 그곳에 공자상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쳐 갔다. 공자가 중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려면 아직도 더 많은 세월과 더 큰 사회적 변화를 거쳐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