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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멸종하는 서점

굴어당 2012. 12. 19. 15:30

만물상] 멸종하는 서점

 

1970~80년대 서울 종로 2가는 서점 거리였다. 종로서적·삼일서적·양우당·동화서적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그 시절 문학청년이었던 시인 장석주는 거의 날마다 종로를 찾았다. 돈이 없을 땐 책장에 몸을 기댄 채 책을 읽었다. 그는 종로 서점 순례를 뒤돌아보며 "이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드리는 신성한 의례(儀禮)였다"고 했다.

▶소설가 고종석은 대학생 때 탐나는 책을 자주 훔쳤다고 했다. 그가 어느 날 종로서적에서 책을 가방에 슬쩍 집어넣다 직원에게 붙잡혔다. 직원은 고종석의 학생 신분증을 보더니 "훔친 책값을 내고 사 가라"며 풀어줬다. 그날 이후 고종석은 책 도둑 습관을 딱 끊었다. 70~80년대 종로 책방들엔 문청들의 추억이 담겼다. 그 책방들이 2000년대 들어 모두 사라졌다. 인터넷 서점이 할인 경쟁을 하며 손님을 쓸어가버린 탓이다.

▶1994년 5683개였던 서점이 지난해 1752개로 줄었다. 한국출판연구소가 조사했더니 서점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 경북 영양군을 비롯해 네 군데였다. 영양에선 3년 전 마지막 서점마저 문을 닫았다. 영양은 시인 조지훈과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다. 경상북도는 2년 전 영양을 비롯해 시인 이육사 생가가 있는 안동, 소설가 김주영의 고향 청송을 묶어 '문학관광벨트'로 지정했다. 책방 하나 없는 문학관광벨트라니 어쩐지 듣는 사람 낯이 뜨거워진다.

미국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뉴욕의 동네 책방 여주인은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살갑게 책을 읽어준다. 동네 사람들도 책방의 따스한 정에 기댄다. 미국에선 책방들이 북 클럽을 운영하면서 문화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동네 책방에서 책을 고르며 골목 서점 살리기에 나섰다.

프랑스에선 한 해 책 스무권 넘게 사는 독자 중의 16%가 동네 책방이 추천한 책을 고른다. 작가 초청 모임을 여는 책방도 있다. 우리 동네 책방 가운데 독서 모임을 꾸리는 곳은 드물다. 그럴 여유가 없다. 책방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서 훑고 읽고 메모까지 하고선 책은 사지 않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얌체 고객마저 그리울 정도로 우리 동네 책방은 갈수록 작아지고 외로워져간다. 인터넷 서점의 '총알 배송'에 익숙한 요즘 청춘이야 알까마는. 서점에서 산 책을 가슴에 품은 채 빨리 읽으려고 어디론가 달려가던 옛날 일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