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경전 1 杜詩鏡銓 ,두보 저 |이관성 역 |문진 |2013.02.26
두시경전 1
책소개
두보 시는 한결같이 사람들의 추숭을 받았는데 왜 해석하는 사람이 주석을 찾지 못하였는가. 이것은 주석가 자체의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가가 깊은 것을 구하려다 천착하게 되고 밝은 것을 구하려다 번잡하게 되니, 천착은 속임에 가깝고 번잡함은 군더더기를 모은 것에 불과하다. 속임과 군더더기가 합쳐지면 오류[繆]를 발생시키거나 더럽게[穢] 된다. 이에 두보 시의 진면목과 참 정신이 변질되어 쉽게 이해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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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두 보(杜甫, 712∼770)는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시단을 대표하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는 본래 유가(儒家)로서 정치에 몸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결국 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두보가 처한 시대는 당나라가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다가 안사의 난으로 제국의 붕괴 위기를 맞았던 때였다. 그의 생애는 크게 보아 755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전·후반으로 양분된다. 안사의 난 이전, 그는 당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독서와 유람으로 견문을 쌓아 착실히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735년 진사 시험의 낙제는 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재차 유람에 나서는 한편 이백, 고적(高適) 등과 교류하기도 했다. 746년 이후 두보는 거처를 장안으로 옮겨와 고위 관리에게 벼슬을 구하는 간알시(干謁詩)를 써서 보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생활이 10년간 지속되면서 두보는 점차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였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삶에 대하여 절감하기 시작했다. 755년은 그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해였다. 그해 10월, 그는 10년 노력의 결과로 무기의 출납을 관리하는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曹參軍)이라는 미미한 벼슬을 받고 스스로 낭패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이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당 왕조를 거의 멸망시킬 만큼 파급력이 대단했던 안사의 난이 발발한다. 이후 두보의 삶은 전란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전개된다. 두보는 잠시 장안 근처 부주에 떨어져 살던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요절한 사실을 알고 참담한 마음으로 장편시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며 회포를 읊어(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를 남겼다. 벼슬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처지를 그렸으며 총체적인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이후 두보의 삶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란의 와중에 현종(玄宗)은 사천으로 피난 가고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임시로 즉위한 사실을 알고 두보는 이를 경하하기 위해 영무로 가던 중 반군에 붙잡혀 장안으로 호송되어 얼마간 억류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봄의 전망(春望)』을 썼다. 757년 2월, 숙종이 행재소를 봉상(鳳翔)으로 옮겼을 때 두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을 배알하여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곧 반군 토벌에 실패한 방관(房琯)을 변호하다 숙종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것은 곧이어 파직으로 이어졌다. 화주사공참군(華州司功參軍)으로 좌천된 두보는 벼슬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진주(秦州)행을 감행한다. 두보의 대표적 사회시로 알려진 이른바 『삼리(三吏)』와 『삼별(三別)』이 이즈음에 지어졌다.
759년 두보는 진주에서부터 여러 지역을 전전하여 성도(成都)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두보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초당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중에는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막부(幕府)에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벼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엄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두보는 성도를 떠나 운안(雲安)을 거쳐 기주(夔州)에 이르게 되었다. 기주는 성도에 비해서도 더욱 낯선 곳이었지만 비교적 물산이 풍부했던 이곳에서 두보는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시가 창작에서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의 대표작으로 『가을날의 흥취(秋興八首)』를 꼽을 수 있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풍요로웠던 과거와 일순간에 일어난 전란을 지극히 미려한 언어로 수를 놓듯이 새긴 이 시는 율시(律詩)가 이룩한 미감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보는 기주 생활에 결코 안주하지 못했다. 중앙 정부에서 벼슬하리라는 희망을 끝내 놓을 수 없었기에, 768년에 협곡을 빠져나가 강릉(江陵)을 거쳐 악양(岳陽)에 이르렀다. 이후 그의 생활은 주로 선상에서 이루어졌고 건강이 악화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악양과 담주(潭州) 사이를 전전하다 뱃길에서 사망하였다.
시인 두보가 품었던 뜻은 시종일관 정치를 바르게 펼쳐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었으나 운명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삶은 자기 한 몸도 돌보기 힘들만큼 곤란해지는 때가 많았다. 시인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의 꿈은 아니었으나, 역설적으로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그는 더욱더 시인의 눈으로 피폐한 사람과 영락한 사물을 따뜻하게 돌아보고,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시를 썼다. 사후에 그에게 붙은 ‘시성(詩聖)’이나 ‘시사(詩史)’라는 칭호는 그의 고단하고 정직했던 삶에 대한 애도 어린 칭송이 아닐까 한다.
목차
오당吳棠의 서문
필원畢沅의 서문
주규朱珪의 서문
주준朱樽의 서문
양륜楊倫의 자서
두시경전 범례
권일卷一
1. 용문의 봉선사에서 노닐며遊龍門奉先寺
2. 태산을 바라보며望嶽
3. 연주의 성루에 올라登?州城樓
4. 장씨가 은거하는 곳을 읊다題張氏隱居二首
5. 유 법조 및 정 하구현령과 석문에서 술자리를 열며劉九法曹鄭瑕丘石門宴集
6. 임성의 허 주부와 남지에서 노닐며與任城許主簿遊南池
7. 비가 내리니 생각을 읊어 허 주부를 오라고 하다對雨書懷走邀許主簿
8. 사상인의 초가집에서巳上人茅齋
9. 방 병조의 오랑캐 말房兵曹胡馬
10. 그림 속의 매?鷹
11. 원외랑 송지문의 옛 별장에 들러過宋員外之問舊莊
12. 밤에 좌씨의 별장에서 잔치하며夜宴左氏莊
13. 임읍에 사는 동생 두영杜穎의 편지가 왔다. 장맛비로 황하가 범람하여 제방이 무너지는 재난이 관리들의 걱정이라고 한다. 이에 이 시를 부처 동생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한다臨邑?弟書至 苦雨?河泛溢?防之患 簿領所憂 因寄此詩 用?其意
14. 천보 초기에 남조 소사구인 외삼촌이 나의 할머니 당 아래에 흙을 쌓아 작은 가산假山을 만들었다. 한 삼태기의 흙으로 한 자 높이를 만들어 썩은 나무를 대신하였다. 그것이 여러 향불을 태우는 자기를 받치고 있는데, 자기가 이 때문에 대단히 안정되었다. 옆에다가 자죽을 심었는데, 이 가산의 몇 개 봉우리를 덮었다. 산은 우뚝 솟고 대나무는 아름다워 완연히 세속에서 벗어난 운치가 있었다. 이에 나도 모르게 흥이 나서 이 시를 짓는다天?初 南曹小司?舅 於我太夫人堂下 壘土爲山 一?盈尺 以代彼朽木 承諸焚香瓷? ?甚安矣 旁植慈竹 蓋玆數峯 ?岑嬋娟 宛有塵外格致 乃不知興之所至 而作是詩
15. 용문에서龍門
16. 이감의 집에서李監宅二首
17. 이백에게 주다贈李白
18. 북해 태수 이옹을 모시고 역하정에서陪李北海宴歷下亭
19. 태수 이옹과 함께 역하의 고성에 있는 원외랑 이지방의 새로운 정자에 오르다同李太守登歷下古城員外新亭
역하 옛성의 원외랑 종손의 새로운 정자에 올라附) 登歷下古城員外孫新亭-李邕
20. 잠시 임읍에 가게 되었는데, 택산호의 정자에 이르러 원외랑 이지방을 생각하니 문득 감흥이 일다暫如臨邑 至?山湖亭 奉懷李員外 率爾成興
21. 이백에게 주다贈李白
22. 이백과 함께 범씨가 은거한 곳을 찾아가다與李十二白同尋范十隱居
23. 정 부마 댁이 있는 골짜기에서 잔치하며鄭駙馬宅宴洞中
24. 술 취한 여덟 신선을 노래하다飮中八仙歌
25. 금석행今夕行
26. 특진 벼슬에 있는 여양왕에게 드리는 시贈特進汝陽王二十韻
27. 고종형인 소 비부낭중에게 드리다贈比部蕭郞中十兄
28. 하남의 태수 위제 어른에게 보내다奉寄河南韋尹丈人
29. 좌승 위제 어른에게 드리다贈韋左丞丈濟
30. 좌승 위제 어른에게 드리는 22운의 시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31. 겨울날 낙양성 북쪽에 있는 현원황제의 사당에 참배하다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
32. 도호 고선지 장군의 총마高都護?馬行
33. 한림 장기에게 주다贈翰林張四學士?
34. 진 보궐에게 드리다贈陳二補闕
35. 겨울에 이백을 그리며冬日有懷李白
36. 봄날에 이백을 그리며春日憶李白
37. 공소보가 병으로 관직을 버리고 강동으로 돌아가 유람하는 것을 전송하며, 아울러 이백에게 드리다送孔巢父謝病歸游江東兼呈李白
38. 병거행兵車行
39. 여러 공이 지은 ?등자은사탑?에 화답하여同諸公登慈恩寺塔
40. 함녕咸寧과 화원華原 두 고을의 여러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다投簡咸華兩縣諸子
41. 병을 앓은 뒤에 왕의에게 찾아가 술 마시고 드린 노래病後過王倚飮贈歌
42. 종손자인 두제에게示從孫濟
43. 한 해를 보내며 두위 집에서杜位宅守歲
44. 원도단의 노래를 불러 원 은인隱人에게 보내다元都壇歌寄元逸人
권이卷二
1. 낙유원의 노래樂遊園歌
2. 곡강에서曲江三章章五句
3. 정 간의에게 공경히 드리다敬贈鄭諫議十韻
4. 가난속의 우정貧交行
5. 흰 실을 노래하다白絲行
6. 전장에 나가며前出塞九首
7. 서기 고적을 전송하며送高三十五書記十五韻
8. 현위 배규를 영가로 보내며送裴二?尉永嘉
9. 장 참군을 촉주로 보내면서 아울러 양 시어에게 드리다送張十二參軍赴蜀州 因呈楊五侍御
10. 안서로 부임하는 위 서기를 전송하며送韋書記赴西安
11. 서기 고적에게 보내다 寄高三十五書記
12. 고 무위 장군의 만사故武衛將軍挽歌三首
13. 받들어 집현원의 최국보와 우휴열 두 학사에게 드리는 시奉留贈集賢院崔于二學士
14. 선우 경조에게 바치다奉贈鮮于京兆二十韻
15. 미인의 노래麗人行
16. 뜰 앞 감국화에 탄식하다歎庭前甘菊花
17. 술에 취하여醉時歌
18. 취가행醉歌行
19. 이 금오를 모시고 꽃그늘 아래 술 마시며陪李金吾花下飮
20. 광문 정건鄭虔을 모시고 하 장군의 정원에서 노닐며陪鄭廣文游何將軍山林十首
21. 거듭 하 장군 산림에서 노닐다重游何氏五首
22. 여러 귀공자를 모시고 장팔구에서 기생들과 더위를 식히는데 저물녘 비가 내리다陪諸貴公子丈八溝?妓納? 晩際遇雨二首
23. 9월 9일 곡강에서九日曲江
24. 개부 가서한에게 드리다投贈哥舒開府翰二十韻
25. 헌납사 겸 기거사인 전징에게 드리다贈獻納使起居田舍人澄
26. 최 부마 산정의 연회에 모여崔駙馬山亭宴集
27. 호현의 원 소부와 미파에서 연회를 벌이며與?縣源大少府宴渼陂
28. 성의 서쪽 호수에서 배를 띄우고城西陂泛舟
29. 미피행渼陂行
30. 미피의 서남대에서渼陂西南臺
31. 9월 9일에 잠삼에게 보내다九日寄岑參
32. 심동미 어른이 선부원외랑에 제수된 소식을 들었으나, 비가 내려 축하하러 가지 못하고 시를 지어 부치다承沈八丈東美除膳部員外郞 阻雨未遂馳賀 奉寄此詩
33. 장마에 농서공 이우에게 시를 부치며 아울러 징사 왕철에게 보내다苦雨奉寄?西公兼呈王徵士
34. 가을비를 탄식하며秋雨歎三首
35. 태상 장기에게 드리다奉贈太常張卿?二十韻
36. 좌상 위견소韋見素에게 드리다上韋左相二十韻
37. 밤에 허생이 시를 읊조리는 것을 듣고 그 시가 좋아서 짓다夜聽許十一誦詩 愛而有作
38. 장난삼아 광문 정건鄭虔에게 편지 올리면서 아울러 사업 소원명蘇源明에 올리다?簡鄭廣文兼呈蘇司業
39. 여름 날 이공이 찾아오다夏日李公見訪
40. 천육의 날랜 말을 노래하다天育驃騎歌
41. 사원을 노래하다沙苑行
42. 총마를 노래하다?馬行
43. 위효숙 장군을 노래하다魏將軍歌
권삼卷三
1. 판관 전량구에게 주다贈田九判官梁邱
2. 도위 채희노를 농우로 전송하면서 아울러 서기 고적에게 보내다送蔡希魯都尉還?右 因寄高三十五書記
3. 교릉시를 지어 봉선현奉先縣의 여러 관리에게 드리다橋陵詩三十韻因呈縣內諸官
4. 9월 9일 봉선현의 양씨가 백수현의 최 명부를 만나다九日楊奉先會白水崔明府
5. 백수현의 명부인 외숙의 집에 반가운 비가 내리다白水明府舅宅喜雨 得過字
6. 관직이 정해진 뒤 장난삼아 짓다官定後?贈
7. 전장에 나가며後出塞五首
8. 떠나며 노래하다去矣行
9. 곽 급사의 ?탕동영추?에 화답하여 짓다奉同郭給事湯東靈湫作
10. 장안에서 봉선현으로 부임 하며 읊다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
11. 봉선현의 유 소부가 새로 그린 산수화 병풍을 읊다奉先劉少府新?山水障歌
12. 정월 그믐에 최집과 이봉을 찾아가다晦日尋崔?李封
13. 솔부의 정 녹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送率府程錄事還鄕
14. 백수현의 소부인 외숙 최옹의 고재에서白水崔少府十九翁高齋三十韻
15. 삼천현에서 홍수로 불어난 물을 보다三川觀水漲二十韻
16. 피난처에서避地
17. 왕손을 슬퍼하다哀王孫
18. 곡강에서 슬퍼하다哀江頭
19. 진도에서 슬퍼하며悲陳陶
20. 청판에서 슬퍼하며悲靑阪
21. 눈을 맞으며對雪
22. 달밤에月夜
23. 설단과 설복이 연 잔치에 설화의 취가를 기록하다薛端薛復筵簡薛華醉歌
24. 설날에 여동생에게 보내다元日寄韋氏妹
25. 봄을 기다리며春望
26. 아우의 소식을 듣고得舍弟消息二首
27.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憶幼子
28. 한식날 밤에 달을 보며一百五日夜對月
29. 마음을 풀어보며遣興
30. 노자관의 방비에 대해塞蘆子
31. 대운사 찬공 스님의 방에서大雲寺贊公房四首
32. 빗속에 소단을 방문하다雨過蘇端
33. 맑게 갠 날에喜晴
34. 정 부마의 연못 누대에서 광문 정건을 만나 즐겁게 술을 마시다 鄭駙馬池臺喜遇鄭廣文同飮
35. 행재소에 도달한 것을 기뻐하며喜達行在所三首
36. 감회를 펼쳐내다述懷
37. 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得家書
38. 번 시어가 한중판관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다送樊二十三侍御赴漢中判官
39. 장손 시어가 무위 판관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다送長孫九侍御赴武威判官
40. 종제인 두아杜亞가 하서 판관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다送從弟亞赴河西判官
41. 위 평사가 동곡방어판관에 임명된 것을 전송하다送韋十六評事充同谷郡防御判官
42. 곽 중승겸태복경이 농우절도사로 임명된 것을 전송하다奉送郭中丞兼太樸卿充?右節度使三十韻
43. 서번의 사신으로 가는 양 판관을 전송하다送楊六判官使西蕃
44. 영주 이 판관을 전송하다送靈州李判官
권사卷四
1. 급사중 엄무嚴武에게 드리다奉贈嚴八閣老
2. 달月
3. 떠나면서 가지賈至와 엄무 두 분 각노, 양원의 보궐과 이별하다 留別賈嚴二閣老兩院補闕 得雲字
4. 저물녘에 길을 가며 즉흥적으로晩行口號
5. 홀로 술 마시며 시를 짓다獨酌成詩
6.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다徒步歸行
7. 구성궁九成宮
8. 옥화궁玉華宮
9. 강촌羌村三首
10. 북정北征
11. 소릉을 지나며行次昭陵
12. 팽아의 노래彭衙行
13. 관군이 이미 반란군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짓다喜聞官軍已臨賊境二十韻
14. 장안을 수복하다收京三首
15. 소릉을 다시 지나며重經昭陵
16. 정건이 태주의 사호참군으로 강등되어 가는 것을 전송하며, 그가 노년에 반란군의 진영에 갇혀 있던 일을 슬퍼하고, 직접 만나 이별하지 못하여 시를 써서 내 마음을 보인다送鄭十八虔貶台州司戶 傷其臨老陷賊之故 闕爲面別 情見於詩
17. 납일에臘日
18. 중서사인 가지賈至의 ?조조대명궁?시에 화답하다奉和賈至舍人早朝大明宮
이른 아침 대명궁에 조회하다. 시를 지어 두 성의 동료에게 주다附) 早朝大明宮 呈兩省僚友-賈至
사인 가지의 ?조조대명궁?에 화답하다和賈舍人早朝-王維
사인 가지의 ?조조대명궁?에 화답하다和賈舍人早朝-岑參
19. 선정전의 조회를 마치고 저녁에 문하성을 나서다宣政殿退朝 晩出左掖
20. 자신전 조회를 마치고 되는대로 읊조리다紫宸殿退朝口號
21. 봄날 문하성에서 숙직하며春宿左省
22. 저물녘 문하성을 나서며晩出左掖
23. 문하성의 벽에 쓰다題省中院壁
24. 여주로 가는 각노 가지賈至를 전송하다送賈閣老出汝州
25. 남해로 비문을 새기러 가는 한림 장 사마를 전송하며送翰林張司馬南海勒碑
26. 곡강에서 사관인 정씨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曲江陪鄭八丈南史飮
27. 곡강에서曲江二首
28. 곡강에서 술을 마시며曲江對酒
29. 곡강에서 비를 바라보며曲江對雨
30. 위곡에서 정 부마를 보시고奉陪贈附馬韋曲二首
31. 보궐 잠삼이 보내준 시에 화답하다奉答岑參補闕見贈
좌성에 있는 습유 두보에게寄左省杜拾遺-岑參
32. 중윤 왕유에게 올리다奉贈王中允維
33. 부모님을 뵈러 강녕으로 가는 허 습유를 배웅하다. 내가 이전에 그 고을에서 나그네로 떠돌다가 허 습유의 거처에서 와관사의 유마도를 보았는데, 이 시의 말미에 그 내용을 기록한다送許八拾遺歸江寧覲省 甫昔時嘗客游此縣 於許生處乞瓦棺寺維摩圖樣 誌諸篇末
34. 허 습유를 통해 강녕의 민 상인에게 부치다因許八奉寄江寧旻上人
35. 이 존사의 소나무 병풍에 적다題李尊師松樹障子歌
36. 아우의 소식을 듣고得舍弟消息
37. 이 교서를 보내며送李校書二十六韻
38. ‘가까운 이웃’이란 노래를 지어 필요에게 주다?側行贈畢曜
39. 필요에게 주다贈畢四曜
40. 저작랑 정건의 옛 집에 쓰다題鄭十八著作丈
41. 의로운 송골매 노래義?行
42. 송골매 그림을 노래하다??行
43. 단오에 옷을 하사 받다端午日賜衣
44. 맹운경에게 화답하다酬孟雲卿
두시경전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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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양륜의 『두시경전』은 정밀하고 간략함으로 유명하다. 천착하지 않으며 견강부회하지 않고 뛰어남을 자랑하지 않으며 박식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평이하면서도 시의 뜻을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두보의 정신이 활자 위에 분명하게 드러나니,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두보 시는 한결같이 사람들의 추숭을 받았는데 왜 해석하는 사람이 주석을 찾지 못하였는가. 이것은 주석가 자체의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가가 깊은 것을 구하려다 천착하게 되고 밝은 것을 구하려다 번잡하게 되니, 천착은 속임에 가깝고 번잡함은 군더더기를 모은 것에 불과하다. 속임과 군더더기가 합쳐지면 오류[繆]를 발생시키거나 더럽게[穢] 된다. 이에 두보 시의 진면목과 참 정신이 변질되어 쉽게 이해되지 않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이 ‘역사가들은 모름지기 재주와 학문과 식견의 세 가지 특장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는 주석을 다는 사람들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주석이란 주석과 해석과 비평 등 세 가지를 일컫는다. 주석으로 그 의미를 밝히고 해석으로 그 뜻을 통하게 하고 비평으로 그 뜻을 밝히고 그 예술 경지를 논의해야 한다. 주석은 중점이 학문에 있고 해석은 중점이 재주에 있고 비평은 재주와 학문 이외에 식견에 중점이 있다.
양륜은 시인으로서의 창작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시를 짓는 사람의 즐거움과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전접조응(轉接照應)과 맥락관통처’ 등을 지시하면서 ‘그 문장의 기세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라는 설명을 덧붙일 수 있었으니, 과거 시험의 관습에 빠져서 왕부지가 말한 ‘비루한 사람이 비루한 법을 세운다.’라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즉 글자마다 그 정확한 의미를 찾았으며 당시 일을 고증하였고 표현된 의미로 감추어진 뜻을 찾으려 하였다. 또한 기이한 학설을 따르지 않았으며 근거 없이 제멋대로 추측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천착하거나 지리한 병을 면하게 되었다. 여기에 자주 반복하고 침잠하여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였으니, 한편으로 구조오와 포기룡 등 여러 학자들의 오류를 바로잡으며 주학령이 빠트린 것을 보충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여러 주석서의 장점을 채택하여 가장 합리적인 주석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달리 주석가의 재주와 학문과 식견의 표현으로 『두시경전』이 사람들의 중시를 받게 된 이유이다.
----- 곽소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