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원수들과 사는 법 [조선데스크]신동흔 여론독자부 차장
이웃집 원수들과 사는 법
어느 날 저녁 아파트 두 층 아랫집 가족이 찾아왔다. "위층에서 나는 발소리가 시끄러워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댁의 '윗집'인 우리 집 아래층으로 가야죠" 했더니, 말인즉슨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돼 직접 '소음'을 겪게 해볼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아, 네~" 그렇게 그들은 '윗집의 윗집'의 양해를 받아 온 식구가 쿵쾅거리다 돌아갔다.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우스개로 소개된 청취자 사연이다. 층간 소음 문제로 싸우다 살인을 저지르고, 1층 세입자 집에 불을 지르는 세상에서 이 작은 '복수극'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이들도 '목숨 걸고' 벌인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웃사촌도 있지만, '이웃집 원수'들과 담이나 벽을 맞대고 사는 경우도 많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창문을 열어두고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새로 이사 온 옆집 남자는 현관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었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담배 연기는 고스란히 우리 집으로 흘러들었다. 며칠 전 담배 냄새가 느껴져 나와 봤더니 황급히 집으로 들어간 기색이 남아 있었다. 뒤따라 벨을 누를까 하다가 이웃 간 층간 소음 다툼이 생각나 관뒀다.
아파트는 묘하다. 층간 소음이 심해도 비싼 아파트일수록 잡음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한 신축 아파트에선 입주 초기부터 "윗집 휴대폰 벨 소리까지 들린다"는 불만이 나왔지만, 층간 소음으로 다툼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아파트 가치에 영향을 미칠지 몰라 이 '결함'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같은 가격대의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 있는 셈이니까.
아이러니는 이렇게 똘똘 뭉쳐 있어도 지난겨울 폭설 때 함께 나서서 눈을 치우는 법이 없었고, 입주자 대표들이 관리비를 떼먹어도 나서 따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집값 떨어뜨리는 정책이라도 나오면 즉각 플래카드를 붙이고 나서는 '이익의 공동체'는 있지만 생활의 공동체는 없다.
몇 년 전 중국 상하이 푸둥 금융 특구의 대단지 아파트에 살던 시절, 옆집 할머니는 수시로 우리 집에 놀러 왔다. 12층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불쑥 말을 걸어오는 통에 놀란 적도 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삶의 터전이 고층 아파트로 옮겨졌지만, 중국인들의 생활 방식에는 여전히 옛 골목 정서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미 전 국민의 60%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혹시 이웃에게 관심 좀 가지라고 건설사들이 '날림 공사'를 했을 리도 만무하다.
새삼스레 그 옛날 '골목 문화'를 되살리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웃의 과도한 관심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 자기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주차장과 골목의 눈은 겨울 내내 녹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복도의 담배 연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틈을 타 이웃의 관리비를 탐내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새로 이사 온 옆집에 인사부터 건네고, 담배 연기에 신경 써달라고 말을 꺼내야 할 것 같다.
[조선데스크]신동흔 여론독자부 차장